현재 젊은 세대들에게 만화만큼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는 소설 종류 중 하나가 SF 판타지소설일 것이다. 그렇다면 2000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관객상을 수여받은 투발루 역시 젊은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요소들을 한 껏 내포하고 있다는 기대를 충분히 갖고 있으리라 짐작하며 영화관을 찾는 우리들의 발걸음 속에는 설레임이 묻어 난다. 그러나 영화 시작 2분 만에 너무나 예쁜 한마리 새의 등장과 함께 우리의 설레임은 상상의 나래 저 너머로 산산히 부서져 간다. 헐리우드에 익숙해진 우리는 너무나 낯선 특이한 구성과 연출로 인해 100분의 러닝타임 동안 안절부절 하며 당혹해 하는 주위 관객의 반응에 동변상련을 느끼며 이런 모습을 즐기고 있을 감독의 면면을 애써 담담하게 상상할 것이다.
독일 출신 바이트 헬머 감독은 이미 여러 차례 뛰어난 연출과 기발한 소재로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관을 구축한 단편감독으로 매니아층에는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장편을 통한 대중과의 조우는 투발루가 처음이다. 독일 영화는 표현주의로 대변될 만큼 그 뿌리에 있어 미적 요소의 기반이 단단하다. 그래서 조금은 무겁고 다루는 주제가 간단하지만은 않은 복합성을 지닌다. 투발루는 이런 뿌리 깊은 영화 미학과 영화 발생 초기의 원색적 표현형태, 그리고 21세기의 감각을 아주 감칠 맛 나게 버무려 우리 앞에 영사되고 있다.
전체적인 영화의 특징은 극히 절제된 대사를 통한 등장 캐릭터들의 과장된 행동언어에 대한 집중 유도와 파스텔 풍의 원색적인 필름 처리를 통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화적 신비감을 주 요소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이트 헬머 감독은 인간의 언어가 상상의 자유를 속박하는 굴레로 작용한다고 여겨서 감정표현을 순수표현인 행동을 통해서 그 구속을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각 인물들의 이름만을 언어화 하는 것도 인간이란 존재가 이름이라는 기호에 의해 하나의 개체로 정형화 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반발감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절제된 시도는 영화 전반에 걸쳐 각 쇼트마다 일관된 느낌을 가지고 흐르는 색감으로 보완된다. 필름에 직접 색을 입히는 번거로운 작업을 감수해 가면서도 장기간의 작업을 한 의도는 우리가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는 순간 머리 속에 가장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이라고는 규칙적으로 들려 왔던 기계엔진 소리와 몽환적인 롱쇼트의 배경톤임을 생각해 볼 때 충분히 성공한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를 이끌고 있는 '안톤'과 '에바'는 각각 어항에 갇힌 물고기와 새장 밖으로 날아가 버린 새로 각각 표상된다. 어항 속의 물고기는 '에바'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에바'의 의지에 따라 움직임으로써 '안톤'의 소극적인 행위와 수동적 미래를 짐작케 하고 있으며 새장 속의 새는 새장을 벗어나 '에바'의 완고한 아버지 얼굴을 쪼고 하늘로 훨훨 날아감으로서 '에바'가 자유로운 의지로 움직이는 기득권층을 넘어 설 수 있는 주체적인 캐릭터임을 알려 준다. 그들은 서로의 꿈을 읽어 낼 수 있으며 미래의 같은 목표로 설정된 자유를 향해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 물론 아주 특별한 수영장에서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 속에서도 이 영화의 즐거움을 얻을 수도 있지만 그것들은 찰리 채플린의 우스꽝스러움을 뛰어 넘기에는 역부족이다.
헐리우드 스타일의 정형화된 구조가 아닌 조금은 황당하고 약간은 성질을 돋구는 투발루는 블럭버스터 영화와 최루성 멜러물에 의해 수동화되고 세뇌되어 가던 우리들의 상상력에 다시 한 번 우렁찬 기적을 울리며 유영하는 의식의 자유를 심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