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새 물결) 부문 출품작 <선택>은 매우 독특한 이력의 영화작가 홍기선의 두번째 장편영화다. 대학재학시절에 영화패 '얄랴셩'을 조직하였고, 그 후에는 독립영화집단 '장산곶매'를 설립하여 1989년에 최초로 광주문제를 다룬 <오! 꿈의 나라>를 제작한 그는 1992년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에서 남한 사회의 뿌리뽑힌 인생들의 고단한 삶을 그려낸 바 있다.
영화 <선택>은 지난 9월 이후 남한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이라크 파병과 북한 핵문제와 연계되면서 매우 의미 있는 주제의식을 전달하고 있는 수작이다. 남한 사회 구성원의 전반적인 관심이 거대담론에서 미시담론으로, 무거운 문제에서 가벼운 화제로, 심원한 사유에서 배후를 묻지 않는 웃음으로 바뀌어버린 요즘 세태에서, 이런 영화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비전향 장기수 문제는 1989년 소설가 김하기가 '창작과 비평'에 중편소설 <살아있는 무덤>을 발표하면서 세간에 회자되기 시작하였다. 이미 유럽과 미주지역에는 남한의 장기수들을 후원하는 조직들이 열성적으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동일한 공간의 거주자들인 우리는 정작 이런저런 제약과 개인적인 이해관계로 장기수 문제는 거리를 두고 있었던 터였다.
<선택>은 세계 역사상 최장기 양심수로 이름을 남긴 김선명의 고단했던 사상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시간대에 따라 접근하고 있는 영화다. <선택>은 어째서 그가 한국동란의 와중에서 북한 체제를 선택하게 되었으며, 장장 43년10개월을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어야만 했는지, 그리고 그의 가족과 동료들은 그 과정에서 어떤 변화를 겪어야 했는지를 몇몇 역사적인 사건들과 대응시키면서 찬찬히 반추한다.
영화에서 가장 강렬하고 집중적으로 조명되는 지점은 1972년 7ㆍ4 '남북공동성명' 발표와 결부된 시간대이다. 박정희의 이른바 '10월 유신'으로 비전향 장기수들이 전원 전향 대상자로 지목되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비인간적인 폭력과 고문의 현장에서 어떻게 그들이 투쟁-좌절-전향하였는지가 <선택>에서 가감 없이 그려진다.
여기서 우리는 김선명과 대척점에 서있는 인간 오태식과 만난다. 인민군 손에 아버지를 잃고, 자신도 다리를 절게 된 오태식은 남한 땅에서 공산주의 발본색원을 평생의 목표로 삼고 있는 인물이다. <선택>은 두 가지 전선을 대표하는 이들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확대하여 조명함으로써 같은 대지에 기초하여 살아가는 인간존재의 궁극적인 자유와 인식의 문제를 더러는 강렬하게, 더러는 속삭이듯 제시한다.
만일 <선택>이 너무도 영웅적인, 그리하여 나약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결여하는 인물들을 비전향 장기수들로 묘사했다면 관객은 그렇게 큰 감동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오태식의 하수인으로 고용된 깡패, 잡범 및 가정 파괴범들의 야만적인 폭력과 가족들을 동원한 영혼파괴공작, 나아가 폭력과 고문의 일상화로 인한 정신분열증세 등으로 파괴되어 가는 양심수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냄으로써 <선택>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가장 어두웠던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을 생생하게 복원하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선택>은 장기수들의 고통스러운 수감생활을 여러 각도에서 비춤으로써 우리를 20~30년 전의 과거로 인도한다. 1970년대 김지하의 시 <통방 건다>에서 그려지는 '통방 장면'이나, '남민전 사건'으로 장기간 독방생활을 해야 했던 김남주의 '뼁키통' 장면, 손발이 묶여 짐승처럼 밥을 먹어야 하는 장면 등등은 이제 이야기 거리가 되고 말았지만, 그것은 불과 얼마 전 대한민국 양심수들의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일상이기도 하였다.
<선택>에서 김선명은 말한다. "나에게 선택은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가지를 버리는 것이었다"고. 그는 자본주의를 버렸고, 오태식은 자본주의를 선택했다. 화해할 수 없는 이러한 대립관계는 지금도 남한과 북한의 두 체제 모두에 걸쳐 있으며, 강고하게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2003년의 시간대를 살면서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을 휩쓰는 '매카시즘'의 광풍을 목도하고 있다.
영화는 우리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어떤 이데올로기의 문제, 즉 국가나 이념과 같은 문제가 아니라, 한 개인이 올곧게 지켜나가고자 하는 믿음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지키고자 하는 개인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국가는 결국 허울만의 자유주의 국가라는 지극히 간명한 명제가 <선택>에서는 흘러나오고 있는 셈이다.
영화 <선택>은 한 개인이 왜 두 가지가 아니라 하나만을 고를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것은 야만적인 시대와 그런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인간들에게 어떻게 작용했는지, 그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지 오래도록 사유하게 한다.
오락과 상업성이 횡행하는 천민 자본주의 시장에서 들려오는 한 줄기 강력하고 웅혼한 인간적인 외침에 귀기울이면서 관객은 영혼의 정화와 역사에 대한 반추를 절절하게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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