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나 그 모습 그대로 친구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친구'란 영화를 본 뒤 내게 던져진 의문였다. 사람들은 누구나 변한다. 어 릴 적 무엇이 그리 신난지 몰려다니던 친구들도 어느 새인가 영 다른 사람 처럼 변해버린다. 영화 속의 동수가 준석과 달리 우정에 있어서 조금씩 비 열해져가는 부분은 안타까움과 함께 현실로 다가섰다. 고교시절 준석의 밑 에서 일말의 열등감을 키워왔고 가까스로 조직의 힘을 얻은 그에겐 어릴 적 그대로 믿음을 주려는 준석이 그리 달갑지 않다. 정작 친구의 입김에 의해 살해당하는 그의 모습은 비운의 운명으로 어긋나 버린 우정을 보는 것 같아 매우 씁쓸했다. 그들은 친구였지만 또다른 양편 세력의 조직일 수밖에 없었 기 때문이다. 동수의 죽음이 교살인지 아닌지에 관해 여러 의문이 들었다. 의리로 똘똘 뭉친 듯한 인상을 주는 준식이 갑자기 반전을 보인다는 것은 이 영화의 오점같아 아쉬웠다. 감독의 의도가 어떠했든 간에 영화의 결말은 덜 익은 음식을 씹은 것 만큼이나 마음이 눅눅했다. 어린 시절과 사춘기를 겪어오며 정감있게만 그려졌던 우정이 결국에는 죽음과 형무소로 일단락되 는 것이 무척이나 보기 아쉬었다. 준석과 동수의 삶이 깡패 조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이미 파국의 결말을 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범생 상태의 학 업적 삶은 이들과는 유리된 또다른 사회로 보였고 자신과 다른 세계를 동경 하는 준석의 모습은 그래서 더 인간적으로 보였다. 마이 웨이를 열창하는 그는 삶의 어둠이 친구 상태를 통해 가끔이라도 해방구를 맞이하길 원하듯 보였다. 이러한 이유로 다른 편에서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동수를 자신만 큼이나 측은하게 여겼을 것이 분명하다. 서로의 인생을 각자 내다보고 있으 면 좋으련만......아무리 단짝이라도 상대의 인생을 어느쪽으로도 열리게 하지 못한다. 그러한 인생의 길이 단단히 다져진 우정을 밉살스럽게 흐트러 놓기도 한다. 영화 속 동수와 준식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가슴 속에 들어있는 우정의 깊이란 조오련과 바다거북이 중 무엇이 빠른지 알 수 없는 시덥지 않은 질문마냥 그 수치를 잴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친구란 것이 한 자어 그대로 오래 옆에 두고 사귀어 온 존재이기 때문이다. 친구의 생명이란 역시 '의리'이다. 변해가는 친구의 모습조차 포용하며 함 께 걸어가는 의리 말이다. 영화 속 두 친구는 죽음으로 인해 비운을 맞이하 긴 했지만 그들이 엮어온 우정의 행로란 동수의 죽음 뒤에서도 계속되는 것 일테니 말이다. 각종 은어와 폭력이 난무하는 깡패 세계의 우정이 크게 엿 보이긴 했지만 영화 속 우정의 생동감과 찌릿함은 잊혀지지 않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