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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 부드럽다. 자연스럽다. 지금까지의 김기덕을 생각한다면 이 영화는 정말 재미가 없다. 하지만 색다른 김기덕의 발견에 흥분을 감출 수 없다.
어떤 사람이 필자에게 인생에 관련한 영화를 하나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인생'이란 영화를 권할 것이다. 장이모 감독과 갈우와 공리가 주연한 1994년 작품이다. 한 사람을 통해 부귀했던 순간부터 가족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19세의 어린 나이(필자가 영화를 본 나이)에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많은 생각과 고민에 빠져들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만큼 손쉽게 이해될 만큼 인생에 관해 쉽게 풀어내었다. 그리고 25살이 된 지금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이하 봄여름)이란 인생에 관해 한번쯤 생각을 깊게 해볼만한 김기덕답지 않은 영화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된다. 봄여름이란 영화는 장이모 감독의 인생이란 영화만큼 쉽게 다가오거나 실질적으로 보여 지는 모습은 없으나, 인생을 단계별로 구분하여 내적인 변화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에 또 다른 인생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우선 제목만 보고서도 알 수 있듯이, 영화는 크게 5개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단편적으로 인생의 어린 시절부터 장년기까지 계절이라는 특성에 맞춰서 각각을 표현하였다. 이런 인생의 흐름은 불교라는 종교적인 이미지하고도 부합되어 나타난다. 중요한 것은 불교적 이미지에 맞게 나타나는 인생의 의미가 호수 가운데 홀로 떠 있는 암자라는 매우 한정된 공간에서 표현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한정된 공간에서 보여 지는 것들이란 외적인 인생의 변화가 아닌 내적인 변화에 초점이 맞춰진다는 의미이다. 이미 인생을 한번 겪어 부처가 되어버린 노승과 이제 인생의 업을 가진 동승과의 암자 생활로 김기덕이 말하고자 하는 봄여름의 인생이 시작이 된다.
영화 속에서 암자로 통하는 문이 하나 등장을 한다. 이 문은 영화에서 많은 의미를 지닌다. 암자와 바깥세상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매개체이기도 하고, 또한 자신과 남이란 경계선이 되기도 하고, 자아와 탈 자아의 벽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문의 특성으로 인해 각 단락 단락을 구분 짓는 역할도 한다. 바깥 세상의 사람이 문을 통해 들어옴으로 해서 계절의 변화가 생기고, 또 훌쩍 커버린 동승이 문을 통해 바깥 세상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문의 열고 닫음의 순간에 느껴지는 인생의 흐름은 상상 속에서 충분히 펼쳐진다. 이와 같이 영화에서 보이는 문은 영화를 이끄는 하나의 수단이 되고, 인생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역할을 한다.
전체적인 분위기 속에서는 이전의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보여지는 것만 하더라도 편하고, 부드럽게 그리고 아름답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전혀 다른 영화라고 보기에는 힘들 듯 싶다. 이런 생각이 가장 크게 드는 이유는 역시 여자에 대한 관점이다. 직접적으로 말해 섹스 코드의 일부분이다. 여름의 시기에서 사춘기의 청소년을 보내는 동승에게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금방 눈치를 챌 수가 있다. 여름에 외로운 암자에 문을 통해 바깥 세상에서 나 아닌 다른 남이 들어온다. 그 인물은 사춘기 청년의 동승과 비슷한 나이의 여자, 결국 욕구를 이기지 못해 강간 아닌 강간을 한다. 그리고 이 강간을 통해 갑자기 서로 사랑이라는 집착에 빠지는 여름의 인생을 보여준다. 이는 이전의 영화 속에서 보여줬던 코드와 비슷하다. 결국은 영화 속에서 이 부분만큼은 전편의 영화들을 답습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또 하나의 특징은 역시 공간적인 요소이다. 김기덕 영화의 전작들과 같이 봄여름은 폐쇄적이고 한정 된 공간 속에서 모든 것을 표현하려한다. ‘해안선(해안경비대)’, ‘파란대문(여인숙)’, ‘섬(낚시터)’ 등과 같이 거의 대부분의 영화들이 상당히 제한적 공간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봄여름 또한 이런 기본적인 특성에 매우 충실해 있다. 산 깊숙한 곳에 호수, 그리고 그 호수에 부유하고 있는 암자라는 제한적인 공간이 전부이다. 문을 통해 바깥으로 출입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두지만 봄여름에서는 전작보다 오히려 더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부유하는 암자는 일정 방향성도 없고 누구의 간섭이나 침투를 허락하지 않는다. 불교적으로 속세를 떠나 부처가 되는 장소이고, 시회적으로는 나 자신(자아)의 순수성을 간직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엽기적이지만 자신만의 미학을 갖춘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 국내보다는 오히려 해외에서 더 많은 호평과 박수를 받아 왔으며, 적지 않은 마니아를 거느린 독특한 감독이다. 봄여름이란 이번 영화는 이전의 김기덕 영화와 분명히 다르다. 마니아가 아닌 다른 어느 누가 보더라도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그에 맞는 아름다운 자연과 영상 또한 볼거리이다. 하지만 앞에서 보는 것과 같이 상당부분은 김기덕 영화란 것을 눈치챌 수가 있다. 자기만을 색깔을 간직하면서도 마니아가 아닌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주기에 참 알맞은 작품이다.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심하는 것은 모든 인류의 업이자 고통이다. 그런 면에서 봄여름이란 영화는 인생의 업이나 고통을 많은 사람들과 같이 생각해 보고 고심해 보기에 적당한 영화이다. 많은 것을 보여주지도 말하지도 않기 때문에 더 집중하고 몰입하면서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인생의 흐름과 사계절의 흐름과 매치를 시키면서 아름다운 배경 속에서 꾸려 가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자신만의 인생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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