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보았던 '전설의 고향'의 오프닝 장면과 배경음악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느 산에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물씬 풍기는 초가집 한 채가 있고 '전설의 故鄕' 이라는 글자가 세로로 쓰여져 있던 모습.. 난 그것이 너무도 무서워 그 장면을 볼 때면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눈만 내놓은 채로 보곤 했었다. 그때부터 내게 제일 무서운 귀신은 하얀 소복을 입고 산발을 한 머리에 입가에는 피를 질질 흘리고 있는 처녀귀신이었는데, 요즘은 오히려 이런 귀신들을 우리 영화에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올해 개봉한 우리 공포 영화 중에서 성공을 한 <장화홍련>만 보더라도 처녀 귀신은커녕 정체를 알 수 없는, 땅을 기어다니는 검은 색의 귀신이 등장할 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우리나라 귀신이 기어다녔을까? 아마 이것은 <링>의 영향인 듯하다. 내 기억으로는 우리 나라의 귀신들은 발이 없어서 걷는 대신에 땅을 스치듯이 날아다니기 때문이다. 이런 토종귀신들이 TV로부터 기어나오는 그 인상적인 장면으로부터 '토종귀신의 일본화'가 시작된 게 아닌가 싶다. 이번에 이런 조건들(일본화된..)을 만족하는 일본 호러 영화가 잇달아 개봉하고 있다. <주온2>가 바로 그것이다.
2편의 줄거리는 1편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남자가 자신의 부인을 무참히 살해하고 자신 역시 집근처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는 대여섯살 먹은 '토시오'라는 아이가 있다. 그리고 문제는 그들이 살던 '집'이다. 그 집을 한번이라도 거쳐간 사람은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데, 이런 흉가에서 납량특집 방송인 '귀신이 나온다는 흉가의 실체'를 촬영하기 위해 호러퀸 '쿄코(사카이 노리코)'와 스텝은 그 집에 들어간다. 그때부터 시작되는 의문이 사건들이 시작되는데...
<주온>시리즈는 원래 비디오판부터 시작되었다. 탄탄한 원작이 받쳐주는 <링>시리즈와는 달리 <주온>은 시미즈 다카시 감독의 독자적인 작품이다. 분명 이 시리즈는 스토리 라인이 매끄럽지 못하다. 영화를 보다가 보면, '왜 이 귀신들은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죽일까? 얼마나 한(恨)이 많기에 이렇게 까지 하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건의 결과인 죽음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이 관객들을 설득시키지 못한다. 이런 미흡한 스토리를 커버해내는 것이 독특한 스토리 텔링 방식이다. 하나의 줄거리를 바탕으로 사건과 등장인물들이 배열되는 것이 아니라, 인물 각자에게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사건이 일어나는 순서와는 별개로 배열이 된다. 따라서 관객들은 사건의 전후를 파악하기 위해 헷갈리고 번거로운 과정을 겪어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오싹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시미즈 다카시 감독은 이 순서가 공포를 좀더 극대화시키기 위한 배열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인물 중심의 사건을 짜깁기해서 만들었다는 점에서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픽션>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분명 공포 영화에서는 파격적인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이 <주온>시리즈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하나의 전통으로 못박겠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이런 시도는 한번으로 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여기 <주온>의 또 하나의 매력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어둠과 사운드의 배합이다. 영화 속 사람들의 집은 낮에도 어둠에 휩싸여 있다. 물론 밤이 되면 더할 나위 없이 깜깜하다. 그런데 이 어둠에도 깊이가 있다는 것이다. 촬영을 하자면 최소한의 빛이 있어야 하는데 분명 이런 '어둠'의 표현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주온>을 보면 암흑에서부터 회색에 이르는 무채색이 자연스럽게 구사된다. 그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온갖 잡음은 소름이 돋는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이지만 정적이 흐르는 공간에서 들려오는 그러한 잡음은 커다란 이질감을 남기는 것이다. 마치 '일상'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토 준지'의 호러 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주온2>를 보고 느낀 것은 전혀 무섭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깜짝 놀랠만한 장면들은 곳곳에 산재되어있다. 하지만 그동안의 여타 공포 영화를 보면서 단련이 되었는지 공포를 느끼긴 쉽지 않다. 다만 헐리웃의 핏빛 난무하는 하드 고어 영화와 '한'을 품고 죽은 귀신이 나오는 영화의 '섞어찌개' 같은 이 작품이 보여주는 그 참신한 시도가 의미있게 느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