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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트리-사랑, 사람에 대한 가슴시린 핏빛 변주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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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트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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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le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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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27 오전 2:32:10 |
2510 |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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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면 어느덧 주인공과 동일시되어가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순정만화나 행복한 소설의 여주인공일 때야 별 문제가 없지만 많은 시련을 겪는 주인공일 때에는 일체화되어가는 내가 힘들어서 줄거리를 따라잡기에도 숨이 차오를 때가 있다.
플라스틱 트리... 가짜나무.
한겨울의 부산 바닷가에 지어진 허름한 이발소. 창문너머 보이는 앞집의 옥상콘크리트에 심어진 때이른 열매나무가 너무나도 부러워 오직 소원이라고는 자신집 옥상에 해바라기꽃을 심고싶은 것 뿐인 원영은 친구인 이발사 수와 동거를 하고 있다.
할줄 아는 거라고는 그저 오토바이 모는 것밖에는 없어 퀵서비스 배달원으로 일하는 원영은 수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고 그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며 그가 열어놓은 창문만큼만 세상을 바라보고 산다. 성불구로 제대로 된 관계가 갖지 못했던 수에게 불만을 가진 적도 없었다. 그의 따사로운 보살핌이 세상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살아간다.
나약하고 그저 누르면 받히고 남들이 대하는 대로 이리저리 굴려지는 원영은 자신의 처지가 서글픈 줄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날 찾아온 수의 어릴적친구 병호.
한없이 다정하고 섬세한 수와는 달리 병호는 모든 것이 거칠다. 해바라기는 겨울에, 콘크리트 담장에는 심을 수 없다고 하지만 다정하게 설명해주던 수와 달리, 남성다움을 깊이 간직한 병호는 하늘의 별도 따줄것처럼 말한다. 거칠고 어찌보면 되먹지못한 병호에게 어느날 성폭행을 당하지만 처음 성적인 만족을 느낀 원영은 그런 그에게 점점 더 사랑을 느낀다.
같은 회사의 퀵서비스 배달원들도 원영에게 음탕한 눈빛과 몸짓을 행하고 함부로 대하지만 뭐라 대꾸할 용기도 없다.
어느날... 병호에 대한 불타는 마음이 사랑이라 느낀 원영은 자신이 몸담았던 세상과 타협하며, 아니 무릎꿇고 살아왔던 방식을 모두 버리려고 한다.
삼각관계에 빠진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위험한 동거. 애증의 트라이앵글일까? 하지만... 단지 삼각관계에 빠진 세남녀의 농염한 관계를 그린 영화는 분명 아니다.
너무나 여성적이며 섬세한 다정함을 지닌 것처럼 보였던 수에게는 극악한 잔혹함이 내재돼있었다. 외유내강..?? 감히 이런것에 그 따위 용어를 쓸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열등감과 자의식은 겉으로는 한없이 사람을 유약하고 온화하게 보이게 만들지만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랄까. 분출할 수 없는 폭력과 증오심은 마치 휴화산같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마그마처럼 들끓고 있다. 이 때 한 전환점이라도 맞을라치면 그 대상에게는 처참한 응징만이 가해질 뿐이다.
비뚤어진 남성성과 지배욕구를 지닌 병호는 오히려 늘 상대에게 표출해온 폭력성으로 인해 내면은 그리 복잡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를 것인가.
마치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서 보듯 모두가 비뚤어지고 흉포화된 캐릭터들이 매우 역겨웠다. 수나 병호, 퀵서비스맨 두 말할 것도 없이 모두 남자다. 정말 그런 남자가 있을까. 오히려 수의 표피적인 다정함과 병호의 남성다운 터프함으로 치장하고서 극악한 잔혹함이나 몰인정으로 내장된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쳐졌다. 하지만 사랑할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주인공들. 정말 저런 사람들이 있을까.... 하지만 있을 것이다. 세상은 그처럼 복잡다단하다. 경험하지 않아도 좋을 모든 것을 다 알고 난뒤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상대인 여성에게 지적은 아닐지라도 힘과 신체라는 육체적인 우월성을 지닌 단 하나의 유치한 논리로 인해 상대를 억압하고 억누르는 것. 남자라서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성별을 떠나서 지배층일 수도 있고 기득권층일 수도 있고 상하관계나 우열 관계에 놓이면 모두가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 그런데 과연 그들은 그 피압박층이 받아야하는 박탈감과 패배감, 아픔을 과연 알기나 할까. 원영은 멋지게 복수를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차근차근 자신의 서투른 방법으로 해나가려한다. 울컥하는 마음에 택배직원에게 어줍잖은 폭력도 가해본다.
하지만 세상에 대한 울부짖음과 참았던 분노를 폭발하며 원영이 택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는 고작 자신의 머리를 자르고 싶었던 것. 그것도 멍청하게도 혼자서 할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었던 원영은 수에게 물어본다. 잘라줄래? 잘라줘!!! 생전 처음 느꼈던 분노를 참지 못한 그녀가 택한 길은.... 그 결과는 처.참.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 험한 상황을 뒤로 하고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의 길을 떠나는 수는 말한다. 너를 사랑했노라고. 사랑해서 하지만 나를 화나게 하지는 말아야했노라고. (지가 헐크인가...)
그에 답하듯 들려오는 목소리. 원영은 되묻는다. '네 사랑은 어디까지였니....'
가방을 둘러메고 먼길을 떠나는 수의 뒷모습에서 나직하게 깔리던 그의 목소리에서 어느 공포영화 못지 않은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영화내내 원영의 눈물과 슬픔의 모습에 내가 보여서 2시간이 더 힘들었던 것은 너무 오버였을까.
가슴이 아팠다. 사랑한다. 좋아한다. 하지만 자신이 정해놓은 선에서 한발자국 내딛는 순간 모든 사랑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만다. 증오만 남을 뿐이다. 아니면 정말 사랑하기나 했던 걸까. 본인들이 기억하지도 못할 만큼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애. 증.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일까.
플라스틱 트리. 요즘 조경수는 만져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을 만큼 정교한 가짜들이 참 많다. 사랑도 마찬가지고 세상의 숱한 말들, 약속과 만남, 이별 모두 가짜 투성이다.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지만 가슴은 점점 아프고 상처는 깊어갈 뿐이다.
참 거짓을 가릴 혜안은 언제쯤 내게 주어질 수 있을까. 기다리면 될까. 많이 아팠던 원영처럼......
** 비교적 괜찮은 영화였는데. 아직은 내공이 미치지 못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아쉬웠고, 무엇보다도 절정에서 나오는 60년대 한국영화풍의 삑사리~ 음악은 죽음이었다. 미완성의 아쉬움이 너무나도 컸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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