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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어떻게 해야 하나?-<<바람난 가족>> 바람난 가족
lh5822 2003-08-23 오후 9:43:04 1494   [1]
 <<바람난 가족>>을 가족과 함께 보았다.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여기저기 소개된 바에 의하면 이 영화가 가족 구성원의 '바람'에 대한 보고서일 테니 같이 보는 게 쑥스러울지 모른다고 걱정했는데 결론을 말하면 잘 했다. 꽤 심각했던 것이다.

먼저 보통의 줄거리 소개에서는 생략되고 있는 마지막 부분을 간단히 소개하고 얘기를 시작하기로 하자.

호정이 아무도 없는 무용학원에서 걸레질을 하고 있는데 영작이 찾아온다. 호정이 남편에게 방을 구해 놓았다고 하면서 아이를 가졌다고 말한다. 남편은 "잘 할게"라고 한다. 그러자 그의 아이가 아니라고 대답한다. 남편은 수인도 자기 아이가 아니지만 사랑했다고 말하면서 다시 잘 하겠다고 한다. 부인은 아니라고 한다(정확하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기억력 하고는! 아무튼 같이 살지 않는다는 뜻의 말을 한 것은 분명하다). 영작은 돌아서서 가다가 훌쩍 뛰어 공중에서 발을 부딪치는 춤 모양을 흉내내고 나간다. 호정도 뛰어다니면서 하던 청소를 계속한다.

제목 그대로 가족 구성원 모두가 바람이 났다. 그러니 노골적인 장면이 안 나올 수 없다. 그러나 이런 그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의 의미를 진지하게 묻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때는 아주 무겁기도 하다. 곧 얘기되겠지만 도처에 죽음이 널려 있기도 한 것이다. 이 죽음은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 호정의 임신과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이 영화에는 죽음이 여러 차례 나온다. 하나는 변호사인 영작이 관여하고 있는 한국전쟁 때 묻힌 유골 발굴이고, 다음은 입양아 수인과, 아버지와 함께 월남한 영작의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직접 나오지는 않지만 아들과 손자도 모르게 죽어간 영작의 할아버지, 마지막으로 수인을 죽인 술꾼 우체부 지루의 자살이 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새 생명은 하나인데 왜 죽음은 이렇게 널려 있는 것일까?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의 해체를 상징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보통과는 다른, 다시 말하면 남편과 아내 사이가 아니라 혼외의 관계에서 생긴 아이를 부각시킴으로써 새로운 가족 개념을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한 것 같다. 이렇게 읽으면 마지막 장면의 걸레질은 아주 그럴 듯한 상징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죽음이 많이 나올 뿐만 아니라 그 분량으로 꽤 길게 제시되고 있는데도 가족의 이야기와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앞에서 가족의 해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런 상징이 필요하지 않게끔 가족을 무너뜨리는 바람이 여기저기서 불고 있기 때문이다. 시공간적으로 가족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적인 조건을 탐구하고 있는 것으로 읽어도 가족 내부의 저 바람과 잘 연결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386 세대의 감독인 임상수의, 대상을 사회적인 맥락에서 보고자 하는 자의식이 과도하게 작용한 것은 아닐까? 아무튼 구조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가 잘 풀려야 영화에 대해서 그럴 듯하게 얘기할 수 있다는 점만 지적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그러면 새 생명으로 상징되는 가족의 대안은 무얼까? 이 영화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을 한마디로 옮기면 가족 구성원 모두가 욕망의 존재라는 점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적 욕망으로 표상되는 바람은 실상은 이 욕망을 대표하고 집약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이 욕망을 조절하거나 통제하는 외부적인 조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작의 아버지는 죽었고 그 아내는 남편이 죽고 나서야 새롭게 성적인 주체성을 확인하고 있다. 억압적인 권위의 힘으로 분출하는 욕망을 내려누르는 것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강렬한 욕망의 바람을 억누르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불가능하게 된다고 했거니와 설사 임시적으로 그럴 수 있다고 하여도 문제를 감추는 일일 뿐이고 언젠가는 폭발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욕망을 서로 솔직하게 털어놓고 흔쾌하게 인정하는 일만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태도를 요즘 말로 '쿨하다'고 하는 모양인데 외국말 쓸 필요 없이 그냥 우리말로 쉽게 '시원하다'고 해도 되겠다.

앞으로 그 시기가 언젤지 모르지만, 영화에서 그려진 바와 같은 가족의 행로가 일상적인 현실이 되리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올바른 해결책의 구체적인 경로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못하지만, 서로의 욕망을 인정하는 갈등과 고통의 과정을 거치고서만 개인의 자유와 욕망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새로운 가족 형태가 자리잡을 수 있으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개인 주체의 행방이다. 참다운 개인적인 주체의 성립 없이는 사랑도, 그 사랑에 기초한 가족도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조건을 갖추어야만 서로 '시원하게' 행동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호정의 인물 형상화에 대해서 한마디 하자. 호정의, 어린 애인(?)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말이 많은 것 같다. 중산층 여성의 성적 욕망을 배출하는 현실적인 모습이라고 하기도 하고 성기 중심의 관계에 지나지 않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내게는 다 맞게 보인다. 사랑의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성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고 그런 점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데는 별다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지만 욕망의 표현이 개인적인 차원의 일탈로 처리되고 마는 것이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일까? 성 행위 중에 애인의 몸 위에서 하는 호정의 대성통곡은 꽤 울림이 컸다. 그 울음에는 단순히 성적인 만족만은 아니고 가족의 이름으로 여성을 괴롭혀 온 것에 대한 분노와 슬픔이 함께 섞여 있을 것이다.

가족과 함께 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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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가족(2003)
제작사 : 명필름 / 배급사 : 영화사청어람
공식홈페이지 : http://www.baramn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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