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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빌, 인간에게 구원의 가능성은 없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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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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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ch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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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11 오전 11:43: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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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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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코아에서 도그빌을 보고 왔다. 이 영화에 대해 논쟁이 뜨겁다던데, 이게 잘만든건지 아닌지 평론가도 아닌 나는 도통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는건 그저 조금은 철학적이고, 파격적이고, 일단 재미는 있었다는 것. 지나치게 집약적이고 설명적인 9장은, 그 전과 '이미지상' 너무 달라 약간 당황스럽기도 하다. 반전을 만드려니 어쩔 수 있었으랴. "도대체 쟤는 뭐야!" 라고 울화통이 터질 때쯤 그레이스의 존재와 그녀가 참아온 이유가 설명되니 말이다. 내가 이해력이 부족했던 거라면 할말 없지만, 덕분에 나는,갑자기 나타나서 '쓸데없이' 인간 본성을 흔들어 깨워 밖으로 표출하게 해버린 그녀가 혹시 천사의 탈을 뒤집어쓴 팜므 파탈적인 존재가 아닐까 하는 비약적인 상상까지 한순간 해버렸다.
갑자기 마을에 끼어든 그레이스는 '안해도 좋을 일' 을 도맡아서 하고 다닌다. 장님의 말상대나, 건반만 누르던 풍금 연습에서 페달을 밟아주는 일을 하면서 그레이스는 그들을 채워주고 (완성시켜 주고..그래서 그레이스는 말 그대로 은총이다) 그래서 풍족해진 도그빌 주민들은 '풍족하기 때문에' 본성을 드러낸다. 톰의 말처럼, 그들은 부족했기 때문에 솔직히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인간은 외적인 생활에서 부족함이 없어야 내면을 직시할 여유가 생기는 걸까. 그리고 감독은 그 내면의 진실이란 결국 추악할 뿐이라고 말한다.
감독은 점점 인간에 대해 비관적 결론을 이끌어간다. 그레이스는 또한 진리, 진실을 뜻한다. 도그빌 주민들은 처음엔 진리를 환영하고 사랑하는 듯 하지만, 그녀가 점점 마을에 동화되려고 하자 그녀를 배척하고, 학대한다. 그레이스에 대한 수배령은, 그것이 그레이스가 한 일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마을 사람들에게 '정당성' 을 부여해준다. '대가'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능이 집단화되면서 정당해지는 것이다.
학대당하는 그레이스를 보며 톰은 괴로워하지만, 그는 주구장창 계획만 세울 뿐 정작 액션은 없다. 소설을 쓰겠다고 하면서도 실천에 옮기지 않는 톰은 실천하지 않는 '이상가' 에 불과하다. 모럴리스트이자 이상주의자인 톰과 그레이스의 사랑은 당연하다. 톰은 다른 '평범한 사람들' 과는 다르게 진리를 사랑하고, 갈구한다. 그레이스를 학대하지 않고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인 톰은, 그러한 자신에게 도덕적 만족감을 느낀다. 톰은 자기보다 지적 수준이 떨어지는 빌과 매일 장기를 두면서 우월감을 느끼는 인물이다. 그는 그레이스를 학대하는 주민들의 도덕적, 철학적 수준에 안타까움(우월감의 반영)을 느끼면서 '진실을 밝히는(진리를 받아들이기 위한)' 집회를 연다.
장님이 아닌 척 하는 장님 등 그레이스가 밝히는 진실(그들의 본질)을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다. 톰이 처음에 그레이스에게 말해줬다시피, (특이한 세트가 상징하는 것처럼) 사실은 알고 있지만 외면해오던 진실이 그레이스에 의해 공개적으로 적시당하자, 사람들은 그녀를 거짓말쟁이로 치부해버린다. 진리는, 인간이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버겁다.
톰은 그들의 수준에 실망하면서 주민들 대신 그레이스를 선택한다. 진리는 철학가인 톰이 궁극적으로 희구해야 하는 목표이므로. 그녀를 존중하고 사랑하다가 결국 모든걸 버리고 그녀를 선택하는 자신이 그는 매우 만족스럽다. 그러나 그레이스는 톰에게 그의 본질도 적시한다. 그는 사실 다른 이들처럼 그녀를 가지고 싶었지만, 단지 억눌렀을 뿐이다. 그 역시 그녀를 선택한 대가라는 정당성을 확보하자 그녀의 몸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 없다는 도덕적 진실을 지적당하자 큰 충격을 받는다.
이제 톰에게 그레이스는 가장 위험한 존재이다. 다른 평범한 사람들은 그저 진리를 외면하고 살아갈 수 있지만, 도덕적 이상가인 톰은 그럴 수 없다. 진실의 인정이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그러한 절망감은 결국 그녀에 대한 배신으로 그를 이끈다. 그는 더 이상 그레이스의 존재를 용납할 수 없으므로, 그레이스를 갱에게 넘겨주기로 결심한다.
마을을 찾아온 갱 두목과 그레이스(예수와 그아버지)의 대화에서 모든 것이 밝혀진다. 권력을 가진 아버지는 인간을 심판하려 들고, 그에 반발하는 그레이스는 사회학적 범죄이론을 내세우면서 인간을 감싸고 용서하려 든다. 그레이스가 보기엔 권력을 휘두르는 아버지가 오만스럽고, 아버지가 보기엔 그레이스의 도덕적 우월감이 오만스럽다. '심판'할 수 있다는 오만과 '용서'할 수 있다는 오만. 그러나 양쪽 다 결국은 인간을 '개'로 취급하고 있을 뿐이다.
어쨌든 아직도 인간 본성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은 그레이스는 다시 희생하고 용서하러 도그빌로 돌아가려고 차에서 내린다. 그러나 떠오르는 아침 태앙 아래서 그녀는 결코 구원될 수 없는 절망적인 인간의 본성을 깨닫는다. 좌절하며 다시 차에 탄 그녀에게 더이상 선택의 여지는 없다. 아버지는 다른 마을을 위해서도 도그빌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그녀는 아버지의 권력을 이어받아 도그빌을 '심판'한다. 지나치게 사랑받은 개는 아기를 물어 죽인다. 은총을 받은 인간이 어떻게 타락하는가를 다른 인간들이 알게 할 수는 없다. 그것이 은총을 내려준 그녀의 책임이다. 결국 은총도 심판과 일맥상통하는 권력의 일종인 것일까.
의아한 것은, 그레이스는 왜 중간에 도망치려고 했던 것일까? 그녀가 사랑하는 인간을 위해 고난을 받아들이고 용서할 것을 결심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그녀는 도망쳐서 어디로 갈 작정이었을까. 결국 그레이스도 '인간' 에 불과하다는 말일까. 감독은 결국 신에 대해서도 인간에 대해서도 끝없이 비관적인 것인가. 아니면 단지, 파격적인 반전을 위한 위장인지도 모르겠다. 음, 하여간 재미있다.
덧붙인다. 이 영화가 미국을 비판한 영화라던데 난 도통 모르겠다. 영화를 보면서 한번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으며 나중에 씨네와 인터넷을 보고 알았다. 엔딩 크레딧을 보면 안다던데 난 안보고 나왔다 -_- 감독이 직접 말했다던데, 제대로 표현하지도 않아놓고 왜 그 한마디로 자신의 영화를 결정짓는가. 미국의 오만과 폭력에 대한 비판? 아니, 내 보기엔 단지 인간 본성의 폭로에 관한 영화다. 사전 지식이 없이 영화를 본 관객들 중 얼마나 "아 이것은 반미영화로구나' 라고 느꼈을까. 감독의 실수였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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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빌(2003, Dogville)
제작사 : Kuzui Enterprises, Canal+, MDP Worldwide, Summit Entertainment / 배급사 : 코리아 픽쳐스 (주)
수입사 : 코리아 픽쳐스 (주), 스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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