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을 무척 재밌게 봤다. 한국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수작이다. 하지만 살인의 추억은 이데올로기에서 한계가 있는것 같다. 실제 화성연쇄살인사건은 가학행위가 수도 없었고 많은 시민들이 범인의 누명을 쓰고 고통을 당해야 했다. 살인의 추억은 이 모든 불행한 과거를 야만적이고 한심했던 80년대라는 시대상황으로 문제를 돌린다. 워커발로 용의자를 발로 차고 고문을 일삼아 범인을 조작하던 그 모든 형사들도 그 시대의 피해자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시대에게 죄를 물을 수 있을까. 그 개개인의 잘못을 그렇게 술렁술렁 넘길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역시 찜찜하다. 아무리 시대가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해도 그 형사들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살인의 추억을 보면 그들을 용서하게 된다. 영화가 너무나 잘 만들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쉽게, 자연스럽게 용서하게 된다. 그 점이 유일하게 이 영화에서 느끼는 결함이다. 누구나 피해자다. 하지만 서울 형사 같은 선구적 인물, 시대적 한계에서 발부둥치지 않은 인물이라면 모두...죄인 아니겠는가. 실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피해자들은 가혹행위에 의한 범인으로 몰리는 과정에서 인생을 망친 사람이 많다. 정신병자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 죽기도 했다. 어떤식으로도 용서받지 못하는거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