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추억인가. 이 이상 아이러니한 제목을 본 적이 없습니다. 소름이 끼치는 영화입니다.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가기를 끝까지 기다려 어둑어둑한 극장 내부를 둘러보았을 때, 한없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단 한명의 여성 관객 말고는 아무도 없었지요. 아아. 이토록 아이러니할 수가. 다시 한번 소름이 끼쳤습니다.
[살인의 추억]은 형사물이자 스릴러입니다. 다만 유의할 점은 실제의 미결 사건을 다루었다는 점이지요. 본작이 가지는 특유의 느낌은 거기에서 비롯됩니다.
지난 날의 기억이라는 것은 대부분 안주거리처럼 남아집니다. 뛸듯이 기뻤던 일도, 죽음 같았던 절망도 세월에는 좀처럼 견뎌내지 못하지요. 무대포로 용의자들을 족치던 박두만에게도, 그토록 사건 해결을 염원하던 서태윤에게도, 심지어는 범인에게마저도 살인 사건은 그저 추억으로 남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뚜렷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좀처럼 추억이라는 이름이 허용되지 않기도 하지요. 그때에 과거는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조금씩 잠식합니다. 힘겨운 수사 과정 속에서 다리마저 절단해야 했던 조용구에게는, 과연 추억으로 기억될 수 있을런지요. 무참하게 살해당한 피해자의 가족들에게도 살인은 과연 희석될 수 있는 과거일런지요.
라스트 씬, 십 몇년전 사체가 발견되었던 배수관을 다시 찾은 박두만. 그의 눈에는 더 이상 싸울 의지가 비춰지지 않습니다. 얼마 전 다른 누군가도 이 곳을 찾아왔다는 동네 계집아이의 말을 듣고 순간 표정이 굳어지지만, 그또한 잠시 뿐이지요.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만큼 힘겨웠던 순간도 기나긴 세월의 끝에는 그저 추억일 뿐인가 봅니다. 죽음에 직면할 때 즈음이면, 더이상의 세월이 허락될 수 없는 시간 앞에서라면, 삶의 모든 나날은 결국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닐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