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혼자 보러 갔다. 좋은 영화일 것 같은 영화는 혼자가는 버릇이 있기에... 그래야 집중이 잘 된다.
자리가 잘못 됐다. 연인석 옆자리다. 시작하기 전부터 무지 시끄럽더니 영화보면서 의논을 한다. 영화를 의논하면서 꼭 봐야 하나. 이거 혹시 읽는 사람 있으면 제발 영화나 연극, 여타 공연물 보러 가서 쉴새없이 공연에 대한 의논하지 마라. 혹시 할 얘기가 있으면 끝나고 해도 늦지 않다. 옆사람 생각은 도무지 않하는 한국 사람들의 관람 문화 바뀌어야 한다.
어쭈! 영화를 의논하며 봤으니 영화가 뭘 말하고자 하는지 알턱이 있나? 이 커플 나가면서 하는 말 '도대체 범인이 누구야? 내가 이래서 엑스파일을 안 봐여. 뒤 안 닦은 듯 찜찜하쟌아...' ㅠ.ㅠ 이 영화가 엑스파일처럼 공상과학드라마냐? 아니면, 미스테리 스릴러냐. 이 영화 1980년대 실제로 일어나 여태까지 범인 안 잡힌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다. 당연히 범인이 누군지 알턱 없지. 그래, 뭐 영화 보기 전에 누가 영화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알고 보는 것도 아니고 모를수도 있다 치자. 그래도 범인이 안 잡히고 끝날때는 범인이 누군지 중요하지 않다는 거 통박으로 안 나오나? 이 영화 제목이 왜 '살인의 추억'이겠나? 추억이라는 단어 자체에 모든게 나와 있는거다. 외국에나 있을 법한 연쇄 살인 사건이 크지도 않은 경기도 화성이라는 마을에서 1980년대 일어났을때 감을 믿는 토박이 시골 형사와 과학수사를 믿는 서울 풋내기 형사가 바로 옆에서 살던 이쁜이 현옥이, 내가 반창고를 붙여 주었던 어린 여중생이 죽어나가는 걸 보면서도 현장 보존 하나 제대로 하기 힘들고 유전자 검사 하나 하려면 미국으로 샘플을 보내 결과 돌아올때까지 우체국에 전화해야 했던 그때의 이야기를 어울리지도 않는 두 단어 살인과 추억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는 거다. 살인이 어찌 추억이 된단 말이냐마는 그때당시 한국경찰들의 수사라는 것이 그 모양이었단 말이다.(지금이라고 그다지 나아 진것도 없지만^^...) 뻔히 잡을 수 있는 마을에 사는 평범한 범인 (마지막에 나오는 어린 소녀가 말한 범인의 인상착의가 그저 평범한 얼굴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을 놓친채 세월만 흘러 이제 그를 미친 듯이 잡으려던 형사에게도 그 살인을 저지를 범인에게도 추억(?)으로 밖에 남을 수 없는 아이러니한 현실이 이 제목 하나에 함축적으로 들어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1980년대 당시 권양 성고문 사건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문귀동 형사의 검거 장면을 텔레비젼으로 선술집에서 보고 형사놈들은 다 **를 잘라버려야 한다는 여학생의 말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여학생의 머리채를 잡고 난동을 부리던 조형사(김뢰하 분)의 모습이다. 그 모습을 사정 모르고 지켜 본 사람이라면 단순히 같은 경찰을 욕한다는 사실만으로 조형사가 광분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전후좌후를 지켜 본 관객들은 그에 대한 조금쯤의 연민이 생겼을 것이다. 성질 급하고 범인을 개다루듯 하는 조형사에 대해서...
살인의 추억의 예고편에 나오는 문구 하나... '미치도록 잡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잡지 않은 게 아니라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보존되어야 할 사건현장의 범인의 발자국 위를 경운기가 지나가도 넋놓고 바라보아야할 추억 속의 살인이 있었던 그날의 그들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