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와 불어 단어들을 현란하게 섞어놓은 아니, 그도 모자라 알파벳을 마구 뒤집어놓고 엎어놓아 마치 러시아어를 보는 듯한 느낌의 크레딧이.. 화면 가득히 올라가나 싶더니 옆으로 뉘이고 돌면서 화면가득히 돈다.
어..저게 머야.. 잘못된거아냐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뒤로하고 째는 듯한 저음과 둔탁한 화면이 어딘가를 훑으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침대위에서 무언가 작업을 끝낸듯한 어느 두 남자의 읖조리는 대화.. "내가 벌을 받아야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어" "하지만 좋았던 그 순간은 잊지말라구" 머.. 그런 내용의 대화가 오가고.
메멘토... 박하사탕.. 멀홀랜드 드라이브 (사실 난 이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음)
세 영화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알고 그 영화의 전개방식에 쉽게 젖었던 사람이라면 이 영화의 구도에도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둡고 음습한 어느 게이바를 쳐들어가 자신의 애인을 성폭행한 남자를 잔인하게 아주 처절한 응징을 가한다.
복수를 하여 성폭행한 남자(뜨니아)가 죽어갈 때, 난 저것도 하나의 또다른 폭력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벌어진 것인데 되담을 수도 없는데 저렇게 한들 무엇이 달라질까. 잔인한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끔 감아버렸다.
시간을 거슬러... 애인의 성폭행 소식을 들은 마르쿠스(뱅상 카젤 분)가 거의 정신을 잃고 상대 남자를 찾아나설 때 저 분노는 누구를 향한 것일까 의심스러웠다. 남자를 향한 것일 수도 있고 저건 사랑하는 상대여자를 향한 것일 수도 있을텐데...
또 다시 시간을 거슬러... 앨리스(모니카 벨루치)가 길을 가다가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에서는 여태까지 나의 머릿속을 점거하고 있던 간디식 평화주의는 이미 다 사라지고 없다. ㄱ ㅐ ㅅ ㅐ.....(욕은 차마 알아서) 내 마음속에 이미 분노가 치밀고 있다. 나라면 더한 것이라도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거슬러.. 이제는 카메라도 어느정도 분노를 가라앉혔다.
그들의 따뜻했던 일상.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그들의 삶...
역순의 시간을 보여주었기에 카메라도 영상도 오히려 차분해지고 주인공들도 더 이상 따뜻할 수 없는 예전의 모습이지만 오히려 나의 감정은 더 격해지고 있다.
충격적인 장면에서는 나의 이성이 감성을 지배했지만 오히려 두 커플이 처음 사랑하는 씬, 들판에서 책을 읽으며 아이들이 뛰노는 그 장면을 보며 오히려 감정이 더 격해지면서 서글펐던 것은 결코 가질 수 없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었을까.
영화를 보다가 토하고 싶다니 말도 안돼. 다 내숭야. 하며 들어선 영화관.
구토... 메슥거림... 역겨움...
단지 잔인한 장면 때문이 아니었다.
어지러울 정도의 카메라 무브먼트, 음향... 감독이 의도한 바가 아닐까 싶은 이 힘겨운 삶, 상황에 대한 구토심! 모두 다 토해내고 돌아갈 수 있다면...
Time destroys everything including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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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가 참 맛갈스럽고 상쾌하네요.
2005-01-31
00:27
1
돌이킬 수 없는(2002, Irreversible)
제작사 : Le Studio Canal+, Eskwad, Nord-Ouest Production / 배급사 : 프라임 픽쳐스
수입사 : (주)미디어필림 인터내셔날 /
공식홈페이지 : http://www.irreversibl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