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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돌이킬수 없는>은 나에게 한 여인의 아려한 뒷모습 포스터 사진으로 먼저 다가왔다. 어두운 통로에서 매혹적인 몸의 실루엣을 흐드러지게 표현한 이 광고용 스틸사진은 나에게 묘한 끌림과 선망, 그리고 경외감으로 다가왔다.
<돌이킬수 없는>에 시작은 과감한 엔딩크레딧(시간편집)과 술에 취한 듯한 광기어린 카메라 앵글로 영화의 몰입을 유도하기 보다는 우리들의 눈을 자꾸 혼란스럽게 해 시각적인 분노의 폭발을 끄집어내서, 마르쿠스(뱅상카셀)의 광기를 겁먹은 듯 쳐다보게 만들고 있었다. 멀미를 일으키는 듯한 첫 장면의 지하 호모촌은 자꾸 구토를 일으키게 만들고,두 남자가 누군가를 찾는 장면들은 남성들의 음탕한 신음소리에 자꾸 묻힌다. 곧이어 이어지는 폭력, 살인 그리고 또 다시 어느 시간으로 이동한 카메라는 전 화면보다는 안정된 카메라 앵글로 두 남자(마르쿠스,피에르)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영화<돌이킬수 없는>은 한 여인이 무참히 강간되면서, 여인의 애인들이 잔인한 복수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감독 가스파 노에는 그들이 파멸되어 가는 과정을 시간의 역으로 표현함으로써 관객이 그들의 현재 모습이 과거로 갈 수록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웠나를 보여주면서, 역으로는 현재 주인공들의 분노 슬픔 그리고 비참함을 비장하게 보여주는 효과를 거두고 있었다.
<돌이킬수 없는>의 영화속 장면들이 알렉스(모니카 벨루치)의 강간씬에 다가 갈수록 나는 의자에 앉아 있기가 불안해졌다. 카메라는 자꾸 그녀의 뒷 모습를 멀리서 훔쳐보고 있는 듯 하고 막상 9분간의 롱테이크로 잡아낸 강간씬은 나의 눈을 감게 만들어 버렸다. 나는 공범이다.... 카메라는 단순히 옆에서 그들의 모습을 담아내기에 바쁘고, 관객은 그 의도된 카메라 기법에 의해 폭력앞에서 그냥 모른척 지나가는 방관자로 전락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녀의 솜털같은 드레스가 부드럽게 벗겨지는 모습은 폭력의 광기를 느끼고 만들고, 그녀의 드러난 아름다운 가슴은 폭력의 잔인함를 끄집어내는 단순한 욕정의 도구로 그려내는 카메라는 우리들의 분노의 감정을 끄집어 내자마자, 잔인하게 그들(알렉스.마르쿠스)의 행복했던 시간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쪼개진 시간속에서 그들이 그려내고자 했던 것은 사랑의 진실이었을까? 아니면 우리가 지킬수 있다고 믿는 사랑의 야누스적인 잔인함인가?? 시간의 역으로 그려낸 영화 <돌이킬수 없는>는 지킬 수 없는 사랑의 그 마약같은 허약함을 보여준다. 자신의 여인이 무참히 강간당하는 장면보다 그걸 광기로 표현하는 남자의 절망과 고통이 더 무섭고 리얼하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들도 차라리 그와 같은 광기로 미쳐버려서 그 폭력앞에서 도망가는게 더 쉬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왜 영화는 시간을 뒤집어 표현했을까? 결과를 보여주고 이유를 나중에 보여주는 화면은 그녀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을 관객에게 떠 맡기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돌이킬수 없는 것이 시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속죄할 수 없는 죄책감을 이 영화를 보면서 집으로 가지고 돌아 갈 것이고, 알렉스의 공포에 질린 얼굴이 밤마다 어두운 길거리에서 내 주위를 떠돌것이다. 단순히 영화속에서 한 여인이 강간을 당해서 평생 관객이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고 말하는 카메라는 너무나 강압적이다. 그리고 이기적이다. 자신이 지키지 못한 여인의 아름다움을 거슬러가는 시간의 흐름속에서 몽상적인 꿈처럼 그려내는 감독의 의도는 차라리 외면하게 싶어지게끔 만들어 버린다. 행복했던 시간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이렇게 나는 죄책감에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데..... 또한 그녀의 흐드러지는 뒷모습이 이렇게 슬픔으로 남아있지도 않을텐데..
올 누드로 그려진 침대씬에서의 그들의 섹스는 아름답고 품위있고 행복하게 그려져서, 관객은 그들이 당한 폭력과 광기의 시간을 잊어 버린다. 인간은 기억의 편리를 잘 이용하는 동물중에 하나이다. 방금전에 보았던 알렉스의 폭행씬을 카메라는 행복했던 그들의 가까운 과거의 모습을 통해서 이기적인 기억의 지움 작용을 일으키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어쩌면 시간상 마지막 장면)에서 알렉스가 자신의 배를 만지는 장면은 이것이 과거의 모습인가? 아니면 미래의 모습인가?라는 시간의 비밀스러움과 혼란스러움을 제시함으로써 폭력의 잔인함을 한번 더 각인시키다. 결국 우리는 그 폭력의 공범임을 다시금 기억하고 광기의 죄책감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시간속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동물이다. 우리는 시간속에 행복하고 또한 절망한다. 영화의 마지막 자막처럼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그리고 모든 시간은 유기물처럼 서로가 긴밀하게 이어져 있고 영화속의 장면처럼 한 부분 한부분 쪼개낼 수도 없는 것이 시간의 파괴적인 잔인함일 것이다. 만약 쪼개내어서 버리고 싶은 영화속 시간장면이 있다면 당신도 분명 알렉스를 무참히 짓밟아 버린 공범이다.
결국 감독이 시간을 역으로 그려낸 의도는 폭력의 불안함과 그 광기 일 것이다. 그러나 시간속에서 파괴되어 가는 인간이지만 그 시간속에서 희망과 행복을 꿈꾸는 것도 인간인 것을 마지막 알렉스가 잔디밭에 누워있는 장면은 보여주고 있다.
아, 얼마나 잔인한 것이 시간인가?.....모든것을 빼앗고 또 다시 행복을 꿈꾸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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