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잠수대원들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그린 [블루]는 2003년 한국영화의 의미있는 발자욱으로 남을듯 싶습니다. 본작은 충무로가 수년간 고질병처럼 앓아온 장르의 기근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모처럼 영화 팬들의 목마름을 해갈해주지요. 물론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가 갖춰졌느냐를 그 전제로 삼는다 해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역순으로 영화의 아쉬움부터 얘기하자면 두가지 큰 줄기를 지적할수 있습니다. 첫째는 기술력의 한계이지요. 흐릿한 색상처리로 만들어낸 심해가 조금은 어색하고 아수라장이 된 잠수함 속은 어딘가 어설픕니다. 두번째는 지나치게 극단적인 상황 설정. 영화 막바지의 전개는 다소 억지스러운 느낌이지요.
그러나 [블루]는 빼어난 미덕들을 품고 있습니다. 그 첫손에 꼽을만한 점은 출연배우들의 연기이지요. 류수영, 이일재, 공형진 등 본작의 조연진은 그 한명한명이 대단히 매력적입니다. 류수영은 광기 넘치는 연기를 스크린 속에 풀어놓고, 간만에 영화에 출연한 이일재도 제몫을 다합니다. 공형진은.. 생각만 해도 미소가 떠오르지요. ^^ 김영호라는 다소 낯선 이름의 배우는 기존의 충무로에 없었던 새로운 남성적 이미지를 보여주고, 신은경은 스스로가 다른 여배우들에 비해 두드러지는 특유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짚어냅니다. 무엇보다도 유쾌한건 신현준의 열연입니다. 요 몇년새 고여있는듯한 연기로 일관했던 그는 [블루]에 이르러 이전에 볼수 없었던 매력을 뿜어내며 [킬러들의 수다]에 이어 자신의 영역을 넓혔지요.
후반부에서 요동치긴 했지만 본작은 기본적으로 탄탄한 이야기를 갖추고 있지요. 특히 그 힘이 십분 발휘된 도입부에서는 단번에 관객들을 깊은 바다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편지] 등을 연출했던 중견 이정국 감독은 안정되고 적절한 연출로 중심을 잡아냈습니다. 이러한 여러가지 미덕들은 영화의 단점들을 상쇄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이지요.
한국판 블록버스터라는 말이 나온지 어느새 5년여. 거품은 넘치고 역량의 한계, 소재의 벽에 부딪혀 바다 속에 가라앉아있던 블록버스터 호에 [블루]는 인양작업을 위한 크레인을 끼워넣습니다. 앞으로 개봉할 한국영화들과 함께 블록버스터 호를 무사히 건져올릴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