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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pme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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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02 오후 10:39: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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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가 연주하는 기타 속에서는 중필과 상만의 처절한 다툼이 상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은 슬프게도 중필의 등에 꽂혀야만 했던 그 장면을 그려내면서, 영화는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엄밀히 말해, 이 영화는 모방적이다. 중필의 등에 꽂힌 그 장면은 영화에서 숱하게 보아오던 갱 장면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그러면서 이 영화는 창조적이다. 모방과 창조의 경계. 과연, 이 영화가 추구하는 80년대란 어떤 것일까. 롤러장, 솜사탕, 전원일기, 애국가. 80년대를 대표하던 이 상징적인 소품에 대하여 영화는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낸다. 요즘에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80년대의 롤러장은 불량배가 우글거리던 곳이었다. 그 곳을 관리하는 것은 중필과 그의 깔따구로 불리는 나영. 중필은 문덕고 캡짱이다. 그리고 그에게 도전하는 것은 영화의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카리스마 상만이다. 롤러장이 80년대 뒷골목 불량배들의 암울함을 상징적으로 그려냈다면, 중필과 민희의 사랑은 그 당시의 유일한 희망적 상징이다. 요즘엔 잘 찾아볼 수 없는 솜사탕을 사먹으며 데이트를 하고, 지금은 이미 사라진 거리의 애국가 제창에 심장이 있는 가슴에 손을 올리고 애국가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기억들. 그리고, 스잔과 경아로 상징되던 당시의 가수. (스잔은 민희를, 경아는 나영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새로운 이야기 구조를 이끌어내는 데에는 성공했을지언정, 그것을 하나의 완성도 높은 이야기로 끌어내는 데에는 다소 실패한 듯 보인다. 중필과 민희와 나영의 삼각관계는 그 긴장감이 힘을 발휘하지 못한 채,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질질 끌려가고 있으며 상만과 중필의 무용담은 설득력을 잃고 그저 보여주기식 묘사에 그치고 있다. 수동이 보여주는 포르노구입테이프가 전원일기라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 이 역시 80년대에 유행하던 포르노테잎사건인데, 영화는 이런 80년대의 사건들을 나열하듯 보여주면서 나름대로의 퇴색된 80년대를 재구성해내려는 흔적이 보인다. 이 영화가 추구하려 한 것은 대체 무엇일까. 80년대의 사랑이란 그저 순수하기만 하지도 그렇다고 섹스어필하지도 않다. 중필의 운명은 캡짱이라는 다소 상식적인 논리로 영화는 틀 속에 가두어진 가족영화처럼 교훈을 얘기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권선징악적인 소재를 다루지도 않는다. 중필이 아무리 불량소녀였다치더라도 어쨌든 운명이란 것은 그를 불행으로 내몰지도 않았고, 모범생인 민희가 중필에게 한번 차였다 해도 그녀 역시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을 터득해가고 있다. 또한, 나영 역시 비록 평범한 삶의 길을 가지는 않지만 삼각관계가 빚어낸 불운에 그녀의 운명이 타락하지도 않는다. 이렇듯 영화 <품행제로>는 도를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80년대 삶의 방식을 재현해내고 있다. 가끔, 무용담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정말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중필이 상만에게 처음 시비를 걸고자 했을 때, 결국은 아무 말 하지 못하고 한마디 뱉었던 말. 그래서, 결국은 웃음을 삼키고 말았어야만 하는 말. 사실은 싸우고 싶지 않았다고 싸우면 안되는 거였다고, 그래서 이것을 깨우쳐야만 한다고.
"혹시, 도에 관심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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