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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보다 내 인생에 먼저 새기고 싶다 <맨발의 꿈> 박희순
맨발의 꿈 | 2010년 6월 30일 수요일 | 정시우 기자 이메일

그는 여전했다. 줄담배(어색함을 피하기 위한 행동)를 피우는 습관도 여전했고, 중간 중간 “그렇죠~!”, “아~” 등의 추임새로 대화에 흥을 넣어주는 센스도 여전했으면, 연기에 대한 마르지 않은 열정도 여전했다. 하지만 한 가지, 달라진 게 있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느낌으로 전해지는 변화. 그 변화는 동티모르라는 땅에서 불어 온 것 같았다. 촬영차 떠난 그곳에서의 3개월은 ‘인간 박희순’의 인생에 큰 자산을 남겼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맨발의 꿈>에서 그는 어떤 꿈을 꾸고 돌아 온 것일까.

새벽에 ‘한국 VS 나이지리아’ 경기는 봤나?
봤지. 저번 경기까지는 사람들과 함께 봤는데, 이번에는 아침 일찍 인터뷰가 있어서 집에서 혼자 봤다.

16강전에 진출하면서 영화가 개봉하게 됐다. 이게 영화(흥행)에 잘 된 건가?(웃음)
글쎄~ 그건 잘 모르겠네. 하하하. 아직도 감이 잘 안 잡힌다. 한국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극장에 관객이 많이 줄어든다고 들었다. 그래도 <맨발의 꿈>은 그나마 월드컵 혜택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 분위기와 함께 갈 수 있는 작품이어서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사실 잘 모르겠다. 하하하.

그나저나 1년 전, <10억>으로 호주를 다녀 온 다음에 나와 인터뷰를 했었는데.
기억한다. 신사동 어느 카페였는데~

맞다. 그런데 이번에는 동티모르를 다녀 온 다음에 만나게 됐다. 해외 다녀 올 때마다 인터뷰 하니까, 마치 유학 간 오빠랑 1년 만에 만나서 수다 떠는 기분이다. (웃음)
하하하. 그 표현 참 정감 가는 걸?

해외 촬영을 너무 자주 가는 거 아닌가? 오죽 하면 팬들이 당신이 한국에 없는 동안 “실종된 희순이를 찾습니다”라는 플랫 카드까지 만들어서 시위했겠는가. 1년 전에도 오지전문배우라고 얘기를 했지만, 또 해외에 나갈 줄은 몰랐다.
그러게~ 자꾸 나가게 되네.(웃음) 오지전문배우도 사실 내가 내입으로 만든 건데, 본의 아니게 그런 기회들이 자꾸 오는 것 같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작품이 마음에 들고, 캐릭터가 좋아서 선택하는 건데, 우연치 않게 외국으로 나가야 하는 작품과 인연이 생기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번 <맨발의 꿈>은 어떤 점에 이끌려서 출연하게 된 건가.
이 작품이 그냥 한국 시골 농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였으면, 그렇게 ‘혹’ 하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해외라는 새로운 장소에서, 그것도 연기 경험이 없는 아이들과 호흡을 맞춘다는 것에 끌렸다. 신선했던 거지. 해외에 나가서 촬영하는 영화는 많다. 하지만 한국 사람끼리 호흡을 맞추는 영화가 대부분이었지, 현지인들과 처음부터 끝까지 호흡을 맞춘 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뭐든지 최초, 새로운 것에 갈망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점에 많이 끌렸다.

그래서 경험해 보니 어떻던가?
평생 돈 주고는 살 수 없는 경험을 한 것 같다. 영화배우로서 얻은 것도 많지만, 인간 박희순이 경험해 볼 수 없는 상황을 체험해 봤다는 것에서 개인적으로도 큰 재산이라 생각한다. 너무 소중한 추억이다.

고생도 많았을 거다. 영화를 보니, 배우는 물론 스텝들에게도 결코 호락호락한 촬영 현장이 아니었다.
일단 더위가 너무 힘들었다. 머리가 노랗게 탈색 될 정도로 햇볕이 뜨거웠거든. 통역 문제도 있었다. 동티모르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고생했다. 한 두 명의 통역이 그 많은 배우와 엑스트라들을 케어 하려니까 쉽지가 않았다. 결국 연출부, 제작부 다 동원돼서 아주 짧은 동티모르 말을 배웠다. “집중해!”, “조용해!”, “카메라 보지마!” 이런 걸 배워서 외친 거지. 아마 가장 많이 한 말이 “라벨레 하베 카메라!(카메라 보지마)”일 거다.(웃음) 그렇게 다들 각계 전투로 촬영했다. 촬영을 다 망원으로 찍었기 때문에, 내 경우에는 스텝들과 떨어져서 아이들과만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그 시간은 내가 다 책임을 져야 하는 거지. 애들 조용히 시키고, 집중시키고, 연기 호흡 맞추고. 어우~ 몇 가지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 정신이 없었다, 정신이.
아이들 캐스팅에 참여 했다고 들었다. 어디에 중점을 두고 컨택했나?
가장 걱정했던 게, 아이들 캐스팅이었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연출부 세 명이 빈 공터에다가 연극학교처럼 건물을 만들었다. 그러니까 아이들 20-30명을 붙잡아 놓고, 역할 바꾸기 연기를 시킨 거다. 카메라를 틀어놓고 말이다. 다행히 아이들이 재미있어 했다. 즐길거리가 축구밖에 없었던 애들에게, 아주 신나는 소꿉놀이가 생긴 거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역할 바꾸기를 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 예쁘더라. “아, 애들하고는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아니라, 그 이상도 하겠구나”하는 희망이 생겼다. 주인공 뚜아(주니오르)나 모따비오(페르디난도) 같은 경우에는 워낙 연기들을 잘 해서 어려움 없이 일찍 캐스팅 했다. 문제는 라모스(프란시스코)와 조세핀(말레나) 역할이었다. 특히 조세핀을 뽑을 때는, 예쁜 애들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 많았다. 사실 동티모르 어른 중에는 예쁜 사람이 별로 없다. 자외선이 너무 강하고, 먹는 게 부족하다보니까 빨리 늙더라. 20살도 되기 전에 대부분 노화가 생기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이들만큼은 너무 예쁜 게 아닌가. 그 예쁜 아이들 중에 내 눈에 들어 온 게, 우리 말레나다.

‘우리’가 붙는군.
말레나가 제일 작기도 하고, 제일 얌전하기도 하고, 대사도 또박또박 하는 게 너무 예쁜 거다. 그래서 나는 일찍부터 딱 말레나를 찍었다. 그런데 감독님은 다른 애를 마음에 두는 게 아닌가. 내가 “아, 말레나가 볼수록 예뻐”하면 감독님은 “쟤는 너무 작아”이러시고.(웃음) 그러다가 아이들 최종 오디션 날이 됐다. 경찰서에서 눈물 흘리는 씬을 찍는 게 마지막 과제였다. 카메라 들이대면 울어보라고 주문을 한 거지. 그 중에 연기를 정말 잘 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생긴 게 조금….(웃음)

하하. 역시 여자애는 예쁘고 봐야 하나 보다.
(웃음)우리 말레나 보다 더 예쁜 아이도 있었는데, 그 아이는 연기를 너무 못해! 그래서 탈락.(웃음) 아무튼 그렇게 오디션을 시작했다. 그 친구들이 한 명씩 나와 호흡을 맞추는 거였는데, 역시 팔은 안으로 굽게 돼 있더라고. 내가 딱 찍은 아이에게는 다른 애들보다 감정을 100%, 200% 더 주게 되더라. 내가 눈물을 뚝뚝 흘릴 정도로 감정을 줘 버리니까, 말레나도 감동을 받았는지 눈물을 철철 흘렸다. 대사를 못 할 정도로 눈물을 흘리니까, 현장에 있던 스텝들도 다 눈물바다가 되고, 거기 있는 여자 아이들도 울고 난리가 났다. 그렇게 해서 말레나가 조세핀 역을 맡게 됐다.

김태균 감독이 인터뷰에서 말레나가 자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잘 해 준다고 하더라. 약간 여우 같다고, 그런 거 보면 말레나가 감독이 자기 안 찍은 걸 알았나 보다.
알지~ 그러니까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그 아이와 나는 이미 교감을 한 거다.(웃음) 그렇게 캐스팅이 끝나고 촬영에 들어갔는데, 남자 아이들은 정말 남자 아이들일 뿐이라고 느꼈다.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이라 그런지, 감정씬만 들어가면 집중을 잘 못해. 우는 걸 특히 더 못하더라고. 그런데 뚜아만큼은 감수성이 예민해서 자기가 잘 울 수 있다고 의욕을 보였다. 그 모습이 또 얼마나 예쁘던지. 선생님들이 왜 학생들을 편애하는지 알겠더라니까.

그렇지. 뭐든 이유가 있는 거다.(웃음)
그러니까 말이다. 하하하. 아이들과 연기 할 때는 요령이 있다. 이게 <헨젤과 그레텔>때 생긴 노하우인데, 내가 100%를 쏟아도 상대 반응이 70% 밖에 안 나오면, 내 에너지를 120% 끌어 올린다. 그러면 상대에게서 80%의 힘이 나와. 그 다음에 150%를 주면 100%가 나오게 돼 있다. 그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이번에 뚜아와 연기할 때, 150%의 감정을 가지고 쳐다 봐 줬다. 그랬더니 뚜아가 오케이 사인을 받고 가면서 “아~ 베리 핫!” 이러더니, “원광~ 땡큐!” 하고 손가락을 치켜세우더라. 내가 자기를 위해 기다려 준 걸 느낀 거지. 그런 소소한 것들이 나에게는 큰 감동이었다. 아, 다들 나를 원광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에너지를 쏟느라 힘들었겠다.
그렇지. 아이들 연기를 잡아 주려면 나는 풀 샷, 그룹 샷, 단독, 단독 하면서 50번 100번 똑 같은 연기를 해야 했으니까. 거기에다가 지나가는 엑스트라도 먼저 잡아 줘야 했다. 안 그러면 도망 가니까.

도망간다고?
더우니까, 하다가 그냥 간다~ 하하하.

도망가면 안 잡나?
한 두 명이라야 잡지. 통제가 안 된다.(웃음) 그렇게 50번 100번을 같은 에너지로 연기하려니까 힘든 게 있었다. 특히 그게 감정씬이면 죽는 거지.(웃음) 그런데 그렇게 촬영하고, 막상 내 촬영 때가 오면 애들이 장난 치고 킥킥 대고, “울어! 울어!” 하면서 속닥거리고 난리를 치는 거다. 휴~ 그 때도 유일하게 감정 잡아 준 게 또 뚜아하고 조세핀이었다. 그러면 안 예뻐 할 수가 없는 거지, 두 아이를. 그래서 연기 할 때는 걔네 둘만 쳐다보면서 했다. 다른 애들 보면, 웃길까봐.(웃음) 애들 보면 안 웃을 수가 없다.

듣다 보니까 궁금한 게, 원광이 애들에게 운동화 외상값을 받다가 우는 씬이 나오잖나. 나는 그걸 보고, 원광의 눈물이 아니라, 박희순의 눈물 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으하하하하하.

그게 감동을 받아서가 아니라, 애들이 웃길까봐 그런 것도 같고.(웃음)
그건 아니고.(웃음) 그런 생각이 들 때는 있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나 하는. 그러니까 그게 원광의 마음이고 박희순의 마음이었다. 원광이 “이, 코 묻는 애들 돈 뺏어먹으면서 뭐 하고 있나”하고 느끼는 처지와, 박희순이 “연기 경험 없는 이 아이들을 데리고, 지금 뭐 하고 있나”하는 처지나 비슷했던 거지. 거기에 또 촬영부가 “지금 해 떨어지니, 빨리 빨리 해”라고 하면 정말 눈물이 핑 도는 거다.(웃음)

이입을 떠나 동화가 된 것 같다.
그런 거지.(웃음)

동티모르 가기 전에 축구하고 언어를 배운 걸로 안다.
하루는 축구, 하루는 인도네시아어를 번갈아 가며 두 달을 배웠다.

그런데 어떻게 영화에서는 축구 하는 게 한 장면도 안 나오나.
사실 영화에서는 3초 정도? 3초 정도 ‘타타타탁’ 한 번 쳐 추는 것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그 장면을 위해서 축구 연습을 한 건 아니었던 거지. 아이들과 호흡을 맞추려면 코치 신분으로서의 습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풍생 고등학교에 가서 감독님이 아이들을 어떻게 코치하는 가를 보고 배웠다. 오시는 기자분마다 그 장면이 어떤 씬인데, 삭제 됐냐고 물으시는데, 그냥 3초 정도 잠시 나오는 장면이었다. 전체를 위해 연습 한 거지, 그 장면을 위해 두 달간 연습한 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시나리오상의 김원광은 그리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니라고 본다. ‘정신 못 차리고 살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개과천선하는 인물’이랄까. 영화에서 많이 봐 온 익숙한 캐릭터다.
맞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 접근할 때, 전형적으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당신만의 차별점을 많이 생각했을 것 같다.
처음 김태균 감독님이 생각한 원광은, 실제 김신환 감독님 캐릭터와 비슷했다. 무뚝뚝하고, 엄격한 가운데, 사랑이 느껴지는 인물. 그런데 그렇게 가면, 안 그래도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가 더 무거울 것 같았다. 또 철딱서니 없고 풀어지는 연기를 해 보고 싶어서 이 작품을 선택한 건데, 그렇게 되면 내 선택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도 같았다. 그런 이견들을 절충해서 원광의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또 언어적인 측면에서도 희극적인 게 많이 생길 수 있겠다 싶어서 그런 부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다. 아이들이 성장해 가는 성장드라마지만, 어른도 그 아이들에 동화돼서 함께 성장해 가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언어에 대해 얘기하니까, 1년 전 인터뷰가 생각난다. 그 때 극단 목화 시절 체득한 언어적 리듬감이 대사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는데, 이번에 그게 극대화 된 느낌이었거든.
그렇지. 극대화됐지.

한국말도 아닌 것이 동티모르어도 아닌 것이 수상한 외계어가 탄생했다. 보면서 쉽게 내 뱉는 것처럼 보이지만, 당신 나름대로 엄청 외우고 노력했겠구나가 싶더라.
맞다. 감독님이 한국 대본만 주면서, 연습을 하지 말라고 했다. 원광이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면 안 된다며 즉석에서 대본을 줄 테니, 그때 바로 하라고 하시더라. 그런데 그건 감독이나 할 수 있는 얘기고. 배우들에게는 용납이 안 되는 얘기였다. 완벽하게 됐을 때, 일부러 못하는 연기를 하는 건 가능하지만, 정말 몰라서 못 하는 건 연기가 아니잖은가. 그래서 인도네시아 대본을 몰래 입수해서 인도네시아 선생님에게 말을 배웠다. 문장을 완벽하게 이해하게 될 때쯤 문장을 해체했고, 이후 한국말을 섞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인도네시아 말이 되게 재미있더라고. ‘낭숭낭숭’도 있고 ‘아나가나’도 있고. 흡사 한국의 ‘얄리얄리 얄라셩’ 같은 게, 의태어 같기도 하고 의성어 같기도 해서 잘만 활용하면 웃음을 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재미있는 단어들을 가지고 조합을 시작했는데, 나중에 영어도 넣다보니, 결국 포르투칼어, 인도네시아어, 영어, 떼뚬어로 이루어진 문장이 됐다. 떼뚬어는 포르투칼이 동티모르를 통치하기 위해 3천개 단어로 만들 언어다. 포르투칼어하고 비슷한데 조금 딱딱하지.

대사가 노래처럼도 들리고, 듣는 재미가 있었다. 목화 특유의 운율이 느껴지기도 하고.
“낭숭낭숭 사뚜까리 패스해”라든가, “me가 너희들을 trust할 테니 one day, one time, one dollar를 나한테 give money” 식으로 리듬을 살린 거다. 그렇게 조합을 해서 인도네시아 선생님에게 들려줬다. 내가 콩글리시를 하기 위해서 만들었는데, 어떻냐고. 들려줬더니, 뒤집어지더라. 그래서 “아, 이건 되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들었다.

영화를 보다보니,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시대는 2010년인데, 공간은 1960~70년대 같다고 할까?
동티모르는 포르투칼의 식민 통치를 받은 나라다. 독립 후에는 곧바로 내전이 있었고. 그래서 6.25 직후의 한국 같은 느낌이 든다. 말씀하셨듯이 이국적이긴 한데,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드는 나라지. 묘한 분위기도 나고. 그리고 내 자신이 새까맣게 타서 거의 현지인이 됐기 때문에 그 아이들과 같은 앵글에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아 보였다. 그런 것들이 잘 맞아 떨어진 것 같다.
6.25 같다고 하니, 그 곳 아이들에게는 당신과 한국 스텝들이 미군 같아 보이기도 했겠다. 왜, 예전 영화들 보면 우리나라 아이들이 군인들에게 ‘기브 미 초콜렛’ 했었잖나.
그 아이들이 한국 사람들하고 비슷한 게, 한이 많고, 정이 많고, 눈물이 많았다. 또 항상 밝게 웃는다. 우리로 치자면 해학이 있는 거지. 그런데, 또 자존심은 세다. 외부로부터 침략을 많이 받았기 때문인지, 자기 자신을 지키려는 자존심이 있다. 그래서 거지가 없다, 그 나라엔. 나무에 매달린 과일 하나 팔아서 먹고 살지언정, 구걸 하지는 않는다.

영화에 짝퉁이긴 하나, 비싼 나이키 운동화가 나온다. 아이들이 어린 마음에 그게 너무 갖고 싶어 서성이지. 혹시 박희순의 어린 시절에도 그런 기억이 있나? 꼭 운동화가 아니라도.
있었지. 나도 그 때 나이키였다. 내가 어렸을 때, 나이키가 처음 나왔거든. 그때만 해도 나이키를 신고 다니는 친구를 막 부러워하고 그랬다. 그래서 괜히 나이스라는 신발을 신고 다니고, 프로스펙스도 신고 다니고.(웃음) 그럴 때였다.

이이들의 마음이 진심으로 이해 됐겠다.
그랬다.

몸은 미치게 힘들어도 마음을 채워주는 작품이 있고, 몸은 편한데 심적으로 힘든 작품이 있다. 물론 두 가지가 함께 가는 경우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은 당신에게 첫 번째 경우가 아닐까 싶다.
그렇지. 촬영 자체가 다큐멘터리 같았고, 모든 게 최초로 시도되는 것이었고. 그러다보니 돌발적인 상황들도 참 많이 일어났는데, 거기에서 새로운 감동을 많이 느꼈다. 특히 아이들을 통해 얻은 감동이 컸다. 이건 내 필모그래피에 등재되는 순간이기 이전에 인간 박희순이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할 소중한 경험을 한 기록이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인 거지.

그런 작품 촬영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어떤 느낌이 들던가?
그냥 꿈같았다. 작품 할 때는 너무 외롭고 괴롭고 죽을 것 같았는데, 한 1주일 지나니까 그 힘든 게 다 잊혀지더라. 그래서 내가 자꾸 오지로 가나? 하하.

그럴 수도 있겠다. 사주에 ‘역마살’이 있거나.
아, 나 정말로 역마살이 있다.(웃음) <남극일기>로 뉴질랜드에 갔을 때, 이보다 힘든 작품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제일 고생스러웠던 작품인 것도 같다. 동티모르의 경우, 제반적으로 영화 촬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힘든 게 더 크게 다가온 거지. 또 모든 걸 내가 다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부담도 있었고. <남극일기>때는 (송)강호형도 있고, (유)지태도 있고 동료 배우들이 있었으니까, 내 것만 열심히 했으면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의 머슴 역할까지 했어야 하니까.(웃음)

<맨발의 꿈> 시사회 때 말레나 손을 꼭 잡고 온 게 인상적이었다. 이번에 말레나 외에도 라모스, 뚜아, 모따비오가 왔는데, 동티모르에서 애들을 보는 것과 한국에서 보는 건 다를 것 같다.
그들이 없었으면, 축구도 잘 하고 연기도 잘 하는 배우를 어디에서 구했겠는가. 한국에서도 구하기 힘들었을 거다. 덕분에 우리가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 다들 너무 열심히 해 줘서 고맙고 내가 신세를 진 마음이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는 대접해 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여기저기 구경도 시켜 주고 싶고, 맛있는 것도 사 주고 싶고, 그렇다.
이런 걱정은 없나? 왜, 아이들의 경우 이별에 익숙하지 않잖나. 이렇게 친하게 지내다가 헤어지면 어린 나이에 상실감도 클 텐데.
사실, 되게 조심스럽다. 현지에서 촬영 할 때도 스텝들하고 이런 얘기를 했다. “우리가 애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일 수 있다”고. “우리가 떠난 이후의 상실감으로 얘네들이 상처 받을 수 있다”는 걱정과 함께 “우리가 베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자제 하려고 했고, 공평하게 대하려고 했다.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뭔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실 말레나는 납치를 하고 싶지만, 불가능한 일이니까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중이다. 무작정 말레나 아빠에게 얼마씩 돈을 붙인다는 건, 아이를 위한 일은 아닌 것 같고. 그래서 여러 가지로 생각도 해 보고 있다. 내가 너무 사랑하는 아이니까. 이 아이가 만약 한국이나 인도네시아로 유학을 가고 싶다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하고 중이다.

말레나가 꼭, 딸 같다.
맞다. 동티모르에서도 그 아버지보다 내가 더 많이 안아 줬을 거다.

대사관 직원으로 출연한 고창석씨와의 호흡은 어땠나? 오랫동안 붙어 있었어야 했는데. 마침 또 학교 선후배 아닌가.
처음에는 오히려 내가 더 어려웠다. 나보다 한참 형님 같은데, 자꾸 “선배님~ 선배님~” 하니까 이상하더라고. 또 너무 깍듯하게 하니까 괜히 부담스럽기도 하고. 아! 고창석씨가 나와 동갑이다. 그냥 (편안한 목소리로)“희순 선배”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과장되게)“아이유~ 희순 선배 오셨습니까” 하니까, 처음에는 ‘이 사람이 왜 이러는 거야, 나를 엿 먹이려고 그러나?’ 싶기도 했다. 그래서 사실 초반에는 오해도 했다. ‘왜 이렇게 예의바르게 하지? 혹시 자기 방어벽을 치는 건가?’하는 생각에 말이다. 그런데 지내다 보니, 원래 그런 사람이더라고. 또 굉장히 말 많고 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유머스럽긴 한데, 자기 안에서 딱 할 말만 하는 스타일이다. 왜 그런 사람 있잖나. 딱 자신의 틀 안에서 노는 사람. 아마, 고창석씨가 튀려고 하고, 애드리브를 막 쳤으면 내가 굉장히 힘들었을 거다. 나는 전체를 아울러야 하는데, 여기에서 자기가 돋보이려고 작정하고 튀면 어쩔 수가 없잖나.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거고. 그런데 자기가 가지고 있는 바운더리 안에서 벗어나지 않고 연기해 줘서 너무 고마웠다. 또 그러다보니 오히려 내가 자연스럽게 그 양반을 서포트 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서포트라는 게 어떤 의미인가?
그러니까, 이게 연극이랑 비슷하다. 목화에서 연극 할 때, 어떤 씬을 하기 위해 동료들끼리 구성을 해야 했다. 그걸 선생님에게 보여주는 시간이 있는데, 그게 일종의 오디션이었다. 매 연습마다 그렇게 한 거지. 그런데 생각해 봐라. 둘이서 씬을 짜는데, 나에게 유리하게 짜면 상대방이 따라하겠나? 아이디어를 짜더라도 나보다 상대가 더 돋보이게 아이디어를 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야 상대도 적극적으로 따라오고. 또 그렇게 만들어 놓으면 그것에 대한 가감은 연출이 해 준다. 그러니까 상대가 더 돋보일 수 있게 짜 놓더라도, 흐름상 내가 더 돋보여야 하면 선생님이 상대를 죽이고, 나를 올리는 그런 조정을 해 주신 거다. 그런 경험이 이번 영화에서 도움이 됐다. 예를 들어 둘이 대화하는 씬에, 내가 계속 자리를 지키면 그 씬마저 주인공이 내 것이 된다. 그런데 대사를 하다가 툭 던져 주고, 나는 빠져주는 거다. 아예 프레임 아웃 돼 버리는 거지. 그러면 이 사람 혼자 꿍얼꿍얼 되는 게 단독으로 잡히고, 그 씬은 그 사람 것이 된다. 이런 식으로 서포트를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아, 이런 얘기는 처음 하는데.(웃음) 아무튼 그렇다. 만약 이 사람이 자기만 튀려고 했으면 ‘얄짤없이’ 내 것만 챙겨 먹었을 텐데, 이 사람이 중심을 잡아 주니까 자연스럽게 서포트 하게 되더라.

차기작 <혈투>도 고창석씨와 함께 찍었는데, 영화 스틸을 보고 놀랐다.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당신을 처음 봤기 때문에 사극을 해도 익숙하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굉장히 새로웠다.
<혈투> 같은 경우에는 육체적으로는 가장 힘든 작품이었다. 액션씬이 많았다. 연극 할 때 목검을 사용하긴 했는데, 진짜 칼을 사용한 건 처음이라 고생스러웠다. 동티모르 다녀오자마자 무술 연습을 시작했는데, 에고~ 몸도 그렇고 여러 가지가 예전 같지 않더라. 너무 오래전에 했던 거라 익숙하지도 않고. 또 방법 자체가 다르니까 배울 때도 애를 먹었다. 연극에서 한 게 해동검도면, 여기에서는 대한 검도고. 무술에서 쓰여 지는 검도가 다 따로 있더라고.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헤맸다. 내가 체화가 되면 되게 빨리 가는데, 그렇지 않으면 천천히 가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보니, 감독님이 처음 테스트 촬영 때, “저 노친네를 데리고 무슨 촬영을 할 수 있을까”하면서 걱정을 많이 했나 보다. 나는 별로 걱정 안 했는데 말이다.(웃음) 나중에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 “아~ 희순씨 액션 배우 다 됐어요~” 라고.
이게 언제 개봉인가?
10월쯤에 찾아 갈 것 같다.

지난해에도 여러 작품을 했는데, 올해에도 일단 두 편을 예약해 둔 상태네.(웃음) 참, 영화에 나오는 친구들의 꿈이 프로 축구 선수라고 들었다.
라모스의 경우, 인도네시아 프로팀이 꿈이었다. 그런데 한국을 알게 되고 몇 번 오더니, 바뀌었다. 한국 프로팀으로.(웃음) 이 친구는 이미 적응을 다 했다. 김칫국에 밥 말아 먹고. 빨간 게장을 아그작 아그작 씹어 먹고.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

동티모르는 주로 어떤 음식을 먹나.
쌀하고, 우리나라 나물 비슷한 걸 먹는다. 닭 튀는 거, 돼지고기도 많이 먹고. 우리와 거의 비슷하다.

촬영하면서 음식 때문에 고생은 안 했겠다.
나는 음식 때문에 고생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자꾸 오지를 가나봐. 음식 타박을 안 하기 때문에.(웃음)

또 해외로 갈 수 있겠다.
이제는 유럽!

유럽?
유럽에 가서 로맨틱 코미디를 찍고 싶다. 아니면 멜로?

그러고 보니 <혈투>도 남자 배우만 왕창 나오는 구나.
이제는 벗어 날 때가 됐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지, 참.(웃음)

매번 그 얘기를 하시는데, 작년에 말한 어머니 소원은 아직 안 이뤄졌나보다. 당신이 좋은 사람 만나게 해 달라는 소원.
이 영화가 잘 돼야 이룰 수 있을 것 같다.(웃음)

외국에 계속 나가니까, 만날 기회가 줄어드는 거 아닌가.
그러니까 이제 그만 나가고, 한국에서 영화를 해야지.

영화에 동티모르 전직 대통령이 특별 출연한다. 그만큼 그네들이 한국에서 온 이방인들과 이 영화를 얼마나 진중하게 대했는지가 느껴졌다. 그래서 이 영화가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냐는 질문 대신 다른 걸 묻고 싶다. 동티모르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어떤 의미로 남았으면 좋겠는가.
얼마 전에 이 영화가 유엔시사회를 가졌었다. 그때 각국의 대사들이 나에게 한 말이 “영화 끝내주네. 영화 좋아” 이런 게 아니라 “고맙다”였다. 자기들이 추구하는 게 세계 평화인데, 이해와 화해와 용서와 평화를 얘기하는 이런 작품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하더라. 그리고 동티모르가 21세기 첫 독립국이고, 그 독립을 도와 준 게 유엔이기 때문에 동티모르를 알려줬다는 것에도 고마워했다. 동티모르 대사님 같은 경우에는 얼굴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기뻐하고 흥분하셨다. 내 손을 잡고 “화면 안에 이 아이들과 당신이 함께 있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잘 어울렸다”고 말씀해 주시더라. 그 말을 듣는데, 어찌나 뿌듯하던지. 이 작품에 출연하길 너무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게 배우가 가질 수 있는 권한이구나 싶었다. 이 영화는 동티모르에서도 상영된다. 지금 우리 스텝이 필름을 가지고 동티모르에 갔다. 극장이 없기 때문에 시네마 천국처럼 야외에서 상영 할 거다. 우리 개봉 일에 맞춰서.

함께 하고 싶겠다.
그렇지. 그 자리에 갔으면 동티모르의 한류가 되는 건데. 하하하.

2010년 6월 30일 수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2010년 6월 30일 수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     

45 )
hooaclub88
떠오러는 배우.!!   
2010-06-30 16:25
sorigasuki
볼수록 매력이 있는 배우인거 같아요   
2010-06-30 14:38
sdwsds
이제는 연기파배우   
2010-06-30 12:59
mini01
점점 빠져드네.   
2010-06-30 12:25
loop1434
굳   
2010-06-30 12:05
이전으로이전으로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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