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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들 말 좀 건네 줬으면 좋겠어요! <천년학> 임권택 감독
2007년 4월 20일 금요일 | 서대원 기자 이메일


서대원 기자(이하 '서대원') 감독님 입장에서는 인터뷰라는 게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일 거 같습니다.
임권택 감독님(이하 '임권택) 아니! 그렇지 않아요.

서대원 <천년학>이 많은 사람과 마주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시다는 말씀이죠.
임권택 그렇죠. 당연히 그러한 마음이 있죠! 그러기 때문에 설사 달갑지 않고 불편한 게 있더라도 해야지! 많은 사람들이 보게끔 말이에요(웃음)

서대원 드디어 <천년학>이 개봉했습니다. 지금 심정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임권택 젊은 친구들이 당장은 호응을 많이 안 하고 있기 때문에 좀 걱정되기는 해요. 서서히 관객이 늘어 좋은 성적을 거뒀던 <서편제> 때와 같은 분위기로 갔으면 하는 기대는 있는데 어떻게 될지는 뭐 사실 가봐야 알지 않겠어요.

서대원 감독님도 여느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개봉전후엔 잠을 뒤척이거나 긴장되시나요?
임권택 걱정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분명하지만 잠을 제대로 못 잘 정도는 아니에요. 100여 편의 영화를 찍다 보니 젊었을 적 그러니까 초기 신인 때처럼 엄청나게 설레고 그렇지는 않지! 하지만 내 영화가 매번 잘 된 것도 아니고 긴장이 조금 되는 건 사실이에요.

서대원 언론은 물론이고 많은 분들이 <천년학>이 100번째 작품이기에 상당한 기대를 한 게 사실입니다. 100이라는 숫자에 너무 집착한 게 아닌가 할 정도로 극성스러운 측면도 있었고요. 때문에 감독님 또한 그에 대한 짐이 적잖이 있으셨을 겁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좋은 작품이 나와서 좋지 않으세요?
임권택 맞아요. 결과적으로는 상당히 잘 됐다는 생각을 해요. 100번 째 영화라 주변의 기대도 어느 때보다 컸고 그래서 잘 해야 된다는 짓누름이 분명 있긴 했어요. 그렇지만 100번 째 영화라는 사실 때문에 스텝도 그렇고 연기자들도 정말 열심히 해줬다고. 영화를 찍다보면 그 과정 안에서 조금 소홀해질 수 있는 일들이 많은데 이번에 전혀 그런 것이 없었어요. 모든 분들의 노력과 정성이 모인 결과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서대원 혹 첫 주 박스오피스 결과에 대해서는 들으셨는지요. 전국 7만, 아쉬운 성적이었습니다.
임권택 물론, 알고 있고 나 역시 많이 아쉬워요.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나이든 분들이 영화를 상당히 만족스럽게 보고 있다는 건데.....지켜봐야지!

서대원 안 그래도 어제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천년학>을 봤습니다.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무엇보다 영상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런지 "저런 멋진 절경이 아직도 있는 데가 있냐?"며 저 결혼시킨 후 저런 데서 남은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또 백사노인처럼 삶의 마지막을 멋지게 맞이했으면 한다는 말씀도 하시고.
임권택 아버님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

서대원 37년생이십니다.
임권택 나랑 나이가 비슷하시니 그렇게 영화를 보셨을 거예요. 잘 봤다고 하시니 너무 다행이네! (웃음) 나이든 분들이 많이들 보고 좋아했으면 했는데...

서대원 그래서 전 <천년학>을 효도무비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임권택 당연 그렇게 봐도 되지! 또 요즘 영화는 보고 나면 금세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두고두고 남을 수 있는 영화라 생각되는 만큼 부모님에게 좋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서대원 보아하니 저 말고도 다른 젊은 친구들 역시 부모님과 함께 관람을 왔던데 그럼, 젊은 친구들은 어떻게 이 영화를 받아들이면 좋으시겠어요? 감독님의 말씀처럼 저 역시 <천년학>을 러브스토리로 봤으면 하는데.
임권택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러브스토리라고 하면은 껴안고 뭐... 키스도 하고 달콤한 로맨스를 많이들 떠올리고 할 텐데 이 영화는 서로가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 자체도 못하고 속앓이 하는 영화거든. 그런 사랑도 분명 있을 수 있고, 그런 사랑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천년학>이 보여주는데 거기에 시선을 두고 봐주면 좋겠어요.

서대원 해서, 말씀드리는데 <천년학>은 송화와 동호의 애틋한 감정을 축으로 한 러브스토지만 그들의 관계에 용택이라는 사내도 있으니 삼각관계라 볼 수도 있을 듯싶습니다. 심지어는 의붓아버지인 유봉까지도 송화를 딸이 아닌 여자로 품을 수 있는 남자라 생각하면 정말 흥미로운 연애구도가 아닌가 싶은데요.(웃음)
임권택 그렇지! 그 사내들이 다 그 구도에 껴있다 볼 수 있는 거예요. 그런 코드라 봐도 되냐는 질문을 듣곤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이 영화는 바로 그런 구도로 바라봐야 제 맛이 나는 영화예요.(웃음)

서대원 하지만 아까 말씀하셨듯 <천년학>의 사랑은 직접적이지 않습니다. 그나마 용택이 아픈 송화를 업고 달리다 그 촉촉한 젖살의 촉감이 등에 닿아 환장하는 줄 알았다고 술회하는 장면 정도가 그나마 직접적 묘사입니다. 두 남녀의 절절한 마음을 끊임없이 유예시키면서 풍광과 소리를 끌어들여 그들의 사랑의 감정을 더더욱 뜨겁게 승화시킵니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요즘 사랑이야기에 길들여진, 눈에 보이는 이미지로 사랑을 쟁취하는 요즘 관객들의 눈에 조금은 맞춰야 하지 않을까 하는 유혹이 꽤나 있을 법한데요. 송화와 동호가 하룻밤 자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내부 의견도 있었다고 하고요?
임권택 요즘 관객 성향을 조금은 감안하자는 차원에서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고 우려되는 부분도 있긴 했지. 그렇지만 그냥 꾹 참고 진행했어요. <천년학>은 송화와 동호의 하룻밤 몸 섞임을 보여주는 게 중요한 영화가 아니니까. 만약에 그러한 육체적 관계가 두 남매 사이에 생긴다면 이들의 사랑의 얘기는 지속될 수가 없어요. 애틋한 감정이 생겨나지도 않고.

서대원 <천년학>은 <서편제> 때보다 더 많은 판소리를 넣었지만 그러한 면이 두드러지게 와 닿지 않습니다. 음악을 담당한 양방언씨의 현대음악이 판소리와 조화롭게 섞였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은데요.
임권택 그 분의 공이 컸던 게 사실이에요. 또 <서편제>는 판소리가 갖는 감흥을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빨리 알아차리게 할 수 있을까? 이게 관건이었고, 그래서 소리가 연상시키는 영상을 구사해가면서 소리와 겹치게 했어요. <천년학>의 경우는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라 그에 걸맞은 소리를 끌어들여서 그 소리자체가 두 사람을 이어주고 그들의 마음을 전해주는 그런 역할이라 볼 수 있는 거예요. 이 영화에서 소리는 송호와 동호의 감정을 더욱 애틋하게, 그럼으로써 두 사람의 이야기는 소리가 갖고 있는 그 무엇을 더욱 드러내주는 방식으로 쓰였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소리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나 싶어요. 단순히 소리로만 듣지 않고 애기의 흐름 안에 같이 빠져들게끔, 그게 내 목적이었고, 실제로 이뤄진 거라 볼 수 있어요.

서대원 영화를 본 친구들이 저희 무비스트에 글을 남긴 걸 보면, 임권택 감독님은 왜 그토록 한국적 색채가 강한 영화만을 만드는지 궁금해 하더군요.
임권택 그거야 다른 이유가 없어요. 한 사람이라도 그런 감독이 존재해야 한다는 거지. 한국의 풍광, 자연의 아름다움,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한국적 풍류나 멋스러움 이런 것들을 영화에 담아내서 보여주고 싶어요. 지금 젊음이들은 알아채지 못하는 우리 고유의 멋이나 맛을 내 영화를 통해서 일깨워 주고 싶은 생각! 바로 그거예요!

서대원 100편에 달하는 영화를 만드셨지만 늘 어떠한 후회가 그때마다 있을 거라 봅니다. 마찬가지로 <천년학> 또한 끝마치고 나서 아쉬운 점이 있으셨을 텐데요.
임권택 그렇죠. <천년학>뿐만 아니라 100여 작품 모두가 아쉬운 점이 존재해요. 내가 찍은 영화를 놓고 "아~ 이 작품은 완벽하다"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서대원 구체적으로 이번 작품에서는 어떤 점이 좀 모자라게 와 닿으셨나요?
임권택 (웃음)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만큼 도처에 있지. 그래도 <천년학>은 다른 작품에 비해 아쉬움이 덜한 작품이라 생각해요.

서대원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모든 배우들이 연기를 죄다 잘합니다. 배우들 개개인의 미덕이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감독님의 연출 미덕이기도 할텐데요.
임권택 어....내 미덕 뭐 그런 건 없어요. 연기자들이 자기가 맡은 역할과 작품을 안으로 잘 이해하고 분석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현상이지. 난 다만 그들이 그렇게 갈 수 있게끔 도와준 거밖에 없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감독이 배우 연기를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요. 정말 도리가 없어!

서대원 그래도....
임권택 절대 그렇지 않아요. 지금까지 내 영화에 나왔던 연기자들이 잘했다면 그건 뛰어난 배우를 내가 운 좋게도 만난 거지. 내가 운이 좋은 감독이에요.(웃음)

서대원 운이 좋았다 말씀하지만, 감독님의 작품에 나오는 배우를 보면 어느 정도 포개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티켓파워 그러니까 스타를 캐스팅하기보다는 신인이나 좀 더 영화의 색채에 맞는 배우를 선택하십니다. 배우를 영화에 끌어들임에 있어 감독님만의 확고한 생각이 있으신 듯합니다.
임권택 한 연기자가 너무 떠가지고 그러니까 스타로서 고정된 이미지가 강하고 크게 배겨있으면 그걸 깨 가기가 힘들다고. 그렇지 않겠냐고! 어떤 역할을 해서 그게 깊게 자리해 있으면 그 인상을 무너뜨리고 다음 작품의 배역을 소화시켜내는 데 힘이 들 거라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렇다고 내가 스타성이 있는 배우를 아예 안 쓴 거냐 하면 그것도 아니지. 강수연 안성기 다 스타잖아!(웃음)

서대원 참! 잘 생기셨다는 생각을 합니다.
임권택 뭐가? 내 얼굴?

서대원 네, 눈매가 아직도 서릿발처럼 또렷하시고 꽉 다문 입술도 인상적입니다.
임권택 내가 잘 생겼어? (웃음) 그렇게 봐주면이야 나야 고맙지.

서대원 동시에 굉장히 엄격해보이시기도 합니다. 현장에서 굉장히 무섭다는 말도 있고 포근하시다는 말도 있고 이런저런 설왕설래가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어떠한 감독이신지요?
임권택 내 입장에서 무섭다 안 무섭다 그렇게 딱 말할 수는 없고......
다만, 나는 기본적으로 이렇게 생각해요. 연기자들이 현장에서 자기 능력을 최대치로 뽑아내게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주는 게 영화감독의 몫이라고 봐요. 배우가 마음을 편히 갖고 자기 연기에 몰두할 수 있게 애써야 하는 거지. 근데, 만약에 내가 인상 쓰고 화내고 그러면 분위기 경직되고 어떻게 좋은 연기가 나오겠어. 그럼 결국 영화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내가 왜 손해날 짓을 하겠어요.(웃음)

서대원 감독님이 연출하신 <만다라> <길소뜸> <개벽> <서편제> <취화선> 등 80년대 이후의 영화들을 보면 '길' 이라는 이미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길 위에서 서성 있는 인물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무언가를 이루고자 끊임없이 위태로운 여정을 펼쳐 나갑니다. 숱한 부침을 겪으며 지금에 이른 감독님의 모습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을까요.
임권택 내 근래의 작품 중 1~2년 사이에 일어난 일을 소재로 해서 담은 경우가 거의 없어요. 주로 수십 년을 담지. 긴 세월을 통과해온 사람들의 이야기. 자기완성을 향해서 혹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길에 선 이들의 삶을 좇다 보면 그 삶 자체가 그리 순탄치 않을 거 같고, 고단할 거 같고. 여하간 그런 인물들이 내 영화에 놓여 있는데....글쎄요. 내 자신이 그런 떠돌이 기질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 쪽에 마음이 가는 건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일부러 길에 관한 것만을 찍거나 매달리지는 않아요. 어쨌든, 내가 계속 길을 찍는 감독으로 돼 있으니까 사실 그렇기도 한 모양인가 봐요.

서대원 떠올리고 싶지는 않으시겠지만 초기에 큰 진통이 있었습니다. 스타배우가 안 나온다는 이유로 투자자가 발을 빼 한 동안 <천년학>이 난항을 겪었는데 당시 마음이 정말이지 편치 않았으리라 봅니다. 다행히 정성일 영화평론가와 <천년학>의 제작을 맡은 김종원 대표의 도움으로 다시금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요.
임권택 안 좋을 수밖에 없었죠. 스타가 나오지 않는 영화이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가 흥행을 시켰던 작품들이 모두가 신인을 데리고 찍은 작품이었어요. 근데, 그런 문제가 대두되니까 "야~감독으로서 나의 처지와 인기가 이 모양이 됐구나!"하는 섭섭함이 어쩔 수 없이 들더라고요. 투자사 입장에서야 당연한 일이지만.

서대원 자본으로부터 어느 정도는 자유로워야 할 위치에 계신데 현실이 참 팍팍한 거 같습니다. 한국영화가 거품 많은 산업화 속에서 성장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은데요?
임권택 그렇죠. 한국영화가 어느 지점에 오르기 전에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일이고, 그 과정에서 생긴 일이라 봐요.

서대원 지금은 잊으셨죠!
임권택 아 그럼 당연하죠!(웃음)

서대원 그런 지난한 상황을 겪다보면 <장군의 아들>이나 <서편제>와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솟아오르지 않으세요? 작품성보다는 대중성이 우선되는 영화요?
임권택 그러니까 인제 흥행이 계속 안 되고 할 때는 상당히 정신적으로 좀 가슴앓이를 한다고 할까. 그게 왜냐하면 어쨌거나 영화라는 게 많은 돈을 투여해야 이뤄지는 작업이고 때문에 투자한 돈을 어느 정도는 건져줘야 투자자에게 상처를 덜 주고 그래야 다시 영화를 찍을 수 있고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뜻대로 그게 안 될 때는 그쪽 볼 면목도 없고, 참 난처하죠. 그럴 때는 투자자도 좋고 나도 좋을 수 있는 흥행이 될 만한 영화를 좀 만들어야 될텐데 하는 생각을 해요. 그렇지만 <장군의 아들> 같은 영화를 찍는다고 해서 흥행이 다 되는 게 아니라고 그게 (웃음). <서편제>처럼 전혀 흥행이 될 거 같지 않은 영화가 흥행이 되는 이상한 일도 일어나고. 세상일이 다 그래요.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몸에 배인 건, 내가 열심히 영화를 만들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뭐 그거라고 봐요.

서대원 감독이라는 포지션 자체가 임권택 감독님처럼 100편을 만든 대가든 한편을 만든 신인이든 이 같은 문제에 늘 시달릴 수밖에 없는 거 같습니다.
임권택 당연해요. 어쩔 수 없어요. 도리가 없는 거지!

서대원 감독님은 한국영화 최초로 2000년도에 <춘향전>으로 칸국제영화제 본선 진출을 일궈냈고, 2년 뒤 <취화선>으로 같은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당시 감독상뿐 아니라 더 큰상을 받을 것이라는 주변의 이야기를 듣고 약간 아쉬워하셨다 들었습니다. <천년학> 역시 올해 칸영화제 진출이 기대되고 있는데 어떠세요?
임권택 지금 현재로서는 뭐라 말할 수가 없어요. 본선에 들었다는 그쪽의 통보도 있어야 하고, 또 갔다고 해서 무슨 상을 타라는 법도 없고. 더러는 그런말을 들어요. 우리가 영화제를 가면 쟤들은 좋은 데 따라가서 좋겠다고 하지만 천만이에요. 그런 고통이 없어요.

서대원 부담이 크다는 말씀이시죠?
임권택 그렇죠! 뭣이야 거기 갔으면 상이라도 타야 될텐데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도 아니고. 그런 부담이 온통 몸을 짓누르기 때문에 영화제에 가는 게 사실은 달갑지 않은 거지. 가긴 가야 되는데 전혀 좋은 게 아니라는 말이에요. 또 가면은 기자들이 밖으로 막 기사 내보내고.

서대원 아! 무슨무슨 상이 유력시 되고 있다.(웃음)
임권택 타긴 뭘 타! 결과도 안 나왔는데.(웃음)

서대원 그래도 좋으시죠 상 타시면. 짐도 덜어낼 수 있고.
임권택 아이 그거야 그렇지 당연 좋지. 나도 사람인데.

서대원 수많은 후배감독들이 감독님의 100번째 영화를 맞아 준비한 이번 헌정행사은 참으로 보기 좋은 모습이었습니다. 알고 계시듯, 감독님의 밑에서 영화 수업을 하던 그들은 당대 한국영화의 중요한 인물로 자리한 상태입니다. 세상에 나간 자식이 제 역할과 도리를 다하는 모습을 보는 부모님처럼 대견하다는 생각이 드실 거 같습니다.
임권택 그럼요.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죠. 나랑 같이 연출 생활을 하고 나서 독립한 감독의 생활이 여의치 않으면 그것처럼 딱한 게 없는 거예요. 뭔가 성과를 내고 있으면 그건 또 내일처럼 기분 좋을 수가 없고. 그럴 수밖에 없어요.

서대원 감독님의 젊은날 시절이 참 궁금하지만 솔직히 상상하기 힘듭니다. 그때랑 지금이랑 영화감독으로서 어떠한 점이 달라졌고 변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임권택 허.........참 그것이 뭐가 있을까? 20~30대는 좌우간 한 10년 사이에 50여 작품을 찍었단 말이야. 60년대에서 70년대까지. 그러면 대략 1년에 다섯 작품씩 찍었다는 말이에요.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내 스스로가 알아차릴 길이 없는 거예요. 단지 일만 하고 돌아다니고 좀 시간 나면 소주 마시고 그것말고는 하는 일이 없어. 근데 지금은 2년에 한 작품 이런 식으로 하고 있으니 좀 다행이죠. 그러니까 이런 터울로 영화를 한다는 거 외에는 달라진 게 없어요. 그게 왜 그러냐면 내가 영화 하는 동안에는 하여간 그 안에 빠져서 턱걸이를 하고 산다고. 예전에 다섯 작품 찍을 때나 지금이나 턱걸이 하고 사는 거는 똑같아요. 건강 문제가 좀 달라졌을 뿐이지. 그때는 쌩쌩했고, 지금은 아무래도 나이 때문에 좀 힘이 부치죠.(웃음) 그것 말고는 별로 달라진 거 없어요.

서대원 굳이 선택하라고 한다면 지금의 상황이 좋으신가요?
임권택 물론이죠. 지금이 더 낫지. 훨씬 낫지!

서대원 작품에 대해 좀더 숙고할 시간이 있으시니까!
임권택 그렇지. 그때는 작품과 관련해 생각이고 뭐고 할 여지가 없어! 현장에서 모든 걸 다 해야 하니까! 그 당시 나쁜 짓 참 많이 했어요!(웃음)

서대원 또 감독님의 영화인생은 한국영화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간 현장이든 산업이든 미학이든 한국영화는 참으로 많은 변화를 겪어왔습니다. 그러한 수십 년을 어느 누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몸소 몸으로 부딪히며 봐 오셨는데 긍정적으로 거듭난 부분도 있고, 이건 좀 아니다 싶은 점도 있을 거라 봅니다.
임권택 좋은 거라면 이게 아닌 싶어요. 그러니까 옛날에 내 영화가 선택돼 영화제 돌아다닐 때는 미국, 유럽 사람들이 한국영화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어요. 관심도 없고. 본 적도 없고. 그러다보니 “너 영화를 어디서 배웠냐? 일본 감독한테 배웠냐?” 막 그랬다고. 또 영화를 보고 기자회견에서는 내 영화에 대해 애기해야 되는데 이 염병할 놈들이....

서대원 당시 혼란스러웠던 한국 사회와 정치 그런 걸 물었군요.
임권택 맞아요. 군사정권에 대해서 묻고 영화검열은 또 어떻게 하냐? 물어보고, 참 참담했어요. 내가 한국 사람인데 그 현장에서 하늘에다 대고 침을 뱉는 짓을 할 수가 있느냐고! 그 정도로 참담했던 시대인데 지금은 나가 보면 너네 한국영화 참 좋더라! 아무개 감독은 뭐하고 지내냐? 뭐 그런다고요. 한때 그렇게 서글픈 한국영화판을 혼자 서성거리다 끝나는 인생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지금 젊은 세대의 감독들이 너무 잘 해줘서 한국영화의 위상이 높아지니까 정말이지 좋아요. 그 중에 나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감독이니 그 기쁨이란 이룰 말할 수가 없어요.

서대원 그럼 아니다 싶은 건요?
임권택 내가 구세대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낭비가 심해요. 좀 더 절약할 수 있는데. 우리가 영화 찍을 때는 2만자 3만자 이랬거든. 4.5만자 넘어가면 난리 날 때란 거죠. 헌데, 지금은 몇 십 만자를 사용한단 말이야. 우리 시대 영화인은 체질적으로 절약이 몸에 배어 있는데 지금 감독들은 그런 게 없어 좀 아쉬워요. 물론,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긴 해요. 요즘 감독들은 없을 때 가난했을 때 살아본 일이 없으니까! 결국 낭비라는 걸 모르고 살아왔으니 그런가 싶기도 해요. 또 요즘 보면 톱스타들의 개런티가 엄청나던데 내 입장에서는 좀 그래요. 영화 수익과 관련된 분배에도 욕심껏 달라고 하던데....옛날엔 그렇게까지는 안 했다고. 예전이 좋았던 시절이다 뭐 이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쨌건, 그런 이기적인 생각들을 좀 덜어냈으면 좋겠어요.

서대원 반평생 이상을 영화 일에 매달려 오셨습니다. 해서, 이제는 거장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고요. 때문에 감독님을 말하는 수식어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대중에게 임권택 감독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여졌으면 하시나요?
임권택 글쎄요....그건 내가 짐작이 안 가요. 나도 사실 궁금해요. 나라는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웃음)

서대원 100번째 영화를 작은 영화로 그러니까 편안하게 찍으려 했는데 본의 아니게 주변의 큰 기대로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른 질문이지만 101번째 작품은 이전에 마음먹으신 대로 헤쳐 나갈 생각이신지요.
임권택 100번째 영화를 한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가지고 물음을 던졌는데 그게 사람 죽이는 얘기라고.(웃음) 결국 좋은 영화를 찍으라는 애긴데 그런 압력으로부터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거지. 내가 영화를 어떻게 찍든! 너무 나한테 큰 기대를 안 해주면 좋겠어요. 나도 자유롭게 작업을 해봤으면 해요. 근데, 막상 영화 들어가면 모르는 일이에요. 늘상 그래왔으니까! 마음 안에서는 이러 저러한 욕심이 일지만 내 마음 대로 될지는 모르겠어요.

서대원 당장 구상하고 계신 작품은 없죠?
임권택 당연 없지!

서대원 그나저나 50년 가까이 영화작업을 해 오셨는데 감독님을 이끈 그 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임권택 다른 거 없어요. 정일성 감독 그리고 우리 마누라 뭐 그런 사람들! 가만 보면 나 혼자 100편 다 한 거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한국영화계에 입문해서 지금까지 항시 같이 일하며 그분들로부터 좋은 가르침을 배워왔어요. 그러한 영화인들의 참여가 있었기에 내가 있는 거고 100번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거예요.

서대원 마지막 질문입니다. 임권택 감독님은 큰 어른이시기에 많은 분들이 그에 걸맞은 예우를 지키며 바라보고 모십니다. 당연 그래야겠죠. 하지만 그러한 배려가 때로는 불편하게 와 닿지 않을까 하기도 합니다. 좀 더 편안하게 대해줬으면 하는 바람 같은 게 있으실 것 같은데요?
임권택 그러니까 정일성 감독님이랑 나랑 어딜 가면 젊은이들이 붙지를 않아. 우리한테.(웃음)

서대원 같이 말을 나누고 싶어도 상황이 여의치 않군요.
임권택 그렇죠! 붙지 않아요. 젊은 친구들이. 허다 못해 밥을 먹어도 우리끼리 앉고, 애들은 저기 앉고, 예우도 좋지만 사람이 좀 외로워져요.

서대원 많이들 말 좀 건네주면 좋겠다는 말씀이시죠?
임권택 웅! 좀 그렇게 써줘요! 말 좀 많이 걸어달라고. (웃음)

글_서대원 기자
사진_권영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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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wann
재미있겠다...   
2007-04-25 14:34
rnrbrn
서편제도 그렇고 이번에 천년학도 그렇고
인정할수 밖에 없는거 같아요   
2007-04-25 00:31
egg0930
부담이 많을거같아요   
2007-04-24 15:56
cutielion
그렇지만 말걸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일듯   
2007-04-24 15:25
kgbagency
거장으로써의 불편함도 있군요   
2007-04-23 00:16
pupupuj
천년학 보고 싶어지네용..   
2007-04-22 23:17
ffoy
감독님이 만족하시고, 대중들이 인정하는 작품이 나와서 다행이네요. ^^ 100번째 작품 개봉 축하드립니다...   
2007-04-22 12:04
hrqueen1
참 부럽습니다.
아직까지 그런 욕심을 가지고 있기에 부럽구요, 또 그 욕심대로 가꿀려고 해서 부럽구요.
저도 감독님처럼 그런 욕심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네요.   
2007-04-2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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