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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우니 물어보다! 알쏭달쏭 아니메 ‘천년여우’
‘천년여우’ 감독, 각본가 인터뷰 | 2004년 7월 9일 금요일 | 심수진 기자 이메일

한글제목만 봐선, 천년묵은 무서운 여우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 재패니메이션 <천년여우(千年女優)>. 하지만 그런 단순한 예상과는 달리 평생 이루지 못할 사랑을 찾아 헤매는 한 ‘여배우’의 일생을 다룬 독특한 애니메이션이다.

이 애니메이션의 연출은 <퍼펙트 블루>의 콘 사토시 감독이 맡았다. 1982년 「영매거진 (ヤングマガジン)」을 통해 만화가로 먼저 데뷔했던 그는 자신의 단행본 작품 『월드 아파트먼트 호러(ワ-ルド アパ-トメント ホラ-)』가 만화화되면서, 애니메이션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그후 <기동경찰 패트레이버2(機動警察パトレイバ-2)>에서 레이아웃, <메모리스: 그녀의 추억(MEMORIES 彼女の想いで)>에서 각본 등을 담당하면서, 다양한 실무 경험을 쌓게 된다. 이러한 노하우를 살려 사토시는 1998년, 자신의 첫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인 <퍼펙트 블루(Perpect Blue)>를 내놓은 것.

해외영화제에서 ‘새로운 장르의 일본 애니메이션의 탄생’이라는 절찬을 받았던 사토시는 가장 최근 작품 <동경대부(東京ゴッドファ-ザ-ズ)>(2003)가 작년에 미국과 일본에서 동시개봉된뒤, 그의 전작들과 함께 높은 평가를 얻기도 했다.

2001년 작품이니 역시나 늦은 개봉에 대한 아쉬움은 들지만, <천년여우>의 국내개봉은 아니메 팬들에겐 무척이나 반가운 일일 듯 싶다. <천년여우>의 각본은 <퍼펙트 블루>에 이어 무라이 사다유키가 다시 한번 사토시와 호흡을 맞췄다. 히라사와 스스무의 멋진 음악과 현실과 환상의 절묘한 중첩이 보는 사람들의 눈과 머리를 정신없이 흔들어놓는 <천년여우>.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기에, 감독과 각본가의 얘기를 살짝 들어보았다.

여주인공이 일편단심으로 시공을 초월해가는 발상은 어디서 나온 건가요? 모델로 삼은 여배우가 있나요?

콘 사토시: 전부터 생각해온 것이 아니라 기획하는 단계에서 생각해낸 이야기에요. 일편단심이라는 것도 처음부터 생각한 게 아니라 우선 관객이 상상할 수 없는 영화를 만들자 해서 거기에 걸맞게 ‘여배우’란 설정을 하게 된 거죠.

일편단심은 복잡하게 엉킨 에피소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했습니다. 거기에 극적인 뒷얘기는 없이 나와 있는 아이디어를 그 가능성에 맞춰 더욱 좋게 키워나가는 정도의 노력이 있었을 뿐이죠. 주인공인 ‘치요코’의 경우 구체적인 모델은 없지만, 갑자기 은퇴해서 모습을 감춘 건 ‘하라 세츠코’씨, 전쟁 후 일본 국민에게 밝은 희망을 가져다 준 의미에서는 ‘타카미네 히데코’씨를 이미지화 했습니다.

전작 <퍼펙트 블루>에서의 현실과 허상의 이중 구조가 이번 영화에서도 엿보이는데요.

콘 사토시: <퍼펙트 블루> 때는 현실과 허상을 혼동시킴으로써 주인공이 느끼는 불안이나 만취감 같은 걸 관객들에게도 느끼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무라이씨와 의견을 같이 했어요. 다만 <퍼펙트 블루>에선 허상과 실제의 혼동은 충격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이번에는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 이미지의 모험을 즐겨주셨으면 해요.

각본에 많이 신경을 쓰신 것 같아요.

무라이 사다유키: 여주인공의 일생, 여자로서의 일생을 묘사함과 동시에 일본의 근대사 같은 걸 떠올리실 수 있었으면 했어요. 신경을 썼다고 한다면, 여주인공이 말하는 것의 현실성, 즉 ‘그녀가 말하는 것이, 사실상 어떠했는가보다 더 중요하다’라는 걸 떠올릴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서 썼죠.

많은 이미지를 겹쳐서 사용하셨는데, 그 안에 어떤 상징적인 의미들도 담겨있나요?

콘 사토시: 상징적이라고 하면 ‘폐허’를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었어요. 폐허화되가는 촬영소는 늙은 ‘치요코’와 같죠. 치요코가 태어날 때 관동대지진이라는 폐허와 전쟁 후의 폐허가 된 길, 마지막으로 다시 촬영소의 폐허…죽음이나 재생의 상징으로 폐허가 나오는 거죠. 음, 그런 것 같아요. (웃음)

그런 것 같다는 건 처음부터 정확하게 의도한 게 아니라 어딘가 나의 무의식에서 그걸 원했다고나 할까. 그게 콘티를 그려가며 이미지를 구체화시켜가면 ‘어? 또 폐허네, 그렇구나, 그런 의미구나’하고 만들어나가면서 발견하고 다져나가는 거죠.

‘달린다’라는 행위도 그래요. 처음엔 단순히 두 다리를 이용해 달리는 운동이 시간이 지날수록 말에서 자전거로, 다시 자동차, 기차, 전차, 배, 그리고 로켓까지 갔어요. 서양 근대 과학의 역사인 거죠. 하지만 최종적으로 그녀가 목표로 한 건 근대 과학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곳이에요. 그렇게 생각하면 처음에 나온 로켓은 과학의 상징이지만, 마지막에 나오는 로켓은 과연 뭘까 하는 식으로 생각하게 됨으로써, 관객들도 더욱 즐길 수 있게 될 거에요.

표면상의 이야기와는 별도로, 여러 가지 흐름을 중복시켜서 만든 작품이라 관객들 각자가 나름의 관점을 발견해주시면 좋겠어요.

인간의 일생을 그리는데 있어서 연대를 나눈다든지 표정, 캐릭터 디자인에도 신경을 쓰셨겠군요.

무라이 사다유키: 세월을 넘어서 치요코가 보이는 행동의 동일성에는 ‘갇혀 있는 곳에서 탈출하는 사람으로 해야지’라고 의도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갇혀 있다는 건 촬영소의 시스템에 맞게 짜넣어진다는 거죠. 언제나 치요코는 그 장소에서 계속 도망치고자 하는 행동을 취해요. 처음 만주에서도 도망쳤고, 유곽에서도 도망치는 모습 등으로요. 갇힌다는 건 우리들이 현대사회에서 그 시스템에 순응해 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치요코의 경우 사랑의 힘을 통해 그 안에서 한발 빠져나가는 쾌감 같은 걸 그려내고 싶었죠. 하지만 시마오 나가코가 언제나 그걸 막게 돼요.

콘 사토시: ‘시마오 나가코’는 세상을 대표합니다. 치요코에게 교육을 시키는 엄마같은 역할도 하구요. 한편 ‘열쇠의 남자’와 ‘상처의 남자’는 아버지의 양면, 허용해주는 ‘열쇠의 남자’와 항상 제지하는 ‘상처의 남자’에요.

치요코가 좋아하는 남자를 쫓아가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점에서, 그녀가 아버지 없는 가정환경이겠구나라고 관객들은 생각할 거에요. 그녀가 쫓았던 건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하는 것보다 내면의 아버지상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 영원한 남성상…음, 부족한 지식으로 이렇게 말하는 건 좀 그렇습니다만 ‘아니무스’라고도 말할 수 있어요.

아니무스: 스위스의 심리학자 C.G. 융이 제창한 심리학 개념. 여성의 무의식속에 존재하는 원형으로서의 남성상. 그 반대로 남성 속에 있는 여성상은 ‘아니마’라고 함.

인터뷰를 하는 ‘타치바나’가 후반이 되면, 사실 여배우 시절의 ‘치요코’와 깊은 관계가 있는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되잖아요. 어떤 의도가 있었나요?

무라이 사다유키: 우선 치요코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건 치요코 밖에 모르는 부분으로, 치요코의 내부 묘사에요. 하지만 관객들이 거기에 더해 타치바나의 이야기를 알게 됨으로써, 두 사람의 이야기를 더욱 상위개념의 이야기로 보게 되는 구조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이 두 이야기가 합쳐져서 비로소 <천년여우>라는 영화의 전체가 보이는 거죠. 치요코의 이야기만으로는 그녀의 주관적 부분 밖에는 알 수가 없어요. 거기에 타치바나의 이야기가 들어감으로써 그녀의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한번 볼 수 있는 거죠.

콘 사토시: 치요코의 회상에서 타치바나의 회상으로 옮겨가는 장면이 있는데요. 한 사람의 회상 속에서 다른 사람의 회상으로 옮겨가는 건 꽤나 곡예스럽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구성했어요. 기획의 단초가 ‘관객이 상상할 수 없는 영화’였으니까요. (웃음)

감독의 기획에 의한 첫 오리지날 작품인데요,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요?

콘 사토시: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지만, 받아들이는 게 어려웠던 것 같아요. <천년여우>의 내용을 들으면, 업계에서는 도장으로 찍은 듯 ‘수수하네’라는 말이 돌아왔거든요. 실제로 완성한 뒤엔 시사회나 비평 등에서 ‘아주 애니메이션답고 자유분방한 발상이며 재밌다’와 같은 말을 들었죠. ‘화려하다’는 말은 못 들었지만요.

‘왜 애니메이션다운 걸 안 만드는가?’라는 말을 계속 듣다 보니, ‘모두가 애니메이션답다고 생각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라는 삐딱한 마음이 상당히 팽배해 있었거든요. 그런데 나중의 사람들의 평은 저에겐 큰 격려가 됐고, ‘것봐라’ 하는 생각도 들었죠. 무엇에 대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요….(웃음)

자료제공: 프리비젼




7 )
pretto
좋은 인터뷰였습니다^^   
2010-01-30 16:12
qsay11tem
기사 잘봄   
2007-08-09 21:22
kpop20
잘 읽었어요   
2007-05-27 11:12
js7keien
추구할 수 없었던 그는 정녕 평생을 두고 쫓아다녔어야 할 이상형이었단 말인가?   
2006-10-01 23:14
soaring2
재밌을런지..   
2005-02-13 06:42
l62362
처음나올땐 굉장히 관심을끄는듯했는데. 개봉했는지 안했는지조차모를정도로 흘러가버린 영화...   
2005-02-11 22:56
cko27
마야자키의 그늘에 가려 한국관객들은 잘 모른 분이네요. 대다하신 분인데.   
2005-02-0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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