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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게는 응원을, 어른에게는 돌아볼 기회를 <수능, 출제의 비밀> 이용재 감독
2026년 11월 3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매년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리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누구에게나 익숙한 수능이지만, 그 출제 과정은 낯설기만 하다. 영화 <수능, 출제의 비밀>은 바로 그 베일에 싸인 수능 출제본부를 무대로 펼쳐지는 코미디. 40일간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공간에 모인 국어과 출제위원들이 하나의 시험지를 완성하기 위해 벌이는 좌충우돌 소동을 그린다. 명문대 교수들의 권위와 자존심 싸움, 그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초짜 출제위원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펼치며, 작은 합숙소 안에 한국 사회의 익숙한 풍경을 옮겨놓았다.

<해치지 않아>(2020),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2022)의 각본을 쓴 이용재 감독의 장편 연출 데뷔작이다. 각본가로 활동하던 중 연출 제안을 받아 직접 메가폰을 잡았다. 수능 출제본부에 다녀온 지인의 경험담에서 출발한 아이디어를 오랫동안 발전시켜 영화로 완성했다. 첫 연출작의 개봉을 앞두고 기대와 긴장이 교차한다는 이용재 감독이다.


◆ 좋은 어른이란 무엇인가

이용재 감독은 전작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 이어 이번에도 학교와 교육을 소재로 삼았다. 하지만 특별히 교육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라기보다는 청년과 기성세대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청소년의 내면을 직접 대변하기보다는 자신이 속한 어른들의 모습을 돌아보는 이야기에 더 자신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어른은 젊은 세대에게 무조건 노력하라고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고도성장기와 부동산 가격 상승 등 시대적 혜택을 누린 기성세대가 그 성과를 온전히 자신의 노력으로만 얻었다고 생각하는 태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윗세대로부터 존중받았으면서도 정작 아랫세대를 인정하는 데는 인색한 모습 역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봤다. 청년들에게는 용기와 응원을, 어른들에게는 자신이 누려온 것들을 되짚어볼 기회를 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영화 속 ‘맹보람’(이선빈)과 ‘문주열’(유재명)의 대립에는 이러한 시선이 담겼다. 처음으로 수능 출제위원에 선정된 국어 교사 맹보람은 명문대 교수들이 주축을 이룬 출제본부에서 학벌도 경력도 내세울 것 없는 인물이다. 반면 국어과 출제위원장 문주열은 자신의 권위와 학문적 전문성을 앞세운다. 두 사람의 충돌을 통해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위계와 권위의식. 이용재 감독이 코미디로 풀어내고 싶었던 풍경 중 하나다.

특정 대학 출신 교수들이 수능 출제위원의 상당수를 차지해 왔다는 문제의식도 영화에 반영했다. 과거 국정감사에서 출제위원 구성의 편중 문제가 제기됐다는 점을 언급하며, 좋은 문제를 만드는 전문성 못지않게 출제진의 다양성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수와 교사, 서로 다른 전공과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만큼 다양한 관점이 반영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교수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맞춤법을 틀리고 허세를 부리는 모습은 코미디를 위한 과장이지만, 출제위원들이 제한된 시간 안에 좋은 문제를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다는 사실 역시 놓치지 않으려 했다. 실제 출제본부를 경험한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노고까지 웃음거리로 삼고 싶지는 않았다는 감독이다.

◆ 이선빈의 회복탄력성, 유재명의 보스 기질

<수능, 출제의 비밀>은 여러 배우가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내는 앙상블 코미디다. 그 중심에는 이선빈과 유재명이 있다. 두 배우가 가진 특성을 캐릭터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는 이 감독.

이선빈이 연기한 맹보람에게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회복탄력성이다. 명문대 교수들 사이에서 무시당하고 구박받으면서도 쉽게 주눅 들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인물. 기성세대에 무작정 맞서 싸우는 청년이 아니라, 자신의 소신을 지키면서도 밝은 에너지를 잃지 않는 사람으로 그리고 싶었다.

처음에는 이선빈이 그러한 모습을 연기로 잘 표현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실제로 만나고 촬영하면서 배우 자신이 가진 회복탄력성을 발견했다. 촬영지였던 무주 태권도원에서 배우와 스태프들이 함께 숙식하며 지낸 시간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아침이면 산책을 함께하거나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등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유재명에게서는 극단을 운영했던 경험에서 비롯된 리더의 기질과 완고한 면모를 발견했다. 이를 권위적인 출제위원장 문주열에게 녹여내 이선빈의 맹보람과 충돌하도록 했다. 극 초반 문주열이 상대에게 자신의 캐리어를 건네는 이른바 '노룩 패스'는 유재명의 애드리브다. 캐릭터의 본색을 너무 일찍 드러내는 것은 아닐지 고민했지만, 전체적인 흐름에 어울린다고 판단해 장면을 살렸다고 한다.

국정원 직원으로 특별 출연한 최시원의 존재감도 빼놓을 수 없다. 선글라스를 쓴 채 이름조차 밝히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나중에 안경을 벗으며 뜻밖의 반전을 주려 했다는 설명이다. 대사 없이 출제본부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인물을 표현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배우의 이미지가 캐릭터와 잘 어우러졌다고 평가했다. 이선빈과 최시원이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에서 호흡을 맞췄다는 점도 소소한 재미로 활용했다. 마지막 쿠키영상에는 두 배우의 익숙한 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을 넣어 해당 작품의 인기에 살짝 기대보려 했다는 농담도 덧붙였다.

◆ 지루하면 죽는다, 빠르고 경쾌하게

리듬감. 이용재 감독이 연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다. 코미디인 만큼 관객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빠른 전개를 추구했다. 첫 편집본이 나온 뒤에는 장면 사이의 불필요한 여백을 덜어내고, 무겁거나 느린 음악도 과감하게 줄였다.

이지수 음악감독과의 작업에서도 같은 방향을 고수했다. 클래식한 분위기의 음악을 잘 만드는 음악감독에게 오히려 더 가볍고 경쾌한 선율을 주문했다. 특히 맹보람의 테마로 활용한 '젓가락 행진곡'은 한층 장난스럽게 편곡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선빈 역시 완성된 테마곡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출제위원들이 한데 모여 격론을 벌이는 회의실 장면에는 고전 법정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1957)을 참고했다. 비좁고 무더운 공간에서 인물들이 팽팽하게 맞서는 분위기를 살리고 싶었다. 실제 촬영에서도 여러 회의실 가운데 일부러 작은 공간을 선택했다. 덕분에 배우들의 충돌은 한층 생생해졌지만, 카메라 앵글과 동선을 확보해야 하는 촬영 스태프들은 적지 않게 고생했다.

밀폐된 공간에 사람들이 모였을 때 드러나는 예상 밖의 모습도 코미디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평소 주먹다짐과는 거리가 먼 교수들이 감정에 휩쓸려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싸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눈앞에 잡히는 물건을 집어 들고 엉성하게 맞붙는 모습에서 웃음을 끌어내고자 했다. 감독은 외부와 단절된 합숙소를 일종의 동물원처럼 바라보며, 평소에는 감춰져 있던 인물들의 본성이 튀어나오는 상황을 흥미롭게 활용했다.

시나리오 작가에서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며, 그가 가장 크게 체감한 변화는 글과 영상의 차이였다. 대본에서는 두 줄에 불과했던 장면이 배우들의 아이디어와 연기를 만나 예상보다 훨씬 풍성해지는 현장을 경험했다. 유재명과 김영민이 마주쳐 악수를 할 듯 말 듯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이 그랬다. 배우들이 직접 동작을 구상하고 촬영 방식까지 제안하면서 글로 썼을 때보다 훨씬 재미있는 장면이 완성됐다.

처음에는 영화의 중심이 작가와 감독에게 있다고 생각했지만, 촬영을 거치며 배우와 스태프의 역할을 새삼 깨달았다는 감독.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들이 크게 웃으며 작품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본 후에는 영화를 완성하는 마지막 주체가 관객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수능, 출제의 비밀>을 통해 한 편의 영화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만들어지고, 관객과 만나 비로소 완성된다는 점을 배운 셈이다.

이제 막 첫 연출작을 선보인 그의 시선은, 다음에는 어디로 향할까. 앞으로도 도전하고 싶은 장르는 역시 코미디다. 드라마와 웃음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절감했지만, 그래도 코미디가 좋단다. 날카로운 조롱이나 과장된 감동보다 따뜻한 유머가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이용재 감독이다.




사진제공. ㈜바이포엠스튜디오


2026년 11월 3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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