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악마가 판사가 되어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죄를 뉘우치지 않는 가해자는 가차 없이 응징한다는 판타지 액션 법정 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가 성황리에 종영했다. 영화 <너는 내 운명>부터 최근작 <용감한 시민>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연출력을 인정받은 박진표 감독은 ‘악마의 죄인 처단’이라는 판타지하고 생경한 세계관을 현실에서 발생하는 여러 범죄와 접목하여 시청자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악마 판사 ‘강빛나’로 분해 극을 주도한 박신혜를 향해 “그녀는 강빛나였고 유스티티아였지만, 제게는 잔 다르크였다”는 박진표 감독을 서면으로 만났다. ‘인간이길 포기한 자들에게 교화될 기회를 주기 전에, 자신에게 남아있었던 삶의 기회를 빼앗긴 피해자와 유족들에 대한 위로가 먼저이길 바란다’ 그리고 ‘당신이 불편하길 바란다’는 단 두 줄의 문장에 끌렸고, 이를 충실하게 반영하고자 했다고 연출 주안점을 꼽는다.
<지옥에서 온 판사>(이하 <지판사>)가 호평 속에 종영했습니다. 시즌2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을 정도인데, 종영하니 어떠신가요.
먼저 <지판사>에 보내주신 시청자들의 많은 응원과 깊은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막바지 후반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방송을 시작해서 마지막까지 정말 큰 힘이 되었죠. 아주 든든했습니다.
<지판사>의 어느 부분에 끌리셨나요.
사실 제가 ‘지판사’의 연출을 맡게 된 결정적 계기는 기획의도에 써 있는 몇 줄이었습니다. ‘인간이길 포기한 자들에게 교화될 기회를 주기 전에, 자신에게 남아있었던 삶의 기회를 빼앗긴 피해자와 유족들에 대한 위로가 먼저이길 바란다’ 그리고 또 한 줄 ‘당신이 불편하길 바란다’였죠. 이 기획의도를 끝까지 잊지 않고 지켜내야 <지판사>가 완성될 수 있다고 믿었어요. 모든 답은 대본 안에 있으니 대본을 보고 또 보면서 기본에 충실했고요.
이런 흥행을 예상하셨나요. (웃음)
사실 일부로라도 흥행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지판사>의 주요 배경과 설정인 지옥과 또 악마의 죄인 처단이라는 판타지 세계관이 시청자들이 보시기에 다소 생경하실 수 있잖아요. 또 한편으론 약간의 항마력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지판사>에 보내주신 시청자들의 열혈 응원과 사랑에 전 스태프와 배우들은 마지막까지 힘을 내서 무사히 종영할 수 있었어요.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성공 포인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성공이라고 말씀하시니, 꼽아보면 일단 훌륭한 의도를 가진 좋은 대본인 것 같고요. 최고의 제작사와 스태프들, ‘강빛나’역으로 눈부시게 활약한 박신혜 배우를 비롯한 모든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음악(전창엽 감독의 게헨나와 선미 OST)이 아닐까 합니다.
박신혜 배우는 이번에 ‘악마&판사’라는 전무후무한 캐릭터를 완성한 것 같아요.
맞아요. 배우 박신혜는 모든 것을 어깨에 지고 돌격한 뒤, 맨 앞에서 시청자들과 만나는 우리의 히어로였어요. 맑고 투명한 큰 눈에서 안광이 발하는 중력 같은 흔치 않은 배우예요. 시청자들을 포함해 우리 모두가 그녀에게 빨려 들어가서 그녀의 세계에서 아주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죠. 그가 손수 만든 대사이자, 포스터에 메인 카피로 쓰인 “나의 세계로 온 걸 환영해”, 이번에 다들 그 세계를 경험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연출인 저조차도 최후방 모니터에서 디렉팅을 잊은 채 그녀의 연기를 종종 구경하게 되더군요. 부끄럽지만, 사실입니다. (웃음) 그녀는 강빛나였고 유스티티아였지만 제게는 잔 다르크였습니다.
박신혜 배우를 포함해 ‘한다온’ 역의 김재영 배우, 김인권, 김아영 등 주요 배우들의 합이 너무 좋았어요.
김재영 군은 ‘다온’역을 맡을 배우를 찾는 과정 중 만난 배우인데요. 감독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머리 위로 아우라가 느껴졌어요. 당시 저의 눈을 똑바로 보지 않고 약간은 수줍어하는 표정이었는데 ‘어?, 귀엽네?’라고 느끼는 순간 눈이 마주쳤어요. 그때 외로운 늑대같이 굉장한 남자다움이 느껴졌어요. 아시다시피 다온이라는 캐릭터는 어릴 때 가족을 잃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경찰이 되었는데 악마인 빛나를 의심하고 사랑해야 하는 역할이죠. 나중엔 흑화도 되고요. 얼핏 입체적인 캐릭터로 보이지만, 그 누가 했어도 정말 어려운 역할이죠. 김재영 특유의 긍정과 발랄함을 잃지 않고 묵묵히 현장을 지켰어요. 아주 성실하게요. 역할 소화도 멋지게 해냈고요. 이제 저도 그의 열혈 팬이 되어 그가 높이 날아오르길 응원합니다.
김인권 배우는 전 국민이 좋아하는 만능 연기자니까 저는 희로애락이 담긴 그의 얼굴과 연기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고 고마웠죠. 사랑스럽고 귀여운 악마니까요. 김아영 배우는 아주 좋은 눈과 명쾌한 발음을 가진 배우죠. 맑눈광 외에도 선한 눈, 살기 있는 눈, 누군가를 추종하는 눈 등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좋은 배우입니다. 처음부터 아롱이로 점찍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오디션 없이 프러포즈한 배우입니다.
연출하면서 주안점을 둔 부분은요.
말했듯이 가장 많이 신경 썼던 부분은 아무래도 작가님의 훌륭한 기획의도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였어요. 드라마 내적으로는 <지판사>에는 여러 가지 많은 장르가 혼합되어 있는데요, 이 각각의 장르의 특성을 살리면서 그들의 톤을 마치 ‘백화점의 멋지게 포장된 종합 선물세트처럼 어느 하나 튀지 않고 물 흐르듯 한 톤으로 만들어 내보자’라는 게 처음 기획단계부터 마지막 방송이 나갈 때까지 제 숙제였고 고민이었고.. 끝까지 노력했죠. 외적으로는 주요 등장인물들과 에피소드 인물(특별출연)을 포함한 40여 명이 넘는 배우들과 소통하면서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발전시켜 나가는 작업이 가장 중요했고요.
말씀하신 대로 여러 장르가 혼재되어 있는데요, 구체적으로 풀어 놓는다면요.
범죄, 액션, 로맨스, 블랙 코미디가 다 섞여 있어요. 뉴스에 등장했거나 등장할 법한 사건들과 살인을 저지른 자와 목숨을 빼앗긴 피해자, 그리고 처절하게 살아남은 유족들의 아픔이 있죠. 판사 ‘강빛나’(박신혜)의 재판이 끝나고 시작되는 악마 ‘유스티티아’(박신혜)의 또 다른 재판과 강력한 처단이 뒤따르고요. 지옥의 세계관 속에 인간의 몸에 들어간 악마와 사건을 뒤쫓는 형사(김재영), 그들의 금지된 사랑은 또 어떤가요. 점점 인간화되는 악마와 흑화되어 가는 형사도 관람 포인트 중 하나예요. 그들의 관계성과 여러 가지 상황에서 나오는 인물들의 코미디에 거기에 악마와 악마의 대결까지. 그야말로 복합장르예요.
지옥의 비주얼과 지옥 세계관을 시각화하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을 것 같아요.
정말 그래요. 아무도 가보지 않은 지옥의 비주얼과 지옥세계관을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VFX와 특수분장, 미술, 소품, 의상, 분장에 공을 많이 들였어요. 지옥의 비주얼은 이미 기존의 작품들에서 소비된 느낌은 답습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주 조금이라도요. 그래서 입구에서부터 로댕의 ‘지옥의 문’을 참고한 입구를 만들고, 신곡에 등장하는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라는 문구를 넣었죠. 여기에 ‘바엘’(신성록)의 목소리를 입혔고요.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신비롭게 맑은 하늘에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빨간 꽃밭이 펼쳐져요. 언제나 꽃길을 걷고 싶은, 인간들 마음속에 품고 있던 욕망을 표현했죠. 그 꽃을 만지는 순간 꽃들이 눈을 뜨고 모든 게 잿더미로 변하면서 땅 밑으로 떨어져요. 지옥의 메인빌딩은 법원인데 현실과 똑같이 존재한다는 느낌으로 구상했어요. 지옥의 사자들이 지키고 있고 현실의 법정과 똑같은 크기의 법정이 존재해요. 지옥의 악마들은 현실세계와 비슷하게 계급이 존재하죠. 그곳에서 지옥 법으로 살인자들을 판결하는 거죠.
현실에서 재판이 끝나고 열리는 악마(빛나)의 재판은 “이제부터 진짜 재판을 시작할게“로 시작해서 ”바이알 인페르노(지옥으로!)” 주문을 외우면 빛나의 눈이 보라색으로 변화해요. 그러면서 단도가 생성되고 처단이 끝나 죄인(살인자)의 숨이 끊어지면 이마에 게헨나 인장을 찍고 비로소 지옥의 문이 주변에서 생성됩니다. 그리고 영혼이 빨려 들어갑니다. 바로 지옥으로 떨어지는 거죠. 문 정면에는 죄인(살인자)의 얼굴이 차례로 박힙니다. 문이 닫히면 재판 끝! 그리곤 <지판사> 청소악마 ‘재현’(이중옥), ‘동주’(하경민)가 출동해 현장을 깨끗하게 정리합니다.
시청하는 입장에서는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인데, 이런 구조와 플로우를 따르는 거였군요. 촬영은 어떻게 하신 건가요.
이런 처단의 모든 과정은 VFX와 조명효과, 특수효과, 특수분장, 특수소품, 무술, 드론이 어우러져 밤에 이루어져요. 드라마의 짝수 회차에서 보이는 7번의 처단 시퀀스는 모든 스태프, 배우들이 초긴장 상태에서 집중해 촬영했어요. 촬영, 프러덕션 디자인, 조명, 녹음, 무술, 미술, 소품, 분장, 의상, 음악, 믹싱, 편집 등의 분야는 워낙 이 분야 최고의 명성을 가진 전문가들이고 창의적이라서 연출의 하위개념이 아닌 파트너로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한 분만 빠졌어도 삐걱했을 정도로 각자의 분야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해주었죠. 제가 그들에게 부탁한 건 딱 한 가지였어요. 연출인 저를 포함해서 최대한 창의적으로 접근하되 배우의 연기나 감정보다 더 튀지는 말자였어요. 정말 흐뭇한 것은 그들의 노력이 화면에 다 보이고 빠짐없이 들린다는 거예요. 누구 하나 튀지 않고 아주 조화롭게요.
특히, 연출의 시각을 갖춘 박성용 촬영감독과 스케일과 디테일의 마왕 김세영 프러덕션 디자이너, 무한한 상상력의 성형주 시각감독(VFX)과는 프리단계부터 끝까지 마치 한 몸처럼, 물론 저만의 생각입니다만, (웃음) 움직이면서 연출적인 도움까지 받았어요. 또 제작사 스튜디오S의 제작시스템(이옥규 CP님의 노하우와 판단력, 윤윤선, 권령아 PD의 놀라운 추진력, 조연출을 겸했던 천재 조은지 B팀 감독과 조연출 김창환 주수연)도 아주 큰 역할을 했습니다.
지옥, 악마 같은 요소가 자칫 유치해 보일 수 있는 부분인데요. CG를 입힌 비중(분량)과 '이것만은 하지 말자' 하는 컨셉이 있었다면요.
기존의 매체들이 보여준 지옥의 이미지를 단순히 답습하지는 말자고 생각하고 성형주 시각감독, 박성용 촬영감독, 김세영 프로덕션디자이너와 함께 VFX, CG팀, 미술팀, 특분팀, 분장, 의상팀, 소품팀과 함께 지옥의 풍경을 구상했습니다. 지옥을 치명적인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공간으로 설정(꽃밭, 꽃)하면서, 사람을 현혹시키는 탐욕을 이미지화하려고 노력했어요. 이 부분에 중점을 맞춰서 CG의 비중도 자연스럽게 정해진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시청자들께서 저희 <지판사>의 세계관에 맞춰 만들어진 지옥의 장면들을 동의해 주시고 좋아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잔인하다는 의견도 있는데 수위 조절에 신경을 많이 쓰셨을 것 같습니다. 15세에 맞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생략한 부분이나, 수위를 약화시킨 부분이 있는지요, 또 수위를 맞추기 위해 자기 검열한 부분이 있다면요.
말씀하신 것처럼 방송심의 기준 15세에 맞추기 위해서 많은 고민을 했죠. 사실 아시다시피 현실세계에서 벌어지는 범행 수준은 훨씬 더 심각하죠. 그래서 저희 드라마에선 피해자가 당하는 폭력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는, 죄인의 악행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수위를 조절해 나갔습니다. 다만 연출하는 데 있어 큰 고민 중 하나는, 죄인들의 악행을 너무 덜어내면 반대로 그 때문에 빛나의 죄인 처단이 당위성이 떨어지고 너무 과도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고민이었습니다.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빛나의 처단을 납득시키면서도 실제 현실의 잔혹함은 덜어내는 방향으로 조율하고자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지판사> 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13부 빛나가 정태규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기 전에 “결국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억울하게 생명을 잃은 피해자에 대한 애도와 죽음 같은 삶을 살아온 피해유가족에 대한 위로일 것이다. 피해자와 피해유가족이 용서하지 않은 죄는, 법 또한 용서하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빛나와 제작진, 작가, 연출인 저 역시 결국 이 대사를 하려고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해요. 이 대사와 함께 14부에서 정태규를 처단한 뒤 고인들을 한 분 한 분 모신 장면에서 <지판사>를 만든 사람들의 마음을 시청자들께 전하고 싶었어요. 시청자들과 제작진, 빛나, 우리 모두가 같은 마음이길 바란 거죠. 그리고 2년 후 우리는 빛나와 함께 그동안의 피해자와 유족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그들은 아주 조금씩 한 발짝 내딛으려 힘을 내고 있어요. <지옥에서 온 판사>는 그런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더불어 빛나가 장난스럽게 아이들에게 말하던 말 “착한 사람은 행복하게 살고 나쁜 사람은 벌받는 거, 그게 정의야” 이 단순하고 정직한 한마디가 우리 마음속 희망이나 이상, 판타지가 아니고 아주 당연한 현실이 되는 날이 오길 <지판사>를 만든 제작진은 바라봅니다.
정말 여러 베테랑 배우들이 특별출연 해서 아주 고마운 현장이었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함께한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함께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동이고 무한한 영광인 김영옥 선생님, 든든하게 현장을 지켜주신 우리의 남능미 선생님, 카리스마 김홍파 선배님 감사합니다. 또 작은 역인데도 신나게 현장 분위기 이끌어주신 한상진 배우님, 후반부 시청자들을 울리신 3자매 김재화 김혜화 김승화 배우님, 환상 케미 청소팀 이중옥 하경민 배우님. 황천빌라 박지연. 오한결 배우님. 형사팀 정석용 김지훈 박지훈 배우님, 그리고 후반부 악역의 역사를 쓰신 이규한 배우님, 최동구 배우님. 법원팀의 이규회 이미도 김광규 도은하 동효희 배우님 이가연 배우님도 너무 고맙고요. 특히 작은 인연과 작은 분량임에도 흔쾌히 특별출연하신 악마팀 박호산 오나라 신성록 정하담 윤태하 김상우 배우님, 천사 김현목 배우님, 현장 귀염둥이 막내 양희상 아역배우님. 박명신 선배님 정인기 선배님, 악역을 맡아 정말 많이 맞느라 고생하신 박정연 배우님. 맞다 못해 결국 돌아가신(극중에서) 장도하 임세주 양경원 오의식 최대훈 배우님, 또 피해자와 피해자 유족들로 분했던 강신일 선배님. 원미원 선배님. 이호진, 설유진, 서우승, 이소윤, 김남진, 이승주, 진성민, 황정윤, 남수현, 김한결 배우님 등. 이 중에 단 한 분이라도 빠졌으면 삐걱거렸을 거라는 확신이 들 만큼 다들 온몸으로 온 맘으로 열연해 주셨고 시청자들에 앞서 최전선 가까이서 그들의 연기를 본다는 것 자체가 제겐 특권이자 선물이었고 행운이었습니다.
사진출처_SBS <지옥에서 온 판사>/ 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