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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애니메이션의 산 증인, 김청기 감독을 기억하다
김청기 | 2010년 6월 10일 목요일 | 김한규 기자 이메일

지난 5월, 김청기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 <초합금 로보트 쏠라 원.투.쓰리>가 극장 개봉했다. 당연히 흥행에는 참패했지만 1980년대 한국 애니메이션을 다시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는 의미가 있었다. 우리나라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포문을 연 작품은 신동헌 감독의 <홍길동>이다. 그러나 1970년대 TV의 등장으로 영화 시장은 점점 위축되었고, 한국 애니메이션의 부흥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하지만 1976년 김청기 감독의 <로보트태권V>가 개봉하면서 한국 애니메이션은 다시 회생했고, 그의 손을 거쳐간 수 많은 작품이 많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다.

김청기, <로보트태권V>를 만들다

김청기 감독은 1964년 서라벌예술대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만화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꾸준히 만화를 그렸던 그는 1966년 애니메이션에 입문해 <홍길동> <보물섬> <황금철인> 등 많은 작품에 참여했다. 하지만 TV가 문제였다. TV의 등장으로 극장에 가서 돈을 내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전반적인 영화 시장이 위축되었다. 애니메이션도 예외는 아니었다. 1971년 용유수 감독의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후 5년간 애니메이션 제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상영할 한국 애니메이션이 없었던 극장에서는 일본에서 수입한 애니메이션이 자리를 대신했고, TV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이 방영되면서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1975년도 MBC에서 방영한 <마징가 Z>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년 후 <오발탄>의 유현목 감독이 제작을 맡고, 김청기 감독이 연출을 맡았던 <로보트태권V>가 극장에 상영했다. 당시 18만 명(서울관객)이라는 기록적인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는 한국 애니메이션을 다시 기사회생시켰다. <로보트태권V>는 <마징가 Z>와 대결구도를 이루면서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복원된 <로보트태권V>의 한 장면과 <로보트태권V: 슈퍼태권브이>포스터
복원된 <로보트태권V>의 한 장면과 <로보트태권V: 슈퍼태권브이>포스터
김청기 감독이 <로보트태권V>를 만든 배경은 이렇다. 1960~70년대 일본 문화에 대한 불쾌감이 극에 달했던 시절, 아이들이 보던 만화는 대부분 일본 만화였다. 김청기 감독은 아이들에게 일본이 아닌 한국 애니메이션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당시 광화문에 있는 사무실을 다니면서 봤었던 이순신 장군 동상 이미지를 바탕으로 ‘태권V’의 외형이 만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해야 <마징가 Z>와 차별성을 가질 것인가였다. 그래서 감독은 이순신 장군이 투구를 쓴 모습을 차용해 ‘태권V’의 머리 부분을 독특하게 만들었다. 또한 다른 로봇 애니메이션과는 차별성을 두기 위해 우리나라 고유 무술인 태권도를 삽입해 다양한 무술동작으로 볼거리를 충족시켰다. 더불어 태권도를 통해 영화를 보는 아이들에게 민족정서를 고취시켰다.

이후 <로보트태권V>는 5편의 애니메이션 시리즈와 다른 감독이 만든 번외편 그리고 실사와 애니메이션 합성 영화까지 총 7편이 제작되었다. 이후 2007년에는 <로보트태권V>의 복원판이 다시 극장에 상영되면서 향수를 자극했다. 현재 <로보트태권V>는 <세븐데이즈>의 원신연 감독이 연출을 맡아 실사 영화로 제작중이다.

<황금날개 1.2.3>부터 <바이오맨>까지

<로보트태권V>의 흥행은 다수의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김청기 감독은 <로보트태권V> 시리즈에 이어 다양한 로봇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초합금 로보트 쏠라 원.투.쓰리> <혹성 로보트 썬더 A> <스페이스 간담 V> 등은 ‘태권V’와는 사뭇 다른 캐릭터와 각종 신무기로 재미를 더했다. 더불어 단순한 선악구도로 이루어진 스토리는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다.

김청기 감독이 로봇 애니메이션만 만든 건 아니었다. 1978년 로봇이 아닌 초능력을 갖고 있는 영웅을 등장시킨 <황금날개 1.2.3>와 <날아라 원더공주>를 잇달아 내놓았다. 이어 김청기 감독은 <똘이장군: 제3땅굴>을 개봉하면서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1970년대 후반 북한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감이 매우 심했던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불여우동무’라는 간첩을 몰아내는 똘이의 이야기는 반공영화로 인식되기도 했다. 이후 <간첩잡는 똘이장군> <꼬마 어사 똘이> <공룡 100만년 똘이> 등 <똘이장군> 시리즈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고우영 화백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삼국지>, 구약성서를 바탕으로 만든 <다윗과 골리앗>, 과학을 소재로 한 교육 애니메이션 <꾸러기 발명왕> 등 다양한 소재의 애니메이션을 탄생시켰다.
 <초합금 로보트 쏠라 원.투.쓰리>와 <똘이장군: 제3땅굴>
<초합금 로보트 쏠라 원.투.쓰리>와 <똘이장군: 제3땅굴>
애니메이션이 김청기 감독 영화의 한 축을 담당했다면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합쳐진 영화가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했다. 그 중 대표작은 뭐니뭐니해도 1986년도부터 연출과 제작을 맡은 <우뢰매> 시리즈다. 이 영화는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조합을 이룬 김청기 감독의 첫 영화였다. 그 당시 신인 코미디언이었던 심형래가 지구를 지키는 ‘에스퍼맨’으로 나오고 육감적인 영화에 출연했었던 천은경이 에스퍼맨을 도와주는 ‘데일리’ 역을 맡았다. <우뢰매> 시리즈는 총 9편이 제작되었으며, 조연으로는 김수미, 남궁원, 김학래, 엄용수 등 다수의 영화배우와 코미디언들이 출연했다. 이 밖에도 시리즈마다 바뀌는 우뢰매 로보트와 에스퍼맨이 항상 지니고 다니는 ‘에스퍼 건’ 등이 아이들의 필수 장난감이 되면서 <우뢰매>는 당시 아이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우뢰매>의 흥행을 발판 삼아 김청기 감독은 1988년 <뉴 머신 우뢰매> 개봉에 맞춰 애니메이션 전문 잡지 월간 <우뢰매> 를 만들었고, 1991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걸은 김청기필름 대표가 되었다.

<우뢰매>와 함께 많은 이들의 기억속에 화자가 되는 영화는 <수퍼 홍길동> 시리즈다. 허균의 원작 소설 ‘홍길동’을 새롭게 재구성한 이 영화는 로봇이 나오지는 않지만 무예와 도술에 능한 홍길동이란 영웅을 등장시켰다. 그렇다고 영화 속 홍길동이 잘 생기고 멋있지는 않았다. 다소 바보 같으면서도 인정이 많은 캐릭터였다. <우뢰매>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도 심형래가 홍길동으로 출연하며 친근하면서도 코믹한 캐릭터를 보여줬다. 특히 어려움이 닥치면 도술을 부려 현시대로 도망치거나 무기를 구해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장면은 재미있는 설정이었다. 이후 <슈퍼 홍길동> 시리즈는 김정식, 이창훈, 이봉원으로 교체되었고, 임하룡, 장두석, 조금산, 이경애 등 추억의 코미디언들이 대거 참여했다. 또한 쌍라이트 조춘, 강리나, 그리고 어린 시절 양동근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김청기 감독이 심형래를 필두로 주로 코미디언과 함께 작업한 건 아니다. 1988년 제작과 연출을 맡은 <바이오맨>은 박중훈을 주인공으로 한 한국판 히어로 영화다. <바이오맨>은 괴한에 의해 죽음을 당하지만, 사이보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 도일(박중훈)이 악당을 물리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부족한 예산에도 많은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감행한 탓인지 매끄럽지 않은 이야기 구성과 히어로 영화에 적합하지 않은 엉성한 영상으로 큰 사랑을 받지 못했다.
 <우뢰매>의 에스퍼맨과 데일리 그리고 <슈퍼 홍길동>의 김정식
<우뢰매>의 에스퍼맨과 데일리 그리고 <슈퍼 홍길동>의 김정식
다시 꿈을 꾸는 김청기

<로보트태권V>를 만들며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을 이끈 김청기 감독이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많았다. <로보트태권V>는 자연스럽게 <마징가 Z>와 비교되면서 인기를 끌었지만 그 만큼 닮은 꼴이 많았다. 김청기 감독은 모 인터뷰에서 로봇이라는 설정 자체는 유사성이 있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을 베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마징가 Z>가 권선징악의 스토리에 폭력을 미화했지만, <로보트태권V>는 태권도라는 고유무술과 함께 캐릭터의 다양성이 큰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표절 시비는 계속됐다. <로보트태권V>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기동전사 건담>의 로봇 캐릭터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또다시 제기되었고, <스페이스 간담 V>는 아예 일본 완구를 베끼기까지 했다. 또한 ‘우뢰매’에 등장하는 로봇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문제의 근원은 제작비였다. <스페이스 간담 V>는 한 완구업체에서 똑같이 만들면 제작비의 1/3을 준다는 제안으로 승낙한 것이다.

김청기 감독이 표절시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명실상부 한국 애니메이션을 이끈 장본인임에는 틀림없다. 그는 처음으로 국내에서 로봇 애니메이션을 시작했고,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했던 로봇 캐릭터를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변화시켰다. 특히 <우뢰매>를 통해서는 애니메이션과 실사를 합성하는 실험적인 도전도 했다. 1997년 <의적 임꺽정> 이후로 연출작이 없었던 김청기 감독은 현재 지난 2002년부터 준비해온 <광개토대왕>을 진행중이고, 동시에 3D 입체 애니메이션을 기획하고 있다. 또한 <로보트태권V>의 디지털 복원판이 8월 일본에 정식 개봉할 예정이다. 69살의 노장 감독의 꿈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2010년 6월 10일 목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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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oshu
감사합니다^ㅁ^   
2010-07-24 15:32
aarprp
글쿤요   
2010-07-09 14:34
bounce0830
우뢰매...어릴때 잼있게 본건데..ㅋ   
2010-06-24 20:14
shshs823
기대되네요ㅠㅠㅠ부디 잘되서 한국애니메이션계가 커지길ㅠㅠㅠㅠㅠ   
2010-06-23 14:01
godzand
허걱.... 안 본 줄 알았더니 다 본.....최고의 영화감독이란 말을 안 쓸 수가 없네요 ㅎㅎㅎ   
2010-06-23 09:44
darkwast
70~80년대 만화 ㅋ. 볼만했어요. 특히 태권 V   
2010-06-17 18:44
gamchi
추억속 명작..?   
2010-06-17 11:18
killerjin77
정말 재미있게봤던 만화들..^^   
2010-06-17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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