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2 리로디드>는 걸걸한 신중현 노래 같다. ‘한번 보고 두 번 봐도 자꾸만 보고 싶네’. 다시 보고 싶은 이유란 단순하다. 쟤네들이 왜 저러는지 도통 못 알아 먹어서이다. 그래서 또 내 머리 탓을 했다. 다행인 건 이미 <매트릭스 2 리로디드>를 본 이들 중 다음날 도저히 참지 못해 다시 극장을 찾은 이들도 꽤 된단다. 어여쁜 나의 동지들이다. <반지의 제왕>마냥 원작을 읽고 별 상관없는 <애니매트릭스>를 봐야 하나. 간교한 워쇼스키 형제여. 딴 건 몰라도 궁금증 유발에 성공했으니 디비디도 잘 팔릴 것이며 <매트릭스 3레볼루션>도 성공 보장이다. 일단 범인이 누굴까 그 호기심 하나에 <살인의 추억>이 대박난 것 아닌가.

모르는 영화장면은 나중에 봐도 잘 모른다. 내가 덜 자라서이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도킹장면도 여러 번 보고 십년이 지나서야 조금 알았다. 볼 때마다 너무 졸린 영화다. 뭔 영화가 대사도 없고 음악도 ‘잘 자라’고 속닥여주는 왈츠 아니던가. 그 영화를 볼 때는 한 참 떠들고 다닐 때라 대사가 없는 게 지루했고, 중학교 음악수업에나 틀어주는 왈츠를 듣고 있노라니 자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억에 일곱 번 시도까지는 늘 잤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영화 속이나 현실이나 재잘대는 것이 어느 상황에선 참 쓸데없다는 걸 알았다. 그 때 그 영화가 눈에 들어왔다. 티비 채널 중에 나사방송이 있다. 인공위성이 자기 혼자 돌거나 정거장에 가서 도킹하는 장면이나 지구를 보여준다. 우주에서 보여지는 지구는 참 아름답고 작아보인다. 까마득한 우주는 광활하고 우리가 사는 작고 푸른 지구는 아무리 난 척해도 꼭 하나의 점만도 못하다. 보고 있으면 그 안에서 싸워대며 어떻게 한번 살아보겠다는 우리가 너무 안되어 보인다. 혹여 나를 우주공간 속으로 보내준다면 입을 꾹 다물고 왈츠를 랄랄라 듣지 재잘대겠는가. 도킹장면은 굳이 버스타고 천체 영화관에 안가도 무한하고 약한 우리의 본색을 단번에 보여준다.

물론 어렵다고 다 명작인 것은 아니다. 하나도 예술이지 않으면서 감독 혼자만 알게 꼬아놓은 영화가 얼마나 많은가. 그렇지만 <매트릭스 2리로디드>는 애초부터 돈 벌자고 만든 상업영화다. <블레이드 러너>와는 출신성분이 다르다. 해답지야 널렸지만 해답을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아무리 감독이 이거는 이거야라고 해도 내 정답은 아니다. 해답을 알아가는 재미야말로 영화를 좋아하게 되는 길 중 직코스가 아닐까. 영화를 이해하지 못해서 딴 거에만 관심이 갔다. 이 형제 감독들이 궁금해 진 것이다.

▶ 형제는 영리하다
컬트 팬마냥 워쇼스키 형제는 열광하는 판타지 팬보이(fan-boy)들을 몰고 다닌다. 워쇼스키 형제에게는 그들만의 고집과 상술이 있다.

▶ 인터뷰 거부
내 말은 필요 없다. 영화를 봐라. <매트릭스> 이후 이번 영화를 찍을 때에도 계약서에 인터뷰 거절 사항을 넣었다. 원하지 않는단다. 할 말이 없다가 아니라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모피어스역의 로렌스 피쉬번은 ‘형제는 영리하다. 그들이 무엇을 말하려는 지는 인터뷰가 아닌 관객이 직접 알기를 바란다.’고 했다. 요즘은 대개 영화가 나오기 전에 줄거리가 나오고, 배우들이 결정되고 에피소드가 공개되고 극장에 가기 전 이미 머리로 영화를 다 보고 간다. 재미없다. 감독은 스크린으로 말을 해야 된다. 말 잘하는 감독은 배우를 시켜줘야 하지 않나. 그럼에도 우리처럼 홍보에 따라 흥망성쇠가 정해지는 나라는 열심히 홍보 할 수밖에 없다. 불행한 일이다. 그러니 감독들이 수다 떨지 않고 스크린 만으로도 충분히 말 할 수 있도록 독립영화 상영관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예술영화 상영관이 생긴다고 하는데 독립영화가 전부 예술영화도 아니고 작가주의영화가 예술영화는 아니다. 안 팔린다고 어렵다고 예술은 아니다.

<매트릭스>는 전편이 워낙 성공했으므로 인터뷰까지 하며 홍보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오히려 인터뷰 거부가 그들의 인기와 영화 관람객 수를 늘렸다. 그리고 그들에게 고마워한다. 머리가 아닌 눈으로 영화를 보게 해줘서.

▶ 등급을 올린다.
<매트릭스 2 리로디드>는 관람등급 R등급이다. 후속작 <매트릭스 3 레볼루션>도 R 등급일 거란다. 부모의 지도 아래 보는 PG-13 (Parent Guided-13세)보다 까다로워서 17세 미만 관람 불가인 R(Restricted)등급이다. 우리나라는 15세 이상 관람가다. 고무줄 관람 등급이다. 그 고무줄은 미성년자인 청소년을 보호하기보단 돈을 더 버냐로 늘어났다가 줄어든다. 등급을 올리면 미국은 관람객 수가 배로 늘어난다. 17세 미만 관람 불가이나 예외가 있어서 엄마나 아부지랑 동반하면 입장 가능이다.

워너 브라더스사의 조사에서 본 영화의 관람객 연령층은 20세 미만에서 25세 이상의 관람객이었다. 결국 가족과 함께 떼거지로 오게 되는데 미국 내 R등급은 온 가족 가족영화인 셈이다. 등급을 올리면서 <매트릭스 2 리로디드>는 한 주 집계상 PG-13인 <스파이더 맨>을 육박했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관람객을 끌어들여 돈을 벌려면 등급을 낮춘다. 미국보다 표 사는 게 쉽고 부모가 동반해주는 경우도 적으니 아예 나이를 낮춘다. 그러면 돈 번다. 그래서 <매트릭스 2 리로디드>는 한국에서15세 이상으로 낙찰 봤다. 15세는 알건 다 아는 나이라 해도 받아들이기엔 벅찬 나이다. 머리로 아는 거와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 때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현실 속에서 견디지 못하고 튕겨져 날아간다. 이상 속만을 날아다니는 비행 청소년과 비행 어른들이 탄생되는 것이다. 그나마 어른들은 선택할 수나 있지. 아이들은 선택의 결정권도 없이 어른들의 상술 때문에 넘어간다.

불쌍한 애들이다. 어릴 때 동네에 악극단이 오고 천막이 쳐지면 구멍으로 들어가려 해도 구멍도 없고 잡히면 하는 말이 ‘얼라는 가라.’였다. 다 커서 스무 살 넘어 보았는데 다소 충격이었다. 악극단도 종류가 있는지 질펀한 분위기가 소화하기 힘들었다. 고딩때 동네 아줌마를 꼬셔서 본 ‘양철북’도 그랬다. 좋은 내용은 다 까먹고 왠 야한 장면만 오롯이 기억나던지. 그 장면들은 포르노 장면보다 한참이나 덜 했지만 내게는 굉장히 야했다. 최소한의 도덕도 상술아래 묻히는 세상이다. 가라고 등 떠밀기보단 아예 보러오라고 꼬신다. 워쇼스키 형제는 이 영화를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을 위한 영화라고 못 박았다. 그것도 어른들 중 엽기 어른을 위한 영화라고. 너무 얼라는 보지 마라. 눈 버린다.

▶ 경계가 없는 막강한 형제파워
워쇼스키 형제의 장점은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정해진 기존의 영화적인 틀이나 고함소리를 무시한다. 이 들의 첫 연출작은 레즈비언 스릴러인 <바운드(1996)>다. 범죄 스릴러라 해도 두 명의 팜므 파탈이 나오고 남자보다 더 강하고 쿨한 레즈비언이 소재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만든 피터 잭슨도 과거에 고무 바가지 같은 엽기적인 영화 <고무인간의 최후>를 만들며 내공을 쌓았다. <바운드>도 <매트릭스>가 탄생 전 형제들의 과거가 보이는 유일한 영화다. <바운드> 후에 바로 <매트릭스> 시리즈를 찍어서 더 찾아볼 영화도 없다. 그러나 전작이 보여주듯 워쇼스키 형제는 그 틀을 바로 뛰어 넘을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들의 파워다. 그리고 그 파워는 막강한 팀 파워에서 나온다. 각본, 연출을 다 하는 듀엣이 아니던가. 어린시절 시카고에서 태어나 삼 십년 넘게 서로 밤마다 동화책이야기를 하며 자랐다나. 이들처럼 형제로서 이름을 날린 이들이 꽤 된다. 클래식 코미디의 거장인 막스 형제들(Marx Brothers), 초현실적인 애니메이션의 귀재들인 퀘이 형제들(Quay Brothers, 퀘이형제 홈페이지 참조) 재밌다. 작품보기.

컬트를 부활시킨 후 틀을 부셔대고 넘나드는 코엔 형제들(Coen Brothers)는 알려질 만큼 알려져서 넘어가고, 뉴욕 인디 영화라고 돈 버는 할리우드 영화를 반대하는 무리들 중 흑인감독의 맥을 잇는 휴고 형제들(Hughes Brothers)등이 있다. 휴고형제는 선댄스 영화제에서 히트친 미국매춘문제를 다룬 <미국포주Amenrican Pimp(1999)>에서 최근 <프롬헬>까지 종횡무진하고 있다. 이처럼 영화사에서 형제들의 파워는 언제나 강하다. 혼자보다 둘이란 점이 강점이지만 성공한 형제들은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직접 쓰고 만들었고, 자신들만의 색을 잃지 않는다. 아쉽게도 자매들의 파워는 약하지만 쌍둥이래도 많이 낳고 볼일이다. 굳세거라 형제 자매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