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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안내! 보석을 구슬처럼 굴린다
데이브레이커스 | 2010년 3월 15일 월요일 | 민용준 이메일

한낮의 세상이 텅비었다. 인적이 없는 거리에는 죽은 듯이 고요한 열기만 가득하다. 해가 저문 뒤, 도시의 밤은 분주해진다. 세상이 어두워진 뒤에서야 사람들은 거리를 활보한다. 하지만 그 거리를 채운 사람들은 우리가 아는 그 사람들이 아니다. 2019년, 뱀파이어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류 대부분은 어둠 아래 사는데 익숙해진지 오래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인간들은 그들의 피를 원하는 뱀파이어들에게 사냥당한 뒤, 혈액은행에서 사육당하는 운명에 놓이거나 이를 피해 달아나야 한다.

인간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뱀파이어들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영원의 삶을 누린다. 완벽할 것 같은 그들의 현실을 위협하는 건 먹고 사는 문제다. 수적인 우위로 세상을 장악한 뱀파이어들은 피를 공급할 인간이 필요하지만 세상에서 인간의 수는 점차 줄어가고 있다. 인간이 멸종할 때, 뱀파이어들의 멸종도 찾아온다. 대체 혈액 개발이 실패를 거듭하는 사이 혈액공급에 차질이 생기고 점차 피를 얻지 못한 뱀파이어들이 늘어간다. 그리고 오랫동안 혈액을 공급받지 못한 뱀파이어들은 ‘서브사이더’라는 돌연변이가 되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다.

<데이브레이커스>가 묘사하는 세계관은 뱀파이어라는 소재 안에서 참신하지만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뱀파이어로 변한 인간들이 수적우위로서 기존의 인간사회를 장악해버린다는 설정은 기존의 좀비물에서 얻은 모티브를 변주한 결과처럼 보인다. 예를 들자면 <나는 전설이다>처럼, 인류의 다수가 좀비가 되어버린 세계와 유사한 것이다. 다만 <데이브레이커스>는 다수가 된 변종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의 사투를 벌이는 소수 인류의 입장보다도 그 다수가 돼버린 변종이 지배하는 사회를 보다 면밀히 다룬다는 점에서 특이점이 발견된다.

뱀파이어라는 매끈한 이미지는 퇴화적인 뉘앙스를 발생시키는 좀비들과 달리, 보다 진화적 변이를 이룬 인류의 다른 개체처럼 인식된다. 좀비물이 육식동물의 사회에 갇힌 초식동물의 공포를 드러낸다면 <데이브레이커스>는 변화한 우성 개체가 답보적인 열성 개체를 지배하게 된, 자연스러운 진화론적 세계관에 가깝다. 지능적인 뱀파이어들은 인류가 쌓아올린 문명의 이기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수적인 우위로 세상을 잠식해버린다. 마치 기계에 사육당하는 <매트릭스>의 디스토피아처럼, 뱀파이어들의 에너지 원천이 되어 집단으로 사육당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데이브레이커스> 역시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영화다.

하지만 <데이브레이커스>는 살아남은 인간들의 생존보다도 주류가 된 뱀파이어들의 생존에 보다 많은 눈길을 준다. 그 시선의 방향은 참신한 변주를 보다 참신한 태도로 인식시킨다. 그 착상만으로도 점수를 따고 들어가는 셈이랄까. 그 세계관의 설정만으로도 <데이브레이커스>는 흥미로운 영화다. 그 참신한 설정은 <데이브레이커스>를 보기 좋게 두르는 포장지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 매력적인 포장지에 감춰진 영화의 알맹이들은 유난히 조악하다. <데이브레이커스>가 묘사하는 세계의 풍경은 훌륭한 아이디어를 착상한 결과다. 이는 영화에 대한 흥미를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좋은 입구 역할을 한다. 하지만 <데이브레이커스>는 좋은 입구에 비해 출구를 찾기 어려운 영화다. 입구에 들어선 뒤, 매끈한 복도와 방을 설계하지 못하고, 미로를 헤매듯 서사를 다듬지 못한 채 출구를 방치해버린다.

다만 그 서사적 이음새들의 무책임함과 달리 <데이브레이커스>가 묘사하는 결말부의 살풍경은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생존을 위해 서로를 물고 물던 뱀파이어들이 연쇄적으로 살육과 변종을 거듭하는 광경이란 그 잔인한 이미지와 무관하게 흥미로운 광경이다. 아이러니하지만 <데이브레이커스>는 자본주의적인 계급사회에 대한 우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피를 공급받지 못하는 뱀파이어들은 대부분 사회의 하층민들이며 그들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돌연변이가 되어 암적인 존재로 취급당한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그 사회의 붕괴를 예감하게 만드는 현상적 지표가 된다는 점에서도 의미심장하다. 본질적으로 인간의 존엄성, 더 나아가서는 어느 개체가 이룬 사회의 몰락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비범한 감상적 욕구를 부추긴다.

뱀파이어가 된 인간들의 사회는 악랄하지만 근사한 기운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그 세계의 몰락을 암시하면서 정상 인류의 생존을 대립각으로 세운 채 갈등과 긴장을 고조시킨다. 문제는 그 플롯의 인과관계다. <데이브레이커스>는 앞선 상황을 뒤틀기 위한 전환점마다 무리한 코너링을 시도한다. 애초에 그 세계가 뱀파이어 바이러스라는 밑도 끝도 없는 가상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했듯이 그 세계의 갈무리 역시 우연이 빚어낸 운명적 결과로서 봉합해도 된다고 스스로 믿는 것만 같다. 딜레마에 놓인 세계관과 운명에 대한 갈등에 빠진 인물의 모습은 지적인 기대감을 잔뜩 부풀린다. 하지만 <데이브레이커스>는 자신이 설계한 내러티브의 미로를 빠져나가는 것보단 그 미로를 스스로 폭파시키듯 망가뜨린다.

한편, <데이브레이커스>는 상당히 잔인한 B급 감성의 이미지가 동원되는 영화다. 신체가 폭발하듯 터져나가거나, 찢겨지거나, 피가 분수처럼 솟아나는, 신체훼손의 이미지가 적나라하게 전시된다. 이를 참을 수 없는 취향의 관객에게 불편한 광경이 되겠지만 견딜 수 있는 관객에게는 일정한 재미를 줄만한 수준은 된다. 다만 지나치게 날카로운 음향효과나 돌발적인 등장으로 관객을 놀래키는 영화의 연출 방식은 그리 영리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이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이상의 해결책을 얻지 못한 결과물처럼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데이브레이커스>는 발상의 가능성에 비해 착상이 떨어지는 영화다. 좀 더 영민한 창작자를 만났다면 보다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을 떨치기가 어렵다. 보석을 구슬처럼 굴리는 것과 같다고 할까.

2010년 3월 15일 월요일 | 글_민용준 beyond 기자 (무비스트)    




-뱀파이어가 된 인간들의 사회. 그들이 태양을 피하는 방법. 꽤나 흥미로운 발상.
-여전히 당신의 로망을 부추기는 에단 호크.
-지적인 고민과 B급 이미지가 마구 범벅된 종합선물세트랄까.
-식재료는 신선한데 조리법이 엉터리구나.
-피가 튀고, 살이 찢기는 잔혹한 풍경. 내겐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에단 호크, 늙긴 늙었구나.
19 )
loop1434
과연   
2010-03-15 20:12
bjmaximus
민용준 기자의 오랜만의 리뷰..   
2010-03-15 16:21
kisemo
기대   
2010-03-1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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