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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전달하는 몽환적인 사색
미인 | 2000년 8월 9일 수요일 | 프리랜서기자 오상환 이메일

재주가 많은 사람을 가리켜 팔방미인이라고 한다. [미인]의 감독 여균동은 '팔방미인'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재능을 펼쳐보이며, 충무로에서 독자적으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세상밖으로]에서 보여준 독설과 유머를 바탕으로 [맨?(포르노맨)]에서는 더욱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회의 폐부를 헤집고, 포르노를 통해 몽환의 세계를 어루만지더니 [죽이는 이야기]를 통해 '한국에서 영화감독으로 산다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작가로 불릴 수 있는 토대를 완성했다. 여균동 감독의 행보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의 은행원 역을 맡아 소심한 사내의 일상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박봉곤 가출사건]과 [주노명 베이커리]를 통해 영화배우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또한 TV 영화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 MC로서의 능력 또한 인정받았다.

이처럼 다양한 방면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여균동 감독은 99년 [몸]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출간하면서 또 하나의 재능을 선보였다. 그동안 줄곧 자신이 연출한 작품의 시나리오까지 직접 집필했던 전력은 있지만, 시나리오와는 다른 색깔을 펼쳐보여야 하는 소설에 도전해 보다 개인적이고, 세밀한 감성으로 '몸'과 '사랑'을 이야기했다. 몸의 생기가 사라져버린 것에 크게 자극을 받고, 모든 것을 멈추고 자신의 그림자를 찾기 위해 [몸]을 집필하게 되었다는 여균동 감독은 [몸]을 통해 "몸이 원하는 가장 가깝고 분명한 것으로부터 사랑을 찾고 싶었다"며 [몸]의 집필 의도를 밝혔다. 여균동 감독의 이와 같은 사색의 결과가 투영되어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미인]이다. [미인]은 소설 [몸]을 이루고 있던 뼈대를 주축으로 보다 몸이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랑에 집착한다. 따라서 [미인]에는 관능적인 육체와 열정이 넘실댄다. 이러한 이유로 [미인]은 제작 당시부터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수많은 논란을 뒤로 하고 관객에게 다가온 [미인]은 이전의 여균동 감독의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탐미적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몸과 몸이 만나는 순간을 섬세한 손길로 어루만지듯 부드럽게 파고든다. 섹스라는 매개를 통해 감정의 파장을 엮어내는 솜씨는 백색으로 수놓은 화면의 아름다움에 투영되어 몸의 아름다움을 응시하게 만든다. 안무가 안은미씨의 안무에 의해 지도된 두 주인공의 섹스 장면은 몸의 곡선을 타고 부드럽게 춤을 추는 카메라와 따뜻한 감성을 부여하는 노영심의 음악에 의해 '순결한' 살 냄새를 전달한다. 육체의 만남을 끈끈한 살 냄새로 포장하지 않으려는 여균동 감독의 의도는 쾌락을 걷어내고, 정면으로 몸이 엮어내는 애정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

여균동 감독은 몸을 통해 잃어버린 기억과 감정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 듯 보인다. 두 주인공은 마치 현실의 소소한 일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공간에서 사랑을 말하고, 울부짖으며 기억을 더듬고, 모든 것으로부터 달아나려는 듯 육체에 집착한다. 영화 전반을 수놓는 백색의 화면과 세트는 현실로부터 두 주인공을 소외시키며, 몽환적 사색으로 인도한다. 여균동 감독은 일반적인 영화에서 비치는 사랑의 형태가 지독히 가식적인 것이라 말하려는 듯, 역설적으로 매우 낯선 시공간에서 서로의 육체를 탐하는 두 주인공을 통해 '사랑은 있다'는 것을 차가운 어조로 외친다. 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 두 주인공의 침대 위에서 현실로 떠오르는 감정의 충돌도 그저 매우 공허한 외침처럼 느껴진다. 끈끈한 애정의 언저리에 남아있는 감정의 찌꺼기마저 모두 거짓에 불과하다고 말하려는 것일까? 여균동 감독이 말하는 사랑은 지독히 차갑고, 메마른 형태로 남아있는 껍질처럼 비어있는 허상으로서 다가온다. [베티 블루]에서처럼 집착과 사랑의 파국이 낳는 끈끈한 감정의 파장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여균동 감독의 생각 속에서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은 이처럼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공허하게 사랑을 외친다. 이와 같은 리얼리티의 부재는 감정이입을 가로막으며, 감독의 사색 속에서 머문 사랑의 반쪽짜리 모습만을 보게 한다.

기존의 영화와는 차별되는 새로운 접근으로 '몸으로 기억되는 사랑'을 말하려는 의도와는 달리 [미인]에는 '몸'만이 남아있다. 여균동의 개인적인 사색 속에서 머무는 두 주인공들이 말하는 집착의 고통과 사랑의 아픔, 서로 가까이 있으면서도 소유할 수 없는 두려움 등은 그리 생생한 어조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처럼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영화에서 주인공의 사색 속에서 머무는 사랑과 심연의 판타지가 신비한 매력을 전달했던 것에 비해 [미인]이 건조하고 지루하게 다가오는 것은 판타지적 세계가 현실의 감정들을 제대로 접수하지 못한 탓이다.

이미 [맨?(포르노맨)]을 통해 현실에 대한 조롱과 일탈의 쾌감을 판타지적 세계와 접목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뼈저리게 절감했던 여균동 감독은 [미인]을 통해 조금 더 우회적인 방법으로 영화 만들기에 대한 길을 선택했어야 했다. 비록 [미인]에는 몸을 통해 사랑을 말하려는 고민의 흔적들이 역력하지만, 감정이 증발된 건조함은 분명 당혹스러운 것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건조함은 두 주인공의 어설픈 연기에 힘입어 더욱 메마른 정서를 만들어낸다. [미인]의 홈페이지 등을 통해서 이미 숱한 화제를 뿌린 여배우 이지현의 연기는 쉽게 공감을 이끌어내기 힘든 캐릭터를 더욱 낯설게 만든다. 어색한 발성과 건조한 표정은 도무지 가슴으로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든다. 더불어 시종일관 거의 동일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남자배우 오지호의 연기 또한 매우 복합적인 감정의 소유자를 연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인상을 남긴다.

여백의 공간으로 채워진 일기처럼 사색의 충돌로 채워진 [미인]은 분명 관객에게는 당혹스러운 영화로 비춰질 것이다. 이와 같은 감정의 편린들을 담아내기에 [미인]이 그려내는 감정의 공간은 너무 작다. 또한 [미인]은 기존의 영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말하려 한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미인]에는 수많은 영화들의 잔재가 남아있다. [베티 블루],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샤만카] 등 성을 통해 사회와 시대를 접수하는 영화들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이야기는 분명 의문의 소지를 남긴다. 여균동 감독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이와 같은 상투적인 진행은 낯선 여백의 이야기를 진부함으로 메워나간다.

무엇보다 [미인]은 결코 야하지 않다는 점에서 관객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물론 여균동의 소설 [몸]이나 여균동 감독이 [미인]의 제작 의도에서 밝혔듯, [미인]은 결코 '몸'의 엉킴만이 남아있는 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미인]이 공개되기 전부터 심의문제와 홈페이지 등을 통해 불붙은 선정성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다는 점에서 관객들이 어떤 평가를 내릴지 주목할만하다.

2 )
ejin4rang
몽환적 사색   
2008-11-12 09:40
rudesunny
기대됩니다.   
2008-01-14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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