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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희생자들에게 바치는 진혼곡...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 2
ldk209 2013-03-15 오후 1:03:59 33042   [8]

 

4.3 희생자들에게 바치는 진혼곡...★★★★☆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에 빛나는(!)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 2>(이하 <지슬)>는 4.3 항쟁을 다룬 흑백 극영화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내 예상과는 완전히 다르게 시작한다. 난 대게 이런 영화들(!)이 그러하듯 4.3항쟁의 발생원인, 경과 등을 체크하듯 다루어나가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간단한 자막에 이어 시작된 영화는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 없이, 사람 한 명, 한 명에게 카메라를 밀착시킨다.

 

이 대목에서 내가 느꼈던 건, 우리는 어떤 특정한 사건을 얘기할 때, 대게 사람을 대상화시켜 사건 속에 녹아든 물체, 단순한 숫자로 인식한다는 점이었다. 이를테면 ‘○○전쟁의 사망자는 50명’ ‘별로 많이 안 죽었네’. 그런데 그 50명이, 아니 단 한 명이라도 그 사람이 평소에 숨을 쉬고, 농담을 하며, 사소한 걱정을 하던 우리가 알고 있는 누군가라고 한다면 숫자의 의미는 달라지고, 슬픔의 깊이는 커질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오멸 감독이 사건의 전말보다 인물에 천착하는 것은 어떤 사건을 이야기할 때 그 사건의 전말도 중요하지만, 진정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구체적인 사람인 것이고, 그럴 때에야 비로소 희생자의 아픔에 조금이라도 동감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인물이 단지 주민만이 아니라 그 반대편의 군인들까지 의미한다는 점이다. 반정신병자인 김상사나 어머니의 죽음으로 빨갱이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가지고 있는 고참, 왜 자신이 사람을 죽여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는 일병,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민간인이지만 군인의 복장을 입고 묵묵히 목격자로, 그리고 결국 화해자로 나서는 정길까지, 영화 속엔 인물들 한 명 한 명의 캐릭터가 살아 숨 쉰다.

 

아무튼 우선 <지슬>은 너무 재밌다.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재밌다. 영화는 흑백의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무거운 분위기가 흐른다고 느껴진다. 왜 느껴진다고 말했냐면, 우리는 마을 주민들, 자신들이 왜 폭도로 몰려 숨어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도 잘 모르고, 며칠만 버티면 다시 마을에 돌아가 전처럼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도망 와서조차 돼지 밥 줄 걱정이 먼저인 그런 사람들이 토끼몰이식 학살의 피해자가 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위기의 상황에서도 주민들이 나누는 대화는 너무도 평범한 일상사이며, 유머로 그득하다. 객석에선 때때로 영화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어쩌면 그런 민중의 낙관이 장기적으로 역사에 희망을 가지게 되는 이유이리라.

 

다음으로 영화는 너무 슬프다. 그리고 너무 아름답다. 슬프기 때문에 더 아름답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해맑고 순박한 주민들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객석엔 안타까움의 진한 느낌이 전해져온다. ‘제발 제발’ 그리고 끝내 울컥하고 나도 모르게 또르르 눈물이 흘러내린다. 비극을 전하는 영상은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아름답다. 한라산과 오름의 능선들은 마치 수채화처럼 펼쳐져 있고, 안개 낀 자연의 비경은 눈이 시릴 정도다. 영화 중반 군인의 학살을 담아낸 롱테이크 장면은 다른 의미의 아름다움, 모골이 송연할 정도의 영화 영상적 아름다움을 전달한다.

 

끝내 <지슬>은 너무 아련하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을 바로 연결지어보면, 제사(위령제/진혼제)의 처음과 마지막을 의미한다. 제사상이 차려지고 술잔이 오르고 몇 차례 절을 한 다음 축문을 읽고 그리고 끝내 그 축문에 불이 붙어 재가 하늘에 날릴 때, 비로소 이 영화 <지슬>은 4.3의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가장 뜨거운, 그리고 진정한 진혼곡이었음이 느껴진다.

 

※ 이제는 많이 알려졌지만, ‘지슬’은 제주도 방언으로 감자를 의미한다. 앞으로 한 동안 찐감자를 보면 울컥할 것 같다.

 

※ 군인 정길을 보면서, 목소리부터 여성스럽다는 생각을 했는데, 감독 인터뷰를 보니 정길 캐릭터는 김 상사의 일상을 도와주는 군복 입은 여자로 설정되어 있었다.


(총 1명 참여)
greenboo153
이데오로기의 최후의 현장 4.3사건은 좌우익의 첨예하게 도민들의 생존과는 관련없이 역사의 현장으로 내몰린 사건으로 제주출신 현기영 작가가 "순이 삼촌"정도가 겨우 증언했던 대하드라마적 요소를 지닌 대사건이 하나 입니다. 본인도 그곳에서 자라면서 공비라는 이름과 봉화불이라는 희대의 낱말을 듣고 자랐기 때문에 본 영화를 관람후 후기를 쓸 예정입니다. 본란의 시선한 시선과 역사를 객관적 평가한 글을 뜻깊게 잘 읽었습니다.   
2013-03-2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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