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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지만 울림은 크고 깊다.... 토일렛
ldk209 2011-01-20 오전 11:54:59 441   [0]
잔잔하지만 울림은 크고 깊다.... ★★★☆

 

영화는 레이(알렉스 하우스)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오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마지막 소원을 여쭤봤더니 '센세이' 냄새를 맡고 싶다고 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레이... 난 너만 믿는다.

어머니가 내게 남긴 건, 공황장애로 4년째 집에만 틀어박힌 형, 자기밖에 모르는 콧대 높은 여동생, 그리 크지 않은 집, '센세이'라는 고양이, 그리고... 그리고...’

카메라는 크고 높은 나무를 지나 하늘에 쓰이는 영화의 제목을 비춘다.

 

매일 똑같은 옷을 입으며 단조로운 삶을 영위해 가는 연구실 직원 레이의 유일한 취미는 로봇 장난감을 조립하는 것이다. 어느 날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혼자 살던 그는 형 모리(데이빗 렌달), 여동생 리사(타티아나 마스라니) 그리고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할머니(모타이 마사코)와 함께 원하지 않았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할머니는 화장실에서 나올 때마다 의문의 한숨을 내쉬고, 갑작스러운 동거에 힘들어하던 레이는 할머니가 정말 자신의 친할머니인지 의심을 품게 된다.

 

<토일렛>은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네 번째 작품인데, 안타깝게도 바로 전작인 <안경>을 아직 관람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토일렛>은 <요시노 이발관> <카모메 식당>이 자연스럽게 떠올려질 정도로 오기가미 나오코의 영화적 특징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건 무엇보다도 원했든 원치 않았든 한 공동체에 속하게 된, 또는 우연히 함께 지내게 된 이들의 인연이 만들어가는 성장과 변화의 과정들이 세밀하게 담겨져 있다는 것이고, 그 매개체가 되는 것들은 우리의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것들이라는 사실이다. <요시노 이발관>에서 다른 마을에서 이사 온 아이는 모든 아이들이 동일한 머리를 하는 마을 풍습을 변화시키지만, 마치 획일화라든가 독재에 대한 메타포로 여겨졌던 영화는 촌스런 머리가 후일 프랑스에서 유행하는 머리가 됐다는 엔딩을 실음으로써 놀라운 심화의 경지를 보여주었으며, 핀란드의 일본식 식당에 모여든 사람들의 인연을 다룬 <카모메 식당> 역시 영화 속 인물들의 변화가 고스란히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따뜻한 경험을 하게 한다.

 

<토일렛> 역시 마찬가지다. 레이는 자신의 삶에 갑자기 침투해버린 세 명의 사람들과 고양이 한 마리의 존재에 대해 불만이 쌓여간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돌보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존재들이고, 시시때때로 울려 퍼지는 이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벨 소리에 노이로제에 걸릴 것만 같다. 그러나 진실은 너무나도 가혹하고 무서워서, 사실 레이가 이들을 돌본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자신이 돌봄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정확하게는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관계) 절망한 레이는 유일한 동료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지만, 그 동료는 시니컬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그게 그렇게 중요해? 그렇다고 해도 지금까지 잘 살아왔잖아” 어쩌면 이러한 느낌이 바로 감독이 바라보는 인생 또는 삶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여기에는 단지 혈육으로 만들어진 가족의 한계를 넘어서는 확장된 가족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엿보인다.

 

<토일렛>, 화장실. 화장실이라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은 일단 자연의 순환 매개라는 사실이다. 사람의 몸에서 빠져나간 똥과 오줌은 그대로 밭에 뿌려져 거름이 되고, 거름으로 인해 잘 자란 온갖 음식물은 다시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와 영양분이 되어 준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도시의 문화를 받아들인 농촌에서 차츰 재래식 화장실이 사라진다는 건, 그 대체제로서의 화학식 비료가 사용됨을 의미하고 이는 자연의 순환이 깨져나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이러한 화장실의 의미와 함께, 영화가 누군가(엄마)의 죽음에서 시작해 누군가(할머니)의 죽음으로 막을 내리며, 특히 할머니의 유골 일부가 변기를 통해 어딘가로 흘러 내려가는 엔딩 장면을 고려해볼 때, <토일렛>에서 화장실은 일종의 삶과 죽음을 연결해주는 매개로서 기능한다고 보인다. 이럴 때 마치 할머니는 엄마가 자신의 부재를 대신해 남매들을 돌보라고 보내준 존재로도 느껴진다.

 

아무 말도 표정도 없는 할머니의 존재가 서서히 남매들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됨은 처음부터 능히 예상할만하다. 할머니가 남매들을 감동시키고 변화를 주는 데 활용되는 물건들 - 모리에게 용기를 주는 것은 오래된 재봉틀, 레이의 지친 마음을 쓰다듬어주는 것은 만두, 리사에게 꿈을 주는 것은 에어기타 - 역시 소소하고 흔한 것들이며, 결정적으로 터진 할머니의 한마디(모리! 쿨!)가 주는 울림은 생각보다 크고 깊다.

 

※ 어쩌면 <토일렛>이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라는 가장 큰 인장은 할머니로 출연한 모타이 마사코의 존재감일지도 모른다. 모타이 마사코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네 편에 모두 출연 중이다.

 

※ 에어 기타 경연대회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가 그 결선이 핀란드에게 진행된다고 하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카모메 식당>에서 핀란드는 온갖 희한한 대회가 많이 열리는 나라로 소개되고 있다. 예전에 에어 기타로 가장 많이 애용되는 노래는 Deep Purple의 <Smoke On The Water>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생각해보니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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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일렛(2010, Toilet / トイレッ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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