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는 크게 마블코믹스와 DC코믹스에서 나온 영웅들이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마블코믹스를 훨씬 선호한다. 왜냐면 우선 여기 나오는 캐릭터들은 선천적이건 사고건 화려한 능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고, 현실에서 느끼지 못한 대리만족을 해주면서 정의로운 캐릭터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슈퍼맨','배트맨' 의 DC코믹스는 외계인에, 특별한 능력이 없는 부자 캐릭터가 있었고, 이번에 개봉하는 <왓치맨> 또한 평범한 사람들이다. 나도 평범한 사람인데, 평범한 사람의 영웅되기? 게다가 '그래픽 노블'이라는 정체모를 용어가 돌아다녀서 열심히 찾아봤더니 그다지 '코믹스'와 많이 다르지 않다고 한다. 직역하면 그림 소설이고, 복잡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만화 장르니만큼 어린이 대상이 아니고, 성인을 대상으로 만든 만화. 어른들의 만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나라 그래픽 노블의 대표가 [먼나라 이웃나라]라고 하니 바로 감이 오지 않는가?!
먼저 <왓치맨>의 상영시간은 163분이다. <벤자민 버튼..>의 166분과 맘먹고, <다크나이트>의 152분을 능가한다. <반지의제왕>도 보면서 지겹다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다크나이트>도 긴 상영시간때문에 (가당치도 않은)욕을 먹었는데, <왓치맨>에 대한 시선은 부담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막상 영화가 시작하면 이 긴 시간동안 우리는 현실에서 발버둥치는 초능력 없는 현실적인 영웅들의 이야기를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해야 한다.
영화의 배경은 현재 지구와는 좀 다르다. '닉슨' 대통령이 3선을 하고,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했다. 그리고 별 슈퍼히어로같지 않은 사람들끼리 뭉쳐서 1940년에 '미니트맨'이라고 칭하고, 영웅을 행세했다. 소련과 미국은 서로 핵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이라 지구의 멸망을 뜻하는 운명의 시계는 자정 5분전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이렇게 모두가 불안에 떨고 있는 시점에서 정체불명의 누군가에게 코미디언(제프리 딘 모건)이 죽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슈퍼 히어로 중 한명의 살해로 인해 로어셰크는 히어로들을 죽이려는 음모라고 생각하면서 수사에 들어가고, 나이트 아울과 닥터 맨해튼, 실크에게 이야기하지만, 이들은 모두 로어셰크의 생각에 동의를 하지 않는다. 로어셰크가 맞을까? 아님 다른 이들의 생각이 맞을까? 핵전쟁의 발발은 어떻게 막을 거지?
초능력이 없는 히어로
입장 차가 분명히 다르겠지만, 필자는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주인공의 초능력이 영웅의 매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화려한 거미줄 타는 묘기, 날아다니거나, 순간이동, 바람,번개를 다루는 능력, 염력 등 우리들이 못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그런 능력을 발휘하여 스크린 속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행운이야말로 '맨' 영화에서 기대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왓치맨>은 초인적 능력이 없는 평범한 이들이 스스로 히어로가 되기를 자청하고 그래서 히어로가 된 사람들이다. 6명의 히어로 중 1명만이 우연찮게 히어로가 되었지, 나머지는 배트맨만큼(?) 싸우는 정도로 그다지 특별함도 보이지 않는다. 또한 만화 중에서 가장 정치적인 해석을 요구하는데, 언제적 얘기인지 소련과 미국의 핵전쟁 운운하며 자신들이 세계 평화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그런 과거 이야기에 또 한번 고개가 숙여진다.(쿨쿨.. 이 얘기는 그만 좀 하지) 그리고 액션의 대리만족이 없으면 그것을 대신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이어져야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을텐데, 전체적으로 음울한 배경과 칙칙한 스타일은 보는 이의 눈을 무겁게만 만든다.
분명히 집중하고 봤는데, 이해 못해 띄엄띄엄 넘어가는 장면이 많다
제작사 측에서 (그나마)요즘 시대와 맞게 테러와의 전쟁으로 가자고 밀어붙였지만, 잭 스나이더의 완강한 고집은 볼거리를 과감하게 줄이고 기존 '맨'영화와 많은 차별성을 두었다. <300>에 이어 <왓치맨>에서도 주요 동작들에서 타격음과 함께 탁탁 끊는 슬로우 모션의 미학을 이번에도 어김없이 보여준 감독은 아쉽게도 각 캐릭터들에 대한 설명을 많이 배제했다. 대부분 '맨'류가 처음 나올 때, 어떤 식으로 히어로가 됐는지 전개를 조금 깔아주는 것이 보통인데, <왓치맨>을 보면 캐릭터가 우선 튀어나오고 어떤 식으로 '왓치맨'이 구성이 됐고 무슨 이유에서 해산했는지에 대한 깔끔한 설명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시위를 하는 시민들의 심정을 모르겠기에 그냥 영화의 한 부분이 넘어갔다 무시하면, 뒤에 계속되는 그들만의 삼각관계, 과거사를 알 수 없기에 계속 그랬나보다 하고 넘어가야 했다. 많은 영웅들의 각각의 사정을 다루기에 너무 사람이 많은 게 아닌가 싶다. 한 캐릭터마다 좀 집중있게 다룬 게 아니고,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움직여 결국 영화를 보고 나와 다른 분들의 자세한 해설덕에 그나마 이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띄엄띄엄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화면 속에서 이해 못하는 부분을 설렁설렁 넘어가면 163분 가운데 도대체 몇 분을 까먹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매력적인 캐릭터의 부재! 평화를 위한 희생 운운!
음해 세력에 대한 제대로 된 응징없이 '평화'를 위한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는 결정 또한 우리의 청사진이 될 수 없기에 배경이 지구인데 반해, 영화 내용은 현실성이 없다고 느꼈다. 현실에 없는 히어로지만 영화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정의를 위한 힘든 실천과 노력을 이야기하는 영화에 반해, <왓치맨>은 현실에 있을 거 같은 히어로들이 급박한 사태에 대해 방관하거나, 본인의 희생이 아닌 인류의 희생을 요구하는 등 영 그들다운 멋스럽거나 정의 구현은 전혀 없었다. 뭐 실제 현실에서 영웅도 없고, 상황에 저렇게 돌아가는 것이 맞긴 하지만, 꼭 영화에서까지 그것도 '슈퍼히어로'가 나오는 영화에서 우리에게 그런 현실에 대한 아픔을 줄 필요까지 없지 않았을까? 좀 구하면 어디 덧나나? 원작 자체가 저렇다니 할 말은 없지만, '희생' 운운하며 떠들고 거기에 너무 쉽게 수긍하는 주인공 자체에게 매력을 느끼긴 힘들었다. 생긴 것도 그렇고...
난 그냥 <엑스맨:울버린>이나 기대해야지.. 취향에 맞는 분만...
슈퍼히어로 영화뿐만 아니라 많은 헐리우드의 오락영화가 영화를 보고, 극장 문을 나서자마자 잊혀질 정도로 볼거리 위주의 향연이 많았다. 그런 고정관념을 무너뜨린 <다크나이트>가 작년에 인기가 있었고, 특히 이 영화는 재관람 관객이 많아 흥행에도 굉장한 성공을 했다. 감독이 원하는 <왓치맨>에 대한 평가는 "관객들이 극장을 나오고 나서 몇 시간, 며칠이 지나고 나서도 계속 이야기하게 되는 그런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였다. 그리고 개인적인 평가는 이 영화가 감독의 희망대로는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조커'를 맡은 히스레저의 소름돋는 연기와 함께 악의 축, 선과 악의 균형과 대립 등 영화가 담은 메시지에 비해 <왓치맨>은 확실히 밀린다. 물론 결말은 <다크나이트>와 비슷하게 끝나지만, 영화의 주된 내용인 '거대한 음모'를 찾는 과정이 두텁지 않고, 내가 생각한 히어로만의 소신이 그들에게는 좀 부족했다. 영화가 오락영화의 틀을 깨려다 너무 벗어난 것은 아닌지, 아니면 필자가 너무 가벼운 영화만 보다보니 이 긴 시간동안 소련과 미국의 대치상황이 숨을 막혔는지.. 본인은 음울하고 암울한 무거움이 눈꺼풀은 무거워졌는데, 결정적으로 우리가 즐겨봤던 '맨' 영화로 보면 큰일난다. 아주 된통 당할 게다. 그러니 그 점을 완전히 무시한 채, 영화를 보시면 되겠다. 그 이후의 판단은 여러분의 몫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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