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트>는 시간이 흐르고 제가 나이를 먹을수록 그 느낌이 더욱 진해지는 뮤지컬입니다. 뭐랄까... 세월 속에서 그 속에 담긴 참맛이 우러나오는 기분이랄까요? 가끔씩 우울할 때면... 멍~하니 앉아서 <렌트>의 음악들을 반복해서 들을 때도 있을 정도입니다. 무대에서나 볼 수 있었던 <렌트>를 영화화한 작품이 미국에서 개봉했다는 소식을 듣긴 했는데 영화 관련 사이트에서 예고편은 봤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개봉할 생각을 안 하더군요. 이러다가 개봉 접는 건가 했더니 올해 공연되는 <렌트>에 요즘 공연계에 흥행 보증수표로 통하는 조승우의 출연 소식에 티켓전쟁이 벌어지더니 영화도 마침내 극장에 잠시나마 걸렸습니다.
고층 건물이 가득하고 ‘뉴요커’라는 멋진 호칭에 세상의 중심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뉴욕에서 집세도 제대로 못내 쫓겨날 위기에 처한 이들이 있습니다. 한땐 잘나가는 로커였지만 애인이 자살한 후 슬럼프에 빠진 로저와 클럽에서 춤을 추는 섹시한 미미, MIT교수였으나 보헤미안 기질을 버리지 못한 콜린스와 그를 구해주고 사랑해주는 어여쁜 엔젤... 에이즈 환자인 그들의 생명은 하루하루 짧아지고 있고, 행위 예술가인 모린과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자유분방함을 감당하지 못해 부딪치는 변호사 조앤... 그리고 모든 걸 찍어서 기록하는 마크...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인공들은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사는 가난한 예술가들이죠.
오프닝에 핀 조명 아래의 무대에서 등장인물들 부르는 'Season of Love'는 제가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데... 미미와 조앤을 빼곤 <렌트>의 초연 멤버들이라더니 확실히 노래 소리가 깔끔하고 편안하게 귀에 흘러들어왔습니다. 공연과 영화는 거의 비슷했지만 장르 차이에 따른 변화가 있었는데... 'Rent'를 부를 때 건물 난간에 서서 불붙은 종이를 쏟아 붓는 장면이나 ‘Tango Maureen’을 부를 때 마크의 환상 속에서 탱고 댄서들과 함께 등장하는 장면은 무대에서는 표현하기가 어려운 장면이라서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봤어요. 실제의 뉴욕에서 미국 문화를 대놓고 씹고 풍자하는 모습을 보니 색다른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눈앞의 무대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과 스크린을 통해 한번 걸러서 보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죠. 중간에 늘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만 끝나고 나오는데 지루하다는 소리가 종종 들렸습니다. ‘Christmas Bells'는 영화에선 꼭 필요하진 않았지만 없으니 섭섭하고, 친구들을 아끼지만 죽어가는 그들을 보며 어떻게 할 수 없는 무력감에 자기 방어적인 마크라는 캐릭터를 무척 좋아하는데 비중이 많이 약해진 게 아쉽군요. 최고의 NG는 여운이 사라져버린 미미의 귀환...;;; 영화를 보고나니 젊은 나이에 요절한 조나단 라슨이 새삼 대단해 보입니다. 제가 흘려버린 52만5600분의 순간은 어디를 떠돌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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