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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들지 않으면 없었을 영화 <인 허 플레이스> 알버트 신 감독
2015년 12월 16일 수요일 | 최정인 기자 이메일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자란 당신이 한국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는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한국에서 영화를 찍고 싶은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결정을 내리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그 결정을 어떻게 현실화 시킬 수 있을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힘들었지. 쉬운 일보다는 조금 어려운 일을 하는 걸 선호해서 일부러라도 일을 더 도전적으로 만드는 편이다. 안정 범위를 벗어난 작업을 해야 정신을 차리고 안일하지 않게 일하는 것 같다. 그래서 매 순간 쉬운 길보다는 도전적인 일을 선택한다. <인 허 플레이스>는 내 삶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사해서 만든 영화다. 게다가 나는 한국말도 부족하다. 한국에서 영화를 찍는 건 새로운 도전이 될 것 같았다. 지금까지 해 온 작품들과는 필연적으로 조금 색다른 영화가 나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 허 플레이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한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다뤘는데 한국 사람들이 당신의 영화를 잘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없었나.
그래서 시나리오를 굉장히 오래 썼고 걱정도 많이 했다. 작업 과정 중에 한국에 자주 오기도 했고 입양 에이전시와 대화도 많이 나눴다. 영화의 전반적인 느낌은 다른 한국영화와 조금 달라도 괜찮지만 인물들의 사고방식 자체가 한국 사람들과 너무 다르면 영화가 현실과 동떨어진 막연한 판타지로 전락할 수 있다고 생각해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이 한국 사람이고 한국 집안에서 자랐다. 그래서 비록 캐나다에서 생활하긴 했지만 나의 사고방식이 완전히 이국적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부족한 점이 많아서 고민은 정말 많이 했지만 말이다(웃음). 배우, 스탭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토론해서 영화를 만들었다. 독재자처럼 혼자 연출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작진이 모든 과정을 협동해서 만들었다.

한국 영화 제작 현장을 경험한 적이 없었을 텐데 적응에 어려움은 없었나.
처음부터 모든 촬영은 한국에서 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스탭도 모두 한국인이다. 한국에서 연출 트레이닝을 받거나 현장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한국 영화 제작 시스템을 잘 몰랐다. 그래서 제작진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의 연출 방식과 한국 연출 방식의 접점을 찾고 두 방식을 융합해 영화를 만들어 보자고 말했다. 힘들어도 새로운 걸 배울 수 있는 경험을 해 보고 싶은 사람을 원했는데 다행히 그런 사람들을 찾았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 못해서 갈등이 생길까봐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국에서 영화를 촬영하는 게 캐나다에서 촬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즐거웠다.

어떤 면이 즐거웠나.
왜 그런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웃음). 그냥 내 성격하고 더 잘 맞는 것 같다. <인 허 플레이스>를 촬영하고 캐나다에서 다른 영화를 하나 더 제작했다. 그 영화는 <인 허 플레이스>보다 예산도 더 큰 영화로 힘이 덜 들어야 되는 작품이었는데 <인 허 플레이스>보다 훨씬 더 힘들게 찍었다. 다음에 다시 한국에서 영화를 찍어도 그때처럼 즐겁게 찍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인 허 플레이스>는 나와 제작진의 합이 굉장히 좋았다. 모두 서로의 방식을 조율해 맞춰 나가려는 열린 마음으로 임했기 때문에 작업 과정이 더 재미있었다. 그들도 내 연출 방식이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제작 스탭 중에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나.
동시 녹음 기사님만 미국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어 영어를 조금 했다.

스탭은 어떻게 꾸리게 됐나.
프로듀서가 조감독을 소개해줬다. 조감독이 건국대 졸업생인데 그 분을 통해 그 분의 친구들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연결고리들이 생겼다.

한국 프로듀서는 어떻게 알게 된 건가.
프로듀서와 친척지간이다. 프로듀서는 한국에 살고 있는데 내가 한국에 알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도움을 청했다.

정말 ‘맨땅에 헤딩’이었던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긴장해서 정신차리고 재밌게 찍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리스크가 높을수록 재미를 느낀다.

오히려 제약이나 어려움이 조금 있을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
확실히 그런 게 있다. 편안하게 관성적으로 작업하거나 똑같은 영화를 만드는 게 싫다.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는 확실히 꽤 도전적이었다(웃음).

캐스팅이 가장 힘들었을 텐데 어땠나.
힘들었다. 아직까지도 배우들이 이 작품에 출연한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나 같은 신인 감독은 길해연 선생님처럼 연기 경험이 많은 배우들에게 출연을 부탁하는 게 관례에 어긋난다고 들은 적도 있다. 어떤 면으로는 내가 그런 한국 문화에 대한 상식이 전혀 없어서 오히려 긍정적인 결과를 얻은 것 같다. 아는 게 없으니 겁내지 않고 캐나다에서 해 온 것처럼 무작정 캐스팅을 부탁한 거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지 몰랐던 거지(웃음). 그냥 부딪혀서 시도했다. 사실 아직도 배우들이 왜 <인 허 플레이스>에 참가하기로 마음 먹은 건지 모르겠다. 출연을 부탁할 때 이제까지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게 될 거라고 말씀드렸는데 어쩌면 결과와 상관없이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아 이 작품을 선택하셨을 수도 있다. 어쨌든 나로서는 굉장히 운이 좋았다. 정말 훌륭한 배우들이다.

현장에서의 실제 호흡은 어땠나.
굉장했다. 배우끼리도 서로 사이가 좋았고 나와도 합이 정말 좋았다. 이렇게 배우들과 쉽게 소통한 적이 없다. 너무 잘 맞아서 이상할 정도였다.

합이 잘 맞다는 건 배우들이 당신이 원하는 걸 척척 알아들었다는 뜻인가.
그런 면도 있었지만 모두들 내 작업 방식에 정말 잘 응해주셨다. 배우들의 즉흥연기를 좋아하는 편인데 <인 허 플레이스>의 배우들은 너무 잘 해 주셨다. 시나리오를 그대로 외워서 하는 연기보다 현장에 와서 신을 분석하고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서로 이야기를 한 뒤 자연스럽게 나오는 연기를 좋아한다. 배우들의 아이디어를 들으면서 카메라 움직임을 조금 바꿔보기도 했는데 배우들도 그런 방식을 굉장히 좋아했던 것 같다. 각자가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어떻게 영화를 만들어가야 할지를 함께 고민한 거다. 무조건 시나리오대로 찍어내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조금씩 바뀌어 가는 과정이 재미 있었다.
사전준비 기간은 충분했나.
길지는 않았다. 배우분들이 모두 바빴다(웃음). 배우들과 함께 리딩은 한 번 했다. 시나리오를 단순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읽는 게 아니라 신 별로 서로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는 리딩이었다. 그래서 현장에 올 때까지도 배우들이 서로 어떻게 연기할지를 확실히 정해두지 않았다. 미지의 영역을 조금 남겨 둔 거다. 상대방이 어떻게 연기할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니 배우들도 현장에서 조금 더 긴장감을 가지고 연기에 임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

한국어 대사들이 굉장히 자연스럽다.
시나리오 초고는 영어로 썼다. 그런 뒤 몇 번에 걸쳐서 번역을 했는데 지문은 상관 없어도 대사가 조금 어색하더라. 자연스럽게 만드려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대사에 관해서는 배우들과 토론을 더 많이 했다. 배우들이 아이디어를 많이 가지고 와서 촬영하면서도 대사를 조금씩 바꿔나갔다.

나도 가끔 영어로 대화하고 글을 쓸 일이 생기는데 영어를 사용할 때의 사고 방식과 한국어를 사용할 때의 사고방식이 조금 달라진다고 느낀다. 시나리오를 쓸 때도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캐릭터의 성격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한국 인물들의 이야기를 영어로 시나리오를 썼을 때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맞다. 그래서 처음 영어로 대사를 쓸 때도 머릿속으로는 한국말의 대사를 생각하며 글을 썼다. 그래서 실제로 영어로 된 시나리오를 보면 대사가 조금 이상하다. 한글로 번역할 때를 감안해 한국어의 느낌이 날 수 있게 대사를 썼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번역할 때는 여전히 어색하더라(웃음).

어떻게 보면 당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노트인 셈이다(웃음).
맞다(웃음). 시나리오를 쓰는 단계부터 작업과정을 조금 더 넓고 멀리 내다봐야 했다. 번역을 비롯한 여러 가지 중간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배우도 나와 맞는 사람을 찾는 게 굉장히 중요했다. 연기를 아무리 잘하는 배우라도 즉흥연기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는데 그런 배우는 우리 영화와 어울리지 않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인 허 스페이스>를 보면 롱 테이크가 많다. 테이크마다 조금씩 배우들의 연기가 달라지는 게 좋기 때문에 배우들이 상황에 너무 익숙해지지 않도록 찍을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촬영했다. 한 배우에게 종전과 다른 디렉션을 주면 다른 배우도 그 배우에 맞춰 연기해야 한다. 그래서 배우들에게 본인들의 캐릭터를 잘 준비해 오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현장에서 배우들이 본인의 캐릭터가 할 만한 대사를 즉흥적으로 하는 경우도 조금 있었다.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결정되는 요소가 많으면 테이크도 생각보다 길어지기 쉽고 영화를 전체적으로 통제하기가 쉽지 않지 않나.
그래서 전체적인 그림을 계속 고려하면서 찍었다. 예를 들면, 영화에서 소녀의 꿈을 보여주는 신이 하나 있는데 그 신은 카메라 움직임이 많지만 사실 하나의 롱테이크다. 촬영과 사운드 등 기술적인 부분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고 카메라와 배우들의 동선도 복잡해서 리허설을 많이 했다. 촬영할 때는 신의 길이를 맞추고 조절해서 촬영했다. 즉흥연기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테이크가 조금 길어지기 쉽다. 배우들이 불필요한 말을 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고 배우들이 감정을 끌어올리는 데 있어서 자연스럽지만 조금 더 오래 걸리는 방법을 택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조건 즉흥적으로만 연기를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각 신 별로 배우들이 반드시 말해야 하는 대사나 플롯 포인트 같은 부분은 항상 염두에 두면서 연출했다.
꿈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 장면이 다소 생뚱맞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장면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건가.
전에도 똑같은 질문을 들었다(웃음). 그 장면을 넣은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은 영화 속에서 소녀 캐릭터는 항상 소극적인 모습이지 않나. 자신만의 감옥에 갇혀 있는 느낌인데 소녀는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이야기 할 수도 없고 사실 그녀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그래서 소녀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퀀스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소녀가 너무 우울하기만 하지 않나. 두 번째 이유는 소녀와 남자친구와의 친밀감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또 다른 이유는 영화의 흐름이 그 장면을 기점으로 조금 변하기 때문에 그 장면이 필요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소녀의 결정을 유도하는 영화적 순간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맞다. 여자의 결정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그 시퀀스가 있어야 영화의 뒷 이야기가 매끄럽게 연결될 것 같았다.

소녀가 속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맞다. 소녀의 본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른들이 요구하는 모습,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알아서 단순히 그대로 따르는 모습이 아닌 소녀 속에 감춰진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 소녀와 남자친구의 유대를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영화 말미에 남자친구에 대한 소녀의 신뢰가 무너지는데 그녀가 그때 힘들다는 걸 더 잘 보여주기 위해서는 꿈 장면이 필요했다. 단순히 방에 갇혀서 아기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여자의 모습 이외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었다.

<인 허 플레이스>는 궁극적으로 세 명의 여자 이야기다. 세 인물들 사이에서의 균형을 잡으면서 이야기 연결을 자연스럽게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 부분이 연출할 때 가장 힘들었다. 시나리오를 처음 쓸 때부터 세 명의 여자에 관한 이야기라는 아이디어는 있었다. 처음에는 신1은 이 여자의 방, 신 2는 이 여자, 신3은 저 여자, 이런 식으로 지금의 영화보다 조금 더 전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계속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더라. 이야기와 캐릭터 자체는 좋은데 이런 식으로 스토리를 전달하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세 여자의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야겠다는 콘셉트를 잡고 나서는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영화를 만들지에 대한 결정을 내린 거다. 그 다음부터는 서로 다른 관점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게 힘들었다(웃음). 첫 번째 여자가 나오는 장면에서 관객에게 노출되어야 하는 정보가 두 번째 여자의 관점에서 풀어나가는 이야기에 어떻게 작용할지를 치밀하게 계산해야 했다. 플롯 포인트를 잘 만들어야 이야기가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기 때문에 신경을 정말 많이 썼다. 인위적인 느낌이 들도록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자연스럽기를 바랐다. 플롯이 복잡하지는 않은 편이지만 그 속에 중요한 정보들이 많아서 그런 요소들을 이야기 저변에 깔고 흐름을 만드는 것이 어려웠다.

훌륭하게 해 낸 것 같다. 3명의 서로 다른 시점을 오간다는 게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다.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에서 시점이 달라지는 경우는 많지만 이렇게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시점이 바뀌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시점이 바뀌는지도 모르더라. 그런데 난 그것도 괜찮았다.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사람들이 시점의 변환을 느끼지 않고도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즐길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 고민을 많이 했다. <라쇼몽> 같은 영화는 어떤 특정 순간의, 특정 사건에 대한 여러 가지 시점을 이야기하는 영화지만 <인 허 플레이스>는 사건은 계속 진행되는 과정에서 시점이 변한다. 연출할 때는 그런 구조가 단순히 눈길을 끄는 장치로만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 구성이 너무 가시적으로 드러나면 오히려 이야기의 효과를 감소시킬 것 같았다.
말로는 쉬워도 그렇게 만들기는 어렵지 않나.
사실 나도 어떻게 했는지 잘 모르겠다. 단지 정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시나리오를 쓰는 데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어떤 영화는 시점을 바꾸거나 스토리가 달라지면 영상 자체의 색깔을 다르게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트래픽>은 멕시코는 오렌지 옐로로, 워싱턴은 블루로 만들어 사람들이 이야기를 구분지을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인 허 플레이스>에서 시점의 변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그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더라도 이야기를 재밌게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했다. 시점 전환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자칫 영화의 이야기와 캐릭터가 사라지거나 시점에만 관한 영화가 될 수 있다. 그런 부분을 조심하면서 서로 다른 세 여자의 이야기를 어떻게 연결시킬지를 고민했다. 세 이야기는 스타일도 조금 다르게 촬영했다.

어떤 식으로 다른가.
첫 번째 섹션은 정적이고 전형적인 카메라 움직임을 사용했다. 초반부는 도시에서 온 여자가 시골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온 이야기다. 이방인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프레임을 조금 더 와이드하게 잡아 피사체간의 거리감이 느껴지게 찍었다. 소녀에 관한 두 번째 섹션은 카메라를 조금 더 배우들에게 밀착해서 핸드헬드로 촬영했다. 그 구간은 첫 번째 섹션의 화면보다 조금 더 답답하고 갇힌 느낌이 들도록 하고 싶어서 그렇게 찍은 거다. 그리고 인물의 감정이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핸드헬드로 촬영했다. 그런 식으로 세 가지 이야기가 명확히 구분되지는 않지만 어딘가 서로 다른 느낌이 나길 바랐다. 관객들이 왜 각각의 이야기마다 조금씩 다른 느낌을 받는지를 정확히 인지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런 부분을 굉장히 신경 썼다. 마지막 파트는 영화 속 모든 것들이 죽어 있는 것처럼 굉장히 정적으로 찍었다. 공허하고 차가운 느낌을 주고 싶었다. 세 번째 구간은 클라이맥스 장면에서의 핸드 헬드 숏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든 장면을 카메라를 고정시켜 촬영했다. 팬이 하나 있지만 나머지는 모두 정적인 와이드 숏이다.

예산이 얼마인지 말해 줄 수 있나.
비밀이라 말해줄 수는 없지만 굉장히 적다(웃음). 촬영은 한국에서 하고 후반작업은 모두 캐나다에서 했는데 예산은... 정말 적다(웃음).

그럼 예산을 어떻게 모았는지 말해달라.
<인 허 플레이스>는 캐나다에 있는 영화사의 세 번째 작품이다. 회사가 그 전에 만든 다른 두 작품이 엄청나게 흥행이 잘 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수익을 조금 냈었다. 그래서 그 돈을 모두 <인 허 플레이스>에 투자했다. 요즘에는 인디고고나 킥스타터 펀딩이 있지만 내가 <인 허 플레이스>의 펀딩을 시작할 때는 그런 게 없었다. 그렇게 회사에서 어느 정도의 예산을 받고 나머지 돈은 개인적으로 모아 만든 거라서 예산이 굉장히 적었다.

영화는 초반부 관객들이 인물들의 관계를 단 번에 알아차릴 수 없게 서서히 정보를 노출한다.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많은데 그런 부분을 잘 연출하는 것도 신경을 많이 썼겠다.
그 부분도 정말 힘들었다. 시점 변화도 신경써야 했고 관객들에게 이야기에 대한 정보를 언제, 얼마만큼 노출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했다. 한 마디로 정보 노출의 속도를 조절하는 게 힘들었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그런 부분을 많이 생각했다. 정보를 조금씩 알려야겠다는 대략적인 생각은 있었지만 말로 하기는 쉬워도 실제로 해 보니 힘들더라(웃음). 사실 영화를 만드는 건 항상 계산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많이 고민해서 추측하고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일단 시도해 보는 거다. 그러면서 촬영의 콘셉트와 구체적인 요소들을 결정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정작 영화를 촬영할 때는 느낌으로 찍는다. 지나치게 생각이 많아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감정이 이끄는 대로 찍는다. 그래서 내 영화에는 즉흥적으로 결정된 숏이나 롱테이크가 많다. 느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배우들에게도 자유를 더 주려고 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이름이 없다. 왜 그런가.
내가 캐릭터의 이름을 정하는 걸 힘들어하기 때문이다(웃음). 영어든 한국어든 캐릭터 이름을 정하는 게 너무 힘들다. 나는 시나리오를 쓸 때 처음부터 순서대로 쓴다. 어떤 사람은 21번째 신을 쓰다가 52번째 신을 쓰고 생각나는 대로 순서를 바꿔가며 쓰기도 하지만 난 무조건 첫 번째 신부터 차례대로 써야 한다. 그런데 첫 번째 신에서 캐릭터 이름을 미리 정해야 하는 게 너무 힘들더라(웃음). 이건 농담 반 진담 반인 이야기고 사실 더 중요한 이유는 <인 허 플레이스>가 특정한 이름을 가진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길 바랐기 때문에 캐릭터에 이름을 주지 않았다. 이 영화는 한 외진 시골 마을에서 일어나는 굉장히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이야기가 구체적일수록 오히려 더 포괄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국적을 막론하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영화 속 인물들의 입장을 공감하며 영화를 볼 수 있길 바랐다. 영화의 시점을 바꾸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에서다. 그런 상징적인 의미에서 캐릭터의 이름을 배제했다.

그렇다면 <인 허 플레이스>의 ‘Her’은 누구를 칭하는 건가.
누구의 이야기도 될 수 있다. 또 ‘허 플레이스(Her place)’라는 건 여자들만 지내는 곳을 말하니까 어떻게 보면 농장도 ‘허 플레이스’인 셈이다. 그리고 대리모와 같은 개념도 포함된 이야기니 제목의 ‘허 플레이스’는 아기를 얻게 되는 장소라는 의미도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이야기에 맞는 제목이라 생각했다.

남자로서 여자들의 이야기를 쓰는 게 힘들지는 않았나.
시작할 때는 내가 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지만 일단 최선을 다했다. 캐릭터들을 정말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스스로에게 엄격할 수 밖에 없었다. 인물들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 사람처럼 느껴져야 했지 남자들의 판타지가 만들어낸 가짜 인물처럼 느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데 관객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내가 알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모녀의 심리가 잘 그려졌다고 생각했다. 외국인들은 비밀 입양에 대해 잘 이해를 못할 수 있을 텐데 영화를 만들 때 관객층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
솔직히 영화를 만들 때 그런 부분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지 <인 허 플레이스>는 반드시 내가 만들어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해서 만든 거다. 내가 만들지 않으면 결코 만들어지지 않을 영화를 만드는 것이 좋다. 다른 영화들은 다른 사람들이 연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 허 플레이스>는 내가 아니면 존재하지 않을 영화라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아직은 젊기 때문에 <인 허 플레이스>와 같은 영화를 만드는 것은 일종의 내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처럼 적은 예산의 영화가 큰 영화제에 초대되고 캐나다에서 주목받고 한국에서도 상영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막연한 기대만 있었을 뿐이다. 그저 내가 만들고 싶어 만든 영화인데 이상하리만큼 캐나다에서부터 영화가 잘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됐다. 신기한 건 다른 나라에서 상영했을 때도 관객들이 비슷한 반응을 했다는 거다. 그리고 <인 허 플레이스>는 20대 뿐만 아니라 60대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영화인 것 같더라.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하며 촬영을 시작한 건 아니다. 그래서 나도 <인 허 플레이스>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재밌다.
만일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 한 가지를 꼽는다면 <대부1> <대부2>를 선택하겠다는 기사를 봤다. 그 영화를 꼽은 당신의 이유가 궁금하다.
솔직히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영화는 누구나 봐야 하는 걸작이다(웃음). 그 두 작품은 ‘영화라면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의 표본이라고 생각한다. 스토리텔링 방식도 도전적이고 관객을 다른 세계로 이끈다.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현실보다 멋진 캐릭터, 그러면서도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을 법한 캐릭터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너무나 아름다운 방식으로 전달됐다. 촬영도 멋지고! 그래서 봐야한다. 하지만 만일 지금 누가 그 질문을 한다면 또 다른 영화를 추천할 것 같다(웃음).

어떤 영화를 추천할 건가.
<인 허 플레이스>를 찍을 때 배우들에게 세 가지 영화를 추천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 마이크 리 감독의 <세상의 모든 계절> 그리고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의 <4개월, 3주... 그리고 2일>를 추천했는데 모두 너무 좋은 영화다.

한국에 와서 한국영화도 많이 봤나.
사람들이 추천해줘서 한국 독립영화를 많이 봤다. 정말 백 편도 넘게 본 것 같은데 그 중에서 <파수꾼>이 너무 강렬했다. 영화를 보고만 있어도 감독이 정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난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았는데도 <파수꾼>을 보고 그 또래 친구들의 감정과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 배우들도 너무 연기를 잘했다. 정말 수많은 영화를 봤는데 그 중 가슴에 남아있는 건 <파수꾼>이다.

최근 가장 행복했던 일은 뭔가.
<인 허 플레이스>의 시나리오를 쓸 때 한국에 와서 그 당시의 여자친구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인 허 플레이스> 촬영을 마치고 그녀와 결혼했다. 그래서 <인 허 플레이스>는 나의 사적인 인생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영화다. 아내에게 <인 허 플레이스>를 만드는 동안의 내 모습을 참아낼 수 있다면 그 어떤 나의 모습도 견딜 수 있을 거라고 말했는데 정말 그랬다(웃음).

아내도 <인 허 플레이스>의 작업에 참여한 건가.
촬영 스틸도 찍고 현장 분위기를 좋게 하는 등 여러 가지 업무를 해 줘서 너무 고마웠다. 그 전까지는 내가 영화를 만드는 걸 본 적이 없었는데 만일 영화감독으로서의 내 모습을 견딜 수 있다면 평생을 함께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결혼 축하한다.
고맙다(웃음).

2015년 12월 16일 수요일 | 글_최정인 기자(무비스트)
사진_박광희 실장(ULTRA studio)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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