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장예모 감독의 <영웅>, <이투마마>, <나쁜 교육> 등 여느 해보다 쟁쟁한 후보작들이 즐비했던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부문에서 놀랍게도(?) 영예의 트로피를 안은 영화가 바로 이 <러브 인 아프리카>.그와 관련해 연출을 맡은 독일의 여성 감독 카롤리네 링크의 일화는 작은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시상 당일 독일에 있었던 그녀는 “그렇게 많은 미국인들이 부시의 정책을 아무렇지않게 지지하는 것에 정말 질렸다. 지금 난 미국을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며 미국 정부를 비난했지만, 이러니저러니해도 역시 상이 주는 행복감은 작지 않은 듯 “수상하게 돼 매우 기쁘다”는 소감을 이었던 것.
슈테판느 츠바이크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한 <러브 인 아프리카>를 아프리카 케냐에서 자연적인 고난과 문화적인 이질감을 견디며 강단있게 진두지휘한 카롤리네 링크. 그녀는 폴커 슐렌도르프 감독의 <양철북>(1980) 이후 독일에 두 번째로 아카데미상을 안긴 인재지만, 그녀의 심상치않은 연출력은 전작 <비욘드 사일런스>에서 이미 드러난 바 있다. <비욘드 사일런스>의 경우 1998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됐었던 것.
물론, 상을 타고 안 타고의 문제가 어떤 영화가 지닌 가치를 본질적으로 증명하는 부분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아실터. 하지만 2002년 독일영화제 작품상, 감독상 등 5개 부문을 휩쓸며, 자국내에서도 뜨거운 관심 대상이었던 <러브 인 아프리카>가 과연 소설을 얼마나 명민하게 각색했는지, 또 얼마나 진실된 시선을 보이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이 영화의 연출가, 카롤리네 링크는 작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그녀의 이런저런 얘기들을 미리 경청해 보시길.
Q: 이 이야기의 어떤 부분이 당신에게 영향을 주었나요?
A: 처음 소설을 읽은 후부터 이걸 영화화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세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번째는 아프리카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프리카 농장에서 머물면서 각본을 썼는데 한 나라를 알아가는 느낌이었죠, 두번째는 유태인 가족이 독일에서 아프리카로 가는 과정이 흥미로웠어요. 요즘 독일인들은 2차 대전 때 유태인들이 영국이나 미국으로 도피한 줄은 알지만 아프리카나 상하이, 페루처럼 먼 나라로 떠난 것은 잘 몰라요. 극중 예텔과 같이 불편하고 문제가 많은 아프리카에서 생활하기 싫은 여자의 마음도 이해할 수도 있었구요. 세번째는 아프리카에 도착해서 문제가 있는 부부의 결혼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었어요. 예전에 그들이 함께 했던 안락하고 풍족했던 생활은 이제 없는거죠. 예전의 것들은 이제 없으니 그들은 그들만의 새로운 것을 찾아야만 합니다. 저는 부부가 환경이 바뀌거나 힘들어질 때 그들이 사랑을 지속하는 방법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 면이 저에겐 개인적으로 의미있게 다가왔고 새로운 세계를 찾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A: 그렇죠. 생활이 편안했기 때문에 남편은 부인의 단점을 발견하지 못했죠. 유태인 말살정책 때문에 독일을 떠났지만 알고보면 예텔도 흑인을 경멸하고 있었어요. 그녀는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인 셈이죠. 그들의 딸 레기나는 아프리카에서 많은 면을 발견합니다. 아이는 영국 학교 안에서 독일인으로 생활하지만 사실 독일인도 아닌 유태인인거죠. 그러나 그녀는 영국인 아이들에 의해 독일인 취급을 당하고 많은 편견을 견뎌냅니다.
Q: 영화 속 부인의 문제들은 남편보다 더 심각해 보이는데요. 그러나 남편은 자신의 문제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A: 발터는 혼란스러운 문제에 처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상황이 예텔에게 처해졌다면 예텔은 아마 미쳤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발터는 예텔에게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하죠. 그러나 발터는 좀더 일찍 이야기를 했어야 했어요. 그는 예텔이 생각하는 것처럼 영웅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는 독일에선 지식인이었기 때문에 노동력이 필요한 아프리카에선 쉽게 돈을 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당시 유태인들이 아프리카에서 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죠.
Q: 소설과 영화는 모두 독일에서 좋은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어떤 점으로 독일 관객들을 감동시켰다고 생각하나요?
A: 나는 아프리카에 대한 많은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사람들은 가족에 대한 일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모험을 위해 아프리카에 가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이삭(작가)이 아니에요. 보통 사람들은 가고 싶지 않아 하고 갑자기 생계가 어려워지면 힘들어합니다. 영화 속 예텔은 그녀가 아프리카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하죠. 그녀는 “우린 살아있지만 뭘 위해 살지? 아프리카에서 살아남고 있는 건 정말 살아있는 게 아니야.”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프리카로 피했던 유태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에 운이 좋았다고도 합니다. 그렇지만 피난민들 중 몇몇은 안타까움과 서러움에 죽기도 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를 움직였고, 나는 그 사람들에 대해서 알아가고 싶었습니다.
Q: 당시에 아프리카로 떠났던 사람들은 아프리카로 귀화하는 일도 있었는데요.
A: 발터는 처음에 아프리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심지어 ‘우리 집’이라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텔은 더 감정적이라 참을 수 없어 했지만 결국 그녀는 아프리카에 완전히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발터는 달랐습니다. 그는 깨달았죠. 아프리카가 영원한 자신의 나라가 될 수 없고 일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을요.
A: 저는 소녀가 주인공인 영화를 두 편이나 만들었습니다. 모두 소녀들이 이야기의 중심에서, 인생이 어떤 것인지 어른들에게 말해주는 영화였습니다. 책에서는 스타페카 츠바이크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습니다. 그녀는 아프리카에 바로 적응하고 사랑하게 되죠. 저는 영화 속에서 많은 캐릭터를 살리고 싶었습니다. 아프리카에 적응하는 레기나와 결혼 생활에 힘들어하는 부부와 같이 전체적인 이야기를 살렸습니다.
Q: <러브 인 아프리카>에 영향을 줬던 영화들이 있나요?
A: 처음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로버트 레드포드와 메릴 스트립의 좋은 연기를 참고했지만 그것과는 다른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러브 스토리에 집중하기 보다는 아프리카에 있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아름다움 보다는 거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아프리카에서 각본을 쓸 때 아프리카가 아름답다기보다는 광활하고 거칠다는 느낌을 더 받았기 때문입니다.
Q: 각본 작업은 어땠나요?
A: 저는 빨리 쓰는 작가가 아니라서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글을 쓴다는 건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었죠. 2년 정도 각본 작업을 한 것 같네요.
Q: 꼭 케냐에서 촬영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고 들었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습니까?
A: 사실 내가 왜 그랬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설명하기 힘드네요. 처음엔 아프리카인 역을 맡은 배우들을 런던, 파리,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했습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이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전 사실적인 촬영을 하고 싶었는데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죠. 관객들은 모를 수도 있는 작은 결점이라도 감독은 쉽게 눈에 띄는 거잖아요. 그래서 현지인들을 많이 캐스팅 했어요. 그리고 그들은 현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려주며 실수하지 않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Q: 어떤 작품을 구상중인가요?
A: 요즘 많은 시나리오들을 받고 있어요. 몇 개는 미국 영화도 있는데요, 우선 저는 같이 작품을 하고 싶은 사람을 찾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가족들에 관한 영화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은데, 올해는 아이를 위해서 영화는 쉬고 싶습니다. 음, 앞으로 나 자신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 진한 감동을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예정이구요.
자료제공: 프리비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