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보츠카 요우스케, 시바사키 코우의 매력이 쿨하게 다가왔던 감각적이면서도 곱씹을 만한 영화 <GO>의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 그가 새롭게 들고 찾아온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독소가 빠진 대신, 내면을 뭉클 잡아채는 음악과 세련된 화면으로 주조된 순애보. 들뜸으로 고조된 축제의 한복판에서 짧은 시간 그를 만나보았다.
<해바라기(ひまわり)>(2000)로 제5회 부산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연맹상을 수상하는 등 '부산'과는 인연이 큰 걸로 알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느낌을 말씀해 주신다면?
감독이 돼서 처음으로 나간 국제영화제가 부산으로, 추억이 담긴 영화제이자 추억이 담긴 장소다. <해바라기>로 처음 왔을때 영화제 초반에 내 작품이 상영됐는데, 발표 끝날때까지 있어달라구 해서 거의 일주일동안 체류했었다. 그 사이에 많은 좋은 분들과 만날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만남을 유지한다. 오기만 해도 즐거운 마음이 들 수 있는 영화제다.
실제로 뵙기는 처음이다. 굉장히 스타일리쉬한 모습이신데, 실례될지 몰라도 왠지 야자와 아이의 만화 캐릭터와도 비슷하신 것 같다. (웃음)
하하하. 망가 캐릭터요? 근데 야자와 아이가 누군지?
아...(웃음)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원작 소설의 경우, 처음에는 그냥 조용히 사라질 운명이었다가 영화에 출연하기도 한 시바사키 코우 등에 의해 개봉 전 역대일본소설 판매 1위를 기록하는 등 대단한 베스트셀러가 된 걸로 알고 있다. 영화화하기 전부터 일찌감치 소설을 읽었었나?
그전에는 읽지 못했다. 영화화 제안을 받고, 이걸 그대로 재현하는 게 아니라 지금 나온 영화 속 형태, 이미지들을 구상하면서 조금 나중에 읽은 케이스다.
읽고 나서 단번에 '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미 <해바라기>를 찍었을때 죽음을 맞이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들, 그 감정들을 그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선 비슷한 스토리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보니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봤을때 바로 결심하진 못했다. 그런데 시나리오에서는 죽은 사람에 대한 상실감, 죽은 사람이 떠난 이후의 사람들의 삶을 그렸었지만, 영화에서는 그 다음 이야기를 할 수 있는게 아닌가라는 누군가의 얘기를 듣고, '아, 뭔가 또다른 영화가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결심하게 됐다.
시대적 배경이나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는 30대의 '사쿠(오오사와 타카오)' 등과 같이 소설과 영화가 다른 점이 발견된다. 원작 소설과 다르게 영화 속에서 드러내고 싶었던 연출적 방향이 있었나?
원작을 영화화하는 작업에서 기본적으로 원작을 손상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거기엔 원작에 충실한 방법 하나와 원작을 내 나름대로 해석해서 새롭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30대 주인공들이 등장한 이유는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봤을때 순수한 소년, 소녀, 그 순수했던 시절의 그리움이랄지 노스탤지어를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속에선 내가 가졌던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주인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30대 주인공을 설정했다.
일본에서 700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 흥행적으로 무척 성공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본 이유를 개인적으로 분석한다면?
흠, 잘 모르겠지만 이 영화속에는 지금 젊은 관객들이 잃어버린 뭔가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순수한 사랑의 감정, 사랑하는 마음 같은 것이...누군가를 잃었을 때, 누군가가 죽었을때 그걸 받아들이고 다음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또는 그 절실한 마음을 그렸던 점이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나 생각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은 옛날 사람들보다 훨씬 더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음, 말하자면 자기 논리를 조립하는 방식으로 모든 걸 생각하는데, 사람은 사실 누군가를 좋아했을때의 충동이랄지 그런 심성, 감정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런 감정을 가졌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무인도에 갔다온 뒤에 '아키'가 쓰러져서 아버지가 병원으로 데려가는 장면이 있지 않나. 그때 '사쿠'가 그녀의 아버지한테 얻어맞고 쓰러졌다가 다시 차를 뒤쫓아 가는장면이 있다. 처음에 '사쿠' 역의 모리야마 미라이는 왜 '아키'의 아버지한테 얻어맞는지, 그녀가 병에 걸렸는지도 모르는데 굳이 달려가야 하냐는 얘기를 했었다.
흠, 아마도 그 주인공은 뭔가를 직감했을 수도 있고, 그녀를 향한 마음, 아버지가 그들을 떼어놓았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을 향해 달려가는 절실한 마음, 충동 같은걸 표현해 줬으면 했다. 그래서 미라이를 무조건 뛰게 했다. 몸으로 그런 뭔가를 느끼고, 생각할 수 있게끔 말이다. 그랬더니 뭔가 그 충동같은 걸 알 것 같다고 하더라. 그 이후부턴 수월하게 사쿠를 소화했다. 그 단계까지 가는 게 어려웠던 것 같다.
영화 외에도 CF, 뮤직비디오, TV 드라마 등에서 다양하게 능력을 펼치고 계신다. 어릴적부터 영화감독이 꿈이셨나?
그렇다. 어렸을때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촬영현장을 가본 적이 있다. 그때 영화찍는 걸 아주 가까이 보면서 굉장히 멋있는 직업이다라고 생각했다. 어떤 성에서 촬영하고 있었는데, 내가 봤던 현장의 그림과 실제 영화로 나왔을때 그림이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영화를 찍으면, 저렇게 옛날 시대를 재현할 수도 있고, 사람의 마음속 깊이 있는 것을 그릴 수 있겠구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겠구나 참 멋있는 일이다라고 생각하고 동경했었다.
<GO>를 참 재밌게 봤었다. 스토리는 무겁지만 쿨하게 풀어가는 감성이 특히나 매력적이었는데, 이번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CF나 뮤직비디오적 느낌이 더 많이 묻어난다. 그런 관련 장르의 스킬이 영화에 영향을 미치나?
최근에 뮤직비디오는 별로 안 찍었고, CF를 많이 찍었었다. 알다시피 CF는 한정된 시간 안에 무언가를 전달하고 표현해야 한다. 영화는 그보다 훨씬 틀이 더 넓다. 어떤 스토리가 있고 자기가 표현하려는 것을 긴 호흡으로 표현한다.
그런 부분에서 CF는 짧은 시간 안에 무엇을 전달하느냐, 무엇을 표현하느냐 했을때 최대한 불필요한 것을 배제시켜 나가야 한다. 세련되지 않으면 짧은 시간 안에 뭔가를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필요한 걸 빼나가는 작업은 영화에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관객들이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서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중심핵'적인 부분을 말해달라.
이 영화의 이야기는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했던 시절, 그 시절의 연애, 사랑을 그리고 있다. 80년대가 배경인데, 그땐 난 고등학생이었고, 요즘처럼 핸드폰이랄지 인터넷이 없었던 시절이다. 아날로그적인 시절로, 그 당시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선 반드시 약속을 했었고, 그걸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었다. 사람과 사람이 훨씬 더 진지하게 마주봤던 시절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음, 그때처럼 요즘 젊은 사람들이 누군가 소중한 사람을 만났을때 옛날 우리가 갖고 있던 진실함, 순수함 이런걸 되찾고 간직해 줬으면 한다. 메일이나 핸드폰이 아니라 실제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가깝게 다가갔으면 하는데 그런 부분이 전달됐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즐겁게 보내다 가셨으면 좋겠다. 감사드린다.
부산= 심수진 기자, 이기성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