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심연 어딘가에는 ‘몬스터’가 내재돼 있다. 종종 술 먹고 저지르는, 자신도 흠칫 놀라는, 폭력적인 행동도 거친 일례이긴 하지만 그것의 하나일 것이다. 감독 박찬욱은 이러한 우리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괴물을 지독하리만치 잔인한 게임 안에서 들춰내는 20일 개봉할 <쓰리, 몬스터> 중 ‘컷’이라는 작품으로 대중과 다시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자신과 직업이 동일한 남부러울 것 없는 감독 캐릭터를 영화 안에 위치시키면서 말이다.
때문에 항간에서는 그의 실제 모습과 영화 속 감독 모습이 자연스레 포개어지는 부분이 있지 않겠냐? 말한다. 하지만 박찬욱은 이렇게 부정한다. “조금이라도 비슷한 모습은 빼려고 노력했다” 이는 역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이 전에 비해 확연히 달라졌음을 자신 역시 의식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바야흐로 박찬욱 감독의 행보는 세인들의 관심거리가 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춘 것이다.
그런 그를 자신이 설립한 영화사 모호필름에서 만났다. 아니나 다를까 박찬욱 감독은 까칠한 피부가 말해주듯 무지하게 바쁜 일정으로 일과를 보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상대방의 시샘을 자극할 정도로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며 탁월한 언변으로 인터뷰를 자신의 의지대로 이끌어가는 면모를 보였다. 한마디로, 박찬욱 감독은 명석하다.
영화 세 편 만들고 있는 거 같다. 그리고 음.......영화를 만드는 일로 바쁜 것은 바람직하다. 근데 그거 말고 뭐 인터뷰를 한다던가....ㅋㅋ 뭐 또 여러 가지 행사에 다녀야 한다는 게 좀 그렇고 힘들다.
내일 역시 해외에 나간다고 들었다.
호주 멜번국제영화제에 간다.
며칠 전, <쓰리, 몬스터> 기자시사가 있었다.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말해 달라!
그러니까, 거의 완벽하게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성공한 영화감독의 가정에 어떤 괴한이 침입해서 그 부부를 인질로 잡아 아주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게 하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이 가정이 완전히 붕괴되고, 그들의 내면까지 파괴되는 비극적인 내용이다.
영화에서 테러리스트로 분한 임원희의 연기를 보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 “아 사투리의 어투도 공포의 소재로 쓰일 수 있구나” 하는 생각.
의도했던 거다. 그 점에서는 류승완 감독의 도움이 아주 컸다. 애초 류승완 감독이 장난삼아 쓰는 사투리를 보며 재밌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 각본을 쓰면서 써먹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쨌든, 임원희를 트레이닝 시켜주는 등 류승완 감독이 없었으면 이 영화도 없었을 거다. 그리고 충정도 말, 우리가 흔히 말하잖나? 느리고 순박해 보인다고. 그러한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에 아주 사악한 악당이 그런 말을 쓰면 신선하고 낯설기도 하지만 무시무시한 효과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게 나름대로 적중됐다 본다.
모든 걸 가지고 있는 이병헌 캐릭터에 당신의 모습도 투영돼 있는지.
그렇게 지레짐작하는 사람들이 많을 걸 같아서 나의 모습을 없애려고 적잖은 공을 들였다. 조금이라도 비슷한 모습은 빼려고 노력했다.
촬영하는 데 소비된 시간은 대략 어느 정도인가?
2주 넘겨 찍었다.
많은 시간이 할애되지 못한 탓에 아쉬운 장면이 있을 거다.
염정아가 흡혈귀로 등장하는 도입부가 있는데 그리고 난 후 영화 속 영화 촬영이 끝나고 감독이 스탭들과 수고했다고 인사하는 장면이 있다. 염정아양이 시간이 좀 됐으면 흡혈귀 복장을 다 벗고 평상시 차림으로 청바지 입고 완전 딴판으로 감독과 가볍게 인사하는 신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헌데 우정출연이라 그런 거까지 부탁할 수 없었다.
미이케 다카시는 어...전혀 뜻밖이었다. 굉장히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영화를 예상했었는데 말이다. 근데 아마 누가 그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저 이런 영화도 많이 찍었어요.” 이럴 거다. 하도 많은 작품을 한 사람이라.... 어쨌든, 이번 작품은 호러 효과에 의존하지 않고 미묘하고 작은 데서 공포를 끌어내는 특이한 서정적 작품을 만들었다 본다.
프루트 첸 같은 경우는 중국의 산아제한 문제를 확실히 끌어들이면서 홍콩 현대 사회의 부자들의 행태라든가 그런 이야기를 호러에 빗대 이야기 한 거 같다. 또 중국의 설화라든가 옛날이야기에 나옴직한 ‘인육’의 모티브를 현대 사회와 잘 결합해서 생경하지 않고 무서운 동화로 잘 풀어놓았다고 생각한다.
<친절한 금자씨>는 복수 3부작의 완결편이다. 어떤 식의 구성으로 이뤄질지 궁금하다
어...항상 남자들 위주의 이야기를 써 오다보니 여자들의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었다. 기왕 그렇게 하는 거 조연들이 많이 나오고 주인공은 혼자인 영화, 그러니까 이영애가 영화의 99%에 계속 나오는 영화가 될 거다. 시각적으로는 무서운 게 없고 심리적으로 난폭한 면이 있는 좀 건조한 영화. 그러다 마지막엔 감정적 울림이 있는, 복수극이라기보다는 속죄에 관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영애의 파격적인 모습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더라. 육체를 드러낼 것이다. 또는 잔인한 장면의 가해자로서 혹은 피해자로서 상상 이상의 그 무엇을 선보일 거다. 등등
물리적인 폭력은 없다. 육체 드러냄도 없고.
<친절한 금자씨>의 여주인공이 원래는 이영애가 아니라 고두심 선생이라 들었다.
원래 제목이 나오기 전에는 ‘고두심 프로젝트’라 불렀을 정도로 그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우리가 고두심을 떠올릴 때 생각하는 모성애를 전복하는 이야기를 그리려고 했다. 그러다 이야기를 꾸미는 과정에서 나이가 어려졌다. 그래서 교체됐다. 예정대로 진행됐다면 또 다른 흥미로운 작품이 될 수도 있었을 거다.
당신의 작품에 등장했던 오광록 오달수 등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기묘묘한 마스크의 배우들에 대한 애착이 있는 거 같다.
음.....그 독특한 그 배우들은 연출자가 이렇게 저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분위기의 소유자가 아니다. 본래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억지로 고치고 훈련해서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원래 그런 분위기를 좋아한다.
당신이 설립한 모호필름의 정체는 무엇인가?
첫 번째는 이런 영화도 저런 영화도 만들고 “저 회사 도대체 정체가 뭐냐” 그런 소리를 듣는 영화회사가 될 거 같고. 두 번째는 내가 만드는 영화들이 모호한 구석이 많은데 ‘모호함’은 훌륭한 예술의 필수적인 요소라 본다. 모든 것이 분명하고 또렷하면 성립이 안 되는 게 많다. 뭐 그런 차원에서 만든 영화사로 보면 된다.
음, 만족이라기보다는 이런 얘기를 하고 싶다. 자본으로부터 완벽하게 독립된 상업영화는 만들 수 없다. 어차피 남의 돈을 갖다 쓰는 거고, 그들에게 본전 이상의 수익을 보장해줘야 되는 거고. 따라서 자본과의 긴장관계는 필연적인 운명이라 본다.
다만, 그 숙명을 인정하면서 그 과정에 개입되는 사람을 줄여보자는 거다.
개인적으로 난 내 마음대로 영화를 찍는 부류가 아니라 생각한다. 또 남이 못 알아듣는 자기만 하고 싶은 소리만 늘어놓는 그런 종류의 감독도 아니다. 그래서 제작자가 따로 있지 않아도 투자자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를 하겠다는 책임감이 있기 때문에 제작자가 없어도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그래서 이 모호필름을 차린 거다.
지금 최대 고민은 무엇인가?
영화관들이 좋아졌으면 한다.
소리 기준을 어디다 맞춰야 될지 모르겠다. 어떤 극장에서는 크게 들리고 어디는 작게 들리고. 뭐 또 여러 가지 서라운드에선 발란스가 깨지고. 소리를 만드는 마지막 단계에서 도대체 어디다 사운드를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시네마스코프를 많이 찍는 나로서는 화면 좌우 때로는 상하까지도 너무나 많이 잘려 나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내가 만든 영화의 80%밖에 못 보여줄 때가 많다. 그러니 답답한 구도가 나온다. 기껏 고생해서 만들어놓았더니 말이다. 참 불만이 많다. 그 점에 대해서는.
오래 전 영화평론가로서도 명성을 드날렸다. 솔직히, 현재 영화평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다.
음.........전에 비해 요즘 달라진 게 기자들. 옛날에 평론가들이 하던 일을 지금은 그들이 한다. 실력이 전보다 나아졌다는 거다. 전에는 다 좋다거나 다 싫다거나 했는데 요즘엔 자기 목소리를 내더라. 그게 좋은 현상이다. 그리고 평론의 영향력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상업적으로는 그리 큰 영향력이 없다고 본다. 사실, 영화감독이 비평에 대해서 신경을 쓰는 이유는 그 사람들의 논조가 흥행을 좌우하기 때문이 아니다. 가장 훈련되고 고급한 관객이기 때문에 그들의 견해에 대해서 신경을 쓰는 거다. 장사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다. 어쨌든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한국 영화매체의 문제점?
인터뷰 기사들이 더 재밌어졌으면 한다.
물론 그건 인터뷰어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터뷰를 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재밌게 솔직하게 표현 해주냐에 따라서 충분히 달라질 수 있으니까. 그래도 같은 질문이라도 대답을 다르게 유도할 수 있다. 어떻게 편집하고 어떻게 문장을 정리하느냐에 따라 더 재밌어질 수 있는 거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터뷰라는 게 영화 편집이랑 비슷하다. 어쨌든, 나 역시 해본 적이 있는데 인터뷰의 기술이라는 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좀더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졌으면 한다.
앞으로 계획과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뭐가 있겠는가?
연극연출을 하고 싶다. 희곡을 써서 무대를 위해 연출하고 싶다. 배두나가 출연하고 있는 연극 <선데이 서울> 작업에 부분적으로 동참하긴 했지만 희곡을 옮기는 과정에서 참여를 못했고, 또 뭐 하다못해 연극 연습할 때 현장에 가서 그네들이 어떻게 고생하고 대사를 만들어 가야 하는지 보고 그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예비관객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한다.
내가 만드는 영화가 폭력묘사가 강하다고 거북해 하는 분들이 더러 있더라. 허나 이번에는 처음부터 내놓고 공포영화 했으니까 폭력묘사가 강하더라도 그러려니 하실 거라 믿는다. 그리고 또 일본과 홍콩을 대표하는 뛰어난 감독의 작품도 함께 똑같이 추천한다. 다양한 스타일에 다양한 공포의 감정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취재: 서대원 기자
촬영: 이기성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