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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이라는 ‘허수아비’를 향한 묵직한 회고록 <허수아비> 박준우 감독·이지현 작가
2026년 6월 2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지난 5월 26일, ENA·스튜디오지니의 장르물 <허수아비>가 뜨거운 호평 속에 12회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첫 회 전국 시청률 2.9%로 출발했던 <허수아비>는 몰입감 있는 전개와 긴장감 높은 연출로 서서히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더니, 최종회에서 전국 8.1%(수도권 8.3%), 최고 시청률 9.3%라는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허수아비>는 장르물로서의 압도적인 긴장감과 몰입감을 훌륭히 구현해 내면서도, 단순한 범인 잡기 게임을 넘어 공권력의 과오와 그 뒤에 숨겨진 진실 찾기를 집요하게 추적했다. 나아가 과거 공권력의 칼날에 짓밟히고 억울하게 희생당한 이들의 아픔을 정조준하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깊게 울렸다. 작품의 주역이자 참신한 기획력으로 장르물의 새로운 지평을 연 박준우 감독과 이지현 작가를 만나 치열했던 여정의 비하인드를 들었다.

◆ 사비를 털어 만든 끈질긴 집념, <모범택시> 감독과 작가의 재회

<허수아비>가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박준우 감독은 2004년 SBS 입사 후 시사교양 피디로서 <그것이 알고 싶다>를 연출하다가 드라마국으로 자리를 옮긴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드라마국으로 옮긴 후 <닥터 탐정>(2019)으로 첫 장편 드라마 연출을 시작해 메가 히트작 <모범택시>(2021)를 탄생시켰다. 최근에는 안락사와 그 조력을 다룬 이보영 주연의 <메리 킬즈 피플>을 선보이며 우리 사회에 묵직한 화두를 던짐과 동시에 사회고발적 시선을 견지해 왔다. 이지현 작가는 <모범택시>의 11회부터 16회까지의 집필을 맡았던 인물로, 두 사람의 인연은 <모범택시>를 함께 작업하면서 시작되었다.

박 감독은 <모범택시> 촬영이 끝날 무렵인 2021년 5월경 이번 작품을 처음 기획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던 윤성여 선생과,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초등학생 유족을 직접 인터뷰한 것이 시초였다. 박 감독은 “그 두 분을 만나 뵙고 이걸 꼭 드라마로 해야겠다는 개인적인 욕구가 있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의 명작 <살인의 추억>이라는 거대한 벽이 존재했기에 주변의 시선은 냉담했다. 제작사들은 “이미 뛰어난 작품이 있는데 이걸 어떻게 다시 하냐”라며 투자를 거절했다. 이에 박 감독은 “그 반대편에서도 이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다”라며 주변을 설득했고, 심지어 아내 몰래 사비로 1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이지현 작가와 개인 계약을 맺고 대본 작업을 진행했다. 이지현 작가를 섭외하기 위해 6개월간 공을 들였다는 박 감독이다. 이 작가에 대해 “외모나 성품은 순하신데 빌런들의 악랄한 대사를 정말 잘 쓰신다. 장르물에 탁월한 뛰어난 작가”라며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초고가 나온 뒤에도 “드라마가 너무 어둡고 무거워서 편성이 쉽지 않겠다”라는 우려가 쏟아졌고, 친한 동료인 허정도 배우마저 “누가 이런 우울한 이야기를 보겠냐”라며 만류할 정도였다.

◆ 7화에 공개한 범인, 장르물의 공식을 깬 과감한 텐션의 힘

보통의 수사극이 종영 직전까지 범인의 정체를 숨기며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과 달리, <허수아비>는 단 7회 만에 진범 ‘이용우’의 정체를 드러내는 파격을 선보였다. 이에 대해 이지현 작가는 “기획 단계부터 범인을 끝까지 숨기며 끌고 갈 생각은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대중에게 잘 알려진 정문성 배우가 캐스팅된 것 자체가 하나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제목인 ‘허수아비’에 담긴 중의적인 의미를 짚었다. 초반과 중반을 이끄는 허수아비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이다. “초반의 허수아비는 범인이 허수아비 탈을 쓰고 기만적인 살인을 저지르는 물리적인 실체라면, 중후반은 사람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사건을 은폐했던 경찰들과 부조리한 공권력을 상징한다”라고 밝혔다. 가장 범인이 아닐 것 같은 타이밍인 7회에 정체를 공개함으로써, 드라마는 범인 찾기라는 직관적인 재미를 넘어 공권력의 민낯을 추적하는 후반부의 더 큰 몰입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실제로 박준우 감독은 시청자들이 초반 범인 찾기에만 지나치게 몰입하는 현상을 보며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박 감독은 “시청자분들이 초반에 범인이 누구인지 추적하는 데 집중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부담이 컸다”라며, “극에 장르적인 장치들을 많이 깔아두긴 했지만, 자칫 범인 찾기 게임에만 매몰되다 보면 우리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 '드라마의 본질'과 멀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들었다”라고 고백했다. 나중에는 시청자들을 너무 속인다고 욕을 먹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다행히 대중은 이 흐름을 장르적 재미로 기꺼이 즐겨주었다.

이에 박 감독은 범인이 공개되기 전인 4부까지, 매회 확실한 '장르적 연출 콘셉트'를 부여해 드라마의 완급과 감정의 진폭을 조절하는 데 주력했다. 1화 후반부는 심장을 조이는 공포물의 분위기를 극대화했고, 2화는 숨 막히는 추격전의 묘미를 살려 시청자들을 흡입했다. 이어 3화에서는 피해자 민지가 차디찬 시신으로 발견되는 비극을 기점으로, 주인공 태주가 평소 격렬하게 혐오하던 가해자 시영에게 "같이 잡자"라며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감정의 거대한 격랑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매회 정교하게 짜인 연출 시퀀스와 감정선의 진폭 덕분에, <허수아비>는 중반부에 진범이 드러난 이후에도 텐션이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후반부로 갈수록 시청률이 수직 상승하는 압도적인 몰입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 연기 귀신들의 팽팽한 대결, 60회차의 뜨거운 호흡

<허수아비>의 흥행 성공 뒤에는 주연 배우들의 압도적인 열연과 현장을 가득 채운 끈끈한 호흡이 있었다. 박준우 감독은 주인공 태주 역을 맡아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았던 박해수 배우에 대해 “인성이 훌륭하고 현장에서 늘 모범이 되는 사람이라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직접 협업해 보니 과연 명불허전이었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 감독은 “그날그날의 기분이나 컨디션에 따라 흔들리는 배우가 전혀 아니었다”라며 “언제나 유쾌하고 코믹한 태도로 분위기를 띄우며 재미있게 현장을 이끌어가는 분”이라고 회상했다.

특히 박해수의 진가는 강도 높은 촬영 속에서 빛을 발했다. 하루에 무려 30씬을 몰아 찍는 강행군 속에서도 지친 기색 하나 없었고, 심지어 전날 밤새도록 차가운 흙바닥에 묻히는 고된 장면을 촬영한 직후임에도 다음 날 전혀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박 감독은 이를 두고 “단순한 체력적 우세를 넘어, 작품에 임하는 엄청난 정신력이자 프로 정신의 발로구나 싶어 깊은 감명을 받았다”라고 털어놓았다.

박해수는 연기뿐만 아니라 드라마의 감정선을 완성하는 OST 참여로도 작품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증명했다. 그가 직접 가창한 <허수아비> OST Part.2 '잊혀지는 것'은 동물원의 원곡을 포크 스타일로 새롭게 재해석한 곡으로, 삶의 무게와 지워지지 않는 자책을 처연하게 그려내며 시청자의 몰입도를 극대화했다.

태주의 파트너이자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며 극적 긴장감을 조율한 ‘차시영’ 역의 이희준 과의 비하인드도 흥미롭다. 알고 보니 이희준은 박 감독의 고등학교 1년 후배였으나, 현장에서는 철저하게 완벽을 기하는 연기 장인이었다. 박 감독은 “연기를 워낙 탁월하게 잘하기도 하지만, 아주 미세하고 디테일한 연기까지 완벽하게 계산하고 철저하게 준비해 오는 배우”라며 “스스로 다른 배우들에게 연기로서 '선배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부단한 노력으로 똑똑히 보여주고 싶어 하는 열정이 엄청났다”라고 전했다.

최근 영화 <핸섬가이즈>(2024) 등에서 보여준 다소 유약하면서도 코믹한 면모와 달리, 현장에서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뿜어낸 이희준에 대해 박 감독은 특별한 디렉팅을 주지 않고 배우들의 자율성에 맡겼다. 이희준 역시 작품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는데, 사석에서 감독에게 “작년 한 해를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10화 엔딩에서 석양을 배경으로 태주와 함께 마주 서는 씬을 촬영할 때였다”라고 고백했을 정도였다. 박 감독은 편집실에서 화면을 다시 보며 사석에서 대뜸 “너는 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연기를 잘했냐”라고 물어볼 정도로 그의 디테일한 표현력에 거듭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여기에 '기환' 역을 맡아 속을 알 수 없는 야누스적인 매력을 발산한 정문성 배우까지 가세하면서 현장은 그야말로 '연기 천재들의 경연장'이 되었다. 세 배우는 사석에서는 둘도 없이 친한 동료들이지만, 카메라 큐 사인이 떨어지는 순간 서로에게 한 치도 밀리지 않으려는 팽팽한 기싸움을 벌였다. 각자 자기가 맡은 배역의 감정선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매 순간 치열한 연기 대결을 펼친 덕분에, 어떤 회차에서는 정문성이 독보적으로 돋보이고, 또 어떤 회차에서는 이희준과 박해수의 에너지가 화면을 뚫고 나오는 완벽한 시너지를 이뤄낼 수 있었다.

이처럼 밀도 높은 드라마가 작년 7월부터 10월까지 단 4개월 동안, 총 60회차라는 믿기지 않을 만큼 타이트한 일정 속에서 무사히 촬영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이미 현장에 들어갈 때 대본이 8화까지 확정판으로 나와 있었기 때문에 사전 준비에 만전을 기할 수 있었다. 더불어 주연 배우들이 대사 실수는 물론 연기적인 NG를 거의 내지 않을 정도로 신들린 몰입도를 보여준 덕분에, 제작진은 상대적으로 엄청난 속도를 내며 압도적인 퀄리티로 촬영을 끝마칠 수 있었다.

◆‘이것은 판타지다’ 과오를 인정하는 경찰은 없다, 드라마가 남긴 진심 어린 위로

드라마의 대미를 장식한 엔딩에 대해 이지현 작가는 깊은 여운을 남긴 태주의 꿈 장면에 담긴 남다른 의도를 밝히며 설명을 시작했다. 이 작가는 “그 꿈속에는 강성에 있던 모든 사람이 다 나왔으면 했다”라며, “그곳에는 살인범 이용우뿐만 아니라 억울한 용의자로 몰렸던 기범도, 그리고 그 형인 기환도 모두 존재한다”라고 밝혔다. 공권력의 폭력에 휘말려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해야 했던 인물들이 태주의 무의식 속 한 공간에 모두 모여 있는 셈이다.

또한, 꿈속에 등장한 차시영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태주와 시영은 결코 과거의 일로 화해할 수 없는 관계였지만, 마지막에 태주가 먼저 시영에게 손을 내민다”라며 “그 이전까지는 늘 시영이 먼저 손을 내미는 쪽이었지만, 이제는 태주가 시영이라는 인물을 극복해 냈음을 의미한다. 시영은 단순한 좋은 친구라기보다 그 시절 강성의 아픈 시간을 함께 관통했던 인물이라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라고 깊이 있는 해석을 덧붙였다.

이 작가는 이어 작품이 가진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를 복기했다. “저희가 이 드라마를 처음 기획했을 때, 세상에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무결한 영웅이 나타나 잘못을 바로잡는 뻔한 영웅담을 그리려 했던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오히려 “과거에 분명한 잘못과 과오를 저질렀던 당사자가 스스로 그 잘못을 깨닫고 정면으로 마주하며 바로잡아 나가는 이야기, 이것이 바로 우리 드라마가 선사하는 단 하나의 판타지였다”라고 강조했다.

실제 역사 속 수많은 과거사 사건이나 공권력의 남용 사례를 돌아보면, 가해를 저지른 이들은 세월이 흘러도 자신의 과오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며 진심 어린 반성이나 변화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박준우 감독은 기획 초기에 현실성을 반영하여 “과거 잘못된 수사를 했던 태주 같은 경찰은 현실에 결코 존재하지 않으므로, 극 중 태주는 결국 죽음으로 비극적인 끝을 맺으며 대가를 치러야 한다”라고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지현 작가의 생각은 달랐다. 이 작가는 “현실이 비극적일지라도 드라마에서만큼은 뭔가를 바로잡고자 피나는 노력을 한 인물이 비극으로 끝나기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마음의 평안을 얻기를 바랐다”라고 설명했다. 태주가 결국 직업도 지위도 모두 잃어버리는 파멸을 맞이했을지언정, 오랜 시간 곁을 지켜준 소중한 지인인 ‘지원’(곽선영)을 다시 얻게 된 것은 그 치열한 참회에 대한 드라마 나름의 든든한 보상이자 따뜻한 배려였던 셈이다.

이에 박 감독 역시 작가의 뜻을 전적으로 수용하며 연출관을 확장했다. 박 감독은 “윤성여 선생님이나 억울하게 고통받으신 분들의 재심 결과는 이제야 겨우 달라졌지만, 당시 강압적이고 광범위한 수사로 무고한 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후유증을 남긴 공권력의 책임자들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라며 “드라마에서나마 대중 앞에 서서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구하는 진정한 경찰의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떠올렸다. 시청자들이 범인이 누군지 쫓는 직관적인 추리적 재미를 넘어, 80년대 공권력이라는 거대한 허수아비가 저지른 폭력의 시대를 한 번쯤 되돌아보기를 원했던 것이다.

박 감독은 “<그것이 알고 싶다> 시절부터 실화 모티브를 다룰 때마다 피해자와 유족분들이 보기에 이 이야기가 합당하고 맥락이 훼손되지 않았는지 극심한 강박과 책임감을 느낀다”라며, 종영 당일 아침까지도 실제 유족들에게 연락을 취해 드라마에 대한 반응과 마음을 살폈다고 털어놓았다. 박 감독의 이러한 성찰 덕분에 <허수아비>는 자극적인 오락적 장르물의 문법을 영리하게 활용하면서도, 그 기저에는 과거 공권력의 칼날에 짓밟히고 억울하게 희생당한 이들을 향한 진심 어린 참회와 묵직한 위로의 메시지를 단단하게 채워 넣을 수 있었다.

한편, 박 감독은 내심 90년대 사건을 다룬 연작이나 시즌제를 끊임없이 제안했으나, 이 작가가 단호하게 거절했다는 유쾌한 후문도 전했다. 대신 두 사람은 차기작으로 조금 더 편안하고 밝은 톤의 2000년대 초반 배경 범죄 오락물 <파락호>(가제)를 함께하기로 했다고. 장르를 불문하고 드라마라는 대중 매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복기하고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는 두 사람의 진정성 넘치는 동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사진제공. 스튜디오 안자일렌


2026년 6월 2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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