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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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조인성은 그 어느 때보다 밀도 높은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설 연휴 관객과 만나는 <휴민트>를 시작으로 나홍진 감독의 <호프>,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까지. 거장들이 그의 스케줄을 '돌려쓴다'는 말이 나올 만큼, 그는 지금 가장 뜨거운 계절을 지나는 중이다. 하지만 화려한 수식어 속에서도 그는 자신을 "감독의 동료이자 작품의 첫 번째 관객"이라 낮추며 여유로운 깊이를 드러낸다. 이번 작품에서 그가 맡은 국정원 블랙 요원 ‘조 과장’은 극의 안내자인 동시에 직업적 윤리와 진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 힘을 뺀 연기와 깊은 눈빛, 그리고 극의 포문을 여는 강렬한 액션으로 다시 한번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해냈다.
조인성은 현장에서 스태프와 배우 사이의 가교 역할을 자처한다. "누구도 소외받지 않게 하고 싶다"는 그 다정함은 역설적으로 본인이 어린 시절 느꼈던 외로움에서 길어 올린 것이다. 스스로 어른이 되려 노력한다는 그를, 어머니는 여전히 "조 싸가지"라 부르며 웃으시지만 말이다. 초심을 억지로 붙들기보다 문득 떠오를 때마다 행동으로 옮기려 한다는 조인성. 자신의 연기가 관객의 감정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깨끗한 백지'가 되길 바란다. 이제 배우라는 역할을 넘어 현장의 든든한 동료이자 어른으로서 책임감을 품고 카메라 앞에 선다.
영화 <모가디슈>(2021), <밀수>(2023)에 이어 류승완 감독과 세 번째 만남이다. 한 번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웃음) 계속 협업하게 하는 동인은 무얼까.
가볍게 이야기하자면, 사는 동네가 가까워서다. (웃음) 그래서 스킨십이 많다. 류 감독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끊임없이 나를 지켜봐 주신다. 배우가 나이 들며 변하는 과정이 있다고 하시면서, 그 과정을 담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으신 것 같다. 또 감독님과 작업하는 방식이 재미있다. 시나리오가 있어도 감독님은 이를 벗어나는 작업에 대한 열망이 있으셔서, 계속 변주해 나가신다. 감히 건방지게도 내가 같이 만들어 간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연기와 연출, 나아가 제작까지 겸하는 배우들이 있는데 혹시 당신의 목표도 그런 걸까. 프로듀싱 등 연기 이외의 영역에 관심이 있는지.
능력이 출중하신 분들이 겸할 수 있는 것 같다. 그 정도를 꿈꾼다기보다는 내가 출연한 작품 안에서 프로듀싱 역할을 살짝 가미하는 정도다. 작품 안에서 감독님의 동료이자 첫 번째 관객으로 있고 싶다.
노희경 작가, 류승완 감독과 작업하면서 점점 힘을 뺀 연기를 추구하게 됐다고, <휴민트> 기자간담회 당시 밝힌 바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의 방향성은 힘을 뺀 연기가 맞다. 내가 그 씬의 감정을 짚어주기보다는 관객이 각자 백지 상태에 놓여, 그 감정을 온전히 담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커진다. 내가 과하게 감정을 더하면 오히려 방해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연기하고 있다. 노희경 작가님과 <그 겨울, 바람이 분다>(2013)와 <디어 마이 프렌즈>(2016)를 하면서 영향을 받은 부분이 크다. 그전에는 있는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작가님이 ‘이 대사를 위해 앞의 내용을 썼는데 굳이 네가 감정을 모두 실을 필요는 없다, 다 버리고 해도 된다’고 하시더라.
류 감독이 레퍼런스를 많이 주었다고 하던데.
대체로 톤앤 매너가 비슷한 클래식한 영화였다. 영화를 많이 추천하셨지만,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요구하시진 않았다. 하면서 원하는 걸 재빨리 캐치하는 거지. (웃음) 현장에서는 감독님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 이전 씬과 연결해 감독님의 그림을 따라야 효과적이기 때문에, 모든 걸 열어 놓고 가는 게 좋다. 그 과정에서 내 의견도 제시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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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민트>의 연출 의도 중 하나가 ‘클래식한’ 첩보 영화인데, 여기서 클래식함이란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일까.
개인적으로 잔재주를 부리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옛 고전 영화의 정직한 연기라고 할지. 가만히 있어도 느껴지는 힘과 눈빛 연기 말이다.
‘조 과장’은 어떤 인물인가.
극의 안내자 같은 인물이다. 그로 인해 사건이 발생하고 전개되고 마무리되기 때문에 특히 힘을 빼고 안내하는 역할에 충실 하려 했다. 하지만 안내자로만 끝낼 수는 없으니, 액션씬에서는 섬뜩하고 폭발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도록 신경 썼다. ‘채선화’(신세경) 등 휴민트에게 단지 정보만 빼 가는 인물이 아니라 감정으로 교류하는, 블랙 요원으로서 입체적으로 보이길 바랐다. 조 과장의 하루로 시작하는 오프닝은 건조한 느낌을 담으려 했다. 뻑뻑하고 피곤에 쩔어 하루를 시작하는 직장인 같은 인상으로 앵글과 톤을 가져갔다.
길게 이어지는 액션 시퀀스가 정말 임팩트 강하더라. 특히 오프닝의 액션씬은 <밀수>에서 보여준 복도의 단검 액션이 연상되기도 했는데, 어떻게 찍었는지. 또 탁월하게 멋진 액션 각의 노하우가 있다면. (웃음)
촬영 3주 전 액션 스쿨에 가서, 출입구부터 복도 그리고 방 안까지 모두 거의 똑같게 세팅해 놓고 이틀간 데모 작업을 했다. 그후 처음 1~5회차에 걸쳐 찍었는데 사실 좀 힘들었다. (웃음) 액션이 멋있다고 칭찬해주시는데 남들은 없는 나만의 스킬은 없다. 솔직히 멋있는지도 그렇다고 특별한지도 잘 모르겠다. 나 말고 키 큰 사람도 많고 대부분의 배우가 잘 생기지 않았나. 좀 더 멋있게 보였다면 ‘류승완 감독님의 마법’이라고 하고 싶다.
또 <밀수> 액션과의 차이도 가끔 질문하시는데 그 역시 잘… (웃음) 액션 콘셉트와 디자인에 당연히 차별을 두셨겠지만, 나야 ‘이렇게 혹은 저렇게 때려라’ 하면 그대로 따라할 뿐이다. 감독님은 마음에 드시면 컷 하면서 ‘아이 좋아’ 하시고, 폼이 잘 안 살면 시범을 보이며 속도 조절, 작용과 반작용, 왼팔 오른팔 움직임 등 액션 각을 살리는 디렉션을 주시는데, 시키는 대로 하면 다 나오더라. 그런데 공통점은 있다! 류승완 감독님의 액션은 항상 어렵다.
자신의 휴민트를 지키기 위해 상부의 명령을 어기고 나선 조 과장이라는 설정 상, 조 과장?채선화의 멜로 라인이 예상되기도 했다.
박건과 선화의 멜로고, 그 담당은 정민 씨와 세경 씨였다. 개인적으로 조 과장의 멜로가 없는 부분이 좋았다. 어릴 때부터 (멜로를) 많이 하기도 했고, 계속 하다 보면 자기복제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마 멜로를 한다면 드라마(시리즈)를 통해서일 것 같다. 영화 작업의 장점 중 하나가 다양하게 장르적인 작품을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번에는 사랑이라는 감정보다는 대승적인 인물을 연기해 보고 싶어 조 과장에 마음이 동했다.
류 감독이 멜로를 연출하며 당신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고.
내가 멜로적인 조언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지닌 고유의 결과 해석이 있으니 그렇다. 다만 동료이자 선배인 감독님이 더블체크를 위해 질문하실 때는 의견을 밝히는 정도였다. 해외 로케이션이라 공간 사용에 제한이 있고 재촬영하기 힘드니까 더블체크 하신 거다.
조 과장과 선화 사이에 미묘한 감정이 보이는 듯도 한데, 연기하면서는 어떻게 정의하고 들어갔나. 감정적인 텐션의 정도는 어떻게 조율했는지.
그건 관객의 판단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인간 대 인간의 유대감이나 대승적인 마음으로 출발했지만, 조 과장이 미처 자기 감정을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영화 <시카리오>(2015)를 보면 베니시오 델 토로와 에밀리 브런트의 관계가 멜로인 듯 아닌 듯 묘하지 않았나. 그래서 다 보고 나중에 당황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두 배우에게 어떤 감정으로 연기했냐고 물으면 아마도 대답하지 못할 거다. 조 과장이 선화에게 선물을 주지만, 그 의미는 보는 관객의 몫인 것 같다.
조 과장이 선화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는 동인은 무얼까.
자기 휴민트를 두 번 다시 잃고 싶지 않다는 어른의 마음, 그리고 직업적인 윤리도 있다. 자기가 속한 조직과 선화를 구하고자 하는 진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 마음이 흥미로웠다. 왜 키다리 아저씨가 소녀를 도와줄 때 그것이 여자로서 사랑인지 인간적인 호의인지 확답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어떤 이유를 떠나서 그냥 구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텐데 그 마음이 무엇일지는 보시는 분마다 다르게 느낄 것 같다.
후반부 러시아 마피아 보스와의 2대 1 액션 시퀀스 촬영이 많이 힘들었다고 하던데, 당시를 떠올리면.
지상은 폐쇄된 공항이고, 지하는 공장으로 쓰던 장소였다. 장소 자체가 협소하기도 했고 또 밀폐된 장소에 많은 스탭들과 배우로 꽉 차 있으니 공기가 매우 탁했다. 왜 9부 능선이 가장 어렵다는 말이 있지 않나. 고지가 보이는데 끝나지 않아 괴롭지만, 나만의 문제가 아니니까, 이 고통은 끝난다는 생각으로 버티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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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신세경, 정유진 같은 후배는 물론이고 선배인 박해준까지 ‘든든한 형’ 같았다면서 당신을 칭찬하더라. ‘인성이 좋은 배우’ 같다! (웃음)
너무 좋은 말씀들을 해주셔서… (웃음) 우리 엄마가 보면 ‘웃기고 있네!’ 할지도. 아무래도 경험은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해외 촬영이 <모가디슈>(모로코), <호프>(루마니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라 그 애환과 애로 사항을 잘 안다. ‘이쯤이면 이런 마음이 들 텐데’ 하고 나를 비춰 생각해 보니 주변에서는 잘 챙긴다고 느끼는 것 같다. 주연 배우는 프로덕션과 배우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상태를 잘 캐치해서 전달해야 내부의 적이 생기지 않는다. 서로 시시콜콜 다 말할 수 없으니 내가 중간에서 의견을 전달하는 거지. 이런 과정이 쌓이면 힘들어도 즐겁게 지치지 않고 촬영을 잘 마무리하게 되는 것 같다.
동료 배우는 물론이고 현장 스탭들도 아우르는 배려는 어디에서 오는 건가.
어릴 때 나를 떠올리면 좀 많이 외로웠던 것 같다. 일하는 공간에서 혼자 스스로 외로웠던 거지. 그때의 기억이 있어서 누군가를 지켜봐 주게 되는 것 같다. 누구도 소외당하면서 이 현장에 있게 해주고 싶지 않은 마음, 누군가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은 마음이다. 결과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과정이 행복하면 다시 만나고 싶어지지 않나. 이게 어른의 모습 같기도 하고 그렇게 어른이 돼 가는 것 같다. 물론 평소 나를 ‘조 싸가지’라고 부르는 우리 엄마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문뜩 떠오르곤 하는 초심에 따라서 이렇게 행동하게 되는 것 같다.
앞서 ‘멜로’를 한다면 드라마나 시리즈가 될 거라고 했는데, 그러잖아도 좀 더 길게 당신을 보고 싶어하는 시청자가 많다. 앞으로 계획은 없는지.
당연히 영화만을 고집하는 것도 아니고 드라마나 시리즈에도 모두 열어두고 있다. 그런데 요즘 ‘강동구 세 분’(류승완·나홍진 감독, 강풀 작가)이 내 스케줄을 돌려쓰고 있는 형편이다.(웃음) <호프>와 <휴민트> 하느라 몇 년 보냈고, 앞으로 <무빙 2>를 하다 보면 또 1년이 훌쩍 가지 않을까 한다.
디즈니+ <무빙 2>에 대해 전혀 알려지지 않아 궁금했는데, 시즌 2에도 나온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마지막으로 <휴민트>는 어떻게 남을 것 같나.
앗! <무빙 2>에서 잠깐만 나오는 걸 수도 있다! (웃음) 나도 그 내용은 아직 모르는 걸로! <휴민트>는 이제 막 개봉해서 아직 정리가 안 됐다. 지금으로선 감독님 작품 안에서 성장해 가는 내 모습을 담은 작품이 아닌가 한다.
사진제공. NEW
2026년 2월 13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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