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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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여신 강림>, <사랑의 이해>, <그놈은 흑염룡>, <서초동>까지. 문가영은 어느덧 20대를 대표하는 배우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로맨틱 코미디부터 멜로, 성장 드라마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차분하게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그는, 영화 <만약에 우리>로 첫 상업영화 주연에 나선다. 중국에서 큰 사랑을 받은 영화 <먼 훗날 우리>를 리메이크한 <만약에 우리>는 2008년과 2024년을 오가며 한 연인의 엇갈린 시간과 선택을 섬세하게 그려낸 정통 로맨스다. 문가영은 ‘자기만의 집’을 꿈꾸는 ‘정원’으로 분해 사랑과 성장의 서사를 깊이 있게 풀어낸다. 과거는 컬러로, 현재는 흑백으로 표현하는 독특한 시각적 장치 속에서 그는 감정을 과시하기보다 절제된 연기로, 관객의 기억 속 옛사랑과 추억을 조용히 소환한다. <만약에 우리>를 통해 또 한 번 자신의 연기 세계를 확장한 문가영을 만났다. 구교환과의 연기 호흡, 원작과의 차별점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간 가운데, 그가 끝내 꺼내든 연기 원동력은 단순하면서도 분명했다. “좋아하니까, 오래하고 싶다.”
첫 상업영화 주연작이다.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난 소감은.
싱숭생숭하더라. 처음으로 공개하는 날이라 설레기도 했고, 신이 나기도 했다.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올라왔던 것 같다.
중화권 유명 배우 주동우가 주연한 영화 <먼 훗날 우리>(2018)의 리메이크작이다. 원작이 크게 사랑받은 작품인데, 시나리오의 어떤 면에 끌렸나.
원작이 워낙 훌륭한 작품 아닌가. 그 안에 있는 좋은 장치들을 가져와서 한국적인 정서와 재료로 잘 풀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2019)를 연출한 (김) 도영 감독님의 작품이라 신뢰가 컸고, 또 (구) 교환 오빠가 함께한다는 점도 매우 든든했다. 원작이 있다는 부담보다는, 잘 만들어질 거라는 믿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원작에서 꼭 가져오고 싶었던 장치는 무얼까.
흑백과 컬러를 오가는 시각적 장치다. 보통 과거는 흑백, 현재는 컬러로 표현하는데 <먼 훗날 우리>는 반대다. 이런 시간과 컬러의 역전환이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영화에 이런 장점들이 잘 담긴 것 같다. 또 배우로서 흑백 화면에 얼굴이 담길 기회도 흔치 않아서 꼭 하고 싶었다.
남녀 주인공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한 작품인데, 상대역인 ‘은호’역에 구교환의 캐스팅 소식을 듣고 무슨 생각이 들던가.
교환 오빠는 워낙 많은 배우들이 함께 작업하고 싶어하는 분이고, 나 역시 팬이다. 멜로 영화로 만나게 되어 영광이었다. (웃음) 첫인상은 수줍어하고 낯을 가리는 편임에도 그 안에서 재치와 위트를 놓치지 않는 분이라는 느낌이었다. 나와 개그 코드도 잘 맞았고. 지금도 서로 존댓말을 쓰지만, 남들은 잘 모르는 비밀 친구처럼 꽤 친한 사이다. 서로 응원도 많이 하고 있다.
구교환을 ‘천재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오빠 본인은 성장형 캐릭터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천재성이 있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말의 재치나 순발력, 아이디어가 정말 많다. 덕분에 내가 계획하지 않았던 감정이 자연스럽게 나오기도 했었다. 곁에서 그 자유로운 작업 방식을 가까이 보면서 내 (연기) 영역이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다.
구교환에게 배우고 싶은 부분이 많다고 밝히기도. 어떤 면이 그런가.
아이디어다. 또 어두운 장면임에도 순간에 빛나는 재치가 정말 탁월하다. 오빠는 매 테이크 늘 새로운 걸 꺼내 온다. 정말 용기 있고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라는 방증 아닌가. <만약에 우리> 이후 <그놈은 흑염룡>을 바로 찍었는데, 내가 상대역인 (최) 현욱 군을 대하면서, 오빠에게 배운 걸 선배로서 해보겠다고 시도하기도 했었다. 물론 바로 되지는 않았지만, (웃음) 함께했던 상대로서 느끼고 배웠던 부분을 (내) 상대 배우에게도 전해줄 수 있도록 연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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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은 자기만의 집을 갖고 싶어하는 외롭고도 단단한 인물이다. 어떻게 접근했는지.
정말이지 정원은 외로운 존재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집을 찾아가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았기에, 초반에는 조금은 거칠고 날 것 같은 느낌을 의도적으로 내려 했었다. 감독님께서 그간 내게서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이면서 동시에 후반부 현재 시점과 대비되도록 그리려 하셨다. 정원은 은호를 만나면서 점차 성장하고 부드러워진다. 정원에게 은호는 ‘집 같은’ 존재이고 또 그의 아버지(신정근)를 통해서 가족을 만들어 간다. 주변의 좋은 사람들 덕분에 정원이 점차 안정을 얻어 갔다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이런 감정이 우러나오더라.
스모키 메이크업이나 흡연 연기 등 외형적으로도 변화를 주었더라. 이외에도 시간의 간극을 표현하기 위해 신경 쓴 부분은.
스모키 화장이나 흡연이 익숙한 모습은 아니지만, 배우는 본업을 할 때 가장 멋있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해내는 게 내 몫이고, (웃음) 이런 기회를 열어준 감독님께 오히려 감사했다. 시간의 텀이 큰 작품이라, 다양한 스타일링을 시도할 수 있었던 점도 즐거웠다. 연령대에 맞게 표현하고자 나름대로 디테일한 노력을 들였다. 다만 다른 작품과 촬영 시기가 맞물려서 헤어의 길이에 변화를 주진 못했고, 과거는 웨이브로 현재는 생머리로 스타일을 달리했다. 말투나 행동에도 변화를 줬다. 과거에는 훨씬 대사를 날리듯이 했고 손동작이 많았다면, 현재의 흑백 화면에서는 거의 손을 움직이지 않는다.
후반부 정원과 은호의 완전한 헤어짐을 보여주는 버스씬이 인상적이다. 촬영장에서 다들 눈물바다였다고. (웃음)
지금 기억하기로는 두 테이크에 찍었다. 내용상 후반부지만, 촬영을 시작하고 일주일 이내에 찍은 장면으로, 교환 오빠와 한 번도 맞춰보지 못한 상태였다. (웃음) 정원의 감정이 가장 높은 지점이자, 이별의 마지막 결단을 행동으로 옮기는 매우 중요한 장면이라 그만큼 몰두했던 것 같다. 보통 대놓고 울 때보다 참는 모습을 보면서 더 슬프고, 또 참으려고 하면 더 눈물이 나지 않나. 버스 안이라는 공간이 주는 힘이 컸던 것 같다. 막 울고 싶은데 옆에 사람이 있어서 차마 그럴 순 없고, 참으면 참을수록 숨도 가빠지면서… 그렇게 나온 장면이다. 감사하게도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같이 울어줘서 큰 힘이 됐다. 내 진심이 통했나 싶어서 안심됐었다.
십 수년만에 우연히 만난 은호와 정원이 재회의 여러 감정을 나누는 순간 아이의 전화가 걸려와 두 사람을 현실로 끌어올리지 않나. 원작에서는 상당히 길게 표현한 부분인데, <만약에 우리>에서는 비교적 짧게 처리했더라.
은호와 정원, 힘든 청춘의 시간을 공유한 서로를 만나 과거의 시간에 잠시 머문 두 사람에게 현실을 일깨우는 존재라 하겠다. 아이의 전화가 없었다면, 관객이 여러 결말을 상상할 수 있겠지만, 명확히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현실과 맞닿은 이야기로 완성됐다고 생각한다. 촬영하면서 정말 고민을 많이 했던 장면이었다. 어떤 대사에 상대를 쳐다볼지, 그 타이밍에 따라 감정의 농도 차이가 많이 날 수 있기 때문에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었다. 한 번 더 쳐다볼지, 손이 스칠지 안 스칠지, 반지를 낄지 말지 등. 교환 선배가 아이와 영상 통화하는 걸 보면서 순간 어떤 표정을 지을지 잘 모르겠더라. 그게 정원의 심정일 것 같았다.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있기 힘들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가게 됐다.
은호의 아버지와는 거의 부녀 같은 모습이다. 마지막 정원이 그의 편지를 읽을 때는 저절로 마음이 찡하더라.
정근 선배님은 너무 멋있다. 그 편지를 읽는 씬은, 원래는 감독님께 담담하게 읽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내가 먼저 당차게 (웃음) 말씀드렸었다. 편지 내용을 일부러 읽지 않고 있다가 슛 들어가서 펼쳤는데, 정근 선배님의 글씨를 보는 순간 확 눈물이 나는 거다. 감독님께 죄송하다고, 그런데 다시 찍어도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해서 그대로 가기로 했다. 촬영지가 남해였는데 풍경도 너무 예뻤고, 어떻게 보면 은호보다 더 가족 같은 존재이기도 해서 굉장히 슬펐기도 했었다.
관객으로 지켜보다 보면 두 주인공이 잘되기를,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정원의 입장에서, <만약에 우리>는 해피엔딩인 걸까.
개인적으로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정원이 꿈을 이루기도 했지만, 감정적으로 마무리를 지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원과 은호는 타이밍이 참 잘 맞는 사람들이 아닐까 한다.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걸 다 주고, 마침표를 찍었다는 점이 매우 영화적이고 아름답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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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여신 강림>, <그놈은 흑염룡> 같은 로맨틱 코미디에서는 통통 튀는 모습을, 드라마 <사랑의 이해>에서는 한층 성숙한 로맨스를 선보였다. 그간 작품 중 로맨스 장르가 많다.
생각해 보면 멜로, 사랑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꼭 연인간의 사랑이 아니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장르이지 않나. 오래만에 하는 영화가 마침 멜로라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비교적 내가 많이 해왔고, 잘할 수 있는 장르이기에 그렇다.
정통 멜로라는 점에서 <사랑의 이해>가 떠오르기도 한다.
감사하게도 <사랑의 이해>를 많이 분이 좋아해 주셨다. 비슷한 결이라 전작을 좋아하신 분이라면 <만약에 우리>도 좋아해 주시지 않을까 한다. 다만, <사랑의 이해>의 ‘수영’과 이번 ‘정원’의 선택은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당시 인터뷰에서 도망치는 것도 용기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정원은 회피가 아닌 어떤 선택을 했기에, 분위기는 비슷해도 두 캐릭터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문가영만의 멜로 접근법이 있다면. (웃음)
음… 자신 있는 게 하나 있다! 상대 배우분과의 케미다. (웃음) 멜로는 서로의 호흡이 중요한 장르라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시선을 통해 관객에게 ‘사랑받고 있고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해주니 말이다. 그간 선배님들께 그런 시선을 많이 받았고, 그 시선을 다시 상대방에게 되돌려주려 했다.
올해만 드라마 <그놈은 흑염룡>과 <서초동>으로 시청자를 찾았고, <고래별> 등 차기작을 연속으로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쉼 없이 연기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얼까. 또 스스로를 채우는 방법이 있다면.
좋아하는 마음이다. 잘하고 싶고, 그리고 오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어떻게 잘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은 아직 배우는 중이고 찾아가고 있지만, 너무 좋아하니까 계속 해 나가고 싶다. 또 연기 외에도 다른 시선을 열어 주는 이야기를 많이 읽으며 스스로를 채워가고 있다.
해외 팬덤이 매우 커서 이번 영화에도 관심이 클 것 같다. 어떻게 봐줬으면 하는지. 또 외국어에 능통한 거로 아는데 해외 진출 계획은 없는지.
한달 전쯤 한 미팅을 했는데 매우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언어가 달라도 눈만 보면 감정이 통한다는 말씀이었다. 듣기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배우의 오디션을 볼 때 사운드를 끄고 얼굴을 본다고도 하더라. 마찬가지로 해외에서든 어디든 언어가 달라도 이 영화가 잘 통할 거라 생각한다. 좋아해 주시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있다. 독일어는 사용할 기회가 많지 않아서… (웃음) 물론 기회가 된다면 해외에서 작품하고 싶다. ‘무언가 오나’ 하는 기대감에 차 있긴 하다. 열심히 해보겠다.
산문집 ‘파타’를 낸 작가이기도 하다. 요즘 관심 있는 주제나 책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음… 서머싯 모음의 ‘서밍업’을 재미있게 읽었다. 글에 대한 책이라 더 좋았다. 또 ‘폭풍의 언덕’도 흥미롭게 봤다. 연달아 작품 하면서 잠시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서 읽은 소설이다.
사진제공. ㈜ 쇼박스
2025년 12월 31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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