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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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만약에 우리>는 2008년과 2024년을 오가며, 한때는 서로에게 전부였던 연인 ‘은호’와 ‘정원’의 시간을 따라가는 로맨스 드라마다. 과거는 컬러로 현재는 흑백으로, 시각적인 선명한 대비를 통해 생동감 있고 클래식한 특유의 무드를 형성했다. 정백연·주동우 주연의 중국 영화 <먼 훗날 우리>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김도영 감독이 <82년생 김지영>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구교환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게임 디렉터 ‘은호’를 연기하며, 특유의 날것 같은 감정과 섬세한 결을 더했다. 그는 스스로를 “당신의 주변인 같은 배우”라고 소개한다. 대단히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향이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외치고 표현하고 싶은 욕망을 품고 있는 사람. 멜로, 장르물, 연출까지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어온 구교환은 현재 장편 연출작 <너의 나라>를 준비 중이기도 하다. <만약에 우리>를 통해 그가 말하는 사랑, 실패, 그리고 배우로서의 태도를 들어봤다.
오랜만에 멜로 영화에 출연했다. 영화 <반도>(2020) 이전에는 멜로 장인이었다고 자처하기도 했는데, 개봉을 앞둔 소감은.
뻔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결국엔 진심인 것 같다. 영화를 작업하는 이유는 관객들과 최종 결과물을 나누고 싶어서다. 그래서 GV나 무대인사도 자주하고 싶다. 아직도 <만약에 우리>를 찍고 있는 기분이랄까.
정백연과 주동우가 주연한 중국 로맨스 영화 <먼 훗날 우리>가 원작이다. 원작을 봤는지.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원작은 아직 못 봤다. 사실 영화 <대부>도 아직 못 봤다. (웃음) 다만 주변을 통해 <먼 훗날 우리>가 좋은 이야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선물처럼 <만약에 우리> 시나리오를 받았다. 산울림 선배의 노래 ‘너의 의미’와 아이유 씨의 리메이크곡 ‘너의 의미’, 둘 다 너무 좋아하는데 이처럼 좋은 리메이크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참여하게 됐다. <만약에 우리>가 개봉(12월 31일)하고 나서 원작은 꼭 챙겨볼 생각이다.
김도영 감독과의 작업이 특히 인상 깊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감독님은 ‘부산영평상’(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에 빛나는 배우이기도 하시다. (웃음) 배우로서 연출자로서 선배이고, 내가 도착하고 싶은 지점에 있는 분이기도 하다. 감독님의 장편 데뷔작 <82년생 김지영>(2019)부터, 아니 그 이전 단편 연출하던 시절부터 좋아했고 꼭 한번 디렉션을 받고 싶었다. 무엇보다 감독님이 펼치는 ‘은호’ 이야기가 궁금했다. <만약에 우리>를 찍고 나서, 내 연출작인 <너의 나라>를 준비하다가 감독님이 해주셨으면 하는 역할이 있어서 출연을 제안 드렸다. 어떤 역할인지는 아직 비밀이다. 참 좋은 품앗이 아닌가! (웃음)
특별히 기억나는 김도영 감독의 디렉션이 있다면.
우선 동선이다. 촬영하는 내내 카메라 유압이 풀려 있어서 우리가 어디로 가든 찍을 준비가 돼 있었다. 배우로서 존재할 수 있게끔 동선과 연기를 모두 열어 두셨다. 또 애드립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시는데, 생각해 보면 애드립은 없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감독님이 리허설하면서 상황에 맞춰 콘티를 유연하게 변경하셨다. 만약에 애드립이 있다면, 그건 내가 아닌 감독님의 애드립이다. ‘은호야, 이런 대사 어떨까’ 하는 식으로 많은 아이디어를 주셨기 때문에, 애드립이 많아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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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첫 만남부터 2024년 재회까지, 십여 년의 시간의 간극이 있다. 꿈과 사랑에 부풀었던 20대 청년부터 성공한 30대 후반까지 ‘은호’라는 캐릭터를 아주 매력있게 살린 것 같다. 연기 주안점은.
음, 은호가 매력적으로 보였다면 감사! 그런데 내가 뭘 했다기보다는 김도영 감독님의 디렉션 덕분이었다. 여느 작품보다 감독님의 말을 더 섬세하게 들으며 감정의 레벨을 아주 미세하게 조절하려 했다. 나머지 절반은 상대역인 ‘정원’을 연기한 문가영 씨의 몫이다. 가영 씨 덕분에 자연스럽게 감정이 차올랐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엔딩 무렵 강가에서 쭈그리고 앉아 우는 장면이 있는데, 나도 내가 그렇게 울 줄은 몰랐다. 그런데 가영 씨 표정을 보니까 너무 서러워지면서 눈물이 쏟아 지더라. 상대에게 영감을 주는 배우구나 싶었다.
언급한 씬에서 ‘만약에 우리’라는 대사가 서너 번 반복되는데, 약간은 작위적인 인상도 든다. 이때 은호의 감정에 어떻게 접근했는지.
개인적으로 그 대사가 되게 ‘시’ 같았다. 실생활에서 우리가 그렇게 말하진 않으니 말이다. 영화라는 작업이 어떤 이런 현실 판타지를 실현하고 채워 나간다는 생각에 그 대사를 좋아한다. 배우로서는 담백하게 해보자고 마음먹었는데 여지없이 울어버리고 말았다. 계획 실패다. (웃음) 농담이고 계획대로 되진 않았지만, 실패는 아니다. 감독님과 가영 씨 덕분에 자연스럽게 완성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지하철에서 은호가 정원을 쫓아가는 장면에서 절박함이 넘치는데, 그때 왜 은호는 정원을 붙잡지 않았을까. 실제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나.
계단을 뛰어가면서는 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을 거다. 그때 서너칸을 단숨에 뛰는 스스로에 놀랍기도 했다! (웃음) 거의 < D. P. > (구교환이 출연한 넷플릭스 시리즈)였다. 그렇게 쫓아간 후 막상 마주했을 때는 두려움이지 않았을까. 그 장면은 왜 이렇게 안타까울까. 감독님이 정말 잘 만드신 것 같다. 실제의 나라면… 구교환의 여러 버전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 잡을 수 있는 구교환도 또 잡지 못하는 구교환도 있을 것 같다.
로맨스 영화이니만큼 비주얼 합도 중요한 부분인데, 문가영과 호흡은 어땠나.
비주얼은 관객분들이 보시고 결정할 문제이고, 그보다는 내면의 호흡이 중요한 것 같다. 둘 다 같은 RPM을 가진 것 같다. 장면을 대하는 뜨거움, 진심으로 바라보는 눈빛 등 가영 씨는 정말 정원처럼 은호를 바라봐 준다. 가영 씨는 딕션과 발성이 뛰어난데 그보다 놀라운 건 감정적인 애드립을 전한다는 사실이었다. 항상 처음 테이크를 대하는 것 같은 감정 상태를 만들어 주더라. 나중에 농담처럼 ‘다른 장르에서 또 만나요’ 하기도. 그러면 ‘누아르는 어때요?’ 하다가, ‘요즘 분위기로는 코미디를 찍어야 할 것 같아요.’ 하며 잘 어울렸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영화인 만큼, 긴 시간을 표현하는 데 있어 비주얼적으로 차별화를 둔 부분은.
음… 머리가 유광이냐 아니냐 같은 아주 미세한 차이들이 있다. 은호의 머리가 현재로 오면서 자연스럽게 변화하도록 설계했다. 그런데 과거와 현재의 비주얼에 차이를 두는 건 전적으로 감독님과 스태프들의 몫이었다. 연기적으로는 10년이 지나서도 은호가 많이 달라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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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은호, 그러니까 과거의 은호는 게임 디렉터를 꿈꾸지만, 연거푸 좌절을 맛본다. 개인적으로 공감된 지점이 있던가.
개인적으론, 연출을 꿈꾸는 입장에서 공감이 많이 됐다. ‘이런 게 되겠어?’ 하는 코멘트에 상처받고 제작을 거절당할 때의 좌절감 등. 그럴 때마다 ‘나다운 이야기를 잃지 말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 왜 하고 싶은지’ 등 스스로 질문을 많이 한다. 이런 질문들이 은호와 일맥상통하고, 이는 비단 창작자만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모든 청년이 갖고 있는 고민이 아닐까 한다.
좌절을 극복하며 배운 점이 있다면.
매번 실패하며 살지만, 그 실패에 함몰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게도 완성하지 못한 시나리오와 제작되지 못한 이야기들이 정말 많은데 결국엔 다 쓰이더라. 얼마전 연출한 뮤직비디오에 내가 예전에 만든 단편 영화 속 장면을 가져다 썼었다. 글에는 유통기한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라는 걸 느꼈다. 마치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내 냉장고 속 오래된 타바스코 소스 같다고 할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 내 안에 남아 있고, 언젠가 그걸 사용할 시기가 오는 것 같다. 그래서 실패의 순간 ‘가짜 실패’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은호 같은 시절을 통과하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배운 건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거다.
과거와 현재 사이의 서사가 의도적으로 비어 있다. 은호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 공백이 <만약에 우리>의 킥이라고 생각한다. 시작과 끝은 있고 중간은 없는데 의도적으로 비워 둔 편집과 서사이기에 그렇다. 우리 영화는 은호와 정원의 이야기지만, 나아가 사랑을 경험해 본 모든 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모두가 은호요, 정원이라고 할지. ‘매직 이프’라고 하지 않나. 그 빈칸은 관객마다 다르게 채워질 거로 생각한다. 나 역시 그 공백을 굳이 메우려 하지도 또 따로 서사를 생각하지도 않고, 글(시나리오)에 충실하게 수행하고자 했다.
보통 과거를 흑백으로 현재를 컬러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만약에 우리>는 과거를 컬러로 현재를 흑백으로 배치했다. 원작의 시각적인 장치를 그대로 가져왔는데 흑백 속의 은호와 정원은 행복할까. 쉽게 말해 이 영화는 해피엔딩인 걸까.
행복은 계속 이어질 수 없다는 생각이다. 문득문득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감정, 지속된다면 한 3초 정도? (웃음) 해피엔딩을 묻는다면, 개인적으로 ‘그렇다’ 이다. 특히 은호와 정원에 집중해서 보면, 이 영화는 ‘잘 이별하는 영화’다. 이런 의미에서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감독님의 말씀대로 청년의 이야기이기도 해서, 은호와 정원이 각자의 꿈을 이뤘기에 해피엔딩이 아닐까 한다.
현재 장편 연출작 <너의 나라>를 준비 중이다. 꾸준히 연출하면서 ‘나다움’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이 있다면.
영상에 따라 다르다. 광고성 영상을 찍을 때는 제품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 주안점이다. 내 안에서 출발한 영화라면 내가 모르는 이야기, 궁금한 이야기에 끌린다. 이미 아는 이야기를 다시 하는 건 재미가 없는 것 같다. 어쩔 때는 관심 있는 음악을 써보고 싶어서 또 어떤 배우를 캐스팅하고 싶어서 연출할 때도 있다. 배우 콜린 패럴을 좋아하는데 보고 있으면 ‘저렇게 복합적인 연기를 할 수 있구나’ 감탄하게 된다. 이렇듯 연출하게 되는 이유는 하나가 아닌 복합적인 요소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너의 나라>는 장도연 씨가 배우로서 너무 매력적이라 느껴서 제안드렸고, 내년 개봉 예정이다.
연기에 재능과 노력의 영역이 있다면, 재능형 배우라는 인상이다. (웃음) 문가영이 ‘천재’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고.
내 재능은 노력이다. (웃음) 성장형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해당 장면을 시뮬레이션하는 등 내 방식으로 훈련하고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연설장면이 있다면, 소리 내어 외쳐보기도 하고 또는 날 것의 장면이라면 절반만 준비해 가기도 한다. 그 장면에 적합한 훈련과 준비법이 있는 것 같다.
배우로서 기쁜 순간은. 또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
최근에 리딩하면서 알게 된 감정이다. 녹화하는 것도 촬영하는 것도 아닌데, 어떤 대사를 너무 몰입해서 읽었다. 관객이 보는 것도 아닌데 혼자서 기분이 너무 좋은 거다. ‘아 결국에 나는 대단히 소극적이고 내성적이기도 하지만, 대단히 무언가를 표현하고 외치고 싶어 하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가지 면이 공존하는 거지.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좋은 질문 감사하다! (웃음) 멀리 있는 배우 말고, 그냥 주변에 있는 사람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 <만약에 우리> 리딩 할 때도 이렇게 소개했다. “당신의 주변인, ‘은호’ 역의 구교환입니다”라고.
사진제공. ㈜쇼박스
2025년 12월 29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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