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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오디션’ 이후 15년, 배우병 걸리지 않은 나를 칭찬해 <정보원> 허성태 배우
2025년 12월 2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첫 주연작이기도 하지만, 저와 남혁은 닮은 부분이 많아요.” 운명론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영화 <정보원>과 김석 감독과의 만남만큼은 “운명 같다”고 말하는 배우 허성태. <범죄도시>, <오징어 게임> 등에서 강렬한 악역을 선보였던 그는 이번엔 매너리즘에 젖어 있지만 속 깊은 정의감과 순정을 품은 형사 ‘오남혁’으로 돌아왔다. 스스로도 “찌질함이 닮았다”며 웃는 그는, 오남혁을 연기하며 연기를 처음 시작하던 시기의 자신을 자연스레 떠올렸다고 한다. 2011년 SBS ‘기적의 오디션’을 통해 배우의 길에 들어선 늦깎이 신인 허성태. 그는 가족 덕분에 긴 무명 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유명세에 휩쓸려 자만하지 않은 스스로를 칭찬한다. ‘자기 객관성을 잃지 않기’ 예나 지금이나 그가 마음속에서 가장 중요하게 붙들고 있는 원칙이다.

한국 영화가 귀한 요즈음, <정보원>으로 관객을 찾는 소감은.
아시다시피 업계가 힘든 상황이지 않나. <정보원> 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 전체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조금이나마 극장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면 감사하겠다. 배우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초심을 잃지 않고 연기하는 것이라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제24회 뉴욕아시안영화제 개막작으로 초청됐는데 현지 반응은 어땠나.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으로 인지도가 높지 않나.
그렇잖아도 “스퀴드 게임! 덕수!”하고 알아보시는 거다. 처음에는 제작사에서 사람을 심어 놓은 줄 알았다. (웃음) 스케줄 상 관객 반응을 확인하지 못했는데 감독님 말씀으로는 관객들이 쌍따봉을 날릴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고 하더라.

<정보원>의 어떤 매력에 끌렸는지. 참여하게 된 이유는.
사실 처음엔 거절하려고 했었다. 1롤은 처음이라 부담감이 있었고,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하지 않더라도 예의상 직접 뵙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김석 감독님과 제작진을 만났었다. 그런데 나와 너무 코드가 맞는 거다. 대본에서 느끼지 못한, 그러니까 대본에 표현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개그 코드부터 글의 빈틈을 채우는 센스까지 나와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배우는 심각한데 상황은 웃긴, 그 미묘한 결이 좋았다. 또 영화 <황해>를 만든 제작진의 작업 방식도 마음에 들더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좋아서 신뢰가 갔었다. 그래서 한 가지만 다짐하고 들어갔다. 저예산 영화의 특성상 배우나 스탭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었다. 무슨 말이냐면, 예산이 충분하지 않다 보니, 후반 작업으로 갈수록 힘이 빠지고 홍보는 흐지부지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참여한 스탭들이 허무해지는데, 다행히 지금 홍보까지 그 약속을 잘 지켜 주셨다.

김석 감독은 당신을 왜 캐스팅했는지, 그 이유는 무얼까. (웃음)
그간 악역을 많이 하면서 쌓여온 내 이미지가 있는데, snl 같은 예능을 통해서 본모습을 보신 것 같다고 하더라. 말했듯이 <정보원>의 오남혁은 진지하게 연기해야 더 웃긴 톤이 살아나는 캐릭터인데, 이런 부분이 나와 잘 맞을 거라고 판단하신 것 같다. 상대역인 조복래 배우를 통해서도, 내가 캐릭터와 어울릴지 미리 확인하셨다고도 들었다. 이건 다른 말이지만, 김석 감독님과 정말 통하는 부분이 많다. 내가 원래 단 둘이 뭐 하는 걸 좀 어려워하는데 감독님과는 그런 것 없이 너무 편하다. 조깅하는 데 괜히 옆에서 뛰기도 하는 등 스스로도 놀랄 지경이었다. 그런데 성격은 전혀 딴 판이다, 좀 재미없으신 분이다. 하하하

오남혁이 비호감으로 비춰질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어떻게 매력을 살리려 했는지.
오남혁은 처음엔 비호감 강력반 형사지만, 속 깊은 사람이라는 게 후반부에 드러난다. 매너리즘에 빠져서, 될 대로 되라는 마인드로 살다가 각성하게 되는 거지. 이를 보여주는 장면이 후반부 액션씬이라, 이를 멋있게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무술팀이 액션을 잘 짜주어 만족스럽게 나온 것 같다. (웃음)

1롤에 대한 부담감이 연기 내외적으로 있었을 것 같다.
결정하기까지는 고민이 많지만, 일단 정하고 나면 부담감을 크게 느끼진 않는 편이다. 코믹 장르라 부담감보다는 아이디어를 많이 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만큼 현장을 즐겼던 것 같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이번에는 주연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아무래도 앞에 나서게 되는 부분이 있더라. 뉴욕아시안영화제에 가서도 안 되는 영어로 막 앞장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 꼭 주연이라서가 아니라 이번 현장은, 내가 중간에서 의견을 조율하는 일이 많았었다. 배우, 제작자, 감독, 홍보팀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다 보니 예전 LG 다니던 시절에 마케팅 업무를 하던 때가 떠오르더라. 그때와 하는 일이 흡사했다. 아, 그리고 이번에 내 로망을 하나 이룬 게 있다! 영화 단체티를 맞춰서(사비로) 팀 전체에 나눠드렸다. 지금 입고 있는 이 옷으로, 아주 뿌듯하다. (웃음)

‘홍보’에 진심인 게 느껴진다. (웃음) 예전 회사원 시절의 경험이 빛을 발할 것 같다.
진짜 11월에 들어서고 부터는 LG 전자 다니던 시절보다 더 바쁜 것 같다. 당시 기획·마케팅 업무를 했던 터라 자연스럽게 뇌가 그쪽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당연스럽게 홍보도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다. 쇼츠 영상 아이디어, 편집 포인트까지 의견을 내고 매일 업로드하고 있는 중이다. 서민주 등 다른 배우들도 아이디어를 많이 내줘서, 적극적으로 추천해서 올리고 있다. 함께한 배우진과 스탭들이 <정보원>으로 보람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 커서, 뭐라도 하나 더 하게 되는 것 같다. 영상에서 춤을 춘 것도 춤을 추지 못해 안달 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홍보에 도움이 된다면 못 할 게 없어서다. (웃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동기 부여된 현장이었다.

정보원 ‘조태봉’으로 분한 조복래와의 티키타카가 좋더라. 호흡은 어땠나.
복래는 정말 다재다능한 친구다.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감독님께 들으니 골프도 잘 친다고 하더라. 무엇보다 씬을 대하는 진지함이 큰 친구다. 이번에 복래는, 크리넥스 곽티슈의 ‘곽’과 같다고 할까. 휴지 같은 나를 잘 잡아준, 포용력이 큰 배우였다.

오남혁 캐릭터가 스스로와 닮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싱크로율은 어떤가.
음, 약간 찌질하고 촐싹거리는 것도 비슷하고, (웃음) 위험을 직감하면 ‘잠시만요!’하면서 회피하는 모습은 딱 나 인듯! 내가 평소 과히 멋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무엇보다 ‘각성의 순간’이 닮은 것 같다. 그런데 확실히 다른 면은 있다. 내게 한탕주의는 없거든. 내 인생에 몇 십억, 몇 백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2세가 없으니) 번 돈을 충분히 쓰다가 남으면 기부하고 싶은 마음이다.

‘각성의 순간’이란. SBS 서바이벌 ‘기적의 오디션’(2011) 출신인데 당시가 생각났을까. 오디션 합격 후에도 무명의 시간이 길었는데 이 시기를 버틴 힘은.
바로 그거다. 오남혁의 각성하는 장면에서 예전에 ‘기적의 오디션’에서 문 뒤에 서있던 기억이 나더라. 그때 ‘엄마 아들인데 할 수 있지’ 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였었거든.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기적의 오디션’ 보러 상경하던 전날, 냉장고에 막걸리와 통닭 한마리를 넣어두고 ‘성공 못하면 부산에 안 오겠다’는 쪽지를 부모님께 남겼었다. 물론 부산에 자주 갔지만, 포기하면 쪽 팔린다는 마음에 그렇게 스스로 다짐한 거지. 그러다가 처음으로 한달에 단역을 5개 해서 300만원을 벌게 됐을 때 ‘한 달에 이 정도면 되겠다’는 마음이 들더라. ‘될 때까지 해보자’는 생각이 원동력이 됐던 것 같고, 그 시간을 버틴 힘은 가족이다. 지금 어머니가 팔순을 앞두고 계신데 막내 아들 나오는 것 본다고 예전보다 더 활기차게 사신다. 나 역시 여러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고, 요즘에는 해외 여행 등 자주 모시고 다니고 있다.

늦깎이 배우로, 어떻게 보면 ‘이직에 성공한 중년의 아이콘’이기도 한데 (웃음), <오징어 게임>의 성공 이후로 공황을 겪기도 했다고. 이후 스스로를 어떻게 다스렸는지.
중심을 잡을 겨를도 없이 공황장애가 왔었다. <오징어 게임>이 터진 당시, 마침 드라마 <붉은 단심> 촬영을 시작했는데 다들 내가 얼마나 잘 하는지 지켜보는 것 같은 거다.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사지가 떨리고 자꾸 위축이 되더라. 연출을 맡은 유영은 감독님이 자기도 이런 상황에 처한 적이 있다고, 감독님도 단편으로 성공해서 주목받고 시리즈를 연출하게 된 케이스였다. 내게 서울로 가서 어느 병원을 찾아가라고 상세하게 알려주셨다.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점차 안정을 찾아갔던 것 같다. <붉은 단심>으로 KBS에서 조연상을 받았는데, 내게는 첫 상이라, 이런 점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웃음)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며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성공에 취하지 않고 내 자신을 냉정히 보려고 한 점은 잘한 것 같다. <범죄도시>나 <오징어 게임>으로 알려졌을 때 주변에선 즐기라고 했고, 심지어 매니저 중 한 분은 현장에 가서 수그리고 있지 말고 떳떳하게 있으라고 할 정도였다. (웃음) 여하간, 성공 분위기에 취해서 스스로를 오해하지 않고, 소위 배우병에 걸리지 않은 모습은 스스로 칭찬하고 싶다. 한마디로 자기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 했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배우로서, 앞으로 어떤 길을 걷고 싶은지.
특별히 앞날을 계획하지는 않는 것 같다. 회사 다니면서 계획서를 정말 많이 썼는데 그 계획대로 되는 건 없더라. 어떤 생각도 없이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충실하다 보니 이번 <정보원>의 ‘남혁’ 캐릭터도 만나게 된 것 아닐까 한다. 악역을 하다가 형사를 했는데, 앞으로 나올 작품을 보면 또 악역이 있다. 그런데 악역 중에서도 정말 멋있는 악역이니 기대해 달라.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과 재미있고 즐겁게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다. 특히, 같이 작업하는 분들께 ‘짐’이 되고 싶지 않다. 만약 짐이 된다면, 평생의 빚이라는 마음으로 임하려 한다.

<정보원>은 무슨 의미로 남을 것 같나. 또 관전 포인트를 꼽는다면.
첫 주연작이기도 하지만, (말씀드렸듯이) 남혁은 나와 많이 닮았다. 운명론을 잘 믿지는 않지만, 첫 주연에 나와 닮은 캐릭터, 거기다 김석 감독님까지 내게는 운명인 것 같다. 거절했다가 하게 된 점도 그렇고 감독님과 너무 잘 통하는 점도 그렇고, 지금까지 힘들었던 시간이 <정보원>을 만나려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특히 감독님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가고 싶다. 관전포인트는 남혁이 각성하는 순간이다. 관객들이 나처럼 카타르시스를 느꼈으면 한다. 그리고 어설픈 로맨스도 있으니, 귀엽게 봐주시길! (웃음)

마지막으로 흥행 공약 한마디! 천만 공약이 유튜브에서 화제던대!
천만 관객이 들면 스탭들한테 100만원을 드리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말하니 옆에서 복래가 눈이 휘둥그레지며 쳐다보더라. (웃음) 잘 됐으면 하는 염원을 담은 바람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100만 관객이 들면 10만원, 200만 관객이 들면 20만원, 이런 식으로 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스탭들이 한 고생을 생각하면 정말 어떻게 해도 부족할 것 같다.



사진제공. ㈜엔에스이엔엠


2025년 12월 2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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