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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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열심히 하고 싶은데 대충 열심히 하는 순간이 발견되는 거예요” 배우 박정민이 촬영장을 떠나 안식년을 선언한 이유다. 그러나 ‘안식년’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출판사 대표로서 베스트셀러를 론칭하고, 유퀴즈와 유튜브 출연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온 그다. 최근에는 라이브 온 스테이지 ‘라이프 오브 파이’ 한국 초연에서 주인공을 꿰차며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영화 <얼굴>은 3주, 13회차의 짧은 촬영 기간과 2억 원의 순제작비로 완성된 초 저예산 영화. 노개런티로 참여한 박정민은 시각장애인 전각 장인 '임영규'의 젊은 시절과 그의 아들 역할을 1인 2역으로 소화했다. 압도적인 연기로 필모그래피에 의미 있는 한 줄을 더했다. “촬영장을 떠나 보니 확실히 본업이 제일 좋았다”는 박정민, 출판업에 대해서도 “잠깐의 외도가 아닌, 작은 목소리의 스피커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영화 제작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얼굴>에 깊은 애정을 드러낸다.
먼저 토론토영화제에 초청된 걸 축하한다. 다녀온 소감 한 말씀.
기분 좋게 다녀왔다. 초반에 많이들 웃으셔서 걱정했는데, 이게 웃긴 영화인가 싶어서, (웃음) 다행히 중간부터 집중해서 보시더라. 한국 특유의 장례식장 풍경이 흥미롭게 다가갔는지 이때 되게 많이 웃었다.
젊은 임영규(박정민)와 노년의 임영규(권해효)가 분명히 다르게 생겼음에도 말투나 행동 등이 한 인물처럼 겹쳐 보이더라. 싱크를 맞추기 위해 노력한 부분은.
말투까지는 따라하지는 않았고, 나보다 선배님의 목소리가 깊으셔서 이런 부분을 참고했다. 행동보다 감정적인 싱크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청계천 공장 앞에서 노점하는 장면을 먼저 촬영한 후, 며칠 텀이 있어서 선배님이 그사이에 내가 연기한 걸 찾아보셨다고 한다. 취할 수 있는 건 취해서 톤을 맞추려고 하신 듯하다.
아들 ‘임동환’과 젊은 시절의 임영규, 1인 2역을 연상호 감독에게 먼저 제안했다고.
한 사람이 연기하면 효과적일 것 같더라. 감독님이 아들 역할을 제안 주셔서, 알았다고 하고, 만화책을 다시 꺼내 봤었다. 젊은 아버지를 아들이 같이하면 영화적으로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만약 둘중 하나만 한다면 젊은 아버지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젊은 아버지의 캐스팅이 정해졌는지 여쭤보니, 감독님이 내 의도를 간파하셨는지 (웃음), 1인 2역도 생각하고 있다고 하시더라. “제 말씀이 그겁니다” 하고 바로 말씀드렸다.
1인 2역을 하면서 차이점을 두려 한 부분은.
대략 2주 안에 끝내야 해서 준비할 시간이 정말 없었다. 그래서 막 무언가를 꾸역꾸역 만들어서 카메라 앞에 서기보다는 오히려, 그 순간의 느낌에 기댄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나와 해효 선배님이 덩치나 얼굴이 모두 달라서, 비슷하게 보일 수 있는 건 느낌적인 부분이라 생각하고 접근했다. 아들일 때는 인간 박정민의 개인적인 모습을 보이려 했고, 아버지일 때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핸디캡과 의상이나 미술, 주변 동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러다 보니까 어느 순간 서로 다른 모습이 나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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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개런티로 출연했다고. 쉽지 않은 결정 아닌가. (웃음)
우선 <얼굴>이 너무 하고 싶었다. 매우 좋아하는 책이고, 2018년 언젠가 감독님이 영화로 만든다고 하실 때, 시켜달라고 한 적이 있다. 감독님이 그 약속을 기억하고 전화한 것 같지는 않지만, 아마도 ‘얘는 해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제안하신 듯. (웃음) 마침 <뉴토피아>와 <휴민트> 사이 시간이 비어 가능했고, 감독님과의 작업은 늘 재미있어서 더 하게 된 것도 있다. 또 얼마를 주신다고 하길래 그냥 노개런티로 마음 쓰는 게 더 예뻐보이겠다 싶더라. 그래서 그냥 회식이라도 한 번 더 하시라고 했다. 한마디로 감독님께 잘 보이고 싶고, 이왕 도와드리는 거 화끈하게 도와드리고 싶었다!
원작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원작과 다른 영화의 매력은 무얼까.
원작보다 좋은 의미로 압축됐다고 생각한다. 만화는 작가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릴 수 있지만, 영화는 특히 <얼굴>은 제작 환경상 자원이 한정적이라 캐릭터를 많이 변화시켜야 했다. 공장 사장인 ‘백주상’(임성재)의 경우, 사진을 찍는다는 설정이 더해지면서, 원작에서 의도하지 않은 의미가 생긴 것 같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주변과 사람들을 찍지 않나. 당시를 기록하는 것을 넘어 시선적인 폭력을 의미하는 레이어를 하나 더 쌓으면서 그 시대상이 더 의미를 갖게 된 것 같다. 또, 1인 2역으로 같은 인물이 아버지와 아들을 연기해서 만화(원작)보다 좀 더 휘몰아치는 감정의 파동이 있는 것 같다.
총촬영 기간이 3주였다고. 스탭도 20여 명으로 꾸렸다고 하던데, 요즘 제작 현장을 생각하면 믿기지 않는 시간과 규모 아닌가. 놀랍더라.
총 13회차 찍었다. 마지막은 일찍 끝나서, 12.5회차 일 수도. (웃음) 처음 1, 2회차가 방직 공장과 그 앞의 거리 씬이었는데 여기서 정말 많이 찍었다. 약간 영화 <동주>(2016)가 생각나기도 했다. 당시 고성에서 3일 동안 서른 몇 시간을 찍었었거든. 이번에도 주야로, 세트장에서 또 이동해 가면서 찍었다. 돌이켜 보면 신기한데, 다 되더라. 게다가 <얼굴> 현장의 조명 감독님, 사운드 녹음 기사님, 잠깐 온 촬영 감독님이 모두 영화 <파수꾼>(2010) 때 같이 했던 분들이었다. 지금은 다들 헤드 스탭이 됐는데, 이번에는 홀로 와서 막내가 하는 일까지 뛰어다니며 하시더라. 그 모습에 배우들도 마냥 앉아 있기 그래서, 뭐라도 도와드리려 했었다.
이런 <얼굴> 현장은 연상호 감독님이 그간 써온 마음의 영향이 큰 것 같다. 감독님이 ‘정말 해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큰돈이 투입되어 자본 논리에 따르기보다 형편에 맞춰 내 방식대로 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중에 잘 되면 같이 행복하자’라는 마음으로 많은 분이 동참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인지 찍으면서 감독님이 유난히 신나 보이기도 했고, 그런 감독님을 보며 배우와 스탭이 더욱더 열심히 한 것도 있다.
안식년을 선언했는데, 선언이 무색하게 너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출판사 운영, 도서 론칭, 유튜브 등 각종 홍보 출연에 이어 이번 <얼굴>까지.
촬영장을 벗어나는 안식년이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충분히 만끽하고 있는 중이다. 연기 외적인 일을 하면서 나 자신을 알아 가고 있기도 하다. 이게 사업이다 보니까 결국 내 발로 뛰는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더라. 작가님을 모시는 입장에서, 다시 말해 그분들의 결과물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뒷방에 앉아 안주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는 없어서, 홍보 등 불러주는 곳이 있으면 열심히 뛰었다. 출판사를 홍보하고 브랜딩 하는 그 과정이 즐거웠고 개인적으로 결과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연기 외적으로 알게 된 부분이 있다면.
사실 배우는 연기만 하면 된다. 연기 외적인 일은 다른 사람이 다 해준다. 특히 롤이 커질수록 누군가가 서포트하고 케어해 주는데, 출판사는 내가 케어 해야 하는 반대의 상황 아닌가. 작가님이 마음 상하지 않게 글을 잘 쓸 수 있도록, 또 직원들에게 신경 쓰고 하다 보니까 마음적인 부분에 대해 좀 더 신경쓰게 된다. 서포트하는 사람들의 노고에 좀 더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막 착해졌다는 건 아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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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듯이 사업이라, 흑자전환은 된 건가. 또 유명세 덕분에 순조롭게 스타트한 부분에 대해 출판계의 시선이 좋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러한 우려는 없었는지.
우선 출판사는 흑자 전환했다. 판매량 대비 많은 돈은 아니지만, 직원 한 명 정도 더 뽑고 1~2년은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책에 투자할 정도의 여력을 갖췄다. 업계 반응은 늘, 굉장히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선배 출판인을 만나면 상담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그러면 대체로 용기를 주시곤 한다. 나 역시 유명세 덕분에 더 잘되는 부분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인지도가 있으니까 ‘유퀴즈’ 등에도 출연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전시회를 하고 배우들과 오디오 북을 만들 수 있는 것도 내 배경의 도움이 있으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꼭 지키지는 건, 서점이나 다른 출판사, 혹은 협력사와 일할 경우, 그들이 하는 방식을 존중하며 따라 가는 것이다. 다행히 이런 부분을 그래도 잘 봐주시는 것 같다.
출판사의 색깔이나 지향하는 바는 무얼까. 방향성과 정체성을 짚는다면.
내가 느낄 때 세상에 나와야만 하는 책 혹은 이야기할만한 주제나 들여다볼 가치가 있는 책을 만들려 한다. 조금 더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끄집어낼 수 있는 걸 끄집어내어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 출판이라는 것이 하나의 스피커라고 한다면, 조금 더 작은 목소리의 스피커가 되고 싶은 바람이다. 제대로 시작한지 아직 얼마 안 돼서 지금은 회사의 색깔을 만들어 가는 과정인 것 같다. 또 최대한, 착한 회사가 되려고 노력한다.
가볍게 묻자면, 연상호 감독이 작가이기도 한데 당신의 출판사에서 모시는 건 생각해 보지 않았나. (웃음)
감독님께 ‘지옥’ 엔솔로지 소설집이나 각본집을 ‘왜 우리한테 안 주셨냐’ 하니, (내가) 진짜 본격적으로 할 줄 몰랐다고 하시더라. (웃음) 이미 (다른 곳과) 계약이 다 돼 있어서 당분간은 같이 할 기회가 없을 것 같다.
‘안식년’에도 불구하고 (웃음) 라이브 온 스테이지 ‘라이프 오브 파이’의 한국 초연에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그 사정이 궁금하다. (웃음)
2017년인가 <로미오와 줄리엣> 연극을 한 적이 있다. 그전에도 작은 연극은 했지만, 처음으로 큰 무대에서 선 연극이었다. 하고 나서 무서워서 못하겠다는 생각에, 그후 제안 들어온 모든 무대를 거절했었다. 그런데 마침 한 해 쉬겠다고 말한 시기에 ‘라이프 오브 파이’를 제안받은 거다. 원작을 너무 좋아하는 데다, 유튜브로 공연 영상을 보는데 정말 신기할 정도로 좋아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라. 한국 초연인 점도 부담이고 또 예전보다 ‘박정민’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스크린을 통하는 것이 아닌 맨얼굴을 보이는 것도 걱정되지만, 열심히 해보려 한다. 촬영차 라트비아에 있을 때 관련 전화 받고, 고민된다고 하니, 전화기 너머 (황) 정민 형의 목소리가 들리더라. ‘내가 한다고, 하지 말라고 그래’ 하길래 웃었던 기억이 난다. (박정민, 황정민은 모두 샘컴퍼니 소속)
촬영장을 떠나는 안식년을 왜 선언하게 된 걸까. 어떤 마음이었는지.
계속 촬영장에만 있는 것이 개인 박정민에게 과연 좋은가 싶더라. 촬영 스케줄에 너무 치이다 보면 매일 열심히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 잠도 자고 싶고 놀고 싶기도 하고. (웃음) 놓치는 씬이 생기고, 진짜로 열심히 하고 싶은데 대충 열심히 하는 순간이 발견되니까, ‘열심히 한다’는 말이 거짓말 인양 괜히 양심에 찔리는 순간이 있는 거다. 동어반복하는 것 같고 에너지가 떨어지는 게 느껴져서 조금만 (촬영을) 쉬어 볼까 한 거다. 쉬어 보니, 역시 촬영이 최고다. (웃음) 안식년을 갖겠다고 한 걸 후회하지는 않지만, 확실히 본업이 제일 좋다고 느꼈다.
사진제공.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2025년 9월 22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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