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독립영화부터 장르드라마까지, 구분없이 열일해온 이유미는 열일의 원동력으로 연기의 ‘재미’를 꼽는다. 이런 그녀가 마침 < Mr. 플랑크톤>에서 ‘재미’ 역으로 시청자를 찾는다. <소년심판> 홍종찬 감독과 <사이코지만 괜찮아> 조용 작가가 의기투합한 이 시리즈는 영혼의 단짝이자 연인인 ‘해조’(우도환)와 ‘재미’(이유미)의 마지막 여정을 아름답게 채색한 로드 무비다. 코믹 로맨스를 기조로 하지만, 그 바탕에는 누구나 지니고 있는 결여와,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는 유일한 두 사람의 슬픈 사랑이 깔려 있다. 500년 종갓집 장손 ‘어흥’(오정세)과의 혼례식 날 구 남친의 여행에 강제 동행하게 된 이유미를 만났다. 재미의 감정은 어흥에게 거짓말한 미안함과 책임감에서 해조를 향한 떨치지 못한 사랑을 자각하기까지 여러 층위로 변모한다고. ‘플랑크톤’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듯이 쓸모없고 작아 보여도 존귀하고 쓰임새 있는 존재라는, ‘긍정회로’를 하나 얻은 것 같아 무언가 맑고 건강해졌다는 그의 말을 들어본다.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에 이어 < Mr. 플랑크톤 >에서도 맑고 유쾌한 얼굴을 선보이는데, 이번에는 마냥 밝지만은 않은 캐릭터다. 생각해 보면 결핍이 있는 캐릭터를 그간 많이 맡아 왔다.
밝고 어둡고의 문제가 아니라, 캐릭터가 궁금증을 유발하게 하면 그 친구에 관심이 가면서 그냥 하게 되는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결핍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걸 다 가진 친구도 다 가졌기에 오는 결핍도 있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 결핍의 정도와 크기, 내면과 외면의 차이가 아닐까. 강남순도 마음 한편에는 결핍있는 인물이었고, 천애 고아인 ‘재미’(이유미)도 마찬가지다. 실제의 나 또한 결핍이 있을 거로 생각한다. 캐릭터에 따라 내 안에 있는 결핍의 크기가 조절되고 이동되는 것 같다.
‘재미’라는 캐릭터의 어느 부분에 끌렸는지.
시나리오를 보면서 이 인물에 대해 너무 궁금한 거다. 매력적이지만, 흔하지 않은 선택을 하고 또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는데 이 인물의 삶이 궁금해지더라. 그 안에 깔린 복잡미묘한 감정은 무엇일까 싶었다. 재미는 자기를 낳아준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고아인데, 처음부터 아무도 없이 혼자인 느낌으로 살아왔을 그가 지키려는 건 무엇이었을까, 어떤 마음으로 어른이 되었을까. 이런 물음들이 떠올라, 욕심 내어 하고 싶었다. (웃음)
해조가 재미의 결혼식 직전 나타나 납치하듯 여행길에 오른다는 설정은 다소 민감하게 다가갈 수 있는 문제다. 이후 이야기를 끝까지 보면 사정을 이해하겠지만 말이다. 처음에 거부하던 재미가 자발적으로 동행하기까지 그 심정 변화를 표현하는 것이 관건이었겠다.
그래서 그들의 여행 초반에 해조와 재미가 연애하던 과거의 모습이 얼핏 비치길 바랐다. 그 둘이 하는 모든 행동이 예전 연애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지… ‘얘네는 원래 그렇게 지냈던 아이들이구나’ 하고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알기에 발생할 수 있는 일로 표현하려고 했었다.
재미의 감정선 변화는 어떻게 되나.
재미의 흔들리는 마음, 그 복잡한 마음을 딱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긴 힘들다. 자손이 귀한 집안의 오대 독자인 ‘어흥’과 결혼하기 직전에 도망가려다가 실패하고 그렇다고 결혼을 감행할 자신은 없는 재미다. 그 상황에서 구 남친이 나타나서 여행을 가자고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음의 갈피를 못 잡은 채 억지 동행해 나간다. 다시 돌아가서 거짓말한 채로 결혼할지, 아니면 해조와 여행을 지속할지 재미 스스로도 그 마음을 잘 몰랐을 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어흥에 대한 책임감과 미안함이 해조에 대한 사랑의 자각으로 이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해조가 이별을 고한지 3년이나 지났지만, 재미가 그를 완전히 지웠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
재미는 정말 재미있는 캐릭터다. 시한부인 남친한테 스스로 눈치 없다고 하면서, 왜 얘기 안 해줬냐고 우는데 슬픔이 웃음으로 승화되는 인상이었다.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다듬기 위해 노력한 부분이 있다면.
대사처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인데도 그 심각함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눈치 없고 그걸 또 숨기지 않을 정도로 자기감정에 솔직한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겪은 마음이 아픈 여러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예쁘게 핀 꽃 같은 이미지라고 할지, 이런 생각으로 접근했던 것 같다. 약해 보이지만,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다면 어떻게든 해내려고 노력할 것이고, 그 꿈이 무너졌을 때 절망하기보다 다시 꽃피기 위해 열심히 할 친구라, 비록 눈치는 없더라도 (웃음), 이런 면을 대사나 표정을 통해 녹여 내려 하였다.
일반적으로 결핍이 많다고 여겨지는 재미는 누구보다 정서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인데 원천은 무엇이라고 생각했나.
재미의 건강함의 원천은 방어기제라고 생각했다. 아마 재미는 자기를 건강하게 지키는 것이 방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본인의 마음과 감정에 솔직했고, 그래서 남의 눈치를 보거나 흐름을 읽어 내는데 어려웠지 않나 싶다. 솔직하지 못하면 건강하지 못하다는 걸 아니까, 누구보다 솔직해지려한 걸 거다.
재미와 닮은 점이 있나.
긍정적인 면은 닮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슬픔에 매몰되기보다는 무언가 기쁜 일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또 솔직하게 표현하는 점도 재미와 맞닿은 지점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나는 재미와 반대로 안정을 추구하기 때문에 재미처럼은 못 한다. 이번에 재미를 연기하는 동안 여러 도전과 방식으로 다양한 일을 하면서 너무 행복했다. 스스로의 제약도 많이 풀어지고, 내 안정감의 기준이 너무 좁지 않았나 생각하게 됐다.
<힘쎈여자 강남순> 때는 와이어 연기에 도전했는데 이번에 새롭게 시도한 것이 있다면.
음… 액션으로 따지면 달리기? 평소 달리기를 진짜 못하고 속도도 절대 빠르지 않은데 촬영 끝날 때쯤에는 카메라를 이길 정도가 돼 있더라. 내가 좀 더 빨랐을지도.(웃음) 다양한 장소에서 달리기 하다 보니까 다양한 근육이 발달했더라. 한마디로 달리기를 얻었다 하겠다.
대놓고 자상하지만 고지식한 어흥과, 자유롭운 영혼으로 툴툴대면서도 챙겨주는 해조. 당신의 실제 선택은?
우선, 두 사람과 함께하면서 너무 복 받은 느낌이었다. 어흥은 따뜻한 안정감을, 해조는 (내가) 어떤 밑바닥의 삶을 살아도 내 마음을 다 알아주고 받아줄 것 같은 사람이다. 둘 다 모두 너무 큰 사랑을 보여줘서, 재미는 혼자라는 마음으로 살았지만 두 남자를 통해 사실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지 않았나 싶다. 재미라면 동질감을 지닌 해조를 선택할 테고… 이유미라면 ‘흥조’? 어흥과 해조를 반반 섞으면 딱 좋을 것 같다. (웃음)
오정세 배우와 호흡은 어땠나. 띠동갑 설정인데.
원래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다 보니까, 상대역이라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첫 촬영이 선배님과 같이하는 촬영이라 많이 긴장했었거든.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과 긴장이 앞섰는데 현장에 가자마자 재미있는 이야기로 긴장을 풀어주시더라. 덕분에 편안하게 촬영했고, ‘아, 이게 선배의 표본인가’ 싶었다.
우도환 배우와 합이 좋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같은 작품은 처음이라 초반에는 어색했을 것 같다. 워낙 허물없는 모습을 보여야 했는데 어떻게 친해졌나.
리딩하면서 대화를 많이 나눴는데 그때만 해도 서로 낯을 가리다가 논밭씬을 찍으면서 완전히 친해졌다. 초반 촬영이었는데 우리 둘 다 직접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고, 발이 푹푹 빠지면서 논을 뛰어다니다 보니 전우애가 생겼다고 할지, 으싸으싸 분위기가 형성됐다.
서울에서 남원, 남원에서 전주, 나중에는 강원도 등 로드 무비의 향취가 진하더라. 자연을 담은 영상이 너무 예뻐서 오히려 슬퍼 보일 정도였다.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다면.
극 중 어씨 종가 촬영지가 실제로 완주에 있는 고택이었다. 처음 가봤는데 정말 너무 예뻐서 어느 곳을 찍어도 그냥 작품이 될 정도였다. 고택 스테이도 운영한다고 해서 나중에 가족들과 함께 와야겠다 생각했고, 새로운 힐링 장소가 생긴 것 같아 기뻤다. 마지막 설산은 평창의 어느 목장이었다. 슬픈 씬인데 사실은 신나게 찍었었다. 재미있는 모든 걸 다 해보자는 마음으로 뛰고 덮고 또 넘어지고 썰매타고 그러다가 오빠(우도환)가 먼저 엎어진다고 해서 타고 내려오는 등 되게 행복한 씬으로 남아있다.
해조는 다음 생에 플랑크톤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하는데, 당신은 무엇으로 태어날지 생각해 봤나.
고민해 봤고, 다음에 무엇으로 태어나야 할지 정했다. 만약 지금의 내 삶을 기억하고 태어난다면 지금의 나로, 기억하지 못하고 태어난다면 뭐로 태어나도 상관이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딱 하나로 정하기보다 더 많은 시도와 광범위한 수가 가능하도록 열어두는 편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웃음)
마지막 장면에서 울컥한 시청자가 많다. (웃음) 재미의 후사에 대해 생각해 봤는지.
그렇잖아도 촬영 끝나고 나서 계속 고민해 봤었다. 해조와 함께처럼 계속 방랑했을까 싶기도 하더라. 그러다가, < Mr. 플랑크톤 >이 오픈하는 날 같이 모여 보는 자리가 있었고, 그곳에 가는 도중에 ‘재미가 만든 공방’이라는 간판의 공방이 눈에 띄더라. 그 파란 간판을 보는데, 사실 재미가 요리만 못하지 불 피우고 물 만들어 오고 문어도 잡는 등 혼자서도 다 잘 하거든. ‘재미는 이런 친구였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퍼뜩 이렇게 공방을 차렸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만들고 싶은 걸 만들다가 재료를 찾아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그러면서 살지 않았을까 했다.
한 작품 한 작품 모두 귀하겠지만, < Mr. 플랑크톤 >은 어떻게 남을 것 같나.
올해 1월에 촬영이 끝났는데, 거의 순서대로 촬영하다 보니, 끝났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었다. 만드는 과정에서 행복했고 그 사이사이 추억이 새록새록 스며 있어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무리 소중한 작품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옅어지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특별히 여운이 길게 남는다. 재미를, 해조를, 어흥을 보내기 힘든 드라마가 될 것 같다.
이 작품을 통해 얻은 점 혹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플랑크톤’이라는 제목이 주는 힘을 전하고 싶다. 쓸모 없고 작아 보여도 존귀한 존재라는 것, ‘내가 왜 이렇지’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럼에도 나는 필요한 사람일 거야’라는 긍정회로를 하나 얻은 것 같아 무언가 맑고 건강해진 것 같다. 시청자에게도 이렇게 다가갔으면 한다.
이전에 열일의 원동력으로 연기하는 재미를 꼽은 바 있다. 어느 면에서 그렇게 재미가 있나.
연기라는 행위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 삼아 밥벌이할 수 있다는 점이 너무 행복하다. 어느 면이 재미있냐 하면, 무언가 새로운 감정들 그러니까 슬픔, 웃음, 기쁨, 놀람 또 이외의 수많은 감정을 연기하다 보면 내 안에 있는 감정을 직면하면서 배우는 부분이 너무 많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도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 같다. 연기가 힘들지만, 스스로 만족감이 크고 누군가 내 연기를 보고 위안을 얻고 필요로 한다는 점이 제일 큰 행복이자 재미라 하겠다. 앞으로도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렇게 해서 (대중이) 계속 기다리고, 보고 싶어하는 배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기할 때 다 쏟아내고 나면 한동안 휴식이 필요할 것 같은데 쉴 때는 주로 무슨일을 하고 지내나.
평소에는 집순이라 집에서 쉬고 자고 먹고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하며 스스로 채우는 시간을 가졌는데 새로운 경험이었다. 여행하다 보니 집과는 다른 힐링과 채움이 있더라. 여행가서도 크게 하는 일은 없었다. 물을 무서워해서 관련한 레저활동은 하지 않고, 많이 걷고 많이 쉬고 많이 먹고 집에서 하는 것과 같은 행동인데도 그 느낌과 정서가 사뭇 달랐다.
<오징어 게임>부터 <지금 우리 학교는> < Mr. 플랑크톤 >까지 연속으로 넷플릭스 작품에 참여하고 있다. 다음도 넷플릭스 작품이라고.
넷플릭스 작품을 찍고, 계속 인연이 이어지는 데 감사함을 느낀다. 무엇보다 글로벌 팬들과 소통할 기회의 장이라는 점이 너무 좋다. 너무 좋은 작품인데 마침 넷플릭스에서 만드는 것이고, 해외 소통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랄지, 물 흐르듯이 행복하게 흘러 나가는 것 같다. 너무 기대되는 <오징어 게임2>가 조만간 공개되는데, 이참에 <오징어 게임>도 다시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 (웃음) 차기작은 <당신이 죽였다> 라는 스릴러인데 이번 ‘재미’와는 완전히 다른 아픔이 더 크게 있고 조심스러운 캐릭터라 하겠다. 그렇기에 그 아픔을 공감하고 이해하기 위해 더욱더 연구하고, 그 아픔을 느끼면서 촬영에 임하고 있다. 10월 초에 크랭크인했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4년 11월 25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