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저는 끈기가 되게 강한 것 같아요.” 모델 출신 배우 김재영이 모태 마름이 아니라, 모델 일을 하기 위해 40킬로를 감량한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결심하면 어떻게든 해내려는 성격이 연기할 때도 도움이 된다는 그. SBS 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에서 아픈 과거를 지닌 정의감 넘치는 형사 ‘한다온’으로 분해 시청자에게 제대로 각인했다. “정말 즐거웠는데 너무 많이 울어서….” 한편으로 남자가 이렇게 많이 울어도 되나 싶었고 더욱이 ‘강빛나’(박신혜) 판사가 마치 공주님 처럼 번쩍 안아 주기도 해서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었다고. 더 늦기 전에 로맨스나 청춘물을 하고 싶다는 김재영, 그래도 예전보다 조급함을 많이 다스리게 됐다면서, ‘대기만성’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면 너무 감사하겠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지옥에서 온 판사>의 열혈 판사 ‘한다온’ 역으로 시청자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시즌2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더라.
시청자들도 좋게 봐주시고, 시청률도 좋게 나와서 정말 기분이 좋다. 드라마 촬영 끝난 지 몇 달 됐는데도 정이 많이 들어서 아직도 아쉬움이 남는다. 시즌2에서 한다온 캐릭터가 어찌될지 알 수는 없지만, 만약 한다면 정말 기쁘겠다.
우문이지만, 드라마와 캐릭터 중 어느 부분에 더 끌렸을까.
드라마에 먼저 끌렸다. 너무 재미있겠다 싶었다. 한다온은 평소 남자 캐릭터의 여자 버전이라 도전해 보고 싶었다. 보통은 남자가 악마로부터 여자를 보호하고 감싸주지 않나. 그런데 한다온은 보호를 당하는 입장이 아닌가. 너무 많이 울어서, 남자가 이렇게 많이 울어도 되나 싶기도 하고, 또 빛나가 공주님 안듯이 번쩍 안아 들기도 해서,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었다.
인기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현실과 다른 사이다 같은 복수와 판결이 아닌가 한다. 게다가 빠른 전개로 드라마 안에 희로애락이 다 포함되어 있어서 공감대가 높은 것 같다. 범죄 판타지 장르인지라 러브라인 좋아하지 않는 시청자도 계셨지만, 한다온 입장에서 러브라인은 빠지면 안 되었다! (웃음)
그렇잖아도 빠른 전개는 좋지만, 러브라인이 너무 급격하게 전개되어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시선도 있더라.
음… 빠른 전개 때문이 아니라 두 인물 사이의 사랑이 왜 형성되는지 공감과 설득이 조금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을 거 같다. 대립관계였고 상대는 악마인데 왜 친해지고 공조하고 하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할지. 그런데 한다온의 과거를 생각해 보면 납득 가는 부분이 있다. 어릴 때 부모님을 잃은 아픔으로 경찰로서 신념이 강한 인물이지 않나. 처음에는 범인을 처단하겠다는 목적의식에 따라 악마를 인정하고, 점점 인간화되는 강빛나를 보면서 사랑을 느꼈을 것이다. 사실 감정이 넘어가는 포인트를 잡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판타지라 현실 드라마보다 어느 정도 허용도가 큰 점이 있어서 악마라는 걸 코믹한 톤으로 인정하게 된 것 같다.
한다온으로서 아쉬움은 없는지.
연기적으로 아쉬움이 남는 장면은 좀 있다. 특히 감정씬이 그렇다. 좀 더 고민해서 보다 더 디테일하게 표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다. 또 액션씬은 인간 대 악마인 구조라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는 점이 아쉬었다. 다온이 자꾸 기절해서 감독님께 ‘저 멋있기는 한 거냐’고 물어보기도 했었다.(웃음) 그런데 감독님꼐서 ‘걱정 말라고, 남자 주인공인데 당연히 멋있지 않겠냐’고 안심 시켜 주셨다.
박진표 감독은 ‘첫인상은 궈여웠는데, 눈이 마주치는 순간 외로운 늑대 같은 날카로움을 느꼈다’고 하시더라. 이제는 열혈 팬이 되어 응원하게 되었다고. 현장에서는 어떠셨나.
현장에서 아버지 같은 존재셨다. 현장에서 보통 감독님을 선장이라 하는데 굉장히 디테일하고 장난기도 많고 농담도 많이 치신다. 감독님의 자녀분이 이십 대 중반이라, 대화도 잘 통했고 두루두루 살펴주셨다. 다온은 인간이고 또 남자라 감정이입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데 이때도 세심하게 잡아주셨다. 또 의상 같은 외양적인 부분도 많이 신경 써 주셨다. 절 처음 보고 연출자 시각에서 아우라가 느껴졌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나 역시 감독님의 첫인상에서 그런 부분을 느꼈었다. 연배도 있으시고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연출 출신에 눈매도 날카로워서 걱정하는 마음으로 찾아뵀는데, 막상 만나니 엄청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물론 그 와중에도 아우라가 느껴졌었다. 이 작품이 아니라도 언젠가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운이 좋게 함께하게 되어 정말 기뻤다. 또 감독님은 배우의 전작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닌, 그 외의 것을 보시는 듯했다.
상대역인 박신혜 배우와 로맨스 호흡은 어땠는지, 연기적으로 한참 선배라 도움되는 부분이 많았을 것 같다
로코라는 장르에 대해 많이 조언해주었다. ‘오빠, 이렇게 하면 너무 귀여울 것 같아, 예쁠 것 같아’ 이런 식으로 말이다. 연기하다 보면 정말 21년 차 베테랑 배우임이 실감나게 눈빛과 표정을 정말 잘 쓴다. 덕분에 키스신도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편하게 할 수 있었다. 빛나 역할이 강하고 세고 멋도 부려야 하고, 또 액션도 많아서 굉장히 어려운 캐릭터인데 그 중심을 잡으면서도 현장의 중심 또한 잘 잡아 주었다. 그 바쁜 와중에 과일을 깎아 오기도 하는 등 나뿐만 아니라 촬영 스탭들도 많이 의지했다.
모델에이전시(에스팀)를 박차고 연기를 시작했다고 하던데… (웃음)
그게 박차고 나온 것까지는 아니고 (웃음) 모델 에이전시와 배우 에이전시가 주로 영업하는 분야가 달라서, 나는 연기를 하고 싶은 마음에 대화를 통해 회사를 옮기게 됐었다. 완전 생초짜 때 영화를 찍기도 했는데 다음 작품도 없고 거의 개런티도 없었으니, 중간중간 모델 알바를 하기도. 그러다가 모델과 배우를 이분해서 관리하는 회사에 들어갔는데(이때 1호가 안재현 형이었다) 당시는 어려서 그런지, 양쪽에서 넌 모델이잖아, 넌 배우잖아 이렇게 가르는 데 어정쩡한 위치라 상처도 받고, 그래서 배우를 전문으로 케어하는 회사로 옮겼었다.
그런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 연기를 계속하게 한 원동력은 뭐였을까.
이제 조금 연차가 쌓이다 보니, 예전에 받은 팬레터나 팬카페 글을 다시 읽어보곤 한다. ‘힘든 시기에 재영 씨 연기 보면서 극복했다’는 글에 울컥하기도 하고, 또 20대였으면 그러니까 좀 더 어렸으면 다른 일에 도전해 볼 법도 한데 새로운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무섭기도 하고, 또 그간 해온 것이 연기인데 끝까지 해 봐야지 이런 생각이 다시 동력이 되어 돌아오곤 하는 것 같다. 팬카페나 SNS에 근황을 올리고 최근에 팬미팅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것이 무엇보다 큰 힘이 된다.
조바심을 다스리는 법이 있나.
어떤 조바심이든 아직 완전히 다스리지는 못하지만, 조금씩 줄여 나가는 법을 배우려고 애쓰는 것 같다. 특히 나이에 대한 조바심이 있었는데, 지금은 예전처럼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 것 같다.
평소 주우재 씨와 친분이 두텁기로 유명하고, 최근 도쿄 브이로그도 인기였던 걸로 알고 있다.
우재형은 영리하고 이성적이고 말도 굉장히 객관적으로 하는 편이다. 사실 모텔 출신이 언변이 좋지 않은데 우재 형만큼은 예외다. 연기보다는 예능 쪽이라 편하게 말하기도 하고, 모임의 중재자이자 중심이라 하겠다. 도쿄 브이로그에서 <지옥에서 온 판사> 캐릭터를 여러 번 언급해주기도 해서 고마웠다. 내가 원래 활달하고 깨발랄한 편인데 이번 브이로그에서 이런 면이 잘 담긴 것 같다. 스탭들이 애써 구축한 한다온 캐릭터가 너무 우습게 느껴지면 어떨까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친근감 있게 다가갈 수 있어서 좋았다. 내 첫인상은 까칠한 편인데 처음 몇 마디 나누면 그런 인상이 바로 깨지는 편이다. 오죽하면 모델 시절, 이야기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었다.
모델 출신 배우들이 붐업되는 시기가 아닌가 한다.
모델 출신 배우들이 잘나가는 건 개인적으로 기쁜 일이다. 이전에 <선재 업고 튀어> 1화를 보고는 우석에게 재미있고 잘될 것 같다고 연락했었는데 이번에는 우석이가 바쁜 와중에 <지옥에서 온 판사>를 보고 연락했더라. 자기 작품에 대한 불안감은 늘 있기 마련이라 주변의 이런 말들이 힘이 되거든. 다섯 명 정도 친하게 지내는 모임이 있는데 서로 작품 보면서 이렇다 저렇다 피드백 주고 좋은 이야기를 서로 많이 해준다. 특히 우재 형은 굉장히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말해 줘서 도움이 많이 된다.
명륜진사갈비 광고를 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무한 고깃집을 좋아해서라고. 솔직히 이 말 듣고 빵 터졌다. 그 꿈은 여전한가.
이미 남궁민 선배님이 찍으셨더라. (웃음) 예전에 살던 집 앞에 있어서, 우재 형에게 가자고 조르기도 했었다.
<지옥에서 온 판사>가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나.
솔직히 말하며 내가 시청자에게 각인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의미인 것같다. 예전에는 (내) 캐스팅 기사가 나면 부정적인 반응이 좀 많았는데 이번 작품이 다행히 평가가 좋아서, 앞으로 그 힘을 받을 것 같다.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 혹은 자신감은 어떤지. 하고 싶은 장르나 캐릭터가 있다면.
차기작에 대한 자신감을 말하기에는 너무 이른감이 있고 (웃음) 다만, 이번에는 내가 자신 있는 모습을 해 보고 싶은 바람은 있다.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2021) 때의 어둡고 집착이 강한 모습을 좋게 봐주시는 시청자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캐릭터에 거부감이 든다는 시선도 있었다. 무엇보다 나와 너무 다른 캐릭터라 이런 부분이 좀 힘들었다. 어둡고 아픈 과거를 지닌 역할이 많이 오는데 밝고 유쾌한 역할을 해보고 싶다. 시청자들이 좋아해 주시는 댕댕미 있는 역할도 좋지만, 더 늦기 전에 로맨틱 코미디를 하고 싶다. 로코는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김재영 배우는 88년생) 나만의 압박감이 있는 것 같다. 더 늦기전에 로맨스 장르를 꼭 하고 싶다.
직업적 소신이 있다면.
직업적 소신이라기보다 끈기가 강한 편인 것 같다. 뒤늦게 모델 일을 시작했고, 그때 한 40kg을 감량했었다. 일단 결심하면 해내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이런 성향이 연기할 때도 도움되는 것 같다. 한다온을 하기 위해, 형사라 등치가 좀 있어야 해서 8kg 정도 증량했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조금만 방심해도 살이 찌는 타입이라 하루에 한끼 정도 먹는 게 습관이 된 것 같다. 주우재 형을 비롯해 다른 모델들과 달리 먹는 걸 좋아하고 빡세게 관리해서 유지하고 있다. 어릴 때 꿈이 요리사일 정도였는데, 점점 먹는 기쁨을 잃어가는 것 같기도. (웃음)
사진제공. JIB 커머니
2024년 11월 25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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