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퀴어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은 박상영 작가의 동명 원작 소설을 네 감독이 각각 2화씩 연출한 8부작 드라마로, 주인공 ‘고영’(남윤수)의 사랑과 성장을 그린 작품이다. 홍지영 감독이 연출한 5~6화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고영은 자기를 ‘뚱고’라 부르며 아낌없이 퍼주는 연인 ‘규호’(진호은)를 만난다. 어느 순간에도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으니까’ 하며 해사한 미소로 사랑을 말하는 제주도 출신 소년, 보고만 있어도 애틋한 사랑의 주인공을 연기한 진호은을 만났다. 무려 3,800대 일의 오디션을 뚫고 규호 역을 꿰찬 그인데, 절대 누구에게도 ‘빼앗기기 싫은 캐릭터’였다고. 평소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원작인 드라마에서 작가가 손수 쓴 극본으로, 좋아하는 선배와 함께 호흡을 맞출 수 있어 기뻤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규호는 너무 ‘해사롭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반응을 찾아 봤는지.
이번에는 온 커뮤니티 반응을 다 찾아보고 있다.(웃음)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고, 홍지영 감독님께서 내 이런 부분을 잘 끄집어내 주신 것 같다.
오디션 3800대 1의 경쟁을 뚫고 ‘규호’역에 낙점되었다고. 준비는 어떻게 했나.
먼저 소설을 정독해서, 소설에 관한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가 왜 규호를 해야 하는지, 또 어느 부분을 어필할지 많이 고민했다. 7~8화 ‘늦은 우기의 바캉스’를 연출하신 김세인 감독님이 ‘다른 분들은 유튜브나 짧은 리뷰를 읽고 온 것 같았는데, 진호은 배우는 진심으로 이해하고 온 것 같다’고 하셨다고. 무엇보다 오디션을 심사하는 감독님들이 부담가지 않는 선에서 간절하게 임했던 것 같다.
박상영 작가는 당신이 모든 심사위원의 원픽이었다고 하더라. 기본기가 단단해 보이고 목소리가 호소력 있고 또렷한 점이 좋았다고. 또 옆집에 있을 것 같지만 절대 없는, (웃음) 화려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두부상의 정석 같은 모습이 규호와 어울렸다고 하더라. 퀴어 로맨스인 이 작품의 어느면에 끌린 건가.
소설을 읽을 때부터 드라마화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 아닌가 했는데 작가님이 그렇다고 하시더라. 무엇보다 규호라는 캐릭터를 지금 아니면 언재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컸었다. 또 원작자인 작가님이 직접 극본을 쓰고, 네 감독님이 참여한다니 너무 흥미롭겠다 싶었다. 거기다가 평소 너무 좋아하는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한 윤수 형과 함께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었다.
에피소드마다 ‘고영’(남윤수)의 애인인 네 남성이 등장한다. 실제 자신과 닮은 인물은 누구라고 생각했나. 외모나 정서 면에서 당연히 규호일 것 같기는 하다. (웃음)
시리즈를 보고 나서 역시 규호가 내 자리구나 싶었다. 내 외모와 모습은 평범한데 그 안에 개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런 면이 규호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낭만적인 부분도 그렇고. 홍지영 감독님이 둘은 서울쥐와 시골쥐 같다고 했는데, 이 말씀을 듣자마자 규호가 시골쥐라고 생각했다. 흰 도화지 같이 주어지는 대로 물들이는 내 면모를, 시청자분들이 부담 없이 잘 받아들여 준 것 같다.
사실 소설을 읽으면서 ‘규호’는 왠지 짧은 머리에 무언가 다부진 외양을 지녔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을 감싸주고 챙겨주는, 좀 더 어른스러운 모습을 예상했는데 의외였다. 그런데 그 소년같은 모습이 너무 잘 어울려서 ‘역시!’ 하고 감탄했다.
나도 얼추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래서 홍 감독님께 살도 좀 찌우고 머리도 자를까요 하니, 아니라고 하시더라. 비주얼과 미학적으로 완전 소년 같은 모습으로 가길 바라셨다.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으니까”라는 깊은 사랑의 대사를 하는데, 이런 규호의 심정을 느껴 본 적이 있나. 비단 사랑이 아니라 우정 소중함 등등 이런 존재가 실재했는지 궁금하다.
그간의 내가 느낀 감정이 규호의 감정까지는 못 닿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규호를 연기하면서 규호가 영을 헤아리고 이해하고 싶고 닿고 싶어 한 것처럼, 나 역시 규호와 닿고 싶었다. 작품하면서 동화된다고 할지, 내가 규호 같은 눈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 못 했는데, 완성본을 보면서 나도 이런 연기를 할 수 있구나 싶어 스스로도 놀랐던 부분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으니까’라는 대사가 한편으로는 판타지같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실제로도 존재하겠구나 싶더라. 나 역시 규호처럼 그런 존재가 생기면 좋겠고 또 누군가에게 규호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영과 규호가 재회해야 한다는 팬들의 응원이 많은데, (웃음) 후사는 생각해 봤나.
다시 사귀거나 하지는 않고 서로의 삶을 살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드라마상에서는 서로가 연락하지 못하지만, 아무래도 규호가 나중에 먼저 연락했을 것 같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연기하는 입장에서 이 사랑이 끝나지 말기를 바랐지만, 아마도 현실은 다르지 않을까 한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영상 한 컷 한 컷이 마치 그림 같더라. 촬영한 시기는 언제인가.
5~6화는 2023년 12월 29일부터 2월까지 한겨울에 촬영했고 이중 1/3은 태국 촬영이었다. 요즘도 촬영할 당시의 감정이 때때로 올라오곤 한다. 시간이 지나면 무디어지기 마련인데,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웃음) 그만큼 특별한 작품이라 그런지 감정의 진폭이 더 느껴진다. 규호가 영을 생각하는 마음처럼 내게는 <대도시의 사랑법>이 그런 존재 같다. 너무나 좋은 시간을 함께했다는 생각이다. 최근작이기도 하고, 이렇게 이만큼 진심인 적은 없던 작품이다.
태국에 여행 간 영과 규호가 땅바닥에 누워 비를 온몸으로 맞는 장면이 개인적으로 최애 장면이다.
나도 그 장면 좋아한다. 예뻐 보이지만, 꽤 힘들게 촬영한 장면이다.(웃음) 뛰어가다가 누워야 하는데 슬리퍼가 벗겨지는 등 작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냥 애드립으로 계속 찍었다. 또 빗속에 누워 걱정과 고민, 불안감 등이 다 씻겨 내려가면서 해방감이 들어야 하는 장면이라, 폭우가 내려야 했는데 우기라도 우리가 원하는 시간대에 내리지는 않으니까 살수차를 동원했다. 실제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다 보니 땅의 지열이 너무 뜨거웠고, 물에 젖은 채 몇 번 반복하다 보니 다음날 온몸이 빨갛고 복숭아뼈가 안보일 정도로 퉁퉁 부었더라. (웃음)
명장면과 명대사를 꼽는다면.
음… 비 오는 씬은 나도 좋아하지만, 그 외 다른 장면을 꼽는다면 6부 엔딩 씬이다. 지하철에서 고영이 먹다 만 고로케를 들고 펑펑 우는 장면이다. (나는 안 나오고) 윤수 형만 나오는 장면인데도 최애로 꼽을 만큼 기억에 남는다. 모니터링하면서도 그 씬은 이상하게 잘 못 보겠더라. 명대사는 역시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으니까’ 이 대사다. 원래 소설에서도 그렇고 고영의 내레이션에서도 ‘그러니까 규호 네가 필요해’ 라는 대사가 더 있었지만, 편집됐다. 그래서 더 애틋한 느낌이 드는 것 같다.
퀴어 로맨스가 결코 쉬운 연기가 아니고, 또 짧은 시간에 두 감독(홍지영, 김세인)과 함께 작업했으니 연기적으로도 성장했을 것 같다.
성장했다고 스스로도 느꼈다. 그간 한 것 중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더욱더 많은 역할을 하고 싶다. 내가 이렇게 할 수 있구나 싶기도 하고, 지금 이 시기(이십 대 초중반)가 지나기 전에 내 발자취를 많이 남겨두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무엇보다 작품을 통해 내 연기를 좋아한 분이 그 안에서 많은 힘을 받았다는 데 감격스러웠다. 또 응원하는 분도 많아서 지금 내 자리에서 좀 더 많은 연기를 보여주었으면 한다.
홍지영, 김세인 감독님은 작업해 보니 어떤 분이든가.
홍 감독님은 섬세하고 ‘샤라웃’(누군가를 향한 존경이나 고마움을 어필하는 의미) 한다. 김세인 감독님은 전작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2022)를 보고 감독님이 진짜 지독하겠다, 끝까지 몰아붙이는 힘이 장난아니겠다 했는데, 처음 뵀을 때는 전혀 이런 이미지가 아닌 거다. 그런데 해보니까 역시, 보통이 아니셨다. 배우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힘이 대단한 분이다. 홍 감독님과는 정서적으로 가까웠던 것 같다. 감독님은 순수한 사랑이나 온전한 사랑을 표현하면 좋겠다고 하셨고, 이런 부분에서 나와 의견이 겹쳤다.
박상영 작가와는 자주 대화했는지.
아마 출연 배우들 중 내가 제일 많이 만났을 거다. 감독님들께서 회의하는 동안 수다도 떨고 또 규호에 관해 이야기도 하고, 이후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면서 친해져다. 굉장히 좋은 분이다.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2022)의 양궁부 후배,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 <오늘 은 좀 매울지도 몰라>(2022) 등을 통해 얼굴을 알렸다. 연기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원래는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었다. 고등학교때 주변의 권유로 연기를 시작했고 한번 접었다가 고2때 다시 시작해서, 고3때 데뷔했다. 그때부터 딴에는 정말 열심히 했다. 부모님은 내가 한 번 그만둔 후 1년 있다가 다시 시작해 보고 싶다고 하자,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셨다. 연기자는 평생 직업이라 좋다고 하셨다. (웃음) 그 당시에 압구정 CGV, 대한극장 등으로 독립 영화를 참 많이 보러 다녔다. 보면서 저런 작품에 내가 나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면서 그 연기하는 감정을 공유했던 것 같다. 당시 봤던 영화들 중 아직도 울림을 주는 작품이 많다.
기억에 남는 영화를 소개한다면.
너무 많은데… 먼저 <거인> 최우식 배우를 보고 이런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게 부러웠는데 역시나 너무 잘 돼서 좋았다. 또 <꿈의 제인> <옥자> <소셜포비아><글로리데이> 등등이 있다. 류준열 선배님을 좋아해서 출연한 영화는 다 봤고 좋아한다.
류준열 선배의 어느 면이 그렇게 좋나. (웃음)
정말 팬이라, 모든 면이 좋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이유가 없어지는 것 같다. 팬미팅 가서 찍은 단체 사진도 있고, 핸드폰 배경화면도 선배님이다.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로 부산국제영화제(2022)에 초청된 적이 있는데 그때 개막식 사회가 선배님이라 백스테이지에서 인사드린 경험이 있다. 그때도 팬의 마음으로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이번 <대도시의 사랑법>도 봐주시면 너무 기쁠 것 같다. 정말이지 같은 작품 소취(소원성취)하길!
소속사인 아우터유니버스 창립 멤버라고. 원욱 대표가, 2021년 '스타를 빛나게 만드는 연예기획사대표'라는 제목의 도서를 출간하는 등 외부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것 같다.
1호는 김영대 선배이고, 3개월 후 2호로 내가 들어갔는데 우리끼린 동기라고 한다. 대표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두 번째 아버지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호칭함으로써 더욱더 가까워지는 부분도 있고, 요즘에는 쓴소리도 많이 해주신다. 나를 위해서라는 걸 잘 알기에 너무 감사하다. 대표님은 ‘네가 잘되면 가장 기쁜 사람은 너와 너의 부모님, 그다음이 나’라고 늘 말씀하실 정도로 진심이시다. 함께 성장해 가면서 첫 회사가 마지막 회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다.
사진제공. ㈜메리크리스마스/ ㈜빅스톤픽쳐스
2024년 11월 20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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