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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크기는 책임감의 무게” <베테랑2> 류승완 감독
2024년 10월 7일 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2015년 8월 개봉 당시 1,341만 관객을 동원한 메가히트작 <베테랑>이 9년 만에 후속편으로 돌아왔다. 개봉 시기도 마침 추석 연휴인 데다 운 좋게도 딱히 경쟁 상대도 없는 터라, 흥행은 따 놓은 당상이요, 천만관객 달성 여부에 귀추가 주목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예상외로 급격히 흥행세가 꺾여 개봉 4주 차에 접어들어 비로소 7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관객의 호오가 크게 엇갈린 탓이다. 전편의 사이다 같은 응징을 기대했던 관객에게 이번 편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요소가 강하기 때문. 류승완 감독이 후속편을 내기까지 9년이나 걸린 고민의 방증 같은 결과물이라 하겠다. 너무 큰 성공은 그만큼 책임감이라는 무게로 돌아왔다는 류승완 감독이다. ‘명쾌한 답을 내리지 말자, 전작의 흥행공식을 답습하지 말자’를 방향성으로 잡았다는 감독을 만났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예술가의 심장, 장사꾼의 머리, 노동자의 손발’을 가져야 한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9년 만의 속편이다. 주인공인 황정민 배우도 이렇게 오래 걸릴지 몰랐다고 하던데 (웃음) 9년이나 걸린 이유를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영화를 20년도 넘게 찍고 있지만, 매번 긴장되고 불안한 마음은 여전하다. 언제쯤 되어야 적응하여 편안한 마음이 될지. 9년이나 걸린 이유는… <베테랑>은 만들어질 당시 투자배급사에서 꼽은 일 번 타자도, 또 엄청나게 주목받는 영화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언더독이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되게 알뜰살뜰하게 만들었고, 원래 추석 연휴에 개봉하려다가 겨울로 밀리고, 또 그다음 해 설날에도 밀려서 결국 여름에 개봉하게 됐었다. ‘여름에, 이 영화를?’ 하던 불안감이 없지 않았고, 400만 명 정도만 넘으면 진짜 큰 성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덜컥 3배 이상 관객이 든 거였다.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겁이 나더라. 당시 현장 분위기도 너무 좋아서 속편은 당연히 나오는 걸로, 제작진과 배우 모두 무언의 약속을 한 터였다. 심지어 ‘서도철’(황정민)의 의상을 잘 보관해 달라고 부탁했을 정도였으니! 이런 부탁은 내 영화 인생 최초였다. (웃음) 그런데 너무 큰 성공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아이디어와 스토리를 짜 놨는데도 쉽사리 후속편을 못 만들겠더라. 다른 영화를 만들고 오자고 하다가… 그동안 사이다 같은 장르 영화, 사적으로 정의를 구현하는 내용의 드라마 등이 여러 편 나와 큰 호응을 얻는 걸 보면서, <베테랑2>의 역할은 조금 다른 방향을 시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었다.

말했듯이 그간 <범죄도시>로 대표되는 사이다 액션물과 <비질란테> 시리즈 같은 사적 단죄물, 사이버 레커와 가짜뉴스 등 시대상을 반영하는 범죄물이 범람했다. 이런 트렌드를 고려해 <베테랑2>를 원래 생각했던 바와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는 의미인 것 같다.
내 개인적인 변화와 사회상의 반영이 결부된 결과가 아닌가 한다. 1편은 내가 분노한 몇 가지 사건을 결합해 만들었고, 대중은 이에 크게 호응해 주었었다. 그런데 사건은 끝이 없고, 가해자를 향해 욕하고 분노를 표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상황이 어느 순간 목격되더라. 그간 현상을 보고 내가 느낀 분노가 정당하다고 생각했지만, 현상 이면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는 것 또 현상과 사실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잘못된 분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히틀러 집권 당시 독일 대중은 히틀러가 정의라고 믿은 것처럼, 또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면 주인공 가족은 스스로를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처럼. 이렇듯이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의 실체에 대한 고민 없이 영화 속에서 정의를 구현하고 말면 끝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전작인 <모가디슈>(2021)를 보면 ‘살다 보니 진실이 두 개인 경우가 있다’라는 대사가 있다. 이렇듯 나이가 들면서 진실과 정의에 대한 답이 또렷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차 모호해진다는 생각이 들더라. 질문을 던져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서도철의 정의와 ‘박선우’(정해인)의 신념 간의 대립에 대한 이야기라고 표현한 것 같다.
<베테랑2>는 정의와 신념의 대결로 좀 더 묵직한 톤의 질문을 던지는 영화가 되기를 바랐다. 솔직히 위험할 수도 있는 시도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실체를 모르는 데서 오는 공포가 두려운데,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혹은 아무런 인과 관계없이 불행이 닥친다고 생각해봐라. 작은 단서를 잡아 다 같이 들떠서 떠들다가, 다른 이슈로 넘어가는 세태 아닌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하지 않은 사건임에도 사람들은 다른 이슈로 넘어가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빌런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야기하는 현상과 그 이면이 중요했다. 서도철 입장에서 보면 현상은 또렷한데 그 이면은 알 수 없거든. 마치 그가 조서를 꾸미듯이 관객이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질문과 토론이 이어졌으면 했다. <베테랑1>이 느낌표를 안겼다면 이번에는 물음표를 느끼기를 바랐던 것 같다.

의도는 잘 알겠으나, 문제는 박선우의 신념이 무엇인지 선뜻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선우라는 캐릭터를 추동하는 힘이 무엇인지 잡히지 않는데….
박선우는 혼란 자체인 인물이다. 자기 과시욕도 있고 또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영웅심리도 있을 거다. 대중이 분노하는 어떤 사건을 해결한 후 받는 대중의 맹렬한 추종을 즐기는 걸 수도 있다. 그렇기에 사적 단죄의 대상이 죄가 없다는 것(그릇된 정보로 인해 악인으로 낙인찍힌 것)을 알면서도 처형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사실 ‘해치’라는 별명도 대중이 붙여 준 거지, 그는 스스로 해치라고 나선 적이 없다. 한마디로 대중에 의해 탄생한 괴물이랄지. 원래 그가 왜 해치가 되었고, 그의 최종 목적은 무엇인지를 담은 버전도 있었는데 이를 걷어낸 이유는 <베테랑2>의 주인공은 ‘서도철’이기 때문이다. 해치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해치의 행각과 박선우의 뜻 모를 행동에 집중하다 보면 서도철을 향한 관심이 흐트러지는 것도 사실이다. 또 서도철이 박선우의 정체를 알아가는 과정도 생략이 많아 보인다.
서도철은 모르지만, 관객은 이미 박선우가 의심쩍은 인물이라는 걸 알지 않나. <베테랑2>는 빌런이 주가 되고 그를 추격해 나가는 서도철이 서브인 영화가 아니다. 그렇다고 수사기법을 자랑하는, 이에 초점을 맞춘 범죄 영화도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형사’ 서도철의 정의이고, 수사하는 과정에서 형사가 겪는 감정적인 혼란이라 하겠다. 서도철이 박선우에게 ‘너는 쉽게 못 죽는다, 내가 조서로 다 밝혀줄게’ 하는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아무리 악인이라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응징하겠다는 서도철의 직업적 윤리의식이 핵심이라 하겠다.

박선우 역의 정해인 배우는 캐릭터를 이해하고 접근하는 지점이 가장 어려웠다고 했는데, 디렉션 방향은.
범죄·형사물을 보면 대체로 빌런의 형태가 너무 또렷하면 형사보다 빌런에 집중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빌런의 실체를 알 수 없는 재난 같은 느낌으로 다가가려 했다. 오롯이 서도철의 행동과 생각을 따라가게 하기 위해서, 정해인 배우에게 일부러 ‘박선우’라는 캐릭터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완성된 글을 배우에게 보여주지 않은 이유는 모순된 상태로 연기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야 배우에게도 관객에게도 서스펜스가 높아지고, 감정과 머리가 따로 노는 양가적인 인물로 다가갈 것 같더라. 또 일관성을 지키려고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부분도 있다.

연출 의도와는 다르게 해치의 존재에 대한 의문점이 커서 서도철의 존재가 역으로 희미해진다는 시선이 있다. 더불어 <베테랑>의 유머와 통쾌함이라는 미덕이 상대적으로 약해졌다는 의견도 있고.
<베테랑2>를 만들면서 고수한 방향성은 명쾌한 답을 내리지 말자, 이건 관객에게 돌리겠다는 의미다. 또 전편의 흥행공식을 답습하지 말자였다. 아마도 전편의 강점을 그대로 살리려 했다면, 9년까지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거다. 또 1편과 비슷한 톤앤 매너로 가려 했다면, 꼭 주인공이 서도철이 아니어도 된다. 서도철이라는 관객의 응원을 듬뿍 받은 캐릭터가 있었기에, 이번에 모험을 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예를 이런 거다. 설명을 너무 잘하고 신뢰가는 가이드가 있다고 하자, 이 가이드가 새로운 장소로 안내한다고 하면 믿고 따라가려는 마음이 크지 않겠나. 이번 <베테랑2>의 서도철이 딱 이 가이드 같다고 생각하면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명쾌한 답을 내리지 말자, 전작의 흥행 공식 답습하지 말자’라는 원칙 외에도 고수한 원칙이 있다면.
경찰병원에서 촬영한 씬이 있는데, 그때 병원에 ‘달라지자’라는 의미의 표어가 쓰인 액자가 걸려있었다. 이 표어가 마치 내가 잘 못 산 것 같은 느낌이랄지, 굉장히 세게 다가왔었다. <베테랑2>를 하면서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가 큰 숙제였었다. 관객이 좋아할 부분을 명확히 알고 있지만, 이를 재탕하기 싫었고 한편으로는 재탕하는 건 배신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향이 주인공 캐릭터의 변화를 최소화하자였다. 성장하되 응원받을 정도만큼만, 통쾌하되 사이다 한잔만큼의 시원함이라고 할지. 근본적인 처방은 못 해도 다른 검사로 이끌 만큼,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분노하는 것 이면의 것을 건드려 볼만큼의 변화를 주려 했다. 더불어 액션 영화로서의 장르적 박력, 쾌감이라는 표현은 지양하고자 했다. <베테랑2>는 통쾌하기만 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긴장과 박진감은 넘치지만, 시원하다는 느낌이 전부인 영화는 아니기를 바랐다.

<베테랑>의 큰 성공이 책임감으로 이어졌다고 했는데, 어떤 계기가 있을까.
전작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느낀 불편함이 있었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어이가 없네’ 같은 대사의 짤이 돌아다니는 걸 보면서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다른 지점이 있는데 이를 간과하고 있다고 할지. 우리는 흔히 자기 측근이나 아는 사람이 저지른 실수에는 허용도가 높아지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허용도가 낮아지기 마련이다. 인간이 감정의 동물이다 보니 그런데 이렇게 흘러가는 걸 보면서 어떤 반성이 생기는 건 사실이었다. 만약 <베테랑>이 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면, 지금 같은 부채감 혹은 만든 사람으로서의 책임감은 없었을 거로 생각한다.

이번 <베테랑2>를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얼추 다 한 걸까. 혹시 후속편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해치와 관련한, 그를 메인 캐릭터로 한 스크립트는 이미 다 써놓은 상태다. 만약에 이를 구현하게 된다면, 1편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하나가 해치의 성장과정과 연관되어 있을 것 같다.

상업영화보다 대중영화라는 표현을 즐긴다고. 더불어 총관객수보다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돈을 벌기보다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서 대중영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거다. 만약 이익만 생각했다면, 스턴트 몹씬 등 이렇게까지 비용을 들여 만들지 않았을 것이고 <베테랑2> 역시 더욱더 빨리 나왔을 것이다. 음악 분야에서는 대중음악이라고 하지, 상업음악이라는 표현 자체가 없는데 굳이 영화에서만 상업영화라 표현할 이유가 있을까.

당연히 영화에 투입된 자본에 대한 책임감은 있다. 보통 시나리오가 120페이지 내외인데, 만약 120억원이 제작비인 영화라면 1페이지당 1억원의 값어치인 셈이다. A4 한 장에 1억원이라니, 어떤 투자도 이런 투자는 없을 거다. 그래서 시나리오 검토 시 오타, 비문, 이런 부분은 가차 없이 걸러낸다. 그 한 장도 통제 못 하면서 100억 규모의 제작을 어떻게 통제하겠냐는 생각이 있거든. 스탭들한테도 항상 말한다.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만원부터 만오천원을 지불하게 하고 영화를 보여주는 거라고, 실력과 재능은 부족할 수 있지만, 책임감은 온전해야 한다’고 말이다.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건 다음 영화를 준비하는 여건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투자자뿐만 아니라 내게도 역시 중요한 부분이다.

국내에서 범죄, 액션 장르 영화의 대가로 손꼽히는데, 가족드라마나 로맨스 영화에 도전해 볼 의향은 없는지. 개인적으로 쭉 궁금했었다. (웃음)
데뷔 20년이 넘는데 키스 장면 하나도 못 찍어본 감독이 나다! 어쩌면 제대로 영화를 못 만들어 본 걸 수도 있다. 이 이야기를 한 선배한테 하니 깔깔대고 웃더라. (웃음) 세월이 흐를수록 호기롭게 말하는 것이 힘들다, 조심스럽다. 물리적으로 따져보니, 앞으로 남은 시간 (영화를 찍을 시간)이 지금까지 찍은 시간보다 적은 것 같아서 섣불리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고 말씀드리기가 어렵다. 중요한 건 전작보다는 조금 더 나은 영화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내 태도라고 생각한다. 지난 작품을 복기하는 과정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진제공. CJ ENM

2024년 10월 7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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