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촬영하면서 느꼈던 물음표가 결과물을 보고는 느낌표가 되었어요.” 강승호가 처음 주연을 맡은 영화 <장손>을 본 소감이다. 촬영 중 궁금하고 의문이 들었던 부분이 있었지만, 오정민 감독을 믿고 따라갔고 그 결과물을 보니 의도가 정확히 보였다는 말이다. 3대 김씨 일가의 장손 ‘김성진’ 역으로 분해 차분한 연기로 눈도장 확실히 찍은 강승호. 영화에서는 신인이지만, 연극 무대에서는 데뷔 11년 차 관록의 배우다.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 공연에 한창인 강승호를 만났다. 여름, 가을, 겨울 세 계절을 거쳐 <장손>을 촬영하는 동안 계절의 변화와 함께 스스로도 어떤 변화를 맞이한 것 같다는 그의 말을 들어본다.
오정민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장손>은 여러 갈래의 공감과 이입을 이끄는 작품이더라. 3대 대가족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사정이 이해됐다. 영화의 어떤 점에 끌렸나.
애와 증이 다 담겨있어서 좋았다. 미운 행동, 나쁜 행동을 해도 가족이니까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있지 않나. 이런 면에서 현실적인 우리네 가족이야기 같았다. 가족은 누구든 쉽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깊이 있게 다루기에는 조심스러운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겉모습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깊이 들어가면 보이는 것, 감독님께서는 이런 부분을 다루려 한다고 느꼈다. 이 작업에 동참한다면 나 역시 많은 걸 배울 기회가 되겠다 싶었다.
더운 공기가 스크린을 뚫고 나올 것 같은 여름으로 시작해서 싸라기눈이 날리는 겨울로 마무리된다. 정감 있으면서도 세련된 미장센이라 느꼈는데 촬영은 언제, 얼마 동안 한 건가.
2년 전, 그러니까 2022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합천에서 찍었다. <장손>이 규모가 크지 않은 영화인데, 이렇게 길게 촬영하는 건 드문 케이스라고 들었다. 장손인 ‘성진’(강승호)부터 조부모까지 가족 구성원이 많은 데다, 감독님은 계절이 바뀌며 구성원이 하나둘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셨던 것 같다. 나 역시 계절의 변화를 겪으며 새로운 경험을 한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성장했다고 느꼈다.
영어 제목인 ‘House of the Seasons’ 가 이해된다. 대가족이 드문 시대인데, 3대가 함께 사는 가족이 낯설지 않던가.
우리 가족 자체는 단출하지만, 명절이나 이런 행사 때 큰 집에 가면 완전히 대가족이다. (웃음) 집안의 장손인 사촌 형제를 보며 ‘성진’에 대해 간접적으로 공감했던 것 같다. 가족마다 표현 방식은 다르고, 극 중 성진네 가족과 우리 가족도 다르지만, 다른 와중에 같은 부분이 있어서 신기하더라.
극 중 성진은 배우 겸 감독이다. 집 보증금을 빼서 영화를 만들어 엄마(안민영)를 노심초사하게 하고 말이지. (웃음) 같은 직업군이라 공감대가 컸을 것 같은데 어땠나.
예전에 단편영화를 만든 적도 있고, 배우로 활동하고 있어서 입장이 비슷했다. 가족들이 누구누구 사인 한 번 받을 수 있느냐, KBS에는 언제 나오냐는 질문은 나도 받아본 거라 특히 공감되더라.
가부장적인 집안은 대체로 손녀보다 손자를, 둘째보다 첫째를 좀 더 케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지, 문득 궁금하더라.
세 살 위인 형이 있는데 형과는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친밀하게 지내고 있다. 결혼하고 조카가 태어나면서 예전보다 자주 연락하는 것 같기도. 개인적으로 ‘성진’처럼 가족과 분리됐을 때 좀 더 편안함을 느끼는 케이스라, 형이 나보다 관심의 대상이 되어서 오히려 안심했던 것 같다. (웃음)
할머니(손숙)의 갑작스러운 죽음 후 집안의 크고 작은 갈등이 불거지게 된다. 개인적으로 할머니는 3대 김씨 일가를 보호하는 커다란 나무 같은 느낌이었다. 엔딩 무렵, 성진이 진실을 알게 된 후 택시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는 장면과 그때 성진의 표정이 인상적이더라.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영화제 등에서 관객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자주 받았던 질문 중 하나다. 그런데 받을 때마다 달리 느껴지고 그 생각도 변하는 것 같다. 지금 생각에는 외면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 같다. 장손으로서 할아버지나 아버지와는 또 다른 중압감과 부담감을 가진 성진이라,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였을 거다. 창밖의 햇빛을 손차양으로 가리는 건 단순히 햇빛에 눈이 부셔서 이기도 하지만, 외면 혹은 회피의 감정이 담겨 있는 행동이라 하겠다.
드라마나 영화 쪽에서는 신인이지만, 11년 관록의 무대 배우다. 연기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때 우연히 연기 학원에 다녔는데 집에서 반대했었다. 반대를 반대하고 싶다고 할지, (웃음) 어떻게든 설득해서 계속 다니게 됐다. 그런데 막상 다니면서 열심히 하지도 않았고 그만둬도 괜찮겠는 거다. 그러던 참에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한 공연을 보러 갔었다. 작은 무대인데도 땀을 뻘뻘 흘리고 너무 즐거워하며 연기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스스로 작아지는 걸 느꼈던 것 같다. 극장을 나오면서 다시 연기를 배우고 싶어 졌었다. 학원으로 복귀해서는 정말 열심히 했다. 물리적으로 시간을 투자하니 그만큼의 성과와 성취감이 생기고 그래서 더욱더 매진했던 것 같다. 처음 연극을 체험하면서, 뭐랄지 내가 몰랐던 다른 세상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그간 연극에서 성취감을 느꼈다면 지금은 편안함을 느끼는 듯! 지금은 ‘연기’에 집중하고 있다. 그게 무대이든 영상 매체이든 상관없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로 성취감을 느낀다.
연기를 안 했다면 무슨 일을 했을 것 같은지.
다른 걸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이 딱히 없었거든.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연기였다.
무대와 영상 연기에 차이점이 있을 것 같은데.
확실히 다른 지점이 있더라. 공연은 하나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한 과정이 너무 좋다. 동료들과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고 같이 모여 연습하고 이런 과정에서 생동감을 많이 느낀다. 삶의 원동력이라고 할지. 영상은 경험이 많지 않아 아직 잘 모르겠지만, 촬영하면서 순간순간 그 결과물을 확인할 때 확실히 희열이 느껴지더라.
팬들과 소통은 어떻게 하는지. 지난해에는 오프라인 팬미팅이 있었다고.
공연 초창기 때부터 지켜봐 주신 팬분들이 있고, 최대한 소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작년은 데뷔 10주년에 그간 코로나로 인해 자주 못 뵙기도 해서 대면 팬미팅을 열었었다. 평소에는 공연 끝나고 나가면서 퇴근길 인사를 주로 한다. 신기한 게, <장손> 상영회 때마다 항상 연극(공연) 때부터 팬이라는 분이 와 계시더라. 지방을 가도 심지어 호주 시드니에도 계셔서 고마울 뿐이었다!
지금 공연 중으로 알고 있다. 어떤 작품인지 소개해달라. 또 차기작 소개도 부탁한다.
충무아트센터에서 <사운드 인사이드>를 공연 중이다. 여러 번 한 공연이고,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열심히 모은 책이 전부인 여교수 ‘벨라’와 그를 찾아온 학생 ‘크리스토퍼’가 문학부터 시작해 사적인 이야기까지 깊은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다. (벨라 역: 문소리, 서재희 더블캐스팅/ 크리스토퍼 역: 강승호, 이현우, 이석준 트리플캐스팅) 또 현재 넷플릭스 영화 <무도실무관>에서 다크웹 사이트 운영자로 나오니 자세히 봐 달라. (웃음) 차기작 역시 공연이 될 것 같고 드라마나 영화는 미정이다.
공연이나 촬영하지 않을 때는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또 뜬금없지만, 100억원이 생기면 어디에 쓸 것 같은가. (웃음)
맛있는 것 먹으면서, ‘잘’ 쉬려고 애쓰는 편이다. 동생 같은 ‘마츠’(시바견, 남아, 6세)와 산책하고 서핑을 좋아해서 가끔 바다에 가곤 한다. 100억원이라 너무 먼 얘기라, 딱히 사고 싶은 것이 떠오르지 않지만… 서프보드 같은 비싼 물건을 사고 집도 구하고, 맛있는 것도 먹는 등 돈에 구애받지 않고 편하게 하고 싶은 걸 하지 않을까 한다.
스크린을 통해서는 잘 인지하지 못했는데 눈이 굉장히 크고, 무언가 사연이 있어 보인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
돌이켜 볼 때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고 싶다. 과정과 결과가 있다면, 과정은 힘들어도 잘 해내야 하지만 결과는 좋다 나쁘다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했다면 그 결과가 어떻든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또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기 시작하면 하나하나 매몰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중심을 꽉 잡고 흔들리지 않으려 한다. 단단해 지려 한다.
사진제공. 인디스토리
2024년 9월 20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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