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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보다 시대를 봐달라” <행복의 나라> 추창민 감독
2024년 8월 27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대통령 암살사건에 연루된 정보부장 비서관 ‘박태주’(이선균), 가담자 중 유일한 군인인 그는 군사재판에 의해 단 1심만으로 형이 확정된다. 그에게 사형을 구형하려는 권력의 실세 ‘전상두’(유재명)와 ‘살 사람은 살려야 하지 않겠냐’며 구명에 사력을 다하는 박태주의 변호사 ‘정인후’(조정석). 영화 <행복의 나라>는 10.26과 12.12 사태를 배경으로 실존 인물과 가상 인물을 뒤섞어 완성한 팩션 드라마다.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7년의 밤>(2018) 이후 오랜만에 관객을 찾은 추창민 감독을 만났다. 시대의 야만성을 상징하는 전상두, 시대의 희생자 박태주, 그리고 시대의 시민정신을 상징하는 정인후를 통해 개인적인 서사나 특정 사건이 아닌, ‘시대’ 자체를 봐주었으면 한다는 의도를 전한다.

개봉이 예상보다 늦어졌다. 같은 시기를 다룬 <서울의 봄>이 흥행에 크게 성공했는데 영향이 있을 거로 보나.
촬영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끝났다. <서울의 봄>이 우리보다 규모가 큰 영화라서, 그보다 먼저 개봉하는 편이 유리하겠다는 생각으로 일정을 잡았었다. 그런데 편집 마지막 단계에서 예기치 않은 문제로 드랍하게 되면서 계획보다 늦어졌다. (웃음) 같은 시기를 다루었지만, 결이 다른 영화라 크게 상관 없을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결이 다른가.
<서울의 봄>은 다큐멘터리처럼 12.12 사태로 깊이 들어가서 인물을 중심으로 다룬 통쾌한 작품이다. 우린 인물이나 사건이 아닌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시대 자체에 포커싱했다. 극 중 ‘전상두’(유재명)는 그 시대의 권력자가 지닌 야만성을 대표한다. 대통령 암살에 연루된 정보부장 비서관 ‘박태주’(이선균)는 시대에 희생된 인물, 박태주를 살리려 사력을 다하는 변호사 ‘정인후’(조정석)는 시대의 시민 정신을 상징한다. 세 인물의 개인적인 서사보다는 그들을 통해 시대를 상징적으로 다루려 했다.

박태주는 10.26 사건으로 사형당한 박흥주 대령을 모티브로 한다.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하면서 경계한 지점은. 또 유족의 반응은 어땠나.
고인에 누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박 대령은 집안은 가난했지만, 서울고를 거쳐 육사를 졸업한 뛰어난 군인이었다. 권력의 중심에 있기보다 전방 근무를 자처한 타고난 군인이고, 사리사욕 없는 청렴한 분이었다. 당시 16평 슬래브지붕 집에 살았고 전 재산이 400만원에 불과했다고 한다. 올곧은 그분의 삶이 왜곡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박 대령 유족의 입장은 영화를 만드는 건 자유이고, 관여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유족을 대리해서 박 대령의 서울고등학교 동창생들과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간 박 대령과 관련된 후원을 꾸준히 해 온 분들이다.

<행복의 나라>를 보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궁금할 관객이 많을 것 같은데 어떤가.
재판이나 관련 인물 등등 극 중 내용은 팩트에 기반했고, 95% 가까이 일치한다. 법정에서 하는 대사 또한 대체로 실제 자료에 근거해 만들었다. 다만 마지막 대사는 각색된 부분이 있다. 전상두 관련 에피소드나 가상 인물인 정인후의 경우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했지만, 이 역시 시대를 상징적으로 그리려 한 의도의 연장선이라 하겠다.

영화적 상상력이라고 하니, (웃음) 개인적으로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 두 부분이 있다 하나는 관사 같은 곳에서 골프치고 있는 전상두를 정인후가 방문하는 장면, 또 하나는 계엄사령관(이원종)이 박태주를 구명하기 위해 증인으로 나서려 했다는 대목이다.
그런데 그 또한 자료에 근거한 거였다. (웃음) 당시 전두환이 골프를 즐겼고, 실제로 미군 골프장에서 혼자 치곤 했다더라. 철옹성 같은 그곳을 정인후가 홀로 찾아가서, 판타지같이 보인다 해도, 둘이 만났을 때 전상두가 그간 숨겨온 이빨을 드러내지 않을까 생각했다. 자기 본색을 드러낸 전상두와, 그에게 반항하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정인후의 투샷은 가장 영화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과하다고 볼 수도 혹은 시원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거다. 전상두 같은 권력자가 그 시대에 실존한 것은 팩트이고, 그런 권력자에게 지렁이도 밞으면 꿈틀한다는 걸 보이고 싶었다. 계엄사령관이 (박태주를 위해) 증인으로 나서려 했다는 설정은 좀 더 영화적으로 극화한 부분이다. <서울의 봄> 주인공인 ‘이태신’(정우성)의 경우도 극화된 장면이 많이 있다. 중요한 건 설득의 문제라고 본다. 관객만 설득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극화는 허용된다고 생각한다.

정인후는 박태주를 만나면서 각성하는 모양새다. 박태주에게서 억울하게 수형 중인 아버지를 연상한 까닭일까.
의식의 변화는 아주 작은 부분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운동권 자식으로 인해 투사가 된 부모가 있듯이, 개개인의 사정이 각성하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정인후는 처음에는 아버지를 감옥에서 빼내고 싶은 바람과 개인적인 명성을 위해 변호를 시작했겠지만, 자기가 당하고 보니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겠지. 직접 두들겨 맞으면서, 또 박태주가 처한 상황과 불합리한 재판을 보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욱더 깨우쳤을 거다.

<헹복의 나라>는 법정 드라마이기도 한데 법정 씬을 재현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은.
관객에게 재판장면이 진정성 있게 다가가려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통상 법정드라마는 한쪽은 가해자, 다른 한쪽은 피해자 구도로 피해자 쪽에 힘을 실어주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우린 양쪽에 균등하게 힘을 실어주려 했다. 공정하게 힘을 부여해야 설득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때문에 변호인단의 변호에 검사단이 흔들리는 모습은 지양했다.

재판내내 박태주는 ‘군인이기 때문에 명령에 따랐다’는 태도를 견지하는 반면 그 옆에 있는 정보부장은 그 어떤 발언도 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며 사건의 주동자를 완전히 배제한 셈인데 그 이유는.
우선 <행복의 나라>는 김재규와 그가 행한 일을 다루려 한 영화가 아니다. 더욱이 김재규가 암살을 행한 이유가 여전히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를 통해 어떤 주장이나 견해를 넣는다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그 의도를 모르기 때문에 섣불리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박흥주라는 인물에도 포커스를 맞추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박 대령과 아내가 실제로 주고받은 편지가 있는데, 이 편지를 영화에 포함할지 안 할지를 놓고 내부적으로 의견이 갈렸었다. 마지막 부분에 띄우려고 하다가 그렇게 하면 박흥주라는 인물이 너무 부각될 것 같았다. 인물보다 시대를 봤으면 하는 마음에 개인적인 서사는 배제했다.

전상두를 연기한 유재명 배우는 많이 촬영한 것 같은데, 분량이 아쉬웠다고. (웃음) 전상두는 시대의 야만성을 표상하는 인물이라 했는데 다루면서 주안점은.
유재명 배우가 정말 열심히 해주었다. 특히 재판을 지켜보던 전상두가 헤드셋을 벗고 나오는 장면은 여러 버전으로 보여주었다. 고민 끝에 그 장면에서 전상두의 표정을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는데 이유는 전상두가 그 사건을 어떻게 볼지 (나도) 잘 모르겠더라. 조금의 양심이라도 있어 찔렸을지 아니면 기분이 더 나빠졌을지, 그 감정을 정확히 표현한다면 그의 야만성을 어떤 식으로든 규정짓는 것 같았다. 모든 건 이면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선과 악은 51대 49라는 생각으로, 어떤 물음표를 남기고 싶었다.

진중한 분위기인데 때때로 웃음 포인트가 있더라.
영화가 너무 무거운 것 같아 조금 더 재미있게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묵직함 사이에서 조정석 배우가 웃음 모먼트 역할을 할 거로 생각했고 역시나였다. 각본에 맞춰서 오케이가 나도 또 다른 버전이 없을까 서로 이야기하며 만들어 갔었다. 처음 버전은 유머가 조금 더 많았다. 웃음의 분량에 대해서 호불호가 나뉠 거로 생각했는데, 관객의 반응이 궁금하다. (웃음)

정인후의 ‘살 사람은 살려야 하지 않겠냐’는 대사가 공교롭게도 극 중 박태주와 고 이선균 배우가 겹쳐 보이게끔 한다는 시선도 있다.
전혀 의도한 부분은 아니다. 다만, 편집하면서 보니 예전에는 박태주라는 인물이 보였다면, 지금은 이선균이 보이더라. 선균 씨에게 박흥주 대령의 사진을 보여주니, 그 모습이 아주 강직해 보인다면서 그대로 분장하면 안 되겠냐고 했었다. 사진처럼 수염을 붙이고 군복을 입으며 박태주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갔다. 선균씨도 분장이라는 갑옷을 입고 좀 더 박태주화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진제공. NEW


2024년 8월 27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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