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금용 기자]
오빠의 위장 취업을 돕는 뷰티 ASMR 유튜버 ‘한정미’로 분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분량이 많진 않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데.
내가 조정석 선배님과, 그것도 친남매 역할로 연기하게 되다니! 물론 내가 많이 나오면 좋겠지만, 사실 분량은 중요하지 않았다. (웃음)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원하는 자리일 거라고 생각했다. 제안을 받았을 때부터 부담보단 설레고 감사한 마음이 컸다. 내가 맏이다 보니 늘 응석부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항상 극중 ‘정미’와 ‘정우’ 같은 남매를 부러워했는데 그런 부분을 연기에 끌어와서 표현했던 거 같다. 선배님께도 아직 얘기하지 않은 건데, <술꾼도시여자들>(이하 <술도녀>)를 할 당시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의 조정석 선배님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다. 원래 팬이기도 하고 선배님 아이디어가 워낙 번뜩이지 않나. 아마 선배님은 모르실 텐데 제스쳐를 좀 따라한 부분도 있다. (웃음)
조정석 배우가 워낙 생활 코미디로 정평이 나 있지 않나. 도움 받은 부분이 있다면.
관객 입장에선 코미디는 친근한 장르다. 보통 보면서 웃는 데 집중하지 배우가 어떻게 연기해서 그런 코믹한 바이브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까지 고민하진 않으니까. 그런데 반대로 배우 입장에선 상당히 어려운 장르 중에 하나다. 정석 선배님은 항상 어떻게 이 극을 끌고 가야 하는지, 또 어떻게 재미를 줘야할지 항상 고민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셨다. 선배님을 보면서 자극을 받았고 배운 것도 많다. 모르는 게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움을 구하는 편이라 선배님께 조언을 먼저 구하기도 했다. 그러면 선배님께서 감사하게도 함께 고민해 주셨다. 그러니 다들 우리 영화 재밌게 봐주시고 그 뒤에 숨은 노고에 대해서도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
평소 예능 방송이나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을 통해 발랄한 이미지가 각인돼서 그런지 코믹한 연기가 체질인 줄 알았다. 코미디 장르를 할 때 어떤 게 특히 어렵나.
누군가를 즐겁게 하는 거 자체가 되게 어려운 일 같다. 나 혼자 웃기다고 다가 아니라 보는 분들에게서도 동의를 끌어내야 하지 않나. 1차적으로 감독님이나 스태프 분들이 재밌게 봐주는지를 유심히 살핀다. 현장 반응이 좋으면 조금 더 확신을 가지고 연기에 임한다. 이번에는 대본이 좋고, 정석 선배님도 계셔서 비교적 수월하게 촬영했던 거 같다. 기술 시사하면서 내 연기에 내가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웃음)
놀랍게도 <술도녀> 이전엔 사연 있는 캐릭터가 대부분이었다.
<술도녀>를 만나기 전엔 밝은 역할을 못 해봤다. 난 언제 밝은 캐릭터 해보나 고민도 많이 했다. (웃음) 그러던 차에 <술도녀> 대본을 받고 너무 놀랐다. 이전에 했던 역할들이 <술도녀>의 ‘지연’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어서, 감독님이 내 어떤 면을 보고 캐스팅했는지 궁금하더라. 감독님께 여쭤봤더니 내가 꾸준히 진심을 담아 연기를 해왔고, 평소 예능에서 보여줬던 밝고 센스 있는 모습을 연기에 녹여내면 ‘지연’이란 캐릭터를 더 잘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하시더라.
그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걸어온 모든 시간이 내게 기회가 돼서 돌아오는구나. 누군가는 감독님처럼 내 단편적인 모습만 보지 않고, 여러 모습을 보고 기회를 줄 수 있겠다?싶더라. <술도녀> 덕분에 요즘에는 밝은 역할을 마음껏 하고 있다. (웃음) <놀아주는 여자>도 <술도녀>가 있었기에 만날 수 있었던 거 같다. 기회가 기회를 낳는다는 마음으로 항상 열심히 하려고 한다.
<영화의 거리>(2021), <창밖은 겨울>(2022), <교토에서 온 편지>(2023) 등 독립영화를 여러 편 찍었다.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게 밝은 역할로 사랑을 받으니 전에 찍었던 독립영화나 내가 정말 애정하는 출연작 중에 하나인 단막극 <첫눈길> 같은 잔잔한 분위기의 작품으로도 관심을 받아보고 싶더라. 그런데 그건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이고 어떤 역할, 어떤 작품을 하든 보는 분들이 그 안에서 내 연기에 만족하고 이입해 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거 같다. (웃음)
처연한 역할, 유쾌한 역할 모두 찰떡같이 소화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실제 한선화는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지더라.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내 전부는 아니다. 당연히 나만 아는 내 모습도 있다. 실제 성격은 내향적인 편이고 혼자 있을 땐 높은 텐션이 아니다. <술도녀>를 통해 긍적적이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보여드리고, 또 그 모습으로 사랑받아서 감사하고 기쁘지만 내 삶을 돌아보면 항상 에너지를 뿜어내는 편은 아닌 거 같다. 그 에너지를 응축했다가 일할 때, 연기할 때 뽑아내려 한다.
2013년부터 연기를 해왔는데 <술도녀>를 기점으로 비로소 주목을 받는 거 같다.
그러고 보니 연기를 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어간다.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이제 와서 예전 힘들었던 때를 떠올리려 하면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만큼 내 앞에 놓인 기회들,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을 포기하지 않고 잘해내려고 노력해 왔던 거 같다. 내가 노력하는 게 남들에게도 보인다면, 또 불러줄 거란 신념을 가지고 연기해왔고 그 신념은 변함 없다. 계속해서 새로운 고민이 생길 테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2024년도 벌써 절반이 훌쩍 지났다. 남은 하반기에는 어떤 계획이 있나.
<파일럿>은 2년 전, <놀아주는 여자>는 작년에 촬영한 작품이다. 두 작품을 동시기에 선보이게 되어 기쁘다. 올해는 수확하는 해인 거 같다. 지금 논의 중인 작품이 있는데 하반기에도 쉬지 않고 일하고 싶다. (웃음) 사실 지금 유튜브를 준비하고도 있다. 채널명은 ‘궁금한선화’이다.?첫 에피소드 촬영을 마쳤는데, 거기서 행복에 대해 얘기한다. 꼭 특별한 이벤트가 있어야만 행복한 건 아닌데 평범하고 익숙한 행복에 대해 간과하게 되는 거 같다. 끊임없이 일을 하고, 관객과 시청자 분들을 만나는 이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웃음)
사진제공_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