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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나 초자연 현상보다 섬뜩한 현실” <뉴 노멀> 정범식 감독
2023년 11월 14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건·사고가 뉴스를 도배하는 요즈음, 경악스러운 상황에 부닥친 여섯 남녀가 있다. 최지우, 정동원, 이유미, 최민호, 표지훈 그리고 하다인까지 고립과 단절, 공포가 만연한 일상의 한 조각이 되어 새로운 서스펜스를 길어 올렸다. 전작 <기담>과 <곤지암>으로 K-공포를 선도해 온 정범식 감독은 기존 성공 공식의 답습이 아닌, 그 자체로 공포인 현실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겼다. 귀신이나 초자연 현상보다 현실을 모티브로 장르적으로 가공한 편이 더욱 섬뜩한 공포가 될 거라는 감독을 만났다. <뉴 노멀>이 영화적인 유희가 작동하는 독특한 비관론으로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을 전한다.

뉴스에서 접할 법한 여섯 개의 이야기로 공포가 만연한 현실을 그렸다. 기획 의도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을 비틀어 장르적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이번에 놀란 점이 <뉴 노멀> 홍보차 라디오 방송에 나갔는데 진행자가 극 중 독거여성(최지우)이 지닌 전기충격기를 자기도 가지고 다닌다고 하더라. 이렇듯 똑같은 방어 기구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뉴 노멀’로 다가왔다. 내가 그때 느낀 감정을 관객이 영화를 보고 느낀다면 (의도대로) 대성공이 아닐까 한다. (웃음)

영화의 계기가 된 특정 사건이나 인상적인 사연이 있는 건가. 또 이번에 새롭게 시도한 형식이나 기법이 있다면.

영국에는 고독부가 있다고 하고, 일본만 해도 고립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다룬다고 하는데, 상대적으로 한국은 고독과 고립에 대해 관심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이는 비단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인 만큼 ‘고독과 고립’을 키워드로 서스펜스 영화를 만들어 보고자 했다. <곤지암>의 경우 음악이 없고 모든 배우가 직접 촬영하는 방식의 새로운 형식을 도입했다면, 이번에는 배우에게 이름과 사건만 알려줄 뿐 그의 전사나 배경 같은 정보를 최대한 차단했다. 다시 말해 배우가 각자 상상력을 발휘할 뿐,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다. 상대역 간의 교감과 교류도 최대한 배제하고 철저하게 홀로 연기하는 방향으로 갔다. 일상에서 마주칠 법한 현실을 가공하면서 너무 극적으로 흘러가면 현실감이 오히려 휘발되기 때문이다.

뉴스나 기사를 통해 최근에 발생한 사건과 사고를 암시하고 있는데, 덕분에 현실감이 높아지는 것 같다.

귀신이나 초자연현상은 가공된 현실이고, 사람들은 이 점에서 공포를 느끼곤 한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고립된 시기를 보내야 했다. 이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안정적인 벽이 허물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서스펜스란 관객이나 독자에게 주는 불안감과 긴박감을 의미하는데,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자체가 서스펜스라는 생각이 들더라. 사건과 인물, 사건과 사고, 인물과 인물을 밀착시키지 않고, 여섯 인물을 고립시킨 후 연출자인 내가 연결시키고, 관객은 이를 나중에 발견하는 구조로 가져갔다. 고립된 인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영화의 마지막에 알게 되면서 우리가 사는 삶 역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드러내고 싶었다.

여러 살인이 발생하는데, 그 이유는 어느 하나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미니멀한 서스펜스 영화가 목적이었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진짜 뉴스를 접하듯이, 뉴스를 보면 어떤 이유는 없고 오로지 사건만 전달되지 않나. 이처럼 이야기는 너무 무겁지 않게 풀어나가되, 관객에게 주어지는 정보는 최소화했다.

여섯 챕터로 구성되어 있고, 챕터 마다 컨셉(스타일)과 색상을 달리했다.

사실은 다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이다. 챕터 별로 미국식 시트콤, 올드 디즈니, 브라이언 팔머 감독의 분할 화면, <중경삼림>의 편의점 색감 등 내 나름의 헌사를 담아냈다. 내가 잘 알고, 좋아하는 스타일을 녹여내 보는 여러 시도를 해봤다.

인물 간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 공을 들였는데, 어떤 식으로 연결지으려 했나.

구성면에서 보자면 영화 <기담>과 <킬 빌> 등이 섞여 있다. 챕터를 구분하는 기준은 이야기가 아닌 날(日) 그러니까 시간이었다. 각 챕터의 제목은 해당 이야기의 힌트 혹은 키워드로, 여기에 주목해서 본다면 더욱더 흥미로울 거라는 가이드와 비슷하다고 하겠다. 둘째 날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은 다시 첫째 날부터 펼쳐지도록 배치했다.

최지우, 정동원, 이유미, 최민호, 표지훈 그리고 신인 하다인 배우까지 캐스팅 맛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선뜻 수긍하기 힘든 캐릭터를 맡은 최지우와 표지훈 배우는 색다른 얼굴을 보였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도전을 했다.

기본적으로 연기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요즘에는 배우가 지닌 고유의 호감도 역시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호감도와 더불어 캐릭터와 가장 거리가 멀 것 같은 배우가 잘 소화해 냈을 때의 임팩트를 고려했다. 반전 매력이라고 할지, 이를 캐스팅의 기준으로 삼았다. 최지우 배우는 처음에는 ‘왜 이걸 내게?’하는 반응이었는데, 참고하고 오마주한 캐릭터와 영화를 보여드리니, 관심을 두면서 ‘감독님을 믿고 가겠다’고 하더라. 지훈 배우는 워낙 자유분방한 영혼이라서, 재미있을 것 같다고 흔쾌히 오케이 했다. 현장에서 원체 릴렉스하게 연기해서 그런지 덕분에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가 탄생했다. ‘파렴치한 로맨스를 꿈꾸는 자의 철퇴 맞은 말로’가 나름 귀엽게 표현된 것 같다.

미스터트롯 출신 가수 정동원은 처음으로 연기에 도전했다. 촬영 당시 실제로 중학생이었다고. 또 우연에 이끌린 평범한 대학생 ‘훈’(최민호)의 후사가 어떨지 궁금하더라.

아역 배우 후보군이 많았으나 진짜 중학생 같은 느낌이길 바랐고, 문득 동원이 생각나서 제안했다. 제작진 모두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첫 연기인데도 너무 잘 해줬다. 최민호 배우는 평소 한 번 작업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컸었고, 그를 통해 현실적인 이야기에 영화적인 느낌을 살리려 했다. 작업해 보니 정말 스마트한 배우였다. 현장을 아주 잘 파악하고 풀어나가는 배우더라. 마스크 덕분에 저평가되고 있다는 생각이고,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된다. 훈의 후사는… 여섯 인물이 저마다 혼밥하는 모습을 포착하며 극이 끝나는데, 민호 배우는 이때, ‘훈’이라면 떨어져 죽은 여성을 떠올리면서 먹을 것 같다고 하더라. 사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곤지암>으로 얼굴을 알린 위하준, 박성훈, 박지현 같은 배우들이 현재 왕성하게 활동 중이고, 이번에도 신인 배우 하다인을 발굴했다. 배우 보는 안목이 탁월한데 비결이 무얼까. (웃음)

비결이라 하기엔 좀 그렇지만, 같이 연기해 보면 느낌이 온다. 오디션 볼 때 앉아서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대사를 주고받는데 이렇게 해 보면 감이 온다. 하준, 성훈, 지현 모두 앞으로 대성할 거로 생각했었다. 하다인 배우는 사실 액션과 연기가 동시에 되는 흔치 않은 배우로 운 좋게 발굴한 케이스다. 코로나 이전부터 준비해 온 규모가 큰 영화에 출연하기로 된 상태였다. 코로나로 인해 제작이 계속 밀리면서, 이번 <뉴 노멀>을 제안했고 잘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과연 기대 이상이었다.

가수 윤상이 음악감독을 맡았다. 감독의 아들이자 그룹 ‘라이즈’ 멤버인 앤톤이 참여한 곡도 있다고.

몸과 마음이 지친 시기에 윤상 음악감독의 ‘달리기’ 노래를 자주 들었었다. <뉴 노멀>의 음악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서 이를 소화할 감독을 섭외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문득 노래 ‘달리기’가 떠올랐다. 윤종신 선배께 연락처를 받아, 일단 전화 드리니 <기담>을 좋아했다면서 OK 하신 거다! 클래식부터 EDM까지 멋지게 소화해 주셨다. 등장인물 별로 테마 음악이 있는데 그 중 ‘훈’의 음악은 설레는 톤이다. 아들 앤톤과 같이 해당 테마 곡을 공동으로 작업했다고 들었다.

마지막 질문이다.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됐는데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다면. 또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는지.

바르샤바 영화제에 초청됐을 때 일인데, 폴란드 사람은 한국을 아주 잘 사는 나라로 인식해서 그런지, 영화 속 같은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면서 진짜냐고 몇 번을 묻더라.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뿌듯함과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데서 오는 괴리감으로 복잡한 마음이었다. 또 독일의 한 영화 페스티벌에서 ‘서스펜스, 웃음, 귀여움, 블랙유머까지 담긴 독특한 비관론’이라고 표현했는데 <뉴 노멀>을 간파한 핵심 문장이 아닌가 한다. 손에 잡히지 않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영화는 많으니, 우린 좀 다른 방향으로 가도 좋다고 생각한다. 무겁고 시리어스한 비관이 아니라 영화적인 유희가 동작하는 독특한 비관론으로 다가갔으면 한다.


사진제공. ㈜바이포엠스튜디오

2023년 11월 14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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