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무비스트 박은영 기자]
밀라노의 한 아파트의 어느 밤, 왁자지껄한 분위기 사이로 분주하게 파티를 준비하고 있는 한 여성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비비아나, 은퇴를 하루 앞둔 남편 아모레를 위한 깜짝 파티를 준비 중이다. 마침내 조깅 나갔던 아모레가 등장! 화상으로 파티에 참석한 딸, 오랜 지인과 동료, 이웃들의 환호 속에 완벽한 은퇴 D-1을 즐기던 아모레, 35년의 근무 기간 중 단 한 번도 사람을 향해 총을 쏘지 않은 모범적인 경찰이었던 그이다. 이때 파티의 흥을 깨는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아모레의 파트너 ‘디노’가 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디노는 왜 아무 연고도 없는 지역의 고속도로 터널에 갔으며, 도대체 누구와 총격전을 벌인 걸까. 시간은 일주일 전으로 거슬러 간다.
<라이프 오브 파이> <맨 헌터> <돈 룩 백> 등에 출연한 배우이자 <파라다이스 로스트: 마약 카르텔의 왕>(2014) <비밀정보원: 인 더 프리즌>(2019)을 연출한 안드레아 디 스테파노 감독이 신작 <아모레의 마지막 밤>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한 해 세계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조망할 수 있는 월드 시네마 섹션에 초청된 이 영화에 대해 “현실적인 경찰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이탈리아 국내 상영 당시 작은 반향을 일으켰다”고 전하는 감독을 만났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처음인데, 둘러본 느낌은.
평소 영화를 통해 본 한국에 호기심이 높았던 터라 영화제 초청을 받고 행복했다.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어서 말이다. (웃음) 한국영화는 이탈리아 영화와 비슷하다는 생각이고, 관객은 매우 열정적이라고 느꼈다.
한국영화와 이탈리아 영화의 어느 면이 비슷한가.
둘 다 주인공이 미국적인 주인공과 다른 면모를 보인다. 이들은 할리우드식 영웅과 달리 뭐든지 극복하고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안 든다. 약하고 불안하고 어딘가 웃긴 구석이 있는 인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차 강해지고 내면이 성장하면서 극이 진행할수록 공감하게 하는 힘이 있다.
<아모레의 마지막 밤>을 매우 흥미롭게 봤다. 보면서 국내에서 리메이크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하기도! (웃음) ‘35년 동안 한 번도 총을 쏘지 않는 모범 경찰관이지만, 나름의 원칙으로 부업 하는 경찰’이라는 캐릭터의 탄생 배경이 궁금하다.
예전에 비슷한 상황의 경찰관을 만난 적이 있다. 원칙만 놓고 보자면 그는 깨끗한 경찰이 아닐 수 있겠지만, 자신은 좋은 경찰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총을 사용하지 않고, 시민의 안전을 수호하는 경찰의 전통 가치를 고수하는 사람이었는데, 흥미로운 캐릭터가 될 수 있겠더라. 은퇴를 앞둔 상황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진다면 어떻지 상상력을 발휘해 봤다.
아모레를 ‘끝까지 선하고자 애쓰는 인물’로 소개했는데, 가볍게 묻자면 ‘부업’을 해도 좋은 경찰인 걸까.
경찰 ‘일’에 있어서는 좋은 경찰일 수 있다고 본다. 그들이 부업을 하는 이유가 탐욕이 아닌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밀라노에서 그들이 받는 급여로는 생계유지가 힘드니 어쩔 수 없이 택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극 중 아모레가 부업의 대가로 받는 5,000유로(약 713만원)는 그들의 인생을 변화시킬 정도로 드라마틱한 돈이 아니다. 그럼에도 먹기 살기 위해 하는 것이고, 부업을 하면서도 본업에는 충실히 최선을 다해 임하지 않나.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경찰들이 소비력 높은 마피아를 보며 현타를 느끼기도 하는데, (한국도 그렇지만) 이탈리아도 공무원이 박봉인 건가. (웃음) 또 밀라노에서 중국 마피아가 그렇게 활개를 치는지 현실 반영은 어느 정도인가.
작은 도시의 경우 경찰 월급으로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밀라노 같은 큰 도시는 생계유지가 힘든 실정이다. 중국 마피아 묘사는 굉장히 현실적이라 할 수 있다. 8개월 정도 조사했는데 이때 중국 마피아, 마피아 담당 이탈리아 경찰 등 여러 기관과 계층의 자문을 거쳤었다. 그들의 활동상도 그렇고, 주거나 생활 모습, 조명, 색감 등 모두 현실을 고려해서 세트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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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낭만적인 면모를 지닌 누아르 영화라고 생각한다. 아모레가 사랑을 위해 희생(?)했다고 자처하는가 하면, 엔딩에서는 ‘로빈훗’ 같은 의적이 되고 싶다고 하기도 한다. 결말에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원래 엔딩을 엄청나게 폭력적으로 썼었는데 이를 경찰관에게 보여주니 고개를 흔들더라. ‘너무 현실적이지 않다고, 어떤 중국 갱도 자기 집에서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는 거다. 그래서 결말을 변경했다. 또 <아모레의 마지막 밤>은 누아르보다 러브스토리로 생각하고 만든 면도 있다. 아모레가 사랑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역시 하나의 주요 포인트였다. 보통 장르영화에서는 여성이 영화의 배경으로 역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이야기, 즉 서사를 움직이는 여성 캐릭터를 구축하려 했었다. 비비아나는 후반부 서사의 주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비아나는 어딘가 범죄와 접점이 많아 보이는 인물로 범죄에 연루된 상황에서도 의외로 침착하고 대범한 모습을 보인다. 참고한 인물이 있는 건가.
아모레의 모티브가 된 경찰관의 실제 스토리라 하겠다. 아모레처럼 이 경찰관도 두 번째 결혼이었고, 그 부인이 범죄 조직 집안 출신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상관이 알게 된 후 승진에서 밀려나고, 중요한 수사에서 배제되는 등 모욕적인 상황에 처했다고 하더라. 아모레의 대사처럼 ‘커리어가 중단’된 거지. 사실 영화가 이탈리아 국내 개봉을 앞두고 정치권과 경찰 상부에서 압박이 있었다.
무슨 상황인지 자세히 들려달라.
영화가 부패한 경찰의 면모를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개봉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있었는데 오히려 경찰들이 편을 들어줘서 무탈하게 개봉할 수 있었다. 개봉에 앞서 영화를 본 경찰들이 자기네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영화가 드디어 나왔다고, 자기들이 부업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주고 있고, 이를 계기로 현실적인 문제를 타개해 나갔으면 한다고 힘을 실어주었다. 그들은 열 시간 혹은 열두시간 근무한 후, 여덟 시간 부업하고, 고작 서너 시간 휴식 후 다시 총을 들고 나가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실상이다. 이러한 현실을 정치인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인 반향까지 일으킨 셈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코미디와 드라마 요소가 강하지만, 전 세계에 공감을 일으키는 사회적인 힘을 발휘하지 않았나.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우선은 내가 보러 갈 것 같은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거다. 나아가 보고 나서 어떤 생각을 하고 배울 거리가 있는 영화를 만든다면 아주 만족할 것 같다. 어느 장르 영화이든 여러 겹의 레이어가 있고, 그 안에는 공감을 이끌 수 있는 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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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의 스타일과 알프레드 히치콕의 긴장감이 살아있는 현실적인 경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연출 의도대로 스타일과 긴장감 모두 살아있더라. 이를 위해 연출적으로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모든 게 진짜처럼 보이고 느껴지는 게 중요했다. 가령 고속도로 씬이면 CG나 특수효과가 아닌 직접 고속도로에서 촬영하는 식이었고, 제한적인 시간의 느낌을 내기 위해 예전 빈티지 영화에서 사용하는 렌즈를 사용했다. 항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느낌과 누군가 아모레를 지켜보고 있다고 느끼게 하려 했다. 이때 관객이 주인공의 호흡을 따라가면서, 감독이 의도한 답이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기를 바랐다. 또 디지털 촬영으로 진행했던 전작 <비밀정보원: 인 더 프리즌>과 달리 이번엔 35mm 필름으로 촬영했다.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연이어 작업하고 나니 확실히 필름만의 장점이 있더라. 빈티지한 느낌도 느낌이지만, 무엇보다 클로즈업했을 때 가령 눈의 반짝임 등을 담아내는 데 탁월하다. 앞으로도 가능하다면 필름으로 작업하고 싶다.
오프닝의 음악이 굉장히 신선했다. 숨소리 같은 느낌도 들고 심장 박동수를 높이는데 유효하더라.
현재 이탈리아 영화는 과거에 비해 음악의 위대함을 잊고 있다는 생각이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 등 예전에는 음악이 주인공이었다면, 지금은 상당히 샤이하게 그러니까 소극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단순히 비중의 문제는 아니고, 음악은 관객의 정서를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음악은 촬영 전에 이미 완성하는 편이다. 완성한 음악을 가져다가 촬영하면서 장면과 어울리는지 어울리지 않는지 파악해 나간다.
마지막 질문이다. 요새 이탈리아 영화 트렌드를 간략하게 짚는다면.
최근의 이탈리아 영화 경향은 어떤 경향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게 경향이다. (웃음) ‘미친 짐승’ 같이 산업이나 작품에 있어 제 각각이다. 프로토타입만 있다고 보면 된다. 각자 다 다르다.
사진제공. 워너비펀
2023년 10월 17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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