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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톱니든 바늘이든 필요한 배우” <카운트> 진선규 배우
2023년 2월 23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범죄도시>(2017) ‘위성락’으로 시선을 강탈한 것은 물론이고 탄탄히 다져온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 진선규. 이후 그만큼 바쁜 일정을 소화해 낸 배우도 드물 것 같다. 영화 <롱 리브 더 킹>, <승리호>, <공조2>의 공동주연과 시리즈 <킹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몸값>에 이어 예능 <텐트 밖은 유럽>까지! 장르와 매체를 넘나들며 주·조연에 카메오까지 마다하지 않은 그가 첫 단독 주연 영화 <카운트>로 관객 앞에 섰다. 자칭 리더에 어울리지 않는, 충실한 구성원으로 남는 편을 선호한다는 진선규. 앞장서서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크지만, 영화의 결과에는 대범한 모습이다. 시계의 톱니가 되든 바늘이 되든 위치에 상관없이 필요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는, 이미지 소모를 우려하기보다 필요한 역할에 기꺼이 자리하고 싶다고 말한다.

<카운트>는 1988년 서울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인 ‘박시헌’ 선수의 일화를 모티브로 한다. 여전히 현장에서 지도자로 활동하는 분인데 촬영에 앞서 만남을 가졌나.
처음 한두 번 만나 뵀고 그 후에는 제주도에서 팀을 이끌게 되셔서 중간중간 카톡으로 연락하며 지냈다. 처음 뵌 게 한 3년 전인데 그때 캐릭터를 어떻게 그릴지 영감을 많이 받았다. 세고 강하고 이기려는 인물이 아니라 약하고 부드럽고 가족과 동료를 중시하는 복싱을 좋아하는 순수한 분이더라. 사실 88올림픽에서 쌤과 관련한 편파 판정 논란이 있었다는 걸 시나리오를 보고 나서야 알았다. 읽으며 그의 아픔에 공감했고, 나와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인물이자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불공정한 세상을 향해 어떻게든 버티고 이겨내는 강한 겉모습 이면의 보드라운 속내를 영화 속에 잘 녹여보고 싶었다.

현업에서 활동하는 분을 연기한다는 게 한편으로 부담이 될 수도 있는데 어땠나.
나보다 시헌 쌤이 자기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데 있어 우려를 많이 하셨다. 쌤의 이야기가 전해질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으니, 나 역시 쌤이 두려워하는 부분을 이해했다. 그래서 쌤의 명성이나 명예를 회복한다는 측면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이야기 자체가 좋은 방향으로, 치유되는 영화로 다가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임했다.

공유하는 부분이 많은 캐릭터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그런가.
쌤은 가족을 무엇보다 중요시하고 좋아하는 복싱을 정말 즐겁게 했던 분이다. 훈련조차 그렇다. 동료와 주변인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하며 결실을 얻은 분이다. 진해 출신에 더불어 내 꿈이었던 체육 선생을 하고 있으니, 공통점이 많다고 느꼈다. 또 인생은 진행형이라는 쌤의 가치관까지 비슷한 부분이 많다.

의도치 않은 편파 판정으로 인해 주변으로부터 외면과 경원의 대상이 되는 등 비운의 주인공이 된 쌤과 같은 상황이라면 어떨 것 같은가. 우문을 던져본다.
겪어 보지 않아서 상상도 잘 안 되지만, 아마 나였다면 그때 그 순간 무너졌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즐겁고 행복한 일을 못 하게 된다면… 주변에 동료마저 없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끔찍하다. 스무 살 무렵 어렵게 지냈다고 하지만, 금전적인 곤란함이지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설령 힘들었어도 굉장히 좋은 연극하는 동료들이 곁에 있어서 잘 이겨낼 수 있었거든.

데뷔 19년 만에 처음 맡은 단독 주연인데 부담감이 큰가 보다. 좀 지쳐 보인다.
어제 밤새워 촬영한 것도 있고, 홍보 일정은 이전과 비슷한데 부담감 자체가 크다 보니 좀 더 지치는 듯하다. 나 자체가 앞에서 으?으? 하며 끌고 가는 대장 역할을 잘 못하는 사람인데, 촬영과 홍보 등에 있어 앞에 나서야 하는 순간이 있어서 맞지 않는 옷인 것 같고, 어딘가 나 같지 않고, 또 잘하고 있는지 의심도 든다. 처음 느끼는 상황과 감정이라 더 그런 듯하다.

앞으로 익숙해질 일 아닌가. (웃음)
그렇지 않아도 <범죄도시> 팀을 비롯해 여러 동료가 한 목소리로 축하해 주길래, “내 깜냥이 아닌 가봐, 이렇게 떨리고 부담스러우니”라고 했다. 그랬더니 “오빠(형) 처음이라 그렇지 익숙해져야 해,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거야?”라며 수시로 톡을 하고 격려해 주더라. 어느 조직에 있든 앞에 나서기보다 구성원의 한 명으로 충실하고자 하는 마음이 지금까진 컸었다. 하지만 이제껏 시계를 돌리는 톱니바퀴였다면, 이번에는 시계의 바늘이 된 셈이니 필요하다면 익숙해지고, 부족한 부분을 좀 더 익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사회 때 눈물을 보이기도.
그날 아침 시헌 쌤이 ‘대한민국 최고 진선규가 링 위에 올라가는데 떨면 어떡하냐고, 씩씩하게 하고 오라’는 카톡을 주셨다. 이 말을 하는데 순간 눈물이… (웃음)

<범죄도시>(2017) ‘위성락’으로 공전의 히트를 친 후 단독 주연을 맡기까지 그 기간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어떻게 생각하나?
솔직히 너무 짧았다고 생각한다. <범죄도시> 이후로 너무나도 큰 변화가 있었다. 이건 ‘성장’도 아닌 ‘자리바뀜’이다. 주연을 맡기까지 너무 급하게 올라왔다는 생각에, 익숙하지 않음에 더욱 부담감이 큰 것 같다. 그럼에도 ‘박시헌’이라는 캐릭터가 (말했듯이) 나와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고, 그냥 ‘진선규’ 같은 느낌이라 너무 하고 싶었다. 깜냥이 안 되도 말이지. 캐스팅 제안을 받고 “이 역할이 저에게 왔다고요? 그러면 저 진짜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면서 다른 배우에게 주지 말라고 다짐할 정도였다.

<카운트> 이후 누군가는 ‘역시 진선규는 조연감이야’라고 평가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주연도 되는데?’ 하는 등 여러 시선이 있을 거다. 배우로서의 목표가 주연은 아니기 때문에 톱니가 되든 시곗바늘이 되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이 영화가 잘 됐다고 해서 계속 주연만 할 것도 아니고, 잘되지 않는다고 해도 연기를 계속하다 보면 기회는 또 올 거기에 그렇다. 앞으로도 조연, 카메오 등 배역의 크기에 상관없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참여하려 한다. 이미지 소모를 우려하기보다 필요한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마침 고향인 진해가 배경이라 좀 더 각별했을 것 같다.
영화 속에 나온 장소 하나하나가 추억이 서린 곳이다. 장복산이나 바닷가 옆길 등은 매번 소풍 가고 친구들과 놀던 장소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올라온 후 아무래도 내려가는 횟수가 줄어들고, 가서도 바쁘게 올라오기 일쑤였는데 오랜만에 고향에서 친구들과 진득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았다. 예전에 친구들이 ‘너무 코가 낮아 배우 하기 힘들다’고 했는데 이렇게 낮은 코 덕분에 진짜 복싱 선수 같다는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또 식당에 가면 ‘진해의 아들’이 왔다는 농담도 하셔서 어딘가 금의환향한 것 같기도!

진해하면 벚꽃! 영화 속의 벚꽃이 활짝 핀 거리가 참 예쁘더라. 나무 아래에서 흩날리는 벚꽃 잡기 훈련하는 모습도 귀엽고.
군항제 기간에는 사람이 진짜 엄청 많아서 차는커녕 사람을 통제하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다. 이 기간은 차가 너무 막혀서 학교에 걸어가는 게 빠를 정도였다. 코로나 시기라 상황은 안 좋았지만, 상춘객을 금지해서 촬영하기에는 오히려 편했다. 진해에서 20년을 살았지만, 만개한 벚꽃을 사람이 그토록 없는 상태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웃음)

‘윤우’역의 성유빈을 비롯해 제자로 나온 김민호, 장동주 배우 등 어린 후배들과 함께했다. 젊은 기를 듬뿍 받은 현장이었겠다.
정말 그랬다. 사실 리드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웃음) 나와 세대가 다른 젊은 친구들을 처음 만났을 때는 정말 떨렸다. 그런데 두 번째부터는 체육관에 모여 같이 땀내며 운동하다 보니 금방 친해지더라. 사전에 두 달 반 동안 같이 연습하고 들어가서 그런지 촬영에 들어가서는 모든 게 너무 잘 맞았다. 우리 영화의 많은 부분이 훈련과 경기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대사라 이미 촬영 전부터 형성돼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소 복싱이 취미라고.
결혼 후 뒤늦게 한번 배워보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2년 정도 정말 열심히 했었다. 이번에 준비하면서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 나더라. 줄넘기, 쉐도우, 샌드백 스파닝 다시 쉐도우 그 과정이 예전과 거의 똑같았다. 이번에 용인대학교 코치님이 우리의 트레이닝을 담당했고, 그 학생들도 스파링 상대로 뛰어 줬는데 우리가 한 대도 못 때렸다! 사실 진해 중학교 2학년생들과도 연습했는데, 이들은 그래도 한 대라도 때릴 거로 기대했는데, 역시 한 대도 못 때렸다. 진짜 선수들은 차원이 다르더라. 이렇듯 다양하게 스파링하며 연습했었다.

디즈니+ <카지노>에서 ‘차무식’(최민식)의 잠재력을 알아본 선생에 이어, 이번에도 제자를 아끼는 선생을 연기했다. 지금까지 특별히 기억에 남는 스승이 있다면.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은 학생이었다. 공부를 잘하지도 않고 못 하지도 않아서 크게 혼나지도 않고 칭찬받지도 않았었다. 생각 나는 건 초등학교 4학년 3반, 중학교 2학년 4반 담임 선생님이다. 이때 한 특별한 말씀이나 행위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뭔가 따뜻하게 잘 챙겨 주셨던 기억이 있다.

드라마 <작은아씨들> ‘고수임’으로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 배우 박보영과 애틋한 부부애로 유명하다. (웃음)
<작은 아씨들>이 이렇게 이슈인지 당시엔 잘 몰랐다. 우리 집이 5시 반에 아이들이 귀가하면 ‘6시 내고향’이나 ‘생생 정보통’을 보다 보면 7시 반 정도 된다. 이후 저녁 먹으며 일일 드라마를 같이 보며(장모님이 애정하신다!) 하루 일과를 서로 나눈다. 그러다가 9시면 소등하고 취침하는 분위기다. 이렇게 7년 정도 살다 보니 <작은 아씨들>을 볼 시간이 아예 안 됐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내 기사가 나와서 보니, 집에서 보여주지 않은 센 모습, 그러니까 누군가를 때리는 걸 보면서 깜짝 놀랐다. 아마 <범죄도시> ‘위성락’을 보면서 아내가 느낀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더라. 나중에 얘들이랑도 같이 봤는데 “진짜 때린 건 아니지!”라고 질문하기도. <승리호>를 보면서는 ‘아빠, 우주는 진짜로 어떠냐?’고 질문했던 아이들인데 많이 컸다고 느꼈다. 이번에 <카운트>는 11살, 8살 두 아이와 장모님까지 온 가족이 다 같이 볼 수 있어 더욱 기쁘다.

당시엔 나와 관련한 기사가 아닌 와이프 자체의 기사를 접하니 너무 좋고 행복하면서 이상한 묘한 느낌도 들고 했었다. 이제는 이런 시기를 지나 아내가 좋아하는 연기를 다시 시작할 발판이 돼 준 작품이라 고마울 뿐이다. 아내가 촬영 나갔다가 귀가해 현장에서 있던 일을 얘기할 때 보면 참 즐겁고 행복해 보여서 좋다. 다행히 서로의 공백을 메우며 양육하는 체계가 잘 잡혀 있다. (웃음)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캐릭터는.
이야기이든 캐릭터이든 매력적이면 시나리오에 발을 풍덩 담게 되는 것 같다. 언젠가는 멜로를 한번 해보고 싶은데,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사진제공. CJ ENM

2023년 2월 23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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