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제16회 미장센단편영화제 ‘4만번의 구타’ 섹션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악당출현>(2017) 등 단편 영화 작업을 이어온 유수민 감독이 OTT 플랫폼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약한영웅 Class1>으로 시청자들을 찾았다. 인기 높은 원작 웹툰의 서사와 캐릭터를 변주해 공감대 높은 학원액션물을 완성한 감독. 순수한 우정으로 서로를 지키고자 움직이고 희생하는 ‘약한영웅’의 면모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 (어른들이)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유수민 감독을 만났다. 군대 고참이 소개해 준 영화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블루벨벳>에 이끌려 영화의 길로 들어섰다는 그의 말을 들어본다.
(*해당 인터뷰는 <약한영웅 Class1>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약한영웅 Class1>(이하 <약한영웅>) 프로젝트의 시작과 과정은.
한준희 감독님이 먼저 제안 주셨고, 재밌게 보던 웹툰이라 당연히 OK했다. 전체 과정은 대략 1년 반 정도다. 글만 6개월가량 쓰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프리프로덕션 4개월, 촬영 3개월, 포스트프로덕션 4개월이 걸렸다. 아직 장편 영화 경험은 없지만, 영화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작업이었다.
한준희 감독이 크리에이터로 참여했다. 요즘 특히 OTT 시리즈의 경우 ‘크리에이터’라는 롤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데 주요 역할을 짚는다면.
다른 시리즈는 알 수 없으나 우리 작품의 경우, 감독님이 옆에서 전반적인 면을 살펴봐 주셨다. 방향이 살짝 어긋난다 싶으면 다시 재설정해 주는 등 마치 (내가) 영화 지도받는 학생 같은 느낌으로 함께 작업했다고 보면 된다. 감독님이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셔서 큰 힘을 받았는데 특히 극본을 쓸 때 상업작품은 상업적인 요소를 갖춰야 하는데 ‘수민아, 네가 재미있는 걸 쓰라’고 하면서 많이 믿어 줬다. 또 부족하다고 느낀 지점이 있으면 ‘이렇게 하는 게 재미있지 않겠냐’며 아이디어도 내줬다.
원작이 원체 유명한 웹툰이다. 시즌3까지 나왔는데 프리퀄 격인 이야기로 가져간 까닭은. 이런 변주 과정에서 ‘수호’(최현욱)가 지능캐릭터에서 싸움캐릭터로 변모했다.
영상화의 관건은 시청자의 공감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서는 프리퀄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할 법한 이야기 안에서 고등학생인 주인공들의 감정과 경험을 잘 보일 수 있겠더라. 수호 캐릭터의 변화는 극 중 운동적인 에너지, 그러니까 뛰어다닐 캐릭터가 필요해서다. 그 결과 수호가 지닌 본질과 그가 ‘시은’(박지훈)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원작보다 조금 더 확장했다.
각색과 연출에 있어 큰 방향성과 주안점은.
학원액션 장르 안에서 세 친구의 관계성을 확장해 그 시기에 경험할 감정에 초점을 맞췄다. 인물들의 감정에 공감하고 특히 액션씬은 재미있게 느끼도록 연출하면서 중점을 뒀다. 좀 더 설명하자면, 개인적으로 액션은 감정이 충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작의 화려함보다 액션이 시작되기 전의 감정이 중요한 거지. 그래서 감정이 충만하면서도 리얼한 액션으로 가져가되, 원작의 도구와 지식을 활용하는 ‘연시은’ 액션의 특별함 혹은 고유함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과연 시은이 커튼을 활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1화 액션부터 시선을 모은다. 최현욱 배우는 기대 이상의 액션 퍼포먼스를 보이더라.
일단 키스탭들이 한준희 감독님이 연출한 넷플릭스 시리즈 < D.P. > 때부터 함께해 온 터라 합이 좋았다. 현욱 씨는 준비를 매우 철저히 해왔다. 사전에 액션스쿨에 다니며 동작과 기술적인 부분 등을 열심히 트레이닝한 것은 물론이고 파이터의 마음가짐을 익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호’가 (격투기) 선수 준비생 출신이라 노는 것처럼 즐기면서 해달라고 제안했더니 이 부분을 맛깔나게 소화해줬다. 지훈 씨에게는 마지막 8화의 클라이맥스인 액션 시퀀스에서는 ‘시은’이 많이 맞기도 하지만, ‘얘는 지금 좀비와 같이 몸과 마음이 다 소진돼 쥐어짜도 물 한 방울 안 나올 상태’라고 설명했었다. 이 장면을 비롯해 1화의 커튼 시퀀스 등 사전에 많이 연습하고 미리 합을 맞추고 들어간 덕분에 잘 표현된 것 같다.
매력적인 캐릭터 구축과 이에 걸맞은 찰떡같은 캐스팅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 비하인드가 궁금하다.
지훈 씨는 제작사 대표님이 웹드라마 <멀리서 보면 푸른 봄>을 보고 추천해 주셨다. 촬영하면서 지훈 씨가 매일매일의 한계를 깨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본인이 점점 나아지는 것 같아 재미있다고 말했는데, 지켜보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욱 씨와 ‘범석’역의 (홍)경 씨는 한준희 감독님의 추천이었는데 평소에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했던 배우들이다. 특히 홍경 배우는 영화 <결백>에서 신인임에도 전혀 쫄지 않는 연기에 놀랐었다. 염두에 뒀던 배우들이 흔쾌히 수락해서 순조롭게 출발했다.
범석은 원작에서 시기심으로 열폭하는 인물이었다면, 이번엔 여기에 더해 가정 폭력 피해자라는 설정을 씌웠다.
그의 행동은 나쁘지만 단순히 악인이 아니라는 걸 보여 시청자가 그의 심정을 이해하게끔 하고 싶었다. 입양아인 범석이 정치인 아버지로부터 당하는 폭력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만,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라는 생각에 반영했다. 어떤 분들은 그의 유학으로 마무리되는 엔딩을 보고 욕하는 분도 있는데, 이는 ‘부잣집 아들의 도피성 유학’이 아닌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실행한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정치인이자 권력자인 그의 아버지가 ‘시은’을 볼모로 그에게 유학을 종용하지 않았을까. 영웅의 기본적인 속성 중 하나가 희생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등장인물들은 어떻게 보면 모두 ‘약한 영웅’이라고 할 만하다.
그래서 ‘약한영웅’인가! (웃음)
영웅이란 단순히 힘세고 싸움을 잘해서 되는 게 아니다. 자기만이 아니라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고, 고난을 넘어 앞으로 나간다. 극 중 등장하는 어른들, 그러니까 담임이나 시은의 부모 심지어 범석의 부친까지도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인물이라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어른들이 때때로 무책임하게 보이거나 아이들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 건 욕심이 많아서다. 반면 소년들은 욕심이 없다. 친구와 놀고 같이 밥 먹고 인스타 팔로우 등을 고대하는 등 이런 순수한 소년들을 지켜보면서 (어른으로서) 애틋한 마음이 드는 게 아닐까 한다.
전교 1등 시은과 싸움 1등 수호가 친해지면서 (말했듯) 자기를 ‘희생’할 만큼 서로를 위하는 모습은 과연 애틋하더라.
둘에게 서로는 첫 우정이 아닐까 한다. 사실 그 시기 아이들은 어떤 취향에 상관없이 축구를 한 번 같이 하면 친구가 되기도 한다. (웃음) 비유하자면, 2화에서 시은-수호가 석대 무리와 한 싸움은 축구 하다 결승골을 넣고 고깃집에 간 것과 같다고 하겠다. 3화와 4화에서 ‘길수’(나철)무리에 맞서 싸운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조연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유일한 여성이자 시은-수호-범석 사이에 균열을 초래하는 ‘영이’(이연), 가출팸의 큰형인 ‘석대’(신승호) 등 조연 캐릭터도 극의 서사에 굴곡을 부여한다.
영이 같은 경우는 성별을 떠나서 학창시절에 이런 경험이 대부분 있지 않을까 한다. 친한 친구 사이에 새로운 친구가 들어오면서 어딘가 멀어지고, 소외되는 것 같은 감정 말이다. 가령 나 빼고 둘만 PC방에 간다든지 하면 서운하지 않나. (웃음) 석대는 가출팸에 있는 아이들 중 어른의 역할을 하는 친구다. 본인도 아직 청소년이지만 뭔가 무게감과 책임감을 느끼는, 힘들어도 겉으로 티를 내지 않는 굉장히 바위 같은 인물이다.
친동생인 유수빈 배우가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다. 동생은 <약한영웅>을 보고 뭐라고 하든가.
동생에게 출연할지 부탁하니 흔쾌히 좋다고 하더라. <약한영웅>을 보고는 ‘찢었다!’고 했다. (웃음) 평소에 잘한 부분이나 아쉬운 점 등에 대해 서로 터놓고 이야기하는 편이다.
작품 외적인 질문이다. 미장센단편영화제 등에서 호평받았지만, 장편 영화에 앞서 이렇게 시리즈를 먼저 연출할 기회를 얻었고 반응 역시 좋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고 싶은가.
상업작품을 한 편 완성했다는 것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다음 작품은 아직 별다른 계획이 없다. 영화 하는 친구들과 교류하면서도 언제, 뭘, 어떻게 만들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일단 눈앞에 주어진 것을 하기 바빴고, 그 안에 이야기와 감정을 풀어내는 게 우선이었기에 그렇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감독이나 영화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코엔 형제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을 좋아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인가 극장에서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1994)을 보고 박진감과 스펙타클함에 압도당한 기억이 있다. 최근 인상 깊게 본 영화는 고전 영화 <공포의 보수>(1953)다. 몇 년 전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고전영화 기획전에서 봤는데 재밌더라.
마지막 질문이다. 어떻게 영화에 입문하게 됐나.
음…특별한 꿈이 없이 살다가 군대에서 영화광인 고참을 만났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건 좋아했지만,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다가 고참이 소개해 준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블루벨벳>(1986)을 보고 이전과 이후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강한 매력을 느꼈고 영화를 만들고 싶어졌다.
사진제공. 웨이브
2022년 12월 14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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