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마음에 드는 식당이면 줄기차게 가고, 데뷔부터 함께한 매니저는 가족과 마찬가지고, 10년째 장기 연애 중인 연인은 어느새 대화를 제일 많이 나누고 말이 가장 통하는 친구가 됐다. 20년째 인연을 이어온 마동석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영화 <압꾸정>으로 오랜만에 관객을 찾은 배우 정경호 이야기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대무가>의 살벌한 깡패 두목과는 사뭇 다른 까칠하고 세련된 성형외과 원장 ‘지우’로 스크린에 복귀했다. 모처럼 인터뷰 자리에 나선 정경호를 만났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거친 모두를 위로하고 응원하며, 3개월 준비해서 일주일밖에 공연하지 못한 연극 <앤젤스 인 아메리카>에 아쉬움을 표하며 재도전을 기약한다.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오래 이어간다는 그의 말을 들어본다.
영화 <대무가>에 이어 <압꾸정>까지 스크린에서 자주 보니 반갑다. (웃음) 그간 영화는 좀 뜸했다.
두 영화 모두 코로나 이전부터 준비한 작품이다. 이렇게 개봉하게 돼 감사하다. 영화가 뜸했던 건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시즌3까지 4년에 걸쳐 하다 보니 중간에 다른 작품을 잡기 힘들었던 부분이 크다. 지금은 좋은 감독과 배우들과 함께 영화 <보스>(하이프미디어코프가 제작하는 코믹액션물로 조우진, 박지환 등이 출연)를 준비 중이다.
촬영한 지 꽤 됐는데 완성본을 보니 어떻든가.
오랜만에 본 재미있는 시나리오였는데 그대로 잘 나온 것 같다. 생활에 밀착한 상황과 대사라 현장감을 살리기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잘 소화한 것 같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하 <슬의생>) 시리즈에 이어 또 의사 역할이다. 이쯤 되면 의사라는 직업이 꽤나 친근하게 다가갈 것 같다. (웃음)
의사는 너무 힘든 직업이라는 생각이다. 열심히 흉내 내보려 하지만 그조차도 힘들다. <슬의생> 시즌 1을 끝나고 <압꾸정> 시나리오를 받았다. (마)동석 형과 미팅한 후 작품은 재미있지만, 의사 캐릭터를 연이어 한다는 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슬의생>의 ‘준완’이나 <압꾸정>의 ‘지우’ 모두 까칠하고 자기만 아는 안하무인이라는 면도 비슷해서 처음에는 고민했다. 이런 부분에 관해 얘기하다가 결국 <압꾸정>은 의사라는 직업보다 상대역인 ‘대국’(마동석)과의 앙상블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라는 직업은 ‘성공을 꿈꾸지만, 서로 믿지 못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살릴 하나의 장치일 뿐이라는 의견에 힘을 얻었다. 그래서 장면과 대사에서 대국과의 티키타카를 어떻게 살릴지 중점을 뒀다.
티키타카를 살리기 위해, 그러니까 코믹함을 살리기 위해 포커싱한 부분은.
관객(시청자)을 재미있게 하고 웃게 만드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우리끼리만 웃긴다고 코믹이 성공하는 게 아니니 말이다. 무엇보다 극 중 인물들에 공감해야 하고, 이런 공감을 일으킬 기본 조건은 드라마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다시 말해 설정 자체가 받쳐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부족하나마 빈 곳을 채우려 노력했다.
극 중 재생되는 병원 홍보 영상 속에서 음악에 맞춰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른다. 보기 드문 발랄하고 유쾌한 모습이다!
사실 의사가 뮤지컬 컨셉으로 홍보 영상을 찍는다는 건 좀 얼토당토않은 설정이지만, 내가 갖고 있는 걸 어떻게 하면 잘 보여줄까 싶어 시도해 봤다. 내가 봐도 좀 어색하다. (웃음)
마동석 배우는 실제 압구정에서 만난 사람을 참고로 ‘대국’ 캐릭터를 살렸다고 했는데, 지우의 모티브가 된 인물도 있는 건가. ‘에이스 수술’ (경쟁업체가 성형 부작용과 약물오용 등을 조작해 찍어내는 행위)이라는 게 낯설었는데 실제로 존재한다고.
비슷한 사례의 원장님을 만났고, 지우 캐릭터에 참고하기 위해 술도 마시고 얘기도 많이 나눴다. VIP 시사회에 참석도 하셨다.
마동석 배우와는 이번이 첫 호흡이지만, 20년도 넘은 인연이라고 하던데 사연 좀 들려 달라.
형도 나도 둘 다 데뷔하기 전이다. 싸이더스(영화 제작/배급사) 사무실에 왔다 갔다 하며 오디션을 보는 등 으싸으?하며 준비하던 때다. 계속 같이해보자는 마음이 있었는데 인연이 닿지 않다가 <압꾸정>에서 비로소 만났다. (웃음) 영화 한 편을 메이드한다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인데 형은 30~40편을 준비 중이다. 자기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간 같이 일한 배우와 스탭들을 위해 기회의 장을 열어주기 위한 노력이라 더욱더 대단한 것 같다. 내게 후속 작품을 제안하기도 했고, 비단 나만이 아니라 신인 감독 배우 스탭 그리고 제작자까지 이들에게 스타트의 발판을 마련해주고자 함이다.
여러 작품 제안을 받았다고 해서 묻는데, 혹시 <범죄도시> 시리즈는 목록에 없었나. 8편까지 제작한다고 밝힌 터라…
<범죄도시>는… 아직 제안받지 않았다! 하하
함께 작업하면서 발견한 친한 형(마동석)의 새로운 면이 있다면.
형의 장점을 알리는 영화가 좀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통쾌한 액션으로 대표되지만, 형 특유의 재미있고 생활감 있는 연기 또한 장기라 많은 분이 좋아할 거로 본다. 연기 외적으로 배운 부분도 크다. VIP 시사회에 찾아 준 수백 명을 상대로 일일이 인사하고 사진 찍는 형을 보면서 사실 좀 놀랐다. 감사한 마음을 진심을 다해 표현하는 데 참 배울 점이 많더라. 오늘 아침에 이런 내용의 문자를 보내니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인터뷰 잘하고 오라셨다!
웃음을 참는 게 고통(?)스러운 현장이었다고. 높은 텐션의 일등공신은 누가 뭐래도 오나라 배우일까. (웃음)
과연 그렇다. 같이 연기하기 힘들 정도로 늘 하이텐션이다. 누나가 집에서는 말없이 뜨개질만 한다는데 현장에서는 에너지가 넘쳐 흐른다. 그래서 같이 무대인사 다니거나 홍보 뛸 때는 편한 부분도 있다. 말없이 있어도 옆에서 다 하거든. 내가 극 I(내향형)인지라… 여튼 누나는 좋은 에너지와 기운을 불어넣는 활력소 같은 사람이다.
배경이 압구정인데 실제 촬영도 그런가.
80% 이상을 압구정 한복판에서 촬영했다.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싶은 정도로 펼쳐 놓고 찍었던 것 같다. 압구정 하면 어딘가 약간은 욕망의 도시, 그러니까 성공하고 싶은 사람들이 즐비한 곳이라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헤어샵을 압구정으로 가고 있지만, 어쨌든 이런 곳에서 촬영하니까 뭔가 감회가 새로웠던 기억이 있다.
압구정이 성형·뷰티 메카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2007년이 배경이다. 당시 유행한 아이템들이 눈에 띄더라.
지우의 스타일링만 봐도 알 수 있을 거다. 의상 실장 누나에게 내가 당시에 사고 싶던 것 예를 들면 본더치 모자, 카르티에 목걸이, 벨트, 시계, 향수 등을 얘기했더니 기가 막히게 가품을 구해와서 활용했다. 지우가 몰고 다니는 검은 색 벤츠도 그렇고! 스타일링에 대한 아이디어를 많이 나눴다.
영화 외적인 질문이다. 인터뷰하는 자리가 하도 오랜만이라 궁금한 점이 많다. (웃음) 극 ‘I’ 성향이라고 했는데 지금까지 맡은 역할 중 실제와 가장 닮은 캐릭터는.
진짜 얼마 만에 하는 인터뷰인지 모르겠다! 먼저 많은 분이 관심을 주셔서 감사하다. 사실 잘 모르겠는데…. <슬의생>과 4년을 함께하다 보니 ‘김준완’이 정경호가 돼 있더라. 어느 순간부터 제일 나 같은 인물, 캐릭터가 아닐까 한다. 내년 방송 예정인 전도연 선배와 함께한 드라마 <일타 스캔들>의 ‘최치열’도 많이 비슷한 것 같다.
그간의 캐릭터 덕분인지 예민하고 까칠한 이미지가 강한데 실제로는 어떤 편인가. 해당 배역을 너무 잘 소화해서 ‘까칠 장인’이나 ‘예민 보스’ 같은 수식어도 따라다니지 않나.
솔직히 실제로는 까칠하지 않은 편인 것 같다. 뭐 친한 사람들은 무심코 툭툭 나오는 면이 있다고는 하지만, 외형적으로 마르고 예민해 보여서 그렇게 느끼는 부분이 크지 않나 싶다. 10년 넘게 이런 캐릭터를 해 와서 그런지 실제로 살이 찌지 않는다. 지금 촬영 중인 캐릭터 - 이 친구는 섭식장애까지 지녔다! - 이후로는 다른 모습을 좀 보여드리고 싶다. 예전에는 이미지 고착을 우려해서 비슷한 역할이나 톤은 기피하고 다양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컸는데 지금은 좀 달라졌다. 같은 성향의 캐릭터를 자주 접하다 보니 (내가) 나이 듦에 따라 다르게 표현할 수 있겠더라. 20대와 30대, 또 40대의 도도+예민+까칠의 모습이 똑같지는 않으니 차이점을 찾아 연기하는 게 하나의 숙제로 느껴진다.
어언 데뷔 20년이 가까워졌다. 신드롬급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로 눈도장 꽝 찍은 후 지금까지 쉴 새 없이 달려왔다. 그간을 돌아본다면.
사실 20대 때는 기회가 참 많았다. 좋은 작품으로 데뷔해 많은 사랑을 받았고, 다음 작품 제안도 계속 이어졌다. 이때는 어느 정도 내 멋에 취해서 연기하지 않았나 싶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나 혼자만, 내 것만 잘하면 된다는 안일한 마음이 있었다. 이런 생각이 군대 전역하면서 한 번 깨지고, 이후 중앙대 선배들과 영화 <롤러코스트>(2013)를 만들면서 바뀌었다. 30대 들어서는 너무나 꿈꿔왔던 배우라는 직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더욱 집중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책임감을 갖고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임해야겠더라. 20대부터 선망해 온 선배(전도연)와 멜로 연기를 하면서도 이렇게 꿈이 실현됐다는 자체로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재촉하게 된다.
어느덧 마흔이다. (정경호 배우는 1983년생) 나이 드니 어떤가. (웃음)
지금 나이가 고민이 많아지는 시점이 아닌가 한다. 어딜 가도 막내는 절대 아니고 그렇다고 선배라고 하기에도 애매모호한 딱 중간인데 한편으로는 좋은 선배와 후배와 같이 할 수 있어 좋은 때인 것 같다. 생각해보니 독립한 지도 오래됐고 어느덧 강아지도 9살이 됐다.
(소녀시대 최수영과의) 공개 연애도 벌써 10년이다.
그렇지. 그간의 세월이 있으니 그 친구와 제일 많이 이야기하고,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유일하게 이야기 나누는 오랜 친구 같은 면도 있다. 결혼 질문도 자주 받는데 시기가 되면 하겠지만, 아직은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고 있다. 사실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오래가는 편이다. 매니저 형도 데뷔때부터 지금까지 20년 함께 일해 이젠 가족 같다. 밥 먹는 것도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그 곳만 줄곧 가는 편이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것 같다. 작품 선택에도 영향을 미칠까.
100%라 해도 될 정도다. 누구와 같이하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글이 좀 부족해도 충분히 열어 놓고 생각한다. 참여한 작품이 사랑받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지만, 결국 함께한 사람은 남기 때문이다. 또 다른 작품으로 인연이 이어지기도 하고.
마지막 질문이다. 정경호는 어떤 사람인가?
진짜 잘 모르겠다. 다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묻는다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좋은 사람이 좋은 말을 할 수 있고 더불어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사진제공. ㈜쇼박스
2022년 12월 13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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